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다에 있었던 화가, 오르바네하에게 무엇을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을 그린다고 대답하곤 했다네. 수탉을 그릴 때에는 그 아래 '이것은 수탉이다'라고 쓰곤 했지. 사람들이 여우로 보지 않도록 말일세. (p861)
2권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자면, 게다가 그에 얽힌 저의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늘어놓자면, 정말로 한없이 기나긴 감상문이 될 것 같기에, 중요하다!라 생각되는 부분만을 적어내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했을때 혹! '이 사람, 수탉을 보고 여우를 그려놓았네!'란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노라는 우려를 '이 감상문은 수탉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그린 것입니다'란 변명을 앞세워 미리 지워내며 시작해 볼까 합니다. 특정 대상의 일부분만을 따온다라는 것이 그 대상 전체의 속성/이미지/실체를 변질·왜곡시킬 수도 있다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덮는 순간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한 가지 생각, 이 생각만!을 적어내는 것이 그나마 지금 제가 (그나마 잘) 해낼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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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는 단 몇 차례, 거의 항상 부서지고 깨어지기만 할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그래서 실패에 대한 인식도 없는 광인 돈키호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잊지 않고 욕심을 채우며 겁도 많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주인에게 충실하기 그지없는 단순 순박한 종자 산초, 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충돌은 독자들에게 끝없는 유쾌함과 해학을 선사한다. (p912)
'누가·왜·어떻게' --- 이 세 가지의 포인트가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추리 소설을 읽어가는 데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따라선 '누가'의 해답을 미리 독자에게 알려주고 오로지 '왜' 혹은 '어떻게' 또는 '왜와 어떻게' 모두를 밝혀내가는 경우도 있고, 암튼... 그 조합에 따라 매우 다양한 내용의 추리 소설들을 (저의 경험 한에서는)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거의 백지와도 같았던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었던 1권과 달리,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저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게 된 상태에서 2권을 읽기 시작했었을 때 전... 이 작품을 '누가·왜·어떻게' 등을 밝혀내는 추리 소설 읽듯이, 즉 소설 속 이야기의 전개에 집착해서 읽지는 않(아도 되)겠다라 생각했었더랬습니다. 단지 과연 이 두 인물들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며/어떠한 이유로 인해 자신들의 편력을 끝맺음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졌었던, 즉! 과정보다는 그 결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집중을 하고 싶었었으며, 그러했기에 읽어가는 과정에서도, 또한 다 읽고 난 지금에도 돈키호테가 이상주의자인지, 산초는 현실주의자였는지라는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는 거지요. 헌데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2권을 쭈욱 읽어가다보니, 그리고 (드디어!) 다 읽어내고 보니 이 작품의 내용을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충돌', 즉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산초 판사를 현실주의자로 묘사하고 있는 역자의 주장에 관심의 차원을 넘어, 선뜻 동의 자체가 안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하여, 제가 수탉을 보았음에도 결국엔 여우를 그려낼지도 모르겠다란 걱정(?) 어린 감상문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거지요. 자 그럼... 제가 그려낸 이 '결과적으로 나온 것'이 과연 수탉인지 여우인지의 판단은 어쨌든 여러분들께 맡기기로 하고, 그 그림을 한 번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했을 때 이런 해석이 옳바른 것일지도, 그러하기에 단 한 번의 독서만으로 제가 가지게 된 결론인 이 '동의할 수 없음'이, 특정 부분에 집중하여 이 작품을 읽었었던 것으로부터 기인된 일종의 '변질·왜곡'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라는 발뺌을 미리 해놓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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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을 당할 수 없는 자는 아무도 모욕할 수 없지요. 여자들이나 어린애들이나 성직자들은 모욕을 당해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굴욕당할 수 없습니다. …… 굴욕과 모욕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모욕은 모욕을 줄 수 있고 모욕을 주며 모욕을 견딜 수 있는 자로부터 옵니다. 