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평점 :
고전 「심청전」 속 인물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쓰여진 소설입니다. 그렇기에 요즈음엔 매우 촌스러운 이름들인 학규, 덕이, 청이가 등장하지요.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심청전」이라는 모티프를 공유'(p343)하여, 그 안에 '숨겨진 사랑'을 써내었다라 쓰고 있습니다만, 제 눈에는 「심청전」의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단지 (2015년의 시선으로 보아)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들만을 빌려놓았을 뿐. 단!!! --- 이 소설의 주제가 (여전히 「심청전」과는 관계없다 생각하는, 작가에게 보여졌던 그 '숨겨진 사랑'이라는 것 역시 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랑'이라는 것에만큼은 털끝 만큼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비록! 이 소설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이란 게.... (최소한 '저'는 포함된) '인간적이라 말할 수 없으며 현실적 사랑이라 말할 수도 없겠지만, 솔직함에 있어서만큼은 (이런 사랑에 공감해도, 공감한다 말해도 되는걸까싶긴 하지만 끝내) 격한 공감을 하게 된 사랑'이었었다라는 것만큼은, 40대의 중반마저 넘어선 대한민국 남자에게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어떠한 현실적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란 비아냥을 감수해내고서라도 꼭 말하고 싶네요.
"사랑은 가진 것 없고 기댈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 전경린, 「물의 정거장
………………………………………………………………………
매우 비도덕적이고 무엇보다 구질구질한 내용의 소설입니다. 작품 속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향한 오마쥬가 아닐까도 싶은 내용이기도 하지요. 열여섯 살의 나이차가 있는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만,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정말 '구질구질하다'란 표현이 더없이 들어맞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 이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그러니까 그것이 작가의 생각이라 해도 될 것 같은 이 (구질구질한) '사랑관'에 묘~한 매력이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결국엔, 40대의 중반조차 넘어선 저마저도, 한때 최소한 그것을 밖으로는 내보이지 못했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그러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한 번쯤은 있었었노라 털어놓게 됩니다. 이 지지리도 구질구질한 '사랑'에 말이죠. --;;
·
·
·
주인공 학규는 국문과 교수입니다. 근데 무지하게 바람둥이죠. 수없이 많은 여학생들과 엔조이를 했으며 동료 교수, 심지어는 친구의 아내와도 육체적 관계를 가졌었던 한 마디로 '비도덕의 끝장'인 인물이에요. 물론 그러한 '비도덕'을 학규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 예의 이에 대한 그의 상황/변명에 알 수 없이 끌린다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란 겁니다.
● 윤리 의식이라든가 도덕적인 강박이 이미 그에겐 없었다. 그런 것들은 더 어린 날 소설을 쓰며 소진한 뒤였다.(p37)
● 이런 게 핑계겠지만 말이야, 문학을 하면 말이다, 살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 돼.(p91)
이러한 바람둥이 학규와 순진한 시골 처녀 덕이 사이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헌데,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 다르지요. 아니! 다를 수밖엔 없는, 아예 동일하지 않은 별개의 감정이었던 거지요. --- 팽 마담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 학규는 팽 마담과 그녀의 딸인 덕이 둘 다 모두 (물론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에 즐거워합니다. (이 설정은 「롤리타」와 완벽하게 동일하지요. 물론! 그 이후의 여러 상황들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 우연한 만남이 결국 훗날 그 세 사람 모두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게 되는 시작이었던 걸... 당시의 세 사람은 그저 몰랐었을 뿐.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p45)
………………………………………………………………………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p59)
【 학규를 향한 청이의 사랑 I 】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겁이 났다. 아버지처럼 죽어갈까 봐, 엄마처럼 불행해질까 봐 그녀는 걱정이 많았다.'(p80) --- 스무 살 덕이, 그녀의 인생엔 희망이라는 것이 이미! 없었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런 덕이에게 덜컥! '하나의 우연'이 주어졌지요. 그녀가 살고 있던 S읍 소재의 군립 도서관에 학규가 6개월간 강의를 하게 내려오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게다가 학규는 덕이의 집에서, 심지어! 덕이가 쓰던 방에서 하숙을 하게되지요.
