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 그러나 신용은 은행이 평가하는 게 아니다
이건범 지음 / 피어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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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원군이 유치원생 때, 저와 즐겨했던 놀이 중 하나가 단어 거꾸로 말하기였더랬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차'하면 종원군은 '차기'라 말해야 하는 것이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아빠'했더만 이 녀석이 '빠~압!'이라 대답을 했었어요. 왜 '빠아'라 안하고 '빠압'이라 했냐 물어보니 '압빠'라 말했으니까 '빠압'이라는겁니다. 그래 '아빠'의 제 발음을 유심히 한두 번 해보니 진짜로... '아빠'가 아닌, '압빠'라 제가 발음하고 있었더군요. (헌데 이게 저만의 발음 문제는 아닐 듯도 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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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사장님 중에 지난 몇 년 사이 회사를 꽤 크게 성장시킨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언젠가 그 분과 점심을 하며 서로의 지나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었는데, 그 분 왈 --- 예전에 자신이 모시던 사장님이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했던 분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정치한다고 --;;) 그 모든 재산을 다 날리고 망해가셨노라고, 그래 자신이 그 회사를 인수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그때 했던 단 하나의 결심이 다름 아닌 '이전 사장님이 했던 방식과 꼭 반대로만 해보자!'라는 거였다는 겁니다.


앞서 읽었던 「지식경제학 미스터리」에 수록되어 있던 다음의 구절 - "과학은 과거에 대한 장례식을 하나씩 치르며 발전해간다"라는 말이 (위 사장님의 경우에서처럼) 오로지 학문의 발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를 부정해야 한다'라는 뜻이 아닌, (나의/타인의 과거를 디딤돌/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설계해간다라는 관점에서 보아) '과거로부터의 배움'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라면 이 말은... 한 개인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질 수 있는 말이 될 수도, 심지어는 그리 되어야 한다라고까지 말해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미 성공한 자가 이야기해주는 '자신의 성공사(史)'에는 항상 어느 정도/상당 부분의 미화와 왜곡이 가미되어질 수 밖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택한 '미화와 왜곡'이란 단어가 지나치다면, 이 책 「파산」의 저자가 쓴 표현처럼 '성공담에서 사회적인, 역사적인 운(運)은 대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그들의 인간 승리만이 비춰진다'(p13)라 해도 상관 없습니다.  


「장사의 신」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이미 성공한 자의 성공스토리'에 대해 그리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와 똑같이... (예를들어) '이미 병나음을 받은 성도의 간증'이란건 어쩌면... 그렇게 병나음을 받았기에 가능한,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한 무책임한 자기자랑일 수도, 혹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당장 병원을 뛰쳐나와 기도원으로 들어가라라 충동질하는 것이 아닐까와 같은 의문들을 같고 있었었습니다만...

- 「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의 감상문 중.

이 책의 저자 역시 '사업이든 뭐든 간에 성공한 남의 이야기에서 배울 건 그다지 많지 않다'(p13)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흡사 제가 만났던 거래처 사장님의 경우에서처럼) "과거에 대한 장례식을 하나씩 치르며 발전해간다"식으로 실패한 자의 실패담1을 보며 나의 과거/현재/미래를 진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경매'를 통한 재테크가 은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가봅니다. 물론! 정당하게 번 소득을 가지고 ('법이 허용하는'이란 의미에서의)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불려가겠다라는 것 자체를 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경매 재테크란 것이 그 다른 상대방, 그러니까 자신의 재산을 '경매'로 날려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라는 점에서 보자면 분명 잔혹한 면을 가지고 있다라 말하는 것에 역시나 '아니다'란 선을 명확히 그어낼 수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처럼!!! --- 위에서 언급했었던, 자신이 모시던 사장의 실패 과정을 보며 난 그 사람과는 정반대로 해야겠다라 했던 거래처 사장님의 말, 더 나아가 "과거에 대한 장례식을 하나씩 치르며 발전해간다"라는 식의 미래 설계는 사실 한 편으로 (그 대상인 이전 사장의 그것을 인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관계 없이) 매우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요즈음의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옛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려보겠노라는 의미로 「지식경제학 미스터리」라는, 말랑하지 않은 경제학 책을 골랐었노라 썼었습니다. 이처럼 왼팔의 고통을 잊기 위해 오른팔에 더한 고통을 일부러 가하는 방법이 결코! 제 정신의 의사가 환자에게 해주는 치료가 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우리의 현실을 보자면 ---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으로 나의 처지에 대한 위안을 받는 일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본다면, 비록 그 '위안'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나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저 허상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또한 저 스스로 그러한 '위안'은 도덕적으로도 절대 옳지 않다라 생각하고 있음에도 어쨌든! 그러한 위안을 종종 (비록 작위는 아닐지라도) 거부하지는 않았었기도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심지언!!!

