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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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돈키호테 1·2」권의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고, 거기에 더해 그 두 권의 책들까지 미리/무려! 선물로 받았더랬습니다. 일단 그 자리에 가기 전에 1권이라도 읽어보고는 싶었으나 그 엄청난 두께와, 결코 읽(어내)기에 녹록한 책이 아니라는 이웃분의 코멘트도 기억이 났기에 - '한 사람의 혼잣말이 무려 여덟 페이지나 이어져요!'라는 것으로 이 책 읽기의 만만찮음을 토로해주셨던 어느 이웃분의 글이 문득 떠올랐었어요 - 이루고는 싶으나 이룰 수는 없을 듯한 소망이라 예상했었었거늘, 기념회 (날짜상으로는) 당일인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드디어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냈습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닌 오로지! 이 책이 그만큼 재미있었었기에 가능했던 일!!!

암튼! 혹 동행자가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는 출판사의 쪽지를 받고는 혼자 가는 것도 좀 그렇고, 이런 기회를 종원군에게도 보여라도 주고싶어 은근 협박을 함유시킨 채 의향을 물었더만 단칼에 고개를 젓더군요. - '안갈래요.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인데, 내가 왜 미친 사람이 나오는 소설 이야기를 들으러 가요. 난 그거 정말 재미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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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요? 바로 이... '과연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인건가'라는 의문이,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더랬습니다. 저 또한 이 책을 읽기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돈키호테>라는 작품과 인물에 대해서는 풍차를 거인이라 주장하며 달려들었었다더라!라는 사실과, 산초라는 이름의 하인 한 명을 데리고 다녔었다는 것이 전부였었었기에, 선뜻!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미친 사람'이라는 종원군의 말에 "그렇다"라거나 "아니다"라는 그 어떤 답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허나! 다행스럽게도 작가 세르반테스는 저의 고민과 종원군의 확고한 판단, 모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으로 이 작품의 시작을 장식해 주고 있었습니다.

<내 망토 밑에서는 왕도 죽인다>라는 말처럼 편할 대로 하십시오. 당신은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존경심이나 의무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보시는 대로 무슨 말씀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한다고 당신을 비방할까 혹은 좋게 말한다고 당신에게 상을 줄까, 두려워하거나 고민하지 마십시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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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의 원제는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인데, 작가 세르반테스가 독자들에게 암시해주고 있는 무엇, 혹은 이 작품 속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에 생각해보면 바로 이 제목 속 '이달고'라는 단어에 얼추 거의 다 들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이달고 hidalgo'라는 단어에 대한 역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에 그 이유가 들어있지요.


​hidalgo : 하급 귀족 작위인 <이달기아>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외에 스페인에서 최소 4대에 걸쳐 선을 행하며 내려온 기독교 가문의 가계에 주어졌던 이 작위는 스페인 열일곱 개 자치 지역 가운데 하나인 북쪽 나바라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714년부터 1492년까지 스페인 내 무어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국토 회복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명예로운 공동의 대의에 참가했음을 기리기 위해 이 작위를 부여하면서 대물림되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평민 상당수가 포함될 정도로 많아져 이들 삶의 방식이 스페인 사람을 정의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달고는 "이상주의자에 열성 기독교 신자, 모험가, 큰 공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자, 대범한 자, 경제에는 무관심한 자"로 이러한 이달고가 스페인 16-17세기의 사고를 지배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위대함과 영광을 찾아 나아가도록 하는 추진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1492년 국토 회복 전쟁이 끝난 후 종교에 파묻혀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고 명예로 여기며, 전쟁과 행정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에 매여 살았다. (p19) 

주인공 '돈키호테'가 바로 이 '이달고'라는 작위를 가진 가문의 사람이었다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후 보여지는 그의 수많은 기행들 중 지극히 일부나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럼... 정확히 781 페이지로 끝맺음하고 있는 이 작품 속에 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지를 좀 살펴볼까요?

