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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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다 읽고, 과연 감상문을 어떻게 써내야 할 것인를 머리 속에 그려보았을 때, '줄거리'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아예 할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변명을 앞세워 보자면 그건 '아~무 의미없는 글'이 될 것이기에라는 이유 때문이었었노라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도저히 정리해낼 수 없는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진심으로는!!! --- 제가 변명이라 말한, 이 소설을 줄거리로 이해하려는 건 결코 이 재미난 작품을 즐기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질 수 있는 세 명의 여자 - 노파, 금복, 춘희 - 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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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읽고나서 뿅~ 갈수 밖에 없는 개인적 이유가 있습니다. --- 저의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란 게, C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A와 B를 이야기해야겠다,라 하고선... 결국 A' , A" …… 심지어는 B'과 B" 등등으로 새는 탓에 정작 C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었었지요. 바로!!! 이 소설이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겁니다. 저와의 차이라면 C를 먼저 말해놓고, 그 난데 없는 C를 이해시키기 위해 A부터 B"까지를, 그야말로 어색함 없이, 게다가 너무도 재미있게, 그리고 빠짐없이 이어주고 있다라는 거.


이 재미난, 한 편의 통 큰 구라와도 같은 이야기를 흡사 학술논문 검토하듯 이 작품을 읽어내(려)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그런 독자를 위해 작가는 작품 속에... 미리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놓고 있습니다.


일단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귓속말은 곧 자동공정을 통해 매우 그럴듯하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부풀려저 온 동리를 거쳐 인근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p28) ……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117)

​작가가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놓은, 독자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서 바라보게/면 되는 자동공정 속의 전개 중간중간에, 작가는 총 51개의 '법칙'들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 제가 세어본 것이 맞다면, '그것은 OO의 법칙이었다'라는 표현은 총 58번 등장합니다. 그 중, '사랑'이 다섯 번, '중력'이 두 번, '이념'이 세 번 반복되니까 갯수만 따져보면 총 51개의 법칙이 되겠죠. 이 51개의 법칙들 중에는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등장인물만의 주관적인 것들도 몇몇 있습니다만, 그 주관적인 것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줍니다. 헌데!!!


●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감춘 채 아무나 붙잡고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언제나 반반이었다.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p129)


●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바빠 허둥거렸고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이유 없이 속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는 더욱 촉진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p220)

이처럼 수많은 '법칙'들로 가득한 이 작품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중구난방으로 뻗어갑니다. 아니! 법칙이라는 건 자고로 시공을 초월해 통용되는 것일진데, 그러한 법칙들로 가득한 소설의 이야기가 어찌하여 중구난방일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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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천명관은 '(나는) 소설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 …… (나는) 소설을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 …… 일종의 비이클(vehicle) 같은 거죠(p438)'라 말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도 작가는 역설적으로 '그 말은 다시 그 비이클 안에 무언가를 실어나를 것이 있다는 얘기가 되고, 그게 전제가 되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 자신은 아직 거기에 무엇을 실어날라야 할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난경(p438)'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대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매우 일반론적 질문에 대한 것이었고, 어쨌든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알지 못한다라는 상황에서 저같은 일개 독자가 '이 수레에는 이것이 실려 있다니까요!'라 말하는 게 심히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표현인지라 저도 또한 사용해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작품에 실려있는 것을 한 개의 단어로 표현해보라 한다면 전... '결핍'이 되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 사람의 삶이라 말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통해 모은 엄청난 돈의 소유자였던 그녀, 국밥집 노파. --- '세상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p38)' 돈을 모은다 말했던 그녀는, 하지만 세상 그 누구에게도 그 돈의 목적인 복수의 대상이 누구/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 많은 돈을 제대로 써보도 못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었습니다. 향하는 목적을 알 수 없기에, 그 노파가 과연 그 돈을 어떠한 방법으로 사용해 '세상에 복수를 하'려 했었는지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하지요.


