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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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이라는, '가수'가 아닌 '배우 임창정'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가 맡은 역할들을 보면, 그 이외의 어느 배우가 과연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되죠. 하지만 '배우 임창정'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코! '웃긴데... 근데 엄청나게 슬픈' 배우라는 겁니다.

 

<스카우트>라는 영화, 흥행이 어땠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IP TV로 두 번이나 보았던 영화이지요. --- 고교 3학년생이었던 선동열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학 체육부 직원이었던 임창정이 광주로 파견됩니다. 선동열 선수의 부모님을 만나 식사도 대접하고, 야구 감독님을 찾아가 아부도 하고 하는, 그런 역할을 '배우 임창정'은 정말 잘해냈지요. 선동열 선수의 부모님으로부터 OK! 싸인만 받아가면 되는데, 그러면 신세도 좀 필 것 같은데, 그래서 정말 존나리 노력했고 결국! 광주 시내 어느 고깃집에서 드디어 선동열 선수와 아버님을 만나 최종 승낙을 받기로 약속 다 잡아놨는데1 --- 그해가, 그때가, 그리고 그곳이 하필!이면, '그해, 그때, 그곳'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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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p134)​

지극히 상투적인 '작용과 반작용'을 지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야구빳다를 들고 가 내쫒으라는 선배의 지시를 받았던 야구부 선수들은 하늘보다 더 무서운 선배의 그 지시를 무작정 이행합니다. 당시 후보 선수였던 임창정 또한 '아무 생각없이', 하라니까 그냥 그 짓을 하러 갔지요. 영화는 이 장면에서 이런, 인간의 단순함/단순해짐을 적나라하게, 얼핏 '덤덤하게'라 표현하고도 싶은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나가라! 못나간다! 나가라니까!!! 못나간다니까!!! --- 야구빳다를 들고 총장실로 갔던 야구부 선수들에게는 아무런 의도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선배들이 시키는 일이니까 갔었던거고, 거기 있었던, 같은 학교의 학우들인 그들을 해산시키라니까 그렇게 하려 했던거지요. 이제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들을 내쫒으려는 야구부원들 사이에는 애초에, 왜 그들이 총장실을 점거했던 것이며, 왜 또 다른 그들은 해산을 시키기 위해 야구빳다를 들고 있는 것인지는 그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단지!!! 서로간의 감정만이 대립하고 있는 거죠. 애초부터 선배들의 그런 지시를 탐탁해 하지 않았었던 임창정마저도 '어느덧 돌변'하게 되어,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학생들을 향해 야구빳다를 휘두릅니다. "씨발놈들! 나가라면 그냥 네,하고 나갈 것이지 왜 안나가고 지랄들이야!!!"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의해, 자신의 이성이 작동됨 없이, 그 모든 심적 부담감을 '거부할 수 없는 명령때문에'라는 이유에게 전가해 버린 채, 인간의 보편적 이성에 반하는 행동을 어쨌든 해낼 수 있다' 라는 명제를 그 장면은 (차라리)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애초 서로가 왜 그 위치에 서 있었는지는 모두 잊혀진 채 대드니까 때리게 되고, 때리니까 나도 같이 맞서 때리게 되는 거였죠. --- 마찬가지였을 꺼라 생각합니다. 야구부 선배들마냥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p206)'이 내린 명령을 '특별하게 소극적인 군인들(p212)'이 거부하기는 불가능했었던 거라고, 그렇게 막상 그 일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보니 그들 중 누군가로부터 (위에서와 같은) '뭐가 문제냐?'라는 식으로 '어느덧 돌변'해버린 군인들이 나왔었을 지도 모른다라고 말이죠. 어쨌!든... 우리가 '그해, 그때, 그곳'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커다랗고 가장 맹렬하며 주용한 비난의 화살을 꽂아야하는 곳이 그들은 아니어야 한다라는 겁니다2. 그렇게 문제의 핵심을 흐려서는 안되는 거겠죠.