성공한 자, 혹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자의 이야기에 부러워하게 되는 마음은 가지지만, 그러한 이야기는 단지 하나의 reference일 뿐, 나의 롤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만 하는, 그렇게 또 다른 '실패'의 경험으로 「노인과 바다」를 읽었었던 것과는 달리 --- 오히려 (현실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권장할 수는 결코 없을)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주인공 윌리 로먼의 심리와 그의 선택에는 차라리 훨씬 더 커다란 공감을 가졌었기도 했던 겁니다. 제 몸 속에 두 개의 완전히 상반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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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운동권 출신의, 이후 미디어 사업으로 상당한 규모의 기업을 일구워냈었던, 하지만 결국엔 '파산'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던 삶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히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위안을, 어떤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기 바라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타산지석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타산지석, 즉 남의 경험을 보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나도 잘 안다. …… 혹시나 당신이 내 파산 시점처럼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이 책에서 약간의 위안과 용기만 얻는다면 난 글쓴이로서 몹시 만족할 것이다.(p18)

제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마음 중 하나인,  '실패한 자가 보냈던 과거의 여집합으로서 나의 미래를 계획한다라는 건 너무 잔인하다'란 생각에, 이처럼 저자는 미리 '최소한 나의 과거로부터는 그리해도 괜찮다'란 말을 미리 해주고 있는 거지요. 덕분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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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아 <창업 - 성공 - 실패>의 단계를 적어내고 있는 책입니다. --- 책의 제목은 「파산」이지만 정작 '파산'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질 않아요. 오히려! 하나의 기업을 만들어 성공의 길을 달렸고 또한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던 저자가,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기업을 경영해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 '나는 어떻게 성공했었으며, 왜 망했는가' - 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대학 졸업 후, 아는 선배가 사장으로 있던 용산의 조그마한 컴퓨터 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는 것으로 저자는 사회 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 역시 여기저기서 들어 대략은 알고 있는 바 대로) '용산'이라는 곳의 생리는 운동권 출신의 저자에겐 결코 맞지 않았었지요. 결국 그 회사를 9개월만에 나오게 되었던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세상일이 이렇게도 풀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나 할까. 이런 결과를 우리 사장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난 그 결과가 다행이긴 해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는데...(p55) 

제가 종종 사용하곤 하는 문구인 '1+1=365' --- 이 등식에 대해 사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저자는 그렇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저 역시 여전히 당연하다 받아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15년 간의 사회생활은 저에게도 역시 이 등식에 '화내지는 않고 눈 감아 버릴 수는 있게' 만들어주기는 했지요. --;;) 이에 저자는 퇴사 후 2주 만에 자신의 회사를 설립합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품은 꿈을 내 방식대로 펼치고 싶었다. ……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그런 즐겁고 인간적인 회사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 '자유로운 인격체들의 민주적 결합'이 내가 직원들에게 내건 구호였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묘사하면서 했던 말일 거다.(p59) …… 내가 직원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면 그건 내가 사장이라서가 아니라 매우 열심히 일을 잘하는 선배라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p72)

