소서 -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황석공 지음,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 동아일보사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 황석공은 진나라 때 은거했던 군자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그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된 바가 없는 까닭에 실존 인물인지조차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 황석공은 이 책 「소서(素書)」를 장량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에게 건네주었으며2, 이후 장량이 이 책의 일부만을 활용해 유방을 도와주었을 뿐인데도 유방이 결국 한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었다라는 후대의 전언은 이 책 「소서」가 지니고 있는 깊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 편저자들은 적고 있지요. 이처럼 실존 인물인 장량과 설화 속 인물인 황석공을 연결짓고 있는 이 책은 고작 1,336자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임에도 그 안에 인간 심리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p15)을 담고 있다라 편저자들은 말합니다. 이처럼 으다다한 수식어로 시작되고 있는 이 책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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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마다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저는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사주(四柱)'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 '사주'란 것은 (사뭇 그 어떤 상상조차 뛰어넘을지도 모를) 엄청난 양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일종의 통계, 즉 요즘 말로 하면 '특정 시점에 태어난 사람들의 일생을 관찰한 미시사(微視史)에의 빅 데이터'쯤 되는 것인데, 그 모집단이라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에 그러한 모집단으로부터 추출된 통계 결과를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저의 일생과 연관시켜야 할 하등의 연결고리가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옛 중국 성현들의 가르침 역시 '사주'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를 딱히 찾아내지 못한 채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더랬습니다. 


편저자들이 정리해놓고 있는 「소서」의 내용은 일단 다음과 같습니다. : '「소서」에는 처세에 대한 철학과 사람을 쓰는 원칙,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개인의 수양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사회를 안정시키고 다스리는 방법이 가득 담겨 있다.'(p21) ---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편저자들의 이러한 설명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사회의 리더가 구성원을 대할 때 모든 절차를 예로써 처리한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분명 예를 다해 리더를 섬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스리는 자가 정의를 따라 행한다면 다스림을 받는 자도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다스리는 자가 자애로운 마음으로 품는다면 다스림을 받는 자 역시 타자(他者)를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pp38-39)


상대를 진정으로 복종시키고 싶으면 우선 품어야 한다. 나와 다른 신념, 문화, 종교, 철학을 가진 자라도 그의 처지와 상황을 생각하고 헤아려주는 것이다. 안하무인 오만불손한 상대를 만나면 달래서 품고 천방지축 기준 미달의 하수를 만나면 위로하며 품는다.(p51) 

선(善)은 일반적으로 불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집니다. 예를 들어 맹자가 말했던 '측은지심'은 그 당시에도 그러했거니와 지금에도 여전히, 또한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난다하더라도 그것이 '선(善)'임이 부정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선(善)'의 여집합을 (대체적으로) 모두 '악(惡)'이라 규정하는 (하지만 그 반대는 또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국 고서(古書)들의 사고 방식/인식으로는 현대 사회를 설명해내기 쉽지 않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선은 불변하나, 악은 진화하며 심지어 진보마저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즉!

①에서 서술되어 지고 있는 'If~, then~'의 반응구조가 (적어도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2015년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일반적으로 성립된다!'라 말해질 수는 없다는 것이며, ②에서 말해지고 있는 '안하무인 오만불손한 상대'를 만났을 때의 대처방식 역시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라는 의문이 제게는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라는 겁니다.

(「소서」 자체가 아니라, 「소서」를 해설해주고 있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아쉬움은 이런 맥락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 '여성의 알현이 공공연히 행해지면 어지럽다'라는 경구를 해설해 놓은 부분을 보죠. 편저자들은 '고대 중국의 질서에 따르면, 여성의 본분은 집안을 지키는 것이었다. 지붕 아래 놓여 있는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편안하다(安)'라는 글자를 통해서도 당대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바람직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p192)라 부연하고 있는데, 이는 중학교 한문 시간에서 '안(安)'이라는 글자를 설명하는 데에서나, 그것도 요즘 시대에는 '성적 차별'이라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한 설명일 뿐입니다. 내심 이 다음에 이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이 이어지길 기대했더랬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문구는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라는 뜻'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더군요. 이처럼!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이 실려 있다 하여, <동의보감> 전체를 터무니없는 개소리라 치부해버릴 수 없겠으나, 「소서」에 실려 있는 1,336자의 가르침들 중에는 이미 그 유효기간이 끝나도 오래 전에 끝나버린 것들이 분명 있음에도, 편저자들은 그 모두를 전부 안고 가려했다라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 아쉬움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 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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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렵지 않게 발견되어지는 이유로도 반박당하는 책에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부제를 달아놓을만큼 단순무식함이 그 전부는 결코! 아니었던겁니다. 


