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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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적이면서도 또한 비극적(p35)'이라 표현되고 있는 주인공 당편의 삶을 통해, 한국전쟁 이전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경험했었던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화되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가 이문열의 작품 「아가(雅歌)」를 저는 이렇게 표현했었더랬지요. (바로 전에 읽었던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과 같은 제목이라는 이유만으로 펼쳐보았던) 이 작품 「투명인간」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보았던 작가 성석제는 「아가」보다 더 넓은 시간적 배경을 통해, 김만수라는 인물의 주변인물들에 의해 서술되는 개인 김만수의 일생,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변천사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 이처럼 비슷한 서사의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는 두 작품 속에서, 그 (흘러 지나간) 시간들을 이문열이 '오래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릴 때의 애잔함과 그리움'이라 표현하고 있었었다면, 「투명인간」의 성석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보여/표현해내고 있을까요? (1897년의 영국 작가가 표현했던 '투명 인간'이라는 개념과 2014년의 대한민국 작가가 표현하는 개념간에는 과연 어떠한 의미상의 차이가 있을까가 이 독서의 시작이었었습니다만, 읽어가면서는 이문열의 「아가」가 보여주었던 시선과의 다른 점에 대해서만 유독 집착을 하여 이 소설을 이해하려하게 되더군요. 이러한 저의 독서에 대해 그 방향이 옳았다거나,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다라는 것까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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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생의 작가 성석제는 --- 시골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만수네 가족이 서울 변두리로 이사한 이후의 일상을 통해서는 저도 경험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미세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이 소설의 독자인) 저에게 '오래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릴 때의 애잔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동감의 존재 여부가 일단! 이문열의 「아가」와의 첫 번째 차이점이었지요.  

국민학생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놀이터 앞에 판을 벌이고 있었던 약장수 아저씨. 기생충 약을 팔고 있었던 그는 우리 또래의 아이에게 그 약을 먹인 후, 약간의 쇼 비슷한 걸 해보였고 이후 그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에서 짜장소스가 묻지 않은 면발같은 무언가를 줄줄이 뽑아내며 '이게 그 아이의 몸 속에서 나온 기생충'이라고 말했었던 걸, 마흔 일곱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아이는 잠결에 무언가 길쭉한 것을 뽑아내고 있었다. 길고 질진 쫀드기 같은 것을 자꾸만 뽑아올리고 있었다.(p67)'


제 아버지가 대학에 합격을 하셨고, 이제 등록금 납부 마감일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거늘 등록금 마련이 안되었다는 겁니다. 시골에서 할머니께서 올라오셔서 은행의 창구 여직원에게 애원하시길, 한 달내로 꼭 나머지 반을 마련해올테니 우선 이 반 되는 돈만으로 내 아들 등록 좀 꼭 시켜달라고. --- 지금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더군요. 그 여직원이 할머니의 청을 들어주었고 (아마도 나머지 반은 그 분의 돈으로 메꾸었지 않을까라 추측만 하는) 그렇게 제 아버지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셨다는 겁니다. 할머니께서는 진짜로 한 달안에 나머지 반의 돈을 마련해 오셨다더군요. 이후... 회사의 일 말고 다른 것에는 신경 쓰시길 정말 싫어하셨던 제 아버지가 유일하게! 대학 총동창회의 이사직만은 맡으셨더랬습니다. 훗날 왜 그 이사직만은 거절하지 않으셨었냐 여쭈었더니, 그 자리에 있으면 그 때 할머니의 청을 받아주었던, 그리하여 당신께서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은행 여직원분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였다라 말씀해주시더군요. 끝내... 그 때의 여직원분은 못찾고 돌아가셨지만. : '공부만 하고 살고 싶은데 그것마저 쉽지는 않구나.'(p114)



 지금이니까 이야기하지만 --- 음주운전을 종종 하셨던 우리 아버지는 가끔... 방금 전 집 앞에서 경찰에게 걸렸는데, 지갑에서 돈을 좀 넉넉하게 꺼내어 집어주니 집까지 에스코트도 해주더라란 말씀을 아주 기분 좋게 말씀해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돈을 건네어 준 저희 아버지나, 그 돈을 넙죽 받았던 경찰이나 모두! 그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생성되지 않았었던 그때 그 시절... 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겠지요. : '가장 웃긴 건 교통경찰을 보조하면서 삥땅을 쳐온 돈으로 우리들을 월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옮겨가게 한 것이었다.'(p213)

제가 3학년 때 였던걸로 기억되는 일입니다. 원래 시위를 해도, 총학생회장같은 소위 거물들은 절대로 전선의 맨 앞에 나서질 않지요. 하지만 경찰들은 그 거물을 잡고 싶어 하구요. 그렇게... 총학생회장은 1년 내내 현장의 맨 뒤에서, 혹은 현장이 아닌 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명령하는 것으로 지내다가,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 쯤 되면 갑자기! 시위의 최전방에 스스로 나가섭니다. 그리곤 예의 경찰에게 잡히지요. 그때 들리던 말 하나 --- 저렇게 잡혀 가고, 그래서 군대 안가는 거고, 경찰들도 그걸 다 알고 있으며, 하지만 그 체포 역시 자신들의 실적이었기에 그렇게 진실같지 않은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되는 거라고. :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 시합에서 쌀알만 한 모래가 신발에 들어가 있다 치자. 레이스가 진행될수록 쌀알은 자갈로, 자갈에서 바위로 변한다. 남을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계속 뛸 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내게 군대 문제가 그랬다.'(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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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단지 불편함일 뿐이다'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진짜... 그런/그 뿐인 걸까요? --- '가난'이라는 조건하의 누군가는, '풍족함'이라는 조건을 지닌 다른 누군가와는 분명! 다른 '가치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엔 없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이들'의 가치관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그 반대로 '가난'이라는 조건 탓에 그들의 가치관이 그렇게 성립될 수 밖엔 없다라 말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건 마치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질문과도 같은 것이지요. 여기서!!! --- 작가 성석제는 단언코, '가난이라는 조건 탓에 그들의 가치관이 그렇게 성립될 수 밖엔 없다'의 편에 서 있습니다. : '조건이 환경을, 환경이 인간을 바꾼다.'(p215)