반면 굴욕은 모욕을 주는 일 없이 어디서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한 남자가 등을 돌리고 서 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때렸다고 합시다. 그러고는 기다리지 않고 도망을 가고 맞은 사람이 그 사람을 쫒아 가지만 붙들지 못할 때, 이 맞은 사람은 굴욕스럽기는 해도 모욕을 당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욕은 그에 맞서는 것이 있을 때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때린 사람이 불시에 때렸더라도 그 후에 멈춰 서서 칼을 뽑아 들고 상대와 맞서려고 했다면, 맞은 사람은 모욕과 굴욕을 함께 당한 겁니다. 굴욕스러운 건 기습적으로 맞은 것 때문이며 모욕적인 건 자기를 때린 사람이 등을 돌려 달아나는 대신 스스로의 행동을 지지하며 그대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저주스러운 결투의 법칙에 따르면, 나는 굴욕은 당했을 수 있지만 모욕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pp407-408)
<굴욕과 모욕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아마도 만점을 받게되지 않을까 싶은 위와 같은 대답을 한 인물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돈키호테입니다. 이 작품을 (종원군처럼 요약본을 읽은 것이 아닌 원본으로) 읽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이 인물, 돈키호테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제가 이 소설을 읽어가며 느끼게 되었던 감정적 분노를 그나마 억제할 수 있었던 그 무엇이 되어주었었기에... 위의 인용한 부분을 이 작품, 그리고 작품 속 인물인 돈키호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꼽을 수 밖엔 없게 됩니다.
1권에서 산초는 자신을 섬의 통치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라는 돈키호테의 말에 그의 종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며, 방랑 내내... 그 약속을 주인인 돈키호테에게 주지시켜 주었지요. 물론! 그 스스로도 자신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확신에 가까울정도로 믿고 있었기도 했구요. 하지만 1권의 마지막은 그 두 사람이 비참하다 싶을 정도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산초의 꿈은 어떻게 될까요?
2권에서 작가는, 10여년 전에 쓰여졌던 1권의 내용들 모두가 이미!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시중에 널리 퍼져 있다라는 설정을 해놓고 있습니다. 즉, 많은 세상 사람들이 돈키호테와 산초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편력기들을 다 알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늘이 원하고, 운명이 명령하고, 이성이 요구하며, 무엇보다 내 의지가 원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떠난 이 세 번째의 모험에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돈키호테와 산초가 어떠한 인물들인가를 알고 있다라는 전제하에 이후의 에피소드들을 그려내고 있는 겁니다. 이 설정은 2권 내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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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우연히, 사냥을 하고 있던 공작과 그의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부부는 물론! 1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이미 읽었었기에, 돈키호테와 산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었지요. 부부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직접 만났다는 기쁨에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넓은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시녀 두 명이 다가와 돈키호테의 어깨에 주홍색 멋진 망토를 걸쳐 주었다. (p392) --- <각주 200> 기사 소설에서 보통 기사가 성에 들어서면 그 즉시 시녀들이나 시동들이 나와 망토로 그의 어깨를 덮는다. 공작이나 그 하인들이 기사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환대를 받은 돈키호테는 자신이 책에서 읽었던 것과 똑같은 대접을 실제로 받는다라는 사실로부터 스스로가 환상 속이 아닌 진짜! 편력 기사라는 걸 처음으로 전적으로 실감하고 믿게됩니다. 즉! 1권에서는 '말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로 그러하다고 상상'했던 그가 드디어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을 느끼게 된다라는 거지요. 허나!!!
이 두 사람(공작 부부)은 기사도의 양식과 아주 잘 어울리면서도 놀랄 만한 것으로 돈키호테를 놀려 줄 일을 구상하고 그 순서도 정했다. 아주 기사도적이면서 빈틈없는 것들로 여러 가지 장난을 생각해 냈으니, 그것들이 바로 이 위대한 이야기에 들어 있는 가장 훌륭한 모험들이다. (p433)
이후 산초에게 섬(이라 속인 어느 마을)의 통치자가 되게 해준 것도, 둘시네아에게 걸려 있는 마법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과정도 ……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실은 공작 부부의 속임수였었던 겁니다. 그들이 이런 모든 속임수를 생각해내고 실행에 옮겼던 단! 하나의 이유는 오직...