<옛일을 거울삼아 지금 일을 짚어보면 얽매이지 않는다>


​옛것이라고 해서 그저 케케묵은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일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고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있을 것이다. 관자(管子)는 "오늘날의 일에 의아함이 있으면 옛일을 살펴보고, 훗날의 일을 모르겠으면 과거를 돌이켜보라"고 했다. 과거는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미래의 물음에 지표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강조되었던 바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교훈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며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황석공은 옛일을 모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옛일을 헤아리되(推古) 오늘날의 상황에 맞는지 따져 물어볼(驗今) 것을 강조하였다. 과거의 경험을 더듬어보아 오늘날에 적용이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작은 것에 얾매이지 않을 수 있다. …… 과거의 경험과 교훈은 참고가 될 뿐이지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과거에 눈을 돌려보면 무수히 쌓여 있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만나게 된다.(pp102-103)

중국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대해 기본적으로 '사주'를 이해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받아들인 채, 이 책을 읽어내려오던 저에게 황석공은 이처럼 단칼에 그러한 저의 생각을 뒤집어놓을 준비를 해놓고 있었더군요. 여기에 더해! 이 책의 감수자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은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는 데 필요한 배의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배를 어떻게 작동할지는 스스로 분투하며 배워나가야할 것이다.'(p13)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사뭇! 이 책을, 더 나아가 옛 경구(警句)들의 (현대적) 의미를 (그저 탑승하기만하면 알아서 작동되어지는) '자동항법장치가 달려 있는 배'로 이해했던 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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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에 대해 딱히 시비를 걸 용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그 말의 유효성에 대해 적잖은 의심을 가지게 되었기는 합니다. --- 이 책에는 이처럼 '당연한 말'들이 담겨져 있기에, 예의 곳곳에서 그 당연함에 대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사뭇 지루함을, 또는 '2015년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대입해 보았을 때의 유효함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만!!!


인간만이 단순한 '진화'가 아닌 '진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만이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옛 지혜들을 기록하여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상기해본다라면, '옛일을 헤아리되(推古) 오늘날의 상황에 맞는지 따져 물어볼(驗今) 것'이라는 말이 뜻하고 있는 '보편적 특수성'이 지니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벼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은 잔잔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알려주고 있다라는 걸, 책을 다 덮고나니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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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요,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그들 앞에서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3(p254)

'후회'라는 건 기본적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생겨나는/깨닫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라는 것이, 저에겐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서는 크나큰 '후회'로 다가왔지만 혹!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기회'가 되어줄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날의 끝으로 제 가슴 한 가운데를 찔린 듯한 느낌을 주었었던, 그리하여 이 책의 독서를 끝내 (저의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로만 남게하지 않았던 다음의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리고 여전히! 저에게도 카이로스의 뒷머리만이 보이는 건 아닐꺼라 생각하며/바래어보며 말이죠.

내가 감동할 만큼 내 스스로 정성을 다했는가? 하늘이 감동할 만큼 내 정성이 지극했는가? 정성이 지극해 진심으로 내가 감동하고 또 하늘이 감동할 정도라면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을 것이다. 설사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정성을 다했다면 결과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후회란 게 남아 있을 리 없다. 자신의 부족함에 좌절하지 않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도전하면서 그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나 자신이 탄복할 만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원하는 결과를 덤으로 얻으면서 말이다.(pp137-138)

 

 

 



 

  1. 문이원(文而遠) : 옛 교훈을 성찰하고 이를 현대적인 그릇에 담아 대중에게 전하려는 문학과 어학 전공자들의 인문연구모임이다. 일찍이 공자는 무문이불원(無文而不遠)이라고 했다. 글로 남기지 않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 즉 글로 남겨서 뜻이 멀리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문이원은 여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한데 모여 고전을 연구하며 한중 문화의 동시대성을 발견해내고,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2. 이 책의 겉장에 "신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전하지 말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이를 전하지 않는 사람 또한 하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p5)라 쓰여져 있었었는데, 이후 장량은 이 책을 전할 사람을 찾지 못해 결국 자신의 무덤에 묻었었으며, 이후 동진 시대에 도굴꾼이 장량의 무덤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3. 이탈리아의 토리노 박물관 앞에 있는 카이로스(Kairos) 부조상에 있는 시 구절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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