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신이 존재한다고 믿느냐'란 질문에, 전 진심으로 '그렇다'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묻는, 그리고 가장 듣기 싫어하는 대답인 '(하지만) 신의 존재는 이성의 논리로 증명해보일 수는 없고, 그럴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라는 말을 못내 덧붙여야 하긴 합니다만, 2014년 12월 현재!의 제 대답은 '그렇다'이지요. (물론! 태어나서 이제까지 계속 그러해왔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또한! 앞으로도 지금의 생각이 변치않고 유지될거라 확신할 수 없기도 합니다.)

제목만으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그러니까 기독교적 신앙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며 첫 장을 펼쳤었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제가 접했었던 몇 권의 책들 - 「사람의 아들」, 「예수복음」, 「침묵」 - 에서는 '신의 존재' 혹은 '신의 역할' 등에 대해 사뭇 부정적인 부분들만을 읽을 수 있었었기에, 그들에 대한 무언가 '명쾌한 대응 논리'쯤을 이 소설로부터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 저의 기대이기도 했었었지요. ​과연 이 작품은... 그러한 저의 기대를 어떻게 채워주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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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 작품은 스토리로 읽어내는 소설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그 스토리라는 게, 딱히 필연적인 연관성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으며, 그 전개 자체도 한국전쟁이라는 비참하고도 다급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칠 정도로 한가롭기까지 합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외의 것들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듯 보인다/보일 수도 있다.. 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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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을 통해 평양을 수복한 한국 정보당국은 평양에 있던 열네 명의 목사들이 북한의 비밀경찰에 의해 납치되었었고, 그 중 열두 명이 처형을 당했으며 나머지 두 명은 어떠한 이유에선지 모르겠으나 암튼 풀려나 현재 평양에 머물고 있다라는 첩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이에 평양 주재 정치정보국 책임자인 장 대령은 열두 명의 목사가 북한군에 의해 처형되었다라는 그 사실을, 생존한 두 명의 목사를 통해 알림으로써 북한군의 비열함에 대한 대내외적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려 하지요.


이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아주 중대한 종교탄압의 경우로서 국제적 중요성, 특히 미국에서 큰 중요성을 가질 만한 사건이다. …… 달리 말하면 기독교 순교사에 들어갈 한국의 장(章)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된다는 거고. (p18)

헌데, 생존자 중 한 명인 신 목사 - 다른 한 명인 한 목사는 미쳐버렸음 - 는 자신은 처형된 그들과 자기들은 따로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전혀 알지 못하노라고, 또한 "자신과 한 목사가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건 …… 신의 개입이었다(p34)"라고만 말하며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평양의 교인들은 신 목사가 처형된 열두 명의 목사들, 그러니까 <순교자들>을 배반하고 살아남았노라 생각하고 격렬히 그들을 비난하지만, 장 대령과 그의 부하인 이 대위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뭔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다른 무언가를... 신 목사가 숨기고 있다라는 거지요. 이 대위는 거듭 신 목사의 증언을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사들은 모두 살해당했죠. 목사님이 감옥으로 이송되기 직전에 말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 목사님의 신, 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p37)

이 질문이 저에게 낯선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침묵」,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에서 이미 접했던 적이 있는 질문이지요. --- 「침묵」에서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라는 신의 대답을, 「예수복음」의 주제 사라마구는 "하나님은 몸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신다"라 말해주었더랬습니다. 사뭇... 세속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선뜻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애매하기만 하죠. 그렇다면 작가 김은국은 이 작품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무엇이라 내려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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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일 수 밖에 없는 '진실', 즉 열두 명의 목사들이 진짜 <순교자>라 불리울만한 최후를 맞이했었느냐라는 의문에의 해답을 밝혀가는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은 신의 존재, 그리고 그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네 명의 등장인물 - 신 목사, 장 대령, 이 대위, 박 대위 - 들이 결국엔 모두 다 알게 되는 이 '진실'에 대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이 모두 다 다릅니다.


(이 대위) 목사님께선 당신이 말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진실을 사람들이 추측하고 짐작해주길 속으로 바라고 계셨죠? (p102)

(신 목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소? (p103)

(장 대령) 모든 건 바로 이렇게 돼야 하는 거야. 죽은 자나 생존자나 모두 칭송받을 자격이 있어. 그들은 다 같이 훌륭하고 성자다워야 하는 거야. 알겠나? (p127)

(박 대위) 우리가 어쩌면 진실을 원치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 (신 목사는) 그 순교자들에 대한 진실이 너무도 추악한 것이어서 우리가 차라리 듣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p127) …… 그 열두 명의 목사들이 모두가 순교자는 아니라는 비밀. (p129)

 

네! 교인들이 <순교자>들이라 믿고 있는 그 열두 명의 목사 모두가 다 <순교자>적인 최후를 맞이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이러한 '진실'을 모두 알게 된 이후, 이 대위와 박 대위는 신 목사가 그 '진실'을 거짓없이 대중들에게 말해야 한다라 주장하지만, 신 목사는 끝내... '나의 새로운 신앙을 위해서(p181)'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배반자였노라는, 그 열두 명의 목사들 모두는 진정 <순교자>다운 최후를 맞이했었노라는 거짓고백을 교인들 앞에서 하지요. 