 

 

줄거리 】 

​'쉰에 가까운 나이의, 얼굴과 몸이 말랐고, 체형은 꼿꼿했고, 아침 일찍 일어났고, 사냥을 좋아했'으며, '틈이 날 때마다 - 1년 중 대부분이 그랬다 - 기사 소설을 읽는데 푹 빠져서 사냥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고'마는 인물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입니다. 기사 소설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도취는 일상적 정도를 넘어, 급기야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까지 기사 소설들을 사모으는 지경에 까지 이르르고 말았죠. 결국 '그의 뇌는 말라 분별력을 잃고 …… 그리하여 자기가 읽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모두 진실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런 이야기보다 더 확실한 것들은 없다고 여기게 되'어 버립니다

 

이런 그는 마침내!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자신이 직접 편력 기사가 되어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겠노라 결심하고 모험의 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떠나기 전 우선! 그는 다음의 세 가지를 결정해야만 했었었지요.

자신, 즉 편력 기사가 타고 다닐 말에게, 사람들이 이 말이 이전에는 어떤 말이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면서도 아울러 현재의 신분을 드러낼 만한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는데, 돈키호테는 결국 '로시난테'라는 이름으로 결정합니다. --- '보기에 이 이름이야말로 고상하고 부르기도 좋은 데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말들 가운데 제일가는 이 말이 전에는 일개 평범한 말이었으며, 어쨌든 이는 지난 일이었다는 의미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에게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돈키호테'로 지었는데, '돈(don)'은 스페인에서 남자 앞에 사용하던 경칭이며, '키호테(quijote)'는 허벅지 안쪽 근육을 보호하기 위해 입던 갑옷을 뜻하는 단어로서, 남성의 상징이 결코 약해지거나 풀이 죽거나 느슨해지지 않음을 의미합니다...만! 사실 이는 그의 외모와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는 뜻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도 이러한 것일테구요. ('돈키호테'를 우리 말로 하면 '변강쇠 대감'? --;;)

 

이제 편력 기사인 자신이 사랑할/해야하는 귀부인을 찾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 사랑하는 귀부인이 없는 편력 기사란 잎이나 열매가 없는 나무요, 영혼 없는 육체이기 때문이었다. --- 결국 돈키호테는 자신이 사는 마을 근처에 사는, 한때 그가 좋아했었던,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던 한 농사꾼 처자에게 상상 속 이름을 지어 붙여줍니다. '둘시네아 델 토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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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력 기사에게 필요한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그는 길을 떠나자마자 곧! 자신이 제일 중요한 기사 서품을 받지 않았다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기사 소설들에 따라 그는, 모험의 여정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으로부터 기사 서품을 받겠노라 맘 먹고, 로시난테가 가고 싶은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둔 채 길을 갑니다. '모험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이후 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그저 평범한 객줏집에 불과한 장소를 '네 개의 탑과 은빛 찬란한 첨탑, 그리고 위로 여닫는 다리와 성 둘레로 깊게 한 해자가 있으며 그 밖에 책에 묘사된 요소들을 모두 갖춘 성'이라 믿은 - ⓐ 실제로! 돈키호테의 눈에는 그렇게 비추었을까요? - 그는 어찌어찌해 기어이, 자신이 카스티야 성주라 불렀던 객줏집 주인으로부터 기사 서품을 받(아내)고야 맙니다.

 

서품식에서 객줏집 주인이 지 맘대로 지껄인 몇 마디, 그러니까 자고로 편력 기사에게는 돈과 비상약 그리고 종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따르고자 그것들을 구하기 위해 돈키호테는 일단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만 (기사 서품을 받아 한껏 들떠 있는) 그 길에 마주친 일단의 상인들에게 다짜고짜! - '라만차의 왕후이며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둘시네아 델 토보소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거라면, 모두 그 자리에 멈추시오'라는, (종원군의 표현을 빌자면 )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요구를 하지요. 그리곤 결국, 온 몸이 맷돌에 갈린 밀처럼 두들겨 맞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와중에도 이러한 불행조차 편력 기사들에게만 일어나는 일로 여겨 자기는 행복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며 길에 뻗어 있었었는데, 마침 다행히도 그 곳을 지나가던 한 농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더랬죠. 물론! 자신이 그 곳에 그렇게 쓰러져 있던 이유는 이 드넓은 세상 어디를 가도 만나기 어려운 가장 지독하고 무모한 거인 열 명과 싸우다가 심하게 넘어졌다라는 말을 빼놓지는 않고서. (ⓑ 독자로서/가 처음으로 읽게 되는, 돈키호테의 이 황당한 이 말은 과연 거짓말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짜 돈키호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요?)