운동권 출신임이 한껏 느껴지기도 하며, 혹여는 '책에 써내기 위해 지어낸' 지극히 이상적(理想的)인 문구라 힐난받을 수도 있는 여지를 지닌 글입니다만,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이러한 신념이 상당히 구체적이었으며 또한 철처하게 실천으로 이행되었었다라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했기에 (비록 작기는 하나) 저 역시 한 기업의 최종 책임자로서 저자에게 참으로 커다란 부러움을 가졌었던 부분입니다... 만!!! --- 사장이 생각하는 '즐겁고''인간적인'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 발현되는 모습과, 그것이 직원들에게 느껴지는 모습이 과연 일치될 수 있는가에 관한 의문을, 저자가 혹여 간과한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이 부분을 읽어감에 있어 들었더랬습니다. (절대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게 중엔 '많은 급여'가 곧 '즐거움이고 인간적임'과 동일시되는 직원들도 분명 있었을 테고, 그러한 그들의 선택은 '즐거움이고 인간적임'을 다른 곳에서 찾는 이들과 선택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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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깊이 공감했었던 구절들을 정말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 중... 가장 제 마음을 아프게 했었던 것이 바로 다음의 인용구였었습니다. --- (앞서도 언급했었지만) 결코! (최소한 저로서는) 치기어린 한 이상주의자의 목표였었다라 말할 수 없는 저자의 신념은 이내 현실의 벽 앞에서 점점 무너져가게 되었죠.

나는 힘을 쌓아 내가 젊은 시절 꿈꾸던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이 생각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을 축적하는 과정이 힘의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몰랐다.(p17)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p114)라는 이 흔하디 흔한 표현이 결코!!! 일 개인의 수준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이 책을 읽어가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육체'가 회사라면 그 속에 속해있는 인적 자원들은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아무리 올바르고 가치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 정신을 발현시키는 육체가 온전치 못하다면 어느 새... 그 정신마저도 결국엔 피치 못하게 변질될 수 밖엔 없지요. 그리고 그러한 변질은 그 누구에게보다 '최종 책임/결정권자'에게 가장 먼저 스며들 것이고요. 이는 저 스스로의 경험에서도 익히 체험했었던 바였기에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그토록 제 마음을 바늘로 찌르듯 찔렀었다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 책을 읽어갔던 시간은 사실 내내... '슬픔'이었더랬다는... --;;)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행복이 오래가 무디어지는 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일 수 없다.(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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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닥쳤었던 외환위기와 이후의 경영난을 겪어가며 저자는 한 순간이나마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했었다라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얻어낸 교훈은 '살아남아야 좋은 날도 본다'(p109)였었으며,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도 '생존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p105)라는 결심이었었죠.

하루의 절반을 안락하게 살고자 하면 나머지 절반의 시간에 사람으로서 참기 어려운 모욕과 멸시에는 눈을 감아야 하는 세상이다. 하루를 온전하게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그러면 우리는 남들이 사는 법을 부러워해선 안 된다. ……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pp94-95)  

하지만 끝내...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는 회사의 상황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앞에선 자신의 이상을 무너뜨릴 수 밖엔 없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예의 '정신'이라 칭해질 수 있는 '회사의 구성원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지요.

'자본가'는 타락하지 않으면 몰락한다. 악독하게 판단하고 피도 눈물도 없이 결단하지 않으면 어영부영하다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를 따르던 선량한 무리마저 죽음의 계속으로 떨어뜨릴 위치에 서 있는 거다. 한데 난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회생의 기회도 놓치고 상처를 상처대로 주고받아야 할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말았다. 나를 잡아당기는 과거의 힘과 미래의 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이다.(pp156-157) …… 상반된 두 가치의 공존은 쉽지 않았다.(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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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는 회사를 청산하고 '개인파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이 '회피'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독자마다 다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저의 독해에 한해서만큼은 저자가 치사한 방법의 마무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라 생각합니다.) 이 '청산의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어내고 있지요.