공작 부부는 사냥과 자기들이 뜻한 바를 기막히게 교묘하고도 훌륭하게 해낸 것에 만족하여 다음 장난을 이어 가기 위해 성으로 돌아갔다. 그들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었다. (p456) …… 자기들이 뜻한 일에 돈키호테가 어찌나 잘 말려드는지, 공작과 공작 부인은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p466) …… <슬픔에 잠긴 과부 시녀>의 모험이 재미있고도 무시하게 끝나자 공작 부부는 아주 흡족해하며, 진짜처럼 보일 만한 적당한 소재를 찾아 계속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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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자신의 영지 중 한 마을을 '바라타리아'라는 이름의 섬으로 속여, 산초 판사를 그 섬의 통치자로 보냅니다. 물론! 자신의 재미를 위한 장난이었지만 나름 스케일은 웅장하지요. 이러한 내막도 모른 채, 산초가 섬으로 떠나기 전날, 돈키호테는 산초를 불러 옳바른 통치자가 되기 위한 여러가지 진심어린 조언들을 해줍니다. 결국 다 기억하지 못하겠노라는 산초의 말에 돈키호테는 그 조언들을 모두 꼼꼼하게 적어 산초에게 전해주지만, 산초는 그마저도 흘렸고, 조언을 담은 편지는 결국 공작 부부의 손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를 읽은 '두 사람은 새삼 돈키호테의 기지와 광기(p527)'에 놀라게 되지만 --- 이미 1권을 통해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던 전, 이 인물의 신중함과 정의로움에 다시 한번 또! 놀라게 되었더랬습니다. 다음에 요약해 인용해 놓은, 그 편지의 내용을 읽어본다면 여러분은... 어떠실지요?
● 자네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도록 노력하게. …… 자네를 알게 되면 황소와 같아지고 싶었던 개구리처럼 몸을 부풀리려는 일은 없을 게야.
●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자기가 수행하는 업무에 있어 엄격하되 온화함과 부드러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네. …… 자네 가문이 천한 것을 떳떳이 여기게. 농부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게. …… 혈통은 계승되는 것이지만 덕은 획득하는 것이며, 덕은 그 자체만으로도 혈통이 가지지 못하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라네.
●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만 들라는 건 아니네.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말일세. 가난한 자의 흐느낌과 끈질기고 성가신 호소 속에서와 똑같이 부자의 약속과 선물 속에서도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네.
● 혹시 정의의 회초리를 꺾어야 할 경우가 이다면, 그것은 뇌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네. 자네의 원수와 관련한 소송을 재판할 일이 생길 때는, 자네가 받은 모욕은 머리에서 떨쳐 버리고 사건의 진실에만 생각을 집중해야 하네. 자네와 관계없는 사건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눈이 멀어서는 안 되는 법이니 말일세. …… 만일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네에게 판결을 요구하러 온다면, 그녀의 눈물에 눈을 두거나 그녀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녀가 요구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차분이 생각해야 하네. 그녀의 눈물에 자네의 이성이, 그녀의 한숨에 자네의 착한 마음이 휘말려 버리는 게 싫다면 말일세. 체형으로 벌해야 할 사람을 말로써 학대하지 말게. 체형의 고통은 고약한 말을 보태지 않더라도 그 불행한 사람에게는 충분하네. 자네의 사법권 아래 들어올 죄인을 타락한 우리 인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라고 생각하며 가엾게 여기게. 자네 쪽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를 모욕하지 말고, 늘 인정과 자비를 베풀도록 하게.