이러한 특정 조건, 말하자면 '가난'이라는 조건에 속해 있는 개인/집단/사회에게는 그렇지 않는 개인/집단/사회는 겪지 않는, 심지어는 알 지도 못하는 환경에 처해지게 됩니다. 물론 그 환경은 매우 열악한 모습을 띠고 있지요. 엎친 데 덮친 격, 그렇게 말이죠. --;;



몸이 작고 마른 아이, 집이 가난한 아이, 시골 아이일수록 이가 많았다. 먹을 게 뭐 있다고(p64) …… 베트남에서 한국군에게 고엽제를 사용하는 데 따르는 주의사항이나 지시가 별달리 전달되지 않았던 까닭에 일부 병사들은 미군이 고엽제를 공중살포할 때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 하여 고엽제가 쏟아지는 곳을 쫒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 했습니다.(p128)


이처럼 가난이 단지 불편함의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이 소설은 낱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 '가난은 결코 단순히 불편함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전달하고자 하는 이 소설의 메세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님 세대들이 겪었었던 그 시절들의 (조건과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의) 현실이,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reality라는 의미로의) 현실이 아닌 것으로만 바라보아지는 그 '(조건과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의)현실'에 대해 우리는 기껏 '정말 불편했겠다!'라 말할 수 있을 뿐일지라해도 당신들에게는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만 받아들여졌던 '(reality라는 의미로의) 현실'이었다라는 거,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긴 하나)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듯, 그러한 과거가 있었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의미 모두로서의)현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이해가 성석제라는 작가를, 소위 말하여지는 '보수적'이라는 카테고리에 넣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오빠는 내가 국민학생일 때부터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출을 할 때까지 엄마처럼 주부처럼 살림을 다 했다. 아버지처럼 가장처럼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왔고 식구를 부양했다. 오빠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냥 관성적으로 지나쳤다. 나는 그저 내 생각, 내 할 일에만 골몰했다.(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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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연환경이 악화돠면 한 집단에 속한 들소 가운데 약한 개체는 맹수들에게 사냥당해 죽고만다. 그럼으로써 전체 집단의 안전과 건강함이 유지된다. …… 만수는 약하고 보기 싫기까지 한 들소였다. 곧 도태되고 말 운명이었다.(pp147-148)

주인공 김만수는 타인에게 이런 평가를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나는 우리 형제들이 나를 디디고 밑거름으로 삼아서 훌륭하게 되기를 바랐지. 혹시 나중에 뭔가 잘 안되어서 높은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든 떠받쳐서 재기하도록 도울 생각'(p267)을 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런 만수의 가족들은 이런 그를 (당연히!) 답답해 합니다. 이해도 못하지요. 저도 그가 답답했고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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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p364)

우리 부모 세대들 모두가, 소설 속 김만수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 분들 모두가 다 자랑스러운 수출역군이었노라고,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분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로만 역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라는 걸 분명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이제까지 제가 역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오며 가지게 된 하나의 다짐입니다. 역사는 피라미드를 만든 파라오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피라미드는 분명!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못한 수 많은 이집트인들의 죽음을 대가로 세워질 수 있었었듯이, 우리의 역사 속에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수많은 '김만수들'이, 비록 그처럼 존재하지도 않았듯이, 결국! '투명인간'과도 같이 흔적조자 남지 않은 흔적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엔 없는 2015년의 '(reality라는 의미로의)현실'에 대해 작가 성석제 또한!!! 이 작품을 통해, 그리고 다음의 한 마디를 통해 '2015년의 우리들'마저도 그들, 수많은 '김만수들'을 투명인간으로, 「아가」속 이문열의 표현을 빌자면 '존재하고 있었지만 수신되지 않아 무의미해진 기호'로 취급해서는 결코 안 된다/(최소한!)안 되지 않겠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아가」를 통해 작가 이문열이 '시대'를 이야기했었다라면, 「투명인간」의 작가 성석제는 그 '시대'을 살아왔던/만들어왔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 '시대'와 '사람'의 차이 때문이 결코 아닌, 그 안에 녹아져 있는 작가의 가치관 탓에 「아가」에 대해 좋지 못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던 반면, 이 작품 「투명인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고딩들의 역사 교과서에 이런 작품이 실려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를 갖게 되는, 참으로 마음 시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었네요.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p370)


- <작가의 말> 중

 
   




※ 비교하며 읽어볼 수 있는 작품 : 이문열 作, 「아가(雅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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