​왜 마음이란 놈은 비우면 비울수록 무거워지는가?(p168) …… 현실을 직시하려 해도 똑바로 볼 수 없는 상황. 아니 똑바로 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속의 몸부림이 계속 나를 여기까지 몰고 왔으리라. 우리가 모두 아득바득 흘린 땀과 나의 청춘, 주변에서 보내던 기대 어린 시선, 그리고 어렵사리 끌어온 생존의 공동체..., 이런 것들을 모두 날려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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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저자는 코닥과 후지필름의 예를 들며, 스스로에게 결코 비굴하지 않은 위로를 해주고 있습니다. --- 선도적 기술의 기업이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마저도 실행했기도 한 회사였지만 코닥은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어낸 탓에 결국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저자는 '어떤 기업이 망했다고 그 기업과 기업주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평가받아야만 하는가?'(p252)란 질문에 대해 자신은 '일등만 기억하겠다는 광기의 시대에 일등이 되려다 시험 출제 범위를 착각해 낙제한 바보였다고나 할까?'(p252)라는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써놓은 저의 글만으로는 이러한 자위가 '어쨌든 결국엔 실패한 자'의 구차한 변명2으로 보여질 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을 다 읽어보면 분명... 저자의 이러한 위로에 그 누구라도 '나의 작은 한 손'이나마 얹어주고 싶다란 생각을 하게 될꺼라 믿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복지'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지으며, 진중권이 명명했던 '한국의 천민성'을 연상시키는 다음의 구절을 적고 있지요.3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은 …… 심각한 양극화와 남을 밟고서라도 앞서가야 한다는 이기심, 나보다 약한 자라면 주저 없이 무시하는 노예근성,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천박함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힘이 우러름의 잣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힘을 올바름이나 멋과 똑같은 뜻으로 풀이하는 세상이 되었다.(p246)

비록 이러한 현실을 <신인간기업>이라는 변화를 통해 바꾸어보려했던 자신의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그렇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마저도 실패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아멘!!!)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로 담겨져 있는 책이기는 합니다만, 다음의 구절들만으로도 충분히!!! 그 누구에게나 꼭 한 번은 읽혀져야하는 책이어야 한다라 생각하게 됩니다. 책의 본문을 너무도 많이 인용한 감상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염려가 있기도 합니다만, 그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구절들은, 이 부분을 읽었을 때부터 꼭! 이 감상문에 인용하리라 마음먹었었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 이건범C의 책을 만나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마치... 예전에 「그들이 살았던 오늘」을 읽고 그 책의 저자 김형민C에게 홀딱! 반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오랫만에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었네요.)


● 당신이 경영하고 있는 사업의 가치는 얼마라고 평가하는가? 아니 당신의 인생은 얼마라고 평가하는가? 누구의 삶이든 값지지 않은 삶은 없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간 인생일지라도 누가 당신에게 그 인생과 바꿔 살겠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쉽게 수락하기 어려울 거다. 나에게 장동건이나 노무현의 삶을 살라고 하면 난 분명 거절할 거다. 그만큼 내가 쌓아올린 내 인생의 가치는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삶을 남들이 꼭 그렇게 평가해줄 까닭은 없다. 그러니 기대보다 당신이 평가절하된다 하여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는 마라.(pp192-193)


● 살다 보면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싶은 일들이 더 많다. 내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내 주장을 펼칠 용기가 있었더라면, 내가 유혹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드는 대목들이 우리 인생에는 즐비하다. 반대로 기억해야 할 고마움과 즐거움은 의지와 달리 쉽사리 까먹는다. …… 우리가 자라면서 몸에 입게 된 외상(外傷)의 자국은 나이가 들어도 잘 없어지지 않아 늘 거슬리지만, 몸이 성장하는 경과를 우리는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않는가? 남은 자국으로 그 상처는 기억하지만 몸 곳곳이 자라고 근력이 커지는 변화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듯 잊고 싶은 기억의 상처는 깊이 패어 있게 마련이고 즐거움과 행복은 벽에 살짝 그어놓은 금에 다시 키를 재어보았을 때 느끼는 성취감처럼 아주 일순간의 가벼운 만족으로 그친다.…… 우리는 상처와 짧은 행복의 기억을 버팀목으로 삼아 삶을 살아간다. 두 가지 가운에 어느 힘이 더 클까? 사람들은 상처가 준 아픔과 분노를 잊지 말라고 채찍질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처는 그것을 입었던 상황의 기억은 남아도 그 상처를 입을 당시의 아픔이 동일한 강도로 생생하게 남지는 않는다. 반대로 즐거움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억조차 없을지라도 우리 몸과 마음 깊숙이 퍼져 은밀하게, 아주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pp271-272)