●자네를 하느님께 맡기게. 그리고 처음 먹은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게. …… 자네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을 제대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뜻과 신념을 늘 확고히 지니고 있으라는 것이네. 하늘은 항상 착한 소원을 도와주시기 때문이라네. (pp513-515)
● 자네가 다스리는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많은 일들 가운데 먼저 다음 두 가지를 해야 하네. 하나는 누구에게나 예의를 다하여 대해야 한다는 것이네. ... 다른 하나는 양식을 충분히 확보해 두라는 것일세.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괴롭히는 것으로 배고픔과 품귀로 인해 물가가 올라가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네. (p637) …… 덕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악덕의 의붓아버지가 되게. 늘 엄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늘 다정하지도 않은 이 양극단의 중간을 택하도록 하게. (p638)
드디어 통치자가 되어 섬에 부임한 산초 또한, 주인의 이러한 말을 잘 따라 (예상 외로!) 매우 현명하고 훌륭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각종 소송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것들 중엔 --- 만일 누군가 다리를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고자 한다면, 먼저 어디로 가며 무슨 일로 가는지를 맹세해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진실을 맹세한다면 무사히 건너갈 수 있으나, 거짓말을 하면 어떠한 사면도 없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교수대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곳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나 맹세하길, 자기는 저기 있는 저 교수대에서 죽기 위해 다리를 건너가겠다라 말을 합니다. 다리의 재판관들은 고민하지요. 만일 이 남자가 자유롭게 다리를 건너게 내버려 둔다면 이 사람은 거짓 맹세를 한 셈이니, 법에 따라 죽어야 하나, 그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이 남자가 저 교수대에서 죽을 것이라고 맹세한 것이 진실이 되니, 법에 따라 그를 자유롭게 가게 내버려둬야 하는 상황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산초의 현명한 판결은 여러분이 직접 이 책에서 확인해 보시는 걸로 남겨두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허무맹랑한) 소송들은 모두 공작 부부가 보낸 신하들이 꾸며낸, 산초를 놀리기 위한 계략들의 일부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산초에게 통치자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음식만을 제공하기도 했지요. 흡사 영화 <트루먼 쇼>와도 같은 상황이랄까요? 하지만!!!
"모욕은 모욕을 줄 수 있고 모욕을 주며 모욕을 견딜 수 있는 자로부터 옵니다. 반면 굴욕은 모욕을 주는 일 없이 어디서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멋진 말의 주인공인 돈키호테의 종자였던 산초 또한, 비록 공작의 신하들로부터 굴욕을 당하기는 했으나 끝내! 선하고 현명한 통치자로서 그 임무를 멋지게 수행해 내는 것으로 그들에게 모욕을 되갚아줍니다. 뿐만 아니라, 산초를 두고 장난을 쳐왔던 자들이 모두 모여 어떻게 그를 통치직에서 물러나게 할까에 관해 상의하는 와중에도 산초는 그곳을 훌륭하게 다스리기 위한 법령들을 구상하고 있었었지요.
그는 자기의 관할 지역에서는 양식을 도매가로 사서 소매가로 넘기는 자들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 생산된 것이든 포도주는 모두 다 자기 관할 지역으로 들여올 수 있지만, 평가와 품질과 평판에 따라 가격을 매기기 위하여 산지가 어디인지 추가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포도주에 물을 섞거나 상표를 바꾸는 자는 그 죄로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신발 값을 내렸는데, 우선적으로 구두 값이 지나치게 비싼 것 같아 조절했다. 하인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고삐 풀린 듯 나다녔으므로 그들의 급료 규정도 만들었다. 밤이건 낮이건 음란하거나 난잡한 노래를 부르는 자에게는 아주 엄한 벌을 내리도록 했다. …… 가난뱅이들에게는 이들을 담당할 관리를 두었으니,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가난한지를 조사시키기 위해서였다. 왜나하면 도둑이나 술주정뱅이들이 손이며 팔이 없는 것으로 위장하거나 허위로 종양에 걸린 것처럼 하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단히 훌륭한 법들을 제정했으니, 그 법들은 오늘날까지 그곳에서 지켜지고 있으며 이 법을 <위대한 통치자 산초 판사의 법령>이라 이름하고 있다. (pp643-644)
이 밖에도 훗날 한동안 머물렀었던 이들 공작 부부의 성을 떠나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만난 또 다른 귀족으로부터도 돈키호테와 산초는 이런, '의도된 조작으로부터의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물론! 비록! 두 인물 모두 조롱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기대했던 바의 재미를 안겨주게 되지만, 결코 그들의 조롱이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모욕이 아닌, 그저 굴욕일 뿐이었다라는 걸 독자들은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설정 속 에피소드들이 어쨌든 저에게는 적지않은 화를 나게 해주었더랬습니다. 아니 대체 니가 왜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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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로 하여금 그 장난의 통치자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직전, 신하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라 보고하며 그 전쟁을 지휘해야 한다며 산초에게 걷지도 못할 정도로 꽉끼는 갑옷을 입혀줍니다. 이 갑옷을 입고 산초는 말하지요.