 

돈키호테는 이후 보름 동안 집에 머물며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먼저 이웃에 사는 착한 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에게 간청을 하여 자신의 종자가 되게했지요. 돈키호테가 그에게 한 여러 가지 약속들 중 하나가 바로! - 만약 그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나서 준다면 모험으로 아무리 못해도 어떤 섬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에 산초 판사라는 이름의 그 농부는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돈키호테의 종자가 될 것을 승낙했던 것이구요.  

  

이후 자신의 재산 중 어떤 것은 팔고 어떤 것은 저당 잡혀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한 돈키호테는 함께 살고 있던 가정부와 조카에게, 산초 판사는 처자식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저(조차)도 알았었었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 일명 '풍차 모험'이 펼쳐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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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나머지 '5/6'를 차지하고 있는 이후의 이야기들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길에서 맞닥뜨리는,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 중 대부분은, 긁어 부스럼 식의 '만들어 일으켰던'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어떻게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느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도 나오고 암튼!!! 상당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등장하지요.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된다 말할 수도 있겠는 우연의 남발들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그것들이 이 소설의 재미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더랬습니다. 제가 집중했던 부분은 여전히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과연 미친 사람인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어쨌든 이 책 「돈키호테 1권」은 (어찌 생각해보면 너무 짧은, 또 어찌 보면 길게 느껴지기도 하는) 17일간의 편력 생활을 마치고, 비록 돈키호테의 의지와는 달리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그들의 집으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마쳐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어떤 점이 이 소설 「돈키호테」를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는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던 걸까요?

 

 

 

【 줄거리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이야기 】

이 책을 거진 다 읽었을 즈음 종원군이 가지고 있는, 곧 알라딘 중고 서점에 팔리게 될 운명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초등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돈키호테」를 읽어봤었습니다. 이 책과 비교하여 빠진 부분들도 있었습니다만, 돈키호테의 모험담에 관한 부분은 대체적으로 거의 다 담고 있더군요. 즉! 이 소설의 줄거리만을 알겠다 한다면 굳이 8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이 긴 책을 읽지는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혹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구사카베 요의 소설 「A 케어」의 감상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이란 작품을 예로 들어 썼었듯) 한 소설 작품을 이야기함에 있어 오로지! 줄거리만을 따 표현해 본다면 사뭇 그 작품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 혹은 그 작품의 지니고 있는 (문학적이건 시사적이건 교훈적이건 무엇이 되었든간에 그) 진정한 가치가 심하게 변질, 더 나아가 왜곡되어질 수도 있다라 생각하는데, 바로 그러한 변질과 왜곡이 어린 아이들/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돈키호테」들에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종원군에게도 결국 '돈키호테는 미친 사람일 뿐'이라는 강한 인상이 심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키호테가 길을 떠나 객줏집 주인에게 기사 서품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죠. --- 단순하게 줄거리만 보자면 한낱 우습기만한 장면만이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지만, 작가 세르반테스가 써놓은 그 하나하나의 서술들은 읽는 이에게 '읽는다'라는 노동에의 보답인 '읽는 즐거움'을 차고 넘칠만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읽는 즐거움'을 배제한 채, '독서'라는 행위를 단지 일개 노동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오로지 줄거리만으로 한 작품을 (이해가 아닌) 습득만! 한다면 과연... 작가의 진의대로 이해되어지는, 또한 그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고전이라 불리우는 작품이 대체 얼마나 남게될 지 정말로 의심스럽기만 하기도 합니다. 이는 제가 이전에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실제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한데 --- 단 세 줄만을로도 요약되어질 수 있는, 그렇게 이야기의 뼈대만으로 쓰여있는 「왕자와 거지」를 읽은 초등학교 5학년 종원군이 - 물론 종원군의 독서 능력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 결국 '나 같으면 옥새 찾는 것을 도와주지 않고 계속 왕자로 살고 싶어 했을 것이다'란 독후감을 써놓았던 결과를 낳기도 하는 거지요. 이건 그렇고!