● 아이들에게, 당신의 자녀에게 꿈을 물어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어보라. 우리는 그 누구나 관성적으로 막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 고귀한 인간이다.(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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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 쓰여져 있는 단어를 '압빠'라 발음하고 있었다라는 걸, 저 스스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빠'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저의 목소리를 타인의 귀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거꾸로 발음해봄으로써야 비로소!!! 그것이 '압빠'였었다라는 걸 알게 된 거지요. --- '성공'이 아닌, '처참한 실패'를 그 마지막 모습으로 가지고 있는 저자가 써낸,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 이야기는 그렇게... 자신의 현재 모습을 '성공'이라 여기고 있는 사람에게도, 혹은 '실패'라 자책하고 있는 이에게도, 혹은!!! 주위에 그러한 '실패'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이에게 '해법이 아닌 용기를 주고 싶어하는4' 당신에게도 꼭 필요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건네어주고 싶었다는)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성공했던 자의 실패'는 분명코... '실패만 하는 자의 실패'보다는 훨씬 더 많은 교훈을 안겨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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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그 '위안과 용기'를 분명 느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은 (왜 그런 건지 알고는 있으나,차마 써내지는 못하겠는 이유로) 참, 많이, 째지는 것처럼, 아프기만 하네요. --- '우리가 성공이라 여겼던 것이 성공이 아니었듯, 우리가 실패라 여겼던 것이 실패만은 아니란 점'(p6) : 이 말이 부디... 저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를, 또한 저의 현재와 미래를 부축해줄 수 있는 한 마디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래어 봅니다.

  


 

  1. 저자는 이러한 '실패한 자의 실패담'을 정작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 '실패의 기록은 쓰기 어렵다. 성공의 기록은 성공한 현재가 있기 때문에 구성이 쉽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물거품을 원래 모양대로 재구성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기록을 남겨야 할 사람의 마음이 갈가리 찢긴 상태일 테니 더더욱 진도 빼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로 실패를 기록하는 사람이 드물고, 그래서 실패의 기록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무엇이든 세력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의 눈을 끌지 못하는 법이니, 실패의 기록이 많이 나오지 않는 한 실패를 다룬 책은 잘 안 팔릴 것이다. 그래서 또한 사람들은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다.'(p12)
  2. 물론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통해 기존의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찬사와 부러움도 표하고 있습니다. --- "크기야 어떻든 회사를 꾸준히 경영하는 사람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부럽다. 그들은 분명 한 가지씩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p252)
  3. 앞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회사의 직원들에게 했다는 연설문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고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이 무슨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나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한다는 착각에서만 벗어날 수 있으면 실패하지 않는다. 비슷한 경험과 역사를 공유하고 있더라도 사람이 태어나서 오늘 날 모여 있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겪어온 역사는 그 머리 숫자만큼 다양하므로 우리가 미래에 대해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과신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는 나쁜 것은 나쁘다'는 정도의 진실만을 공유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돈만 아는 놈은 나쁘다. 자신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남을 배신하는 놈은 나쁘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바라느 놈은 내 피를 빨아벅는 흡혈귀다. 책임만 내세우고 권리를 무시하든가 거꾸로 권리만 내세우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훌륭한 인간이 되기는 글렀다 등등.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 우리는 공유하려 하자. 내가 이렇게 소극적인 인간론을 내세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의 문화구조가 갖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어떤 정통적인 것을 사회적으로 확립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을 냉정하게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은 옳다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짙다. 즉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도 않고, 듣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그래 떠들어아. 너 말 잘한다'하는 식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 '나는 나대로 산다'하는 식의 이상한 주체성 등이 그득하다. 결국, 모두가 자기 머릿속에 자기만의 완결된 세계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 완결된 우주의 질서를 부인하는 사람과는 거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끝없이 피곤해진다는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봤자 별 소득이 없고, 괜한 시간 낭비이거나 아니면 자기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숱했으니까."(pp81-83)
  4. "난 지금 너에게 용기를 주려는 거야. 해법을 주려는 게 아니라."(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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