"어떻게 걸어야 하지, 이 불행한 내가?"
진심으로 진지하게 통치자의 임무를 수행했지만, 결국 산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스스로! 통치자의 직에서 내려옵니다. (이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하여 산초를, 또 돈키호테를 조롱하던 자들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이었는데, 이 또한... 두 사람이 굴욕을 당했을지언정 결코 모욕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이리로 오렴, 나의 동료이자 친구이며 나와 고생과 가난을 같이해 온 잿빛아. 너와 마음을 나누고 네 마구를 손질하고 네 작은 몸뚱이나 먹여 살릴 일 이외에는 다른 생각일랑 하지 않으면서 보낸 나의 시간들과 나의 나날들과 나의 해들은 행복했었지. 하지만 너를 내버려 두고 야망과 오만의 탑 위에 오르고 난 이후부터는 내 영혼 속으로 수천 가지 비참함과 수천 가지 노고와 수천 가지 불안이 들어오더구나. …… 여러분, 길을 비쳐 주시오. 그리고 내가 옛날의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가도록 놔두시오. 현재의 이 죽음과 같은 생활에서 되살아나도록 지난 삶을 찾으러 가게 해주시오. 나는 통치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오. …… 나는 법을 만들고 땅이나 왕국을 지키는 일보다 밭을 일구고 땅을 파고 포도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는 일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오. 성 베드로는 로마에 있을 때 제일 편안하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는 얘기요. 손에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상인 왕홀보다 낫 한 자루 쥐고 있는게 내게는 더 잘 어울린다오. …… 그리고 통치한답시고 거기에 구속된 채 네덜란드산 이불 잠자리에 들고 검은담비 옷을 입고 사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여름에는 떡갈나무 그늘에 드러눕고 겨울에는 새끼 양가죽을 입고 살고 싶다오. 그대들은 안녕히 계시요. 그리고 내 주인이신 공작님께는 내가 벌거숭이로 태어나 벌거숭이로 남았다고 전해 주시오. 나는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소이다. …… 제비나 다른 새들한테 잡아먹히라고 나를 공중에다 띄워 준 이 개미의 날개는 여기 마구간에 남기고 우리는 다시 평범하게 땅으로 돌아다닐 거요. …… 이불이 아무리 길더라도 그보다 더 다리를 뻗지는 말아야 하는 법이오. (pp 66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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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부분이 제가 이 작품을 읽고 그려낸 '결과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장하준 교수는 '개인주의 경제 이론(=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점을 "개인이 처해 있는 환경의 거의 모든 부분이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라는 가정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재산권, 노동권 등 기존의 사회 구조 또한 '이미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불합리한)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암묵적 요구"라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면 사람들의 생각 자체도 변하게 되어, '적응된 선호 adaptive prefernece'를 만들어 내게 되고, 그로부터 생성된 '허위 의식 false consciouness'이라 불리우는, 예를 들어 억압을 받거나 착취나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그 와중에도) 자신은 행복하다라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로 인한 더욱 커다란 폐해는 그들에게 (너네는 결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야란) '진실'을 말해줌으로써, 그들에게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너네들 스스로를) 행복해하면 안 된다고 말할 권리를 앗아가 버린다라는, 그럼으로 하여 (비록 착각이나마 자신을 행복하다라 생각하고 있는)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 권리를 가진 사람 또한 존재할 수 없다라는 점에 있다라고 주장했었었지요.