 

자 그렇다면... 이제 과연 '돈키호테는 진정 미친 사람일 뿐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열쇠를 찾아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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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으로 느릿하게 길을 걸었다. 태양은 그의 뇌수를 녹일 정도로 지독한 열기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얼마간의 뇌수가 그에게 남아있다면 말이다. (p76)

 

마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자신의 작품인 「롤리타」에서 주인공 험버트험버트를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돌려대는 표현으로 은근히, 허나 심하게 까대었던 것처럼, 세르반테스는 초반부의 돈키호테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미쳤다'라는 말을 아니지만, 최소한 그에게 정상적인 분별력은 결여되어 있다라는 걸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출신지인 라만차라는 지역이 영웅적인 장소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몽상가들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라는 각주의 설명을 통해서도 또한 알 수 있듯이, 소설 곳곳에 돈키호테의 기이함에 대한 기본적 밑바탕을 깔아놓고 있는 겁니다. 일단! 그가 정상은 아니라는 거지요. 하지만!!!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산초 또한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돈키호테만의) 이름의, 본명이 알돈사 로렌소인 여인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녀의 실체에 대해 산초가 이야기 하자 돈키호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지요.

 

내가 둘시네아 델 토보소를 사랑하는 것은 지상의 가장 고귀한 공주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네. 그래, 시인들이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붙여서 찬양하는 여성들이 모두 실제로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 …… 다들 시의 소재로 쓰기 위해 만들어 낸 인물들인 게야. 자기들을 사랑에 빠져 있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지어낸 여인들이란 말일세. 그러하기에 나도 저 알돈사 로렌소라는 그 착한 여자가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면 되는 거라네. 가문 따위는 중요하지가 않아. …… 내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주라고 간주하고 있으면 되는 게야. …… 이로써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말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로 그러하다고 나는 상상한다는 것이네. …… 나는 아름다움에 있어서나 고귀하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그녀를 상상해 본다네. (pp366-367)

 

1권의 딱! 절반쯤 되는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돈키호테의 정신 세계에 대한 정답을 알려줍니다. --- '내가 말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로 그러하다고 나는 상상한다는 것이네'라는 이 한 마디의 표현으로 독자는 돈키호테가 결코! 미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거지요. 게다가 뒤이어 작가는 돈키호테의 방랑/모험을 '이미 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의 멸망해 가는 편력 기사도를 부활시키고 세상에 그것을 되돌려 주고자 하는 아주 존경할 만한 결심 (p431)'이라 표현하기도, 또한 '지금은 편력 기사가 유행하지 않으며 기사 소설들은 바보 짓거리에 거짓말뿐 (p500)'이라는 다른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 돈키호테의 시대에는 정작 편력 기사가 거의 없었다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이달고'(이상주의자)와 '라만차 출신'(몽상가)의 지극히도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거지요


이러한 외양와 내면의 아슬아슬(?)한 불일치를 보여주는 돈키호테의 기이한 언행들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이 골.때리는 인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들이 작품 곳곳에 놓여져 있기도 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고난들을 대하는 돈키호테의 자세, 이를 대변하는 다음의 말을 그 백미로 꼽지 않을 수 없었.더랬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긴 합니다.) 


세월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은 없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는 걸세.…… 운이라는 것은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문을 항상 열어 놓지. 불행을 해결하라고 말일세.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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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그렇다면, 이 작품 속에서 그야말로 쏠쏠한( 그리고 어쩌면 '쓸쓸한')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산초 판사는 대체 어떤 인물인걸까요? 미친 건 아니지만, 미친 것처럼 보이는 주인인 돈키호테를 그는 대체 무슨 연유에서 끝까지 따라다녔던 걸까요?