그녀는 서울에서 온 똑똑한 선생님의 모든 게 그저 새롭고 멋있게만 느껴졌다.…… 덕이는 가슴속 뭔지 모를 것이 가득 차오르는 것에 들떴다. 조금 떨리기도 했다. 학규의 뒷모습에 넋을 빼앗겼다.(p77) …… 자기가 살아 있음을 깨닫는 유일한 때는 학규와 마주칠 때였다. 그녀는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실체라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p136)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첫눈에 반해버린 것뿐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그에 대한 상상을 사랑으로 마쳤다. 문간방에 하숙을 시작한 사람이 그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엄마의 애인이 된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을 숙명으로 알았다. 그를 생각하면 이유 없이 명치끝이 저렸다.(p199)
덕이가 학규를 사랑하게 된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아파진 것에 대해서조차도 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요. 그냥 그런,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음'에는 틀림없었던 그런 사랑이었던 겁니다. 그 시절 덕이는 이처럼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건가보다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스스로 알아내려하지도 않았더랬습니다. 그저 --- '그녀는 혼자서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르 상상하는 게 좋았다. 사랑이 별건가 싶었다. 그의 방을 자꾸 들여자보도 싶고 궁금했다. 그녀는 그가 잠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문득 담배 불빛에 얼굴이 잠깐 환해졌다. 어둠 속으로 사그라지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pp120-121)'
학규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렇게 이유도 없이 시작되었고, '모든 사랑은 슬픈데, 끝나고 나면 아름다워요.'(p176)라 자신이 학규에게 했던 말이, (「롤리타」를 읽고난 후엔) '결국 사랑엔 죄나 용서도 미움이나 책임도 필요 없는 것 같아. 자책만 남아요. 그게 마음에 들어, 정말.'(pp217-218)란 말 역시, 그것이 그녀가 학규를 향해 가졌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말이 될 것이런 것도 모른 채 덕이는 학규를 사랑했던 겁니다.
【청이를 향한 학규의 감정】
잘나가는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였던 학규의 인생이 망가진 것은 모두 다 그의 바람기 때문이었더랬습니다. 대학원생인 조교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했었고, 결국 그녀가 그 사실을 학교에 공개하는 바람에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이 뒤바뀌게 되었던 것이지요. 학교에서도 쫒겨났으며, 아내와도 이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남 탓이었다. 모든 문제는 자기로부터 시작됐고 커졌지만, 자신 말고는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했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젊었다.(p25) …… 그는 억울했다. 모든 것이 다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그는 한없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는 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p28) …… 후회와 반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이런 상황에 내몰린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와 연관된 모두가 원망스럽기만 했다.(p39)
소설을 읽어가며, 인용해 놓는 부분 뒤에 저의 코멘트를 적어놓는 경우가 꽤 됩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엔 암튼 그 대부분의 코멘트들이 '뭐 이런 새끼가... / 사람이 개냐?'류의 것들이었었지요. (아무리 좋게, 인간의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뭐 이렇게 이해하려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덕이의 젊고 매혹적인 몸매에 반해 그녀와의 불장난을 시작했었을 뿐, 그에겐 덕이를 향한 '사랑'이란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자꾸만 과감해지고 가까와지려는 덕이를 향해, 심지어 S읍을 (말도 없이) 떠나버린 학규를 찾아온 덕이를 향해 그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쏘아주었죠. : "네가 사랑이 처음이라 그런 거야. 곧 괜찮아질 거야. 다른 남자 만나면 금방 잊게 돼."(p58)