진보적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며, 운전하면서도 가급적 좌회전은 하지 않으려 한다라 말할 수도 있는 제가, 그럼에도 작품 속의 이러한 설정들로부터 '화가 난다'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①
악의가 없는, 허나 가난한 자들은 있는 자들의 놀림감의 대상으로 밖에는 되어질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아쉬움으로 시작되어, 결국엔 --- "나는 통치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오. …… 낫 한 자루 쥐고 있는게 내게는 더 잘 어울린다오."라는 산초의 말이 끝내!!!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는 얘기요. …… 이불이 아무리 길더라도 그보다 더 다리를 뻗지는 말아야 하는 법이오."로 끝맺음되는 이 상황이, 즉 장하준 교수가 언급한 '적응된 선호'를 '가난한/권력 없는 자들'에게 입히려는 '가진/권력 있는 자들'의 시도가 멋지게 성공하게 된다라는 이 상황이 저에게 '화가 난다'라는 감정을 가져다 주었던 겁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조작, 그러니까 없는 자들의 사상마저 개조해 그냥 없는 자는 영영 없는 자의 상황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 믿게 만드는 이 조작은 성공을 거두게 되고, 그로써 '타고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라는 속담의 정당성을 기어이 산초 스스로로부터 이끌어내는 이 장면의 그림이 만약 (수탉을 보고 그려내야했던) 수탉을 그려내는 것이라면 전... 차라리 여우를 그려내는 걸 선택하겠다라는 거지요. 뭔 말이냐 하면!!!
이 상황은 결코!!! '타고난 일은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라는 속담이 맞다라 이야기하는 것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속담을 통해 피지배층의 정신을 개조하려는 시도가 성공했다라는 걸 의미하고 있으며, 열흘 간의 짧은 통치자직을 끝내고 주인인 돈키호테에게 돌아가는 산초가 '주인과 다시 함께하게 되는 것이 그에게는 세상에 있는 모든 섬의 통치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p665)'라 느끼도록 만든 것 역시 패배의식을 포장해 그들이 그것을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려는 조작 또한 성공했음을 의미할 뿐이라는 걸, 이도 모자라 '일은 인간이 계획해도 이루시는 하느님이시지.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제일 좋은 일과 제일 알맞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고'란 말에서처럼 神마저도 이 속담의 정당성에 동원시키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정녕!!!
작가 세르반테스가 의도한 것들이었는지, 아니면 이를 통해 거꾸로/역설적으로 그 속담/시대적 상황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일 독자일 뿐인 저로서는 무모한 선택일지는 모르겠으나, 선뜻! 당연히 후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왜냐? 바로...
"지금은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름이 승리를 거두고, 노동보다는 오락이, 덕보다는 악습이, 용기보다는 오만이 …… 승리를 차지하고 있지." (p70)
란 (작가 세르반테스의 생각이 스며들어 있을) 돈키호테의 말이 그저 특정 문맥의 상황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등장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2권 속에 1권이 독립적인 소재로 등장하고 있듯, (요약본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이를 좀 확대해 본다면, 2권의 전반부의 등장했었던 돈키호테나 산초 판사의 말이 그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란 결론을 내리는 것이 그다지 큰 무리는 아니라는 거지요. 설혹! 이런 제 선택이 수탉을 보고 여우를 그려낸 것일지라해도 말이죠. (이 책의 역자는 <작품 해설>을 통해 '공작 부부가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이 두 주인공을 가지고 집요하게 장난을 치는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유머가 잔인함에 기인해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p900)'라 말하고 있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잔인함'이라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지요.)
②
돈키호테를 집으로 오게 하기 위해 계책을 짰고, 결국 성공해 그로부터 집으로 돌아가겠노라라는 약속을 받아낸 삼손 카라스코에게 공작은 오히려 역정을 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광인을 제정신으로 돌리고자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다니 ……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줄 수 있는 이득이 그가 미친 짓을 함으로써 주는 즐거움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시오? …… 매정한 말 같지만, 난 돈키호테의 병이 절대로 고쳐지지 말았으면 하오. 그가 낫게 되면 그로 인한 재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의 종자 산초 판사의 재미까지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 (pp806-807)
이 부분은 흡사! 현재의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들을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기도 했었습니다. '개인은 합리적이고 그들의 선택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는 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정은 단지! 그리고 여전히! 돈과 권력을 이미 자신의 수중에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된다라는 걸, 그리하여 결국엔 그 선택의 이면에 깔려 있는 <지배 - 피지배의 구조>를 지극히 간단하게 지워내 버린다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 말입니다.