'소년이 다'인 줄 알았었습니다. 이웃분의 포스트를 잠깐 읽어보니 '그해, 그때, 그곳'의 이야기라는군요. 작가의 이름이 '한강'이랍니다. 당연!히 실명이 아닌 필명일 꺼라고, 아마 (제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개량 한복을 입은, 턱수염을 지긋이 기른, 얼굴엔 항상 선해보이려는 의도를 품은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전직 운동권 출신의 누군가'가 쓴 소설이겠거니... 라 왠지 생각되었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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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 (p17)

② 그것이 뭔 소리다냐, ...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는다냐. (p182)

이 작품 속 이야기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뭇 사치스럽기만 합니다. '그해, 그때, 그곳'에서 자신의 젊은 날의 한 때를 보냈던 사람들과, 젊은 날이었던 자식을 잃었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선 말이죠. --- 한때! 매년 '그때'가 되어오면 대학가의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TV에서는 매일 '이러면 안되는데...'류의 뉴스들을 내보냈었을 때,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었던 저 또한 '이러면 안되는데, 이제 그만 좀 하지'라 생각했었더랬습니다. '벌써 몇 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라는 것이 제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그 '이제 그만!'의 유일한 이유였었었지요. --- 그때까지 살아왔었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그해, 그때 그곳'에 대해 가졌었던 저의 생각이 '창피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소설이었습니다. 심지어! 저와 같은 '1989년, 같은 교정'에 입학을 했던 (넓은 의미의) 여자 동창생이 쓴... 이 소설 말입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고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4)

우리반의 반장이 나를 때렸습니다. 내 얼굴엔 그때의 멍자국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때렸던 그가, 학년이 바뀌었다고 나에게 말합니다. '아직도 그때 일 같고 그러냐?' --- 네. 학년이 바뀌었고, 반장도 다른 친구가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새로운 반장이 자꾸만 나에게 그때 나를 때렸던 반장을 이제 그만 용서해주라고 말합니다. 반장으로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대답해줬습니다.

'때린 놈이 먼저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해주지. 어떻게 사과도 안하는데 씨발, 맞은 놈이 용서부터 해주냐?'

그랬더니 말입니다...  그때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그때 그 반장녀석과 좀 친할 뿐인 지금의 반장 녀석이 자기가 '학급의 반장 자격'으로 나에게 사과를 하겠다 합니다. 그러니 '이젠 좀 그만!'하자고. 여전히... 그때 나를 때렸던 그 전직 반장녀석은 저 멀리서 날 모른 척 하고 앉아있는데도 말이죠.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pp57-58)

………………………………………………… 

이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해낸다라는 건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을 듯 보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줄거리가 있기는 한 건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그저, '그해, 그때,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왔었는지, 왜 그들은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해, 그때, 그곳'을 이야기하는지를, 그들에게 남아있는 '그해, 그때, 그곳'의 기억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라는 거,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알게 되었고, 이 소설을 읽었다라는 것의 부족함 없는 배움을 얻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형이 뭘 안다고 … 서울에 있었음스로 … 형이 뭘 안다고 …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p183) ……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와졌다이."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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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고 계산대에 섰는데, 계산을 하려 이 책을 저로부터 건네어 받은 서점 여직원분이 그러더군요. "이 책, 되게 우울해요." --- 위 ①번과 ②번의 물음에 대한 한 등장인물의 다음 대답은, 읽기 이전보다 읽는 도중에, 또 그보다는 읽고 난 후인 지금에 점점 더 커져만가는, 이 책 정말! 우울하네란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흡사 '초를 태우면 냄새가 없어지겠구나(p19)' 기대했었었거늘, '초를 태워도 아무 소용 없네(p11)'란 걸 알게 되는 순간 같았다고나 할까요?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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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분의 걱정(?)대로... 바로 직전에 읽었었던 「돈키호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초반부에는 집중하는 데 좀 애를 먹긴 했었습니다만... 다음의 질문을 읽는 순간 --- 이 질문에 관한 책을 검색해 보았고 주문했는데... 하필, 마침! <12·12 사태>가 있었던 날인 오늘 도착한 두 권의 책에서 부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나마 얻게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대답이 '아니오'이길 바래어 보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134)

 

 


 

  1. 영화 줄거리에 대한 세세한 장면들은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2. 이는 <스카우트>에서 임창정이 '똑같은 상황'에서 처음에는 가해자로, 나중에는 피해자로 보여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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