이 작품은 이처럼... (여기까지의) 줄거리만을 이야기한다면 '그래서 뭐 어쩌라구?'의 반응만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 등장인물들, 특히! 장 대령의 말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자신의 진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앞에서도 적었듯이) 단지 일종의 설정 도구로서만으로 '소설'이라는 형식을, 따라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져야하는 '스토리'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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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보국 국장으로서의 장 대령에게는 사실,  순교의 진실이 무엇인가는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문제에 집착했었던 이유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 그의 동기는 진실 발견에 있지 않고 국가 이익의 보호와 선전 목적을 위해 거룩한 '순교자'들을 만들어 내는 데(p319)" 있었기 때문이었죠.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한다(p319)"라 생각하는 이 대위완 달리,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던) 장 대령은 "왜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해?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그걸 꼭 까발리고 떠들어야 하나?(pp152-153)"라 보고 있었던 겁니다.  

비밀임무를 위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장 대령은 후임자가 올 때까지 이 대위를 정치정보국장의 자리에 임명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장사에 관한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이 국가라는 집단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말해주는 일이야. …… 자네가 그 군복을 차려입고서 사람들에게 한다는 얘기가 안 그래도 비참한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들뿐이라면 문제는 곤란해. ……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들에게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나?(p174)

 

신 목사와 함께 살아돌아왔던, 하지만 미쳐버리고 말았던 한 목사는 마지막으로 '하나님... 없어... 하나님... 없어(p190)'란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습니다. 처형 된 열두 명의 목사들 중 지도자격이었었던 (박 대위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 목사 또한, 죽기 직전 기도나 하라고 시간을 준 북한군들 앞에서 "정의롭지 못한 하나님에게 나는 기도하고 싶지 않아!(p214)"란 말을 했었었지요. 이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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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 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어야 해요. 영광과 환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p255) …… 그렇소!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이오.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p255) ……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그렇소, 당신이 환상이라 부른 그 영원한 희망 말이오.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래요, 하늘나라 하나님의 왕국에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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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큐의 「침묵」에서 페레이라 신부는 자신이 배교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배교한 것은 말야. …… 여기 구덩이에 넣어진 뒤 들렸던 저 소리에, 하나님이 무엇 하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 내가 여기서 보내던 밤에는 다섯 사람이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었어. …… 관리는 이렇게 말했지. 당신이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곧 구덩이에서 꺼내 밧줄도 풀어 주고, 약도 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대답했지. 저 사람들은 왜 배교하지 않느냐고. 관리는 웃으면서 가르쳐 주었어.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배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네가 배교하지 않는한 저 농민들을 구할 수 없다. …… 신부인 나는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사랑하라고 가르쳤어.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 확실히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배교했을 거야! 그리스도는 배교했을 것이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페레이라 신부는 눈 앞의 비참한 현실/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 하나 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 자신이 그 '무엇'인 배교를 했었노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결정을,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왔던 그리스도마저도 선택했었을 것이라고도 했지요. (이는 어쩌면 "누군가 한 사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믿는 신의 아들이었고요.(p193)"이라는 이 작품 속 이 대위의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 한편, 서울로의 철수를 앞두고, 이 대위는 신 목사에게 함께 서울로 가자 청합니다. 하지만 신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자신은 가지 않겠노라 대답하지요.


"나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그래 줄 사람이 없다면 나만이라도 남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고 있고 나도 그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합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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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기독교 신자들이 대답하여야 할 질문이 더 이상 '신이 존재한다고 믿느냐'란 단순한 질문이 아닌 --- 신의 존재를 믿는 이유가 진짜로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냐, 혹은 신이 존재한다라 믿고 싶기 때문이냐가 되어야 한다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만 됩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신 목사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 바로 위 신 목사의 말이 아닐까도 싶구요.

'사람들이 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라는 장 대령의 말이야말로 --- '나도 그들을 돌보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합니다'라 말하는 신 목사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는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교인들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신은 없다!'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란 거지요.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p255)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느냐'란 질문에 대한 '그렇다'라는 저의 대답. --- 이제 그 대답이 '존재한다'라는 것에의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그렇다라고) 믿느냐'에의 대답이었던건지를 또 다시 대답하여야한다라는 것이... 기독교 신자로서의 저에게 이 작품이 안겨준, 한동안 한없이 커다란 부담으로 남아 있게 될 듯 합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는 꽤나 멋있는, 뭔가 쫌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상문을 써낼 수 있을 꺼라 생각했더랬거늘, 예의 음주와 함께한 글쓰기는 그렇기는 커녕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지기만 했네요.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올리는 포스트의 핵심이 하필이면 '신은 없다!'라니... --;;)

 

 

※ 꼭! 함께 읽어야 한다라 생각되는 책들

- 엔도 슈사쿠 作, 「침묵

- 주제 사라마구 作, 「예수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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