권력과 금력, 그 둘을 모두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선 2014년 지금! 다음과 같은 장하준 교수의 물음이 그나마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라 생각했었었거늘, 채! 인식해낼 겨를조차 주어지지 않고 지워져버리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지배 - 피지배의 구조>란 것이, 그것이 아직 싹도 생겨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작가 세르반테스에게서는/도 이미! 주어져 있었던 (해결을 요하는) 문제이었던 겁니다. --- 나는 너희들에게 음식과 의복, 잠자리를 장만할 수 있는 돈을 제공할 테니, 너희들은 나에게 너희들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통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여.야.해. 물론! 고통은 너희들만 느끼는 것일 테고, 너희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마저도 또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어.야.하지. 마지막으로! 이것이 절대적으로 너희들와 나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교환이라는 점을 잊지는 마. 질문 사절, 이상 끝!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그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바뀔 수 있는지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차선책이 굶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일을 선택할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한 선택을 '자유 의지'로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먹어야 한다는 생리적 조건 때문에) 그 일자리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게 아닌가? ……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하는지도 모른다.
- 장하준 著,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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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미쳐 버린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치광이일 것이고, 좋아서 미치광이가 된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 미치광이를 그만둘 수 있다." (p209)
돈키호테에게는 어쩌면 숙명과도 같을 질문일 겁니다. '과연 당신은 미친 사람인가?'라는 것 말이죠. 1권을 읽고 저는 돈키호테는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니다라 말했었습니다만, 드디어! 2권에서 돈키호테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미쳤다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이 말 뒤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입니다.
"이것을 찾고 저것과 싸워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 그들(편력 기사)의 주요하고도 참된 의무랍니다." (p235)
다시 말해, 자신은 미치지 않았지만 자신을 미쳤다라 말하는 세상 모든 타인들을 편견과도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기사인 자신의 의무였다었라는 것이지요. 비록!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그 싸움 이길 수 없어도, 그 슬픔 견딜 수 없어도'와 같은 삶을 살았었지만, 돈키호테는 그의 (비록 길지는 않았던) 편력 기사로서의 삶 내내 '나는 죽어가며 사노라, 나는 얼음으로 불타노라, 나는 불 속에서 떠노라, 나는 희망 없이 희망하노라, 나는 떠나고 남노라.'의 신념을 끝내 이처럼 버리지는 않았었던 거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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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매번 인간 삶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을 우리 앞에 놓아주니 …… 우리가 어떤 인간들인지,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연극이나 배우들에 비길 만한 것은 어떤 것도 없다네. …… 한 사람이 깡패 역을 하고 다른 사람은 사기꾼, 이 사람은 상인 …… 또 다른 사람은 사랑에 빠진 어리석은 자를 연기하다가 연극이 끝나 의상을 벗어 버리면 모든 배우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되거든. …… 그런데 연극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일이 이 세상에서도 일어난단 말이야. 세상에서 어떤 자는 황제 역할을 하고 어떤 자는 교황 역할을 하는데,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연극에 등장할 수 있는 인물들이란 말이지.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그러니까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때가 되어서 말일세, 죽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와서 사람들을 차별화했던 의상들을 벗기면 모두가 무덤 속에 똑같이 있게 되는 게지. (p174)
"내 좋은 이들이여, 축하해 주시오. 나는 이제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나라오. …… 그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내가 빠졌던 아둔함과 위험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오." (p880)
