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라 히로시 作, 「내일의 기억」이란 작품을 통해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해 처음으로 (뭔가 좀 구체적이게) 접해 보았더랬습니다. 이 작품 「스틸 앨리스」 역시 그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두 작품 모두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 병을 앓기 시작한 주인공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병을 「내일의 기억」에서는 '약년성 알츠하이머'라, 이 작품 「스틸 앨리스」에선 '조발성 알츠하이머'라 표기하고 있는데, 의학적으로는 뭔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독해에로서 보자면 단순히 번역의 차이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두 작품은 일단 비슷한 줄거리와 전개 양상을 가지고는 있게 됩니다만! --- 일단 일본 작가와 미국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허나 이것을 섣불리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고까지는 차마 말할 수는 없겠는) 것, 주인공의 성별이 남자와 여자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반응의 차이가 매우 뚜렷하게 보여지고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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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때, 그러니까 1년여 전부터 그녀의 머릿속에서 뉴런들이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 그것이 분자 살해였든 세포 자살이었든, 뉴런들은 죽기 전에 그녀에게 그런 상황에 대해 경고할 수가 없었다.(p7)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심리언어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앨리스. 그녀의 남편 역시 같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며 자녀들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마디로 남부러울 것이 전혀 없는 그녀입니다. 헌데... 그런 그녀에게, 그저 단순한 건망증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자주, 게다가 심각하기까지한 '정신적 딸국질'(p10)들이 어느 날엔가부터 나타났지요. 비록 앨리스가 의사를 찾아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하긴 했지만, 내심 그녀 스스로는 이미! 자신의 기억 장애가 '사소하고, 흔하고, 무해하며 심지어 합당한 것'(p58)일꺼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뭇 이런 상황 자체가 믿겨지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았던 거지요. --- 이하에선 제가 읽어본 이 두 작품, 「내일의 기억」과 「스틸 앨리스」에서 보여진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이 감상문을 써볼까 합니다. (초록색 박스 안의 글은 「내일의 기억」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남편 존은, 자신의 아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라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병일 것이라 추측하며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만 결국엔... 자신의 아내, 앨리스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엔 없게 됩니다. 여기서!!! 이 작품과 「내일의 기억」사이의 첫 번째 차이점이 나타나지요.
(의사의 처방에 따은 의학적 치료를 해나감과 동시에) 사에키의 아내 메이코는 남편의 발병을 알게 된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좋다는 식단만을 차려냅니다. 당사자인 사에키 역시, 평소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호박마저도 기꺼이/억지로라도 먹어내지요. : '내가, 내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어떤 일이든 참아낼 수 있다. 나는 두 개째 호박을 입 안 가득 넣었다.' VS 이에 반해 앨리스와 존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철저히 (심지어는 스스로 찾아내기까지 한) 현대 의학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가 하버드대학의 교수라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이 병의 최신 치료법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그 과정에서! 앨리스의 남편 존은, 심지어 의사의 치료 방법에 반기를 들기까지 합니다. 각종 치료법들을 동시에 병행하여 (최소한 병의 악화만이라도 막아보는 처치를) 진행해보자 했던 의사완 달리, 남편 존은 (비록 아직 그 확실성이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병으로부터의 회복을 도모할 수도 있다라 믿어지는/믿어볼 만한) 최신의 특정 치료법을 고집합니다. : '연발총이냐, 총알 한 알이냐.'(p201)
【 나의 존재 】
새로운 노트북이 왔다. …… 자리만 차지하고 말썽만 일으킨다며 평판이 나빴던 나의 데스크톱 컴퓨터는 '폐품'이라는 쪽지가 붙여져 통로에 내놓아져 있었다. 누가 썼는지 쪽지 구석에 이런 낙서가 적혀 있다. 'good-for-nothing' - '쓸모없음'
평상시의 생활에 점점 더 많은 지장이 오고, 결국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까지 진행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의 기억」 속,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에키는, 회사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점점 위태로워진다라는 걸 깨닫고는, (실제론 그 자신과 특별한 연관성이 없는 컴퓨터 한 대를 보고도) 자신이 '폐품'이 되어간다라 생각하게 되지요. 반면!!!
앨리스는 평생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실패 없는 길을 걸어왔었던, 성공한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무려! 종신교수였었던) 그녀에게 자신의 무대인 하버드대학을 떠나야한다라는 사실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것이었지요. 하지만 역시나 --- 그녀 또한 (사에키와 마찬가지로) 일상의 하나하나가 전부 자신의 병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우려에 빠지게 되었으며, 결국 남편 존에 대해서마저도 '아내 없는 미래의 삶에 대비해 미리 연습하는 걸까?'(p132)란 의심/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내 나이조차 잊어먹기 일쑤다. 어쩌다 나이를 기입할 일이 생기면 펜을 멈추고 생각할 때가 있다. …… 알츠아이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언어나 사고에 이어 몸의 기능마저 앗아가버린다. 몸이, 살아가는 방법, 삶 자체를 잊어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병이 점점 더 악화되자 사에키는 이러한 자신의 변화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극복해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결국엔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앨리스 역시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이겨낼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두 작품 속 주인공의 그 '받아들임'에 관한 표현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지요.
차라리 암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츠하이머병을 암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리라. …… 암이라면 적어도 싸울 상대가 있는 것이다.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 요법도 있다. 이길 수 있는 확률도 있다. …… 그리고 설령 암과의 싸움에서 패한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알아보며 작별을 고하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알츠하이머병은 암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그걸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 맹렬한 화염이 모든 걸 태워버릴 것이고 그 화염에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다.(pp168-169)
비록! 자신 역시 이 알츠하이머에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못내... 그러한 사실을 쉬이 인정하려 하진 않았던 거지요. --- 사에키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매일매일 비망록을 작성해 갑니다. 자신의 기억이 온전할 때의 기억들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앨리스의 대비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여기서 밝혀서는 안 될 것 같은, 매우 충격적인) 무엇이었던 겁니다.