● 이 작품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 금복 --- 행운,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타고난 동물적 감각으로 인해 큰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그녀. '크고 넓은 것에 무턱으로 매료되는 습관(p48) 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바다 속에서 물위로 뛰어오르는 대왕고래를 본 순간이었었지요.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녀의 그 지칠줄 모르는 생명력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난데없는 바램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런 그녀의 습관과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라 작가는 친절히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소녀를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p271)

● 이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그녀, 춘희 --- 그녀에게 '결핍'이란 어쩌면 그녀 자체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로 태어났다라는 조건 자체가 그녀의 삶 전체를 결핍된 무엇으로 만들어주었었지요. 그녀에게 결핍되어 있지 않은 건 단 하나! 바로 살/몸무게 뿐이었습니다. (아! 타고난 힘도 있다 할까요?) 그런 그녀가 가장 원했었던 건, 즉 그녀에게 있는 수많은 결핍들 중 그녀가 가장 채워놓고 싶었던 것 단 한 가지는 다름아닌 엄마 금복의 사랑이었었지요. 하지만 끝내... 그녀, 춘희는 그 결핍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을 뛰어넘어 제가 이 작품의 핵심을 '결핍'이라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다음의 부분이었습니다. 


끝없이 상실해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한 셈이었다.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고, 첫사랑을 상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젊음을 상실해버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모두가 빈 껍데기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싱그러운 수련의 육체 앞에서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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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집어치고라도, 그 무엇보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읽어가는 것마저도 재미나지요. pp241-243에 걸친 '공수논쟁'이나 p260의, 금복이 창부 수련의 몸값을 계산하는 장면, 그리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등장하는 '맹견주의' 등, 정말 이 소설은 곳곳에서 작가의 감탄스러운 '구라 파워'를 지루할 틈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냥... '읽는 재미'만을 위해 이 작품을 선택한다해도 전혀 후회 없을만큼 말이죠.


헌데, 책의 두께에 비해, 제가 읽어가며 옮겨 적어놓은 부분은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적었더랬습니다. 그 대부분이 '그것은 OO의 법칙이었다'였을 정도로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적어놓은 것 별로 없이 이 작품을 읽어낸 것이 혹여 후회스럽지나 않았을까요?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p406) …… 이쯤 해두자. 진실은 모두 사라졌다.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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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것은 OO의 법칙이었다'란 문장을 적어가기 시작한 게 p23의 '세상의 법칙'에서부터였더랬습니다. 혹시 그 전에도 같은 표현이 있지 않을까싶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작품의 처음부터 p23까지 다시 읽어보았었지요. 저의 목적이었던 '그것은 OO의 법칙이었다'란 표현은 딱 하나 놓친 게 있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소설의 처음부터 p21까지가, 이 작품을 처음 읽었었던 그 때엔 뭔 소린가 했던 이 부분이... 다름아닌,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였었음을 알게되더군요. 뿐만 아니라, 그 느낌 자체가, 처음 읽었었던 때, 그러니까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전혀 모른 채 읽었었던 때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안겨주는 겁니다. --- p21의 하단부터 시작되는, 이 기나긴 구라스런 이야기의 시작에 등장하는 표현, '하지만 어찌 알랴,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일 수도 있음을'을 읽는 순간, 춘희가 남긴 그림을 보고 어느 시인이 남겼다는 다음의 시가 정녕... 이 이야기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려주더군요. 읽기엔 너무도 재미있었으나, 읽고나니 잔향처럼 남아있는 건 오히려 슬픔 뿐인 이 묘한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결핍'이었다라는 걸 말입니다.



그대, 돌아오세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수많은 날들이 흘러도

나는 변함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한 쌍의 족제비가 사랑을 나누듯

한 쌍의 잠자리가 사랑을 나누듯

우리 다시 만나

예전처럼 함께 사랑을 나누어요.

그대, 어서 돌아오세요.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p417)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래, 처음으로 '표현의 재미'를 느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뭔가 아쉬운 감정이, 여타의 모든 감정들을 압도하는 시기인 12월의 끝자락에,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일 듯한 독서로... 이 작품 「고래」를 읽었던 걸, 행운!이라 표현해도 될 정도로 말이죠. 단지... 이 행운으로 인해, 지금도 이미! 읽는 속도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책 사는 속도'에, 작가 천명관의 다른 작품들이 더한 가속를 붙여듯한, 설레임 어린 걱정이 문제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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