라는 유언을 남기고 돈키호테는 이승의 삶을 마감합니다. 사실 그의 이 유언을 읽고 (이 작품의 마무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전 약간의 혼란을 받았었습니다. 2권의 시작에서 그가 했던 "나는 편력 기사로 죽을 것이다. …… 하느님은 나를 이해하신다."(p65)라는 말, 그리고 "명성이라는 것은, 결국은 죽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이루어 낸 위대한 업적에 합당한 상으로나 불멸의 몫으로서 원하는 것이지."(p139) 라는 말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최후를 선택했기 때문이었죠. 이 감상문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 혼란은 가시질 않았더랬습니다만, 감상문을 쓰기 위해, 읽어가면서 타이핑 해놓았던 구절들을 다시 읽다 보니, (제가 '이 책 최고의 문장'이라 표시해놓았던) 다음의 구절이 어쩌면! 그의 이러한 유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가 아닐까, 더 나아가 인간의 목숨이 다한 죽음 이후의 그 어떤 곳에서는 그의 마지막 소원대로 목동이 되어 있을지도, 혹은 또다시 편력 기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돈키호테의 모습을 그려보게도 해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늘 같은 상태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오히려 삶은 모두 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듯하다. 말하자면 중심에다 한 점을 놓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다. …… 세월은 멈출 줄 모르는 바퀴를 타고 구르고 또 구른다. 단지 인간의 목숨만이 세월보다 더 가볍게 그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p655)
돈키호테가 편력 기사의 삶을 마감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삼손 카라스코가 쓴 돈키호테의 묘비명,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pp885-886)는 "비록 미쳐 살기는 했으나 그러한 모습을 죽음 앞에서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p880)라는 돈키호테의 유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 때의 '미쳐 살다가'라는 부분을 '狂人'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지요. 우리말로 무어라 옮겨야 할지 모르겠는, 'holic'의 의미로 전 그의 삶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나는 죽어가며 사노라, 나는 얼음으로 불타노라, 나는 불 속에서 떠노라, 나는 희망 없이 희망하노라, 나는 떠나고 남노라.'의 구절을 되새겨 보면, 독자로서... 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여야만 하는 것 아닐 수도 있다라는 작은 위로를 받게도 되지요. 어쨌든...
그는 떠났고, 이 작품이 발표된 1년 후 작가 세르반테스 또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문학사적 의의에까지 저의 능력이 미치지는 못합니다만, 또한 수탉을 보고 여우를 그려낸 듯한 감상문이 쓰여진 것도 같습니다만 --- 어쩌면... 이러한 점, 즉 작가가 보여주는 수탉을 보고 독자마다 나름의 '결과적으로 나오는 것'을 가질 수 있다라는 점이야말로 이 작품 「돈키호테」가, 시대를 초월해서도 여전히 읽혀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돈키호테 1권」에 대해 '알라딘'에 남겨져 있는 어느 독자분의 100자 평 일부를 빌어, 두 권 합쳐 1,708페이지였던 이 작품을 다 읽고난 (드디어 마지막) 인사를 '돈키호테 데 라만차'와 '산초 판사'에게 남기는 것으로 '수탉을 보고 여우를 그려낸 듯한' 이 그림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문장이라니, 감상문이란 걸 쓰며 처음으로 울컥!하는 아쉬움이 올라옵니다. 아마도 가끔씩... 이 책을 펼쳐보며 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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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과 함께 했던 16일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고마와요.
안녕... 돈키호테! 굿바이! 산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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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산초 판사는 속담을 인용해 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속담을 많이 인용해 매번 주인인 돈키호테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지요.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그냥 읽어갔는데, 2권을 읽으면서부터는 산초 판사가 인용했었던 그 속담들을 진작 정리해 놓을껄,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그 후회 이후 부분에 등장하는 속담들 중 인상깊었던 것들 몇 개를 간추려 봤습니다. 산초가 인용하는 속담들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다시금 이 1,708페이지를 읽어보게될지도 모르겠. ^^
● 항아리가 돌에 부딪치건, 돌이 항아리에 부딪치건 깨지는 건 항아리다.
● 자기 집 바보가 남의 집 멀쩡한 사람보다 자기 집을 더 잘 안다.
● 쥐에게 줘야 할 것을 고양이에게 줘라, 그러면 걱정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 치사한 소유보다 훌륭한 희망이 더 낫다.
● 누구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풀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 두 번 '주마'하는 것보다 한 번 '가져라'라는 게 훨씬 나으며, 날고 있는 독수리보다 손안에 든 참새 한 마리가 더 낫다.
※ 전편의 감상문 : 「돈키호테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