【 남겨진 자들의 삶 】
죽음을 의식하게 된 것은 (딸) 리에가 태어났을 무렵부터다. 자식이 생기면 왜 그런지 인간은 자신의 수명을 역산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 이아기 스무 살이 되면 나는 몇 살? 이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나는 몇 살까지 이 아이의 인생을 돌봐줄 수 있을까.
소설 「내일의 기억」은 사실 스토리 자체만 보자면 (쌍팔년도 감성의) '신파 이야기'라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딱히 읽는 재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그 소설은! --- (어느덧 그 나이가 되어있는, 저도 포함된) 중년의 남자에겐 '나 자신'을 스스로 규정짓는 것이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동료,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점철된다라는 사뭇 슬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점에서만큼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더랬습니다. --- 자신이 아내에게 짐이 될까봐, 곧 있을 딸의 결혼식에서 자신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마지막으론 손녀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촉을 잊지 않기위해! 라는 것만이 그저, 사에키가 알츠하이머를 이겨내야하는 이유의 모든 것이었었던 겁니다. 결국... 자신도 이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었을 때에는 지금 자신의 손녀마냥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였었었으나, 이제는 '쓸모없음'의 딱지가 붙어 있는, 게다가 주변에 피해만 주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이후, 그나마 그 피해를 남들에게 안겨주지 않기 위한 노력만을 할 수 밖에 없는/해야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썅!
물론!!! 앨리스 역시 자신이 이러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해 가족들, 특히나 가장 처음 이 사실을 털어놓았던 남편 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는 됩니다.
그에게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존은 나의 정신을 사랑한다. 그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p115) …… "이런 병에 걸려서 정말 미안해, 여보. 상태가 얼마나 더 악화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 언젠가는 당신을 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 얼굴을 보면서도 누군지 모를 거란 사실도 견딜 수가 없어."(p145)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이 병을 이겨내려 했던 그들답게 예의... 앨리스는 이 병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라는 걸 알게 된 후엔 자신들의 자녀들을 걱정하게 됩니다. 물론 세 명 자녀들의 유전자를 검사해보면 그들에게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변이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 20대인 그들 중 누구는 양성반응이, 누구에게는 음성반응이 나왔다면 그들 간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양성반응을 보인 자녀의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내일의 기억」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었던) 문제를 이 작품은 짚어주고 있지요.
이제... 이 작품 「스틸 앨리스」가 독자에게 (독자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던 방향으로) 묻고 있는 가슴아픈 질문이 나옵니다. --- '만일 내 몸의 모든 세포에 이 유전자가, 이 운명에 들어 있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자식들을 낳았을까, 아니면 임신을 피했을까?'(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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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써놓고 보니 --- 애초에 제가 원했던 두 작품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었던 것만큼은 뚜렷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듯 합니다...만! 당신이 직접 이 두 작품을 읽어본다면 확연하게, 때론 미묘하게 달리 표현되고 있는 차이점들이 보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두 작품의 제목이 왜! 이렇게 지어졌겠는가하는 걸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구절들을 인용해보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의 기억」
"기억이 사라져도 나의 지난날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잃은 기억은 나와 같은 나날을 보낸 사람들 속에 남아 있으니..."
「내일의 기억」이란 제목은 단언컨데! 이 두 문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의 기억은 사라져가고, 머지 않아 (누군가의 남편이었었으며 누군가의 아버지, 할아버지였었던) '나'란 존재마저도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함께 했었던 이들에게 남겨질, 내가 사라진 순간 이후인 '내일'부터의 기억에 대해 가장 큰 무게의 비중이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 반면!!!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저는 어제를, 그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난날들 중 어떤 날을 기억하고 어떤 날을 지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 없습니다. 알츠하이머란 병에 타협이란 없습니다. …… 전 다가 올 내일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내일 잠이 깨서 남편을 몰라보면 어쩌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면 어쩌지? 난 언제부터 내가 아니게 될까?(p354)
앨리스의 이 처절한 고백은 물론! 사에키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의 구절이야말로... ('철의 여인(Steel Alice)'은 아니었지만 알츠하이머가 그녀의 자존감을 앗아가지는(Steal Alice) 못하였으며, 그러하기에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로 남아 있다(Still Alice)라는, 하지만 '옆집 사는 앨리스(Living Next Door to Alice)'는 아니라는... 뭐 그런 말장난도 가능해 보이는) 왜! 이 작품의 제목이 「Still Alice」가 되었어야하는지를 너무도 뚜렷이 보여주고 있지요.
저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최대한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p355) …… 저의 지난날들은 사라지고 있고 다가올 날들도 불확실합니다. 그럼 전 무엇을 위해 살까요? 오늘을 위해 삽니다. 저는 현재를 살아갑니다.(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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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개의 작품만을 읽고 여기에서 보여지는 차이점이 바로!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라 말하는 건 지나친 성급함/확대 해석일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두 작품 사이에서 보여지는 명확한 차이점을 만나볼 수 있었던 건... 한 독자로서는 (비록 이러한 소재의 이야기에 대해 '흥미롭다'란 표현을 쓰고는 싶지만 차마 쓰지는 못하겠기에)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란 사실은 분명했었습니다. 이 두 작품 모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데, 영화로 확인해 보는 두 사람의 이야기 역시나... 사뭇 흥미롭지 않을까도 싶네요.
※ 알츠하이머를 다룬 또 다른 이야기 : 오기와라 히로시 作, 「내일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