하지만!!! 그런 학규가 알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의 다른 이름은 증오라는 것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랑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어떤 반대 감정도 알지 못했다.(p71) …… 그는 연인과의 사랑이나 공감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 감정은 촌스러운 사람들이나 열망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글을 쓰며 이미 그런 감정을 소진해버렸고 … 이미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갖고 싶어 하는 마음과 기대감, 그리고 가져야만 충족되고 다시 비어버리는 욕망의 순환만을 간직하고 있었다.(p197)
【 학규를 향한 청이의 사랑 II 】
세월이 흘렀고, 변해버린 학규의 모습에 덕이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에 대해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지나간 사랑의 다른 이름은 복수다. 그것은 원래 한 몸이어서 변화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계기가 필요한 것뿐이었다.(p141) …… 사랑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이 아니라 상처뿐이었다. 무뎌진 감정의 자학 뿐이었다.(p143)
·
·
·
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작품 속에 나타나있는 학규의 육체적 사랑과 덕이의 이유도 없이 시작되었던 사랑, 그 상반된 모습의 두 사랑에 모두 다... 고개를 끄덕이게만 됩니다. '이런 게 핑계겠지만 말이야, 문학을 하면 말이다, 살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 돼.'(p91)란 학규의 말에, 첫 대면에선 '구질구질하다'란 느낌이 들었었고, 실제로 겉으로는 학규의 생각/사랑에 동감한다라 말 할 수도 없었었지만!!! --- 계속 읽어가다보니 뭔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어야만 하는 그런 '진짜 마음'을 학규의 사랑이 자꾸만 건드린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심지어! '그녀는 집 대문 앞에 설 때마다 남편이 죽기를 바랐다'(p118)란 팽 마담의 마음까지도 그 바람(願)이 남편과 덕이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이처럼 '사랑'이란 것에는 항상 아름다운 면만 있는 건 아니다라는 걸 이 한 마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학규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떤 덕이의 마음이 끝내 --- '굴곡진 인생이 모두 아픈 아버지나 죽은 엄마, 자기를 버린 학규 때문에 망가진 거라고 여겼는데 아닌 것 같았다. 삶이 틀어지고 인생이 어긋난 것이 모두 자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p317)라 변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자기 때문이란거죠? 덕이의 이 독백은 결국 "사랑은 가진 것 없고 기댈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란 첫 장의 문구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작품 속에서) 증명해내려는 작가의 의도라고 밖엔 보여지지 않습니다. 학규나 덕이를 통해 표현된 작가의 사랑관이, 그 독특함과 숨겨진 것을 보여내는 점에 있어서 정말로 황홀할 정도로 맘에 들었었거늘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180도 변해버리는 것에 정말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된 학규, 그리고 그것이 덕이와 청이의 망막이었다라는 설정에선 할 말이 턱... --;;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은 '희생이다' 혹은 '희생이어야 한다'라는 명제는 정녕 작가들이 이겨낼 수 없는 불가침의 한계인걸까요? 뭔가, 뻔뻔한데다가 심지어! 성공까지 하게되는 '불륜'을 그려내는 소설은... 정녕 찾아볼 수 없는 것일른지요...
덧 1> 작품 속에서 작가는 '시점(時點)의 변화'를 너무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독자가 자신의 머리를 굴려야하는 잇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안좋게 보자면 소위들 말하는 'grand design'을 만들어내지 못하겠는 작가의 능력 부족을 숨기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는 비난도 나름 가능할 듯도 싶. --;;
덧 2> 정우성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더군요. 검색을 해보니 덕이 역을 맡은 여자 배우는 첨 보는 배우였는데, 모델 출신이랍니다. 소설 속에서 학규가 덕이의 몸매를 보고 감탄하며 성욕을 느끼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걸 보면 당연(?)... 한 캐스팅일지도 모르겠. ^^
- 결국 학규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 '그는 종종 자기가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린 양딸을 사랑하게 되어 둘이 멀리 여행을 떠나는 도중 사라진 롤리타를 애타게 찾으러 다니는 여정이 자기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여겼다.'(p280)
- 학규의 감정 역시 여러 '사랑'의 하나라 말할 수 있다면, '사랑'이라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