 

'풍차를 향한 돈키호테의 무모한 질주'를 목격한 산초는 이내 자신의 주인이 최소한 정상은 아닌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착한 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산초는 돈키호테가 약속한 백작 지위와 백작 영토인 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버리지는 않습니다. 떼를 지어 몰려오는 양떼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 돈키호테, 끌려가는 죄인들을 보고 기어이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해 주지만 끝내 그들로부터 자신 또한 몰매를 맞게 되는 온갖 상황들을 겪어가며, 주인인 돈키호테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넌지시 건네어 보기도 했고, 자신의 말이 단칼에 거절당하자 섬이고 작위고 뭐고 다 때려치고 혼자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적도 있었더랬습니다만! 그는 주인인 돈키호테를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 남아 '내가 말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로 그러하다고 나는 상상한다'라 말하는 주인, 그리하여 한 데서 밤을 보내야하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기사도 수련을 용이하게 해주는 고행의 기회'라며 그 상황마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주인을, 또한 자신만이 그려내고 있으며 자신에게만 보이는 그러한 상상 속에서 현실적인 위험으로부터도 피하지 않으려는 주인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러나는 것은 달아나는 것이 아니며, 위험이 희망을 앞지를 때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분별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요. 지혜로운 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삼갈 줄 알고, 하루에 모든 것을 모험하지 않습니다요. (p322)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런 산초 판사라는 인물에 대해/인물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슴 찡한 한 마디를 적고 있지요. : '산초는 비록 돈키호테가 약속한 섬 …… 이라는 물질에 관심이 많았지만, 진실로 돈키호테를 존경은 하고 있었다. (p382-383)'

 

 

【 읽는 줄거리가 아닌 이해하는 이야기 】

이 작품을 읽어가며, 어쩔 수 없이 작가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계속 떠올렸었더랬습니다. 자신을 황제라 믿고 있었던 주인공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었지요. 그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황제라 믿게되는 계기는 전적으로 아버지 때문이었었습니다. 시작은 '믿음'이었으되, 점차 그 '믿음'을 '진실'로 만들기 위한 온갖 '작위'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믿음과 작위들' 모두를 '진실'이라고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황제였다라 생각하며, 그렇게 황제가 아닌 황제로서의 일생을 마치게 되지요.

이어지는 2권에서 돈키호테는 또 다시 편력 기사가 되어 방랑을 떠난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가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고도 하구요. 그러하기에 「황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의 최후와 돈키호테의 최후가 과연 어떠한 차이를 보일 것인지, 혹은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을지가 사뭇 궁금했기도, 어쩌면! 이 작품 「돈키호테」의 감상문을 써냄에 있어 아주 유용(?)한 비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사실은 2권까지를 모두 읽고 하나의 감상문으로 써내려 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선뜻 용기가 생기질 않았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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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작품의 기본 배경을 미리 정리해 놓는 것이 2권을 읽어가는 데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이 때의 기본 배경이라는 건 물론 주연과 조연인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인물에 대한 (1권이니까) 1차적 이해가 되겠고, 두 번째로는 이 작품을 읽는 일종의 방법이랄까? 한계랄까?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 선긋기를 스스로에게 해놓고 훗날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를 - 2권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부족하기에 역사 소설 읽기를 꺼려해왔고, 지금도 쉽게 달려들지 못한다라 적기도 했었습니다만 외국의 역사에 관해서야 더더욱이 그러합니다. 이 작품 「돈키호테 1권」의 내용 중 가장 지루했던 부분은 '포로로 잡혀갔었던 대위의 이야기'였었는데 - 아마 제 이웃분께서 한 사람의 독백이 자그마치 8페이지나 이어진다라 하셨던 부분이 바로 여기였을 듯 - ,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알지 못하는 전투와 장군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죠. 허나! 이는 거꾸로 --- 스페인 독자가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 등이 등장하는 임진왜란의 여러 전투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설의 한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면, 그저 소위 말하는 '읽기 훈련'이라 생각하며 이 부분을 대충 넘겨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별/거의/아무 지장은 없다고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의 수준과 감동의 수준 사이의 격차는 생겨나겠지만, 그리하여 어쩌면 그런 이유가 유럽인들에게 이 소설 「돈키호테」가 저 같은 사람은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만약 이 격차마저 줄여보겠다라 한다면 이 작품 「돈키호테」 읽어내기는 하 세월을 요하는 독서가 될 겁니다.)

 

이런 '감동의 차이'는 또한 언어적인 면에서도 나타납니다. 물론 이 책의 번역자인 안영옥 교수께서 정말로 꼼꼼하고 자세하게, 반드시 필요하기도 한 각주를 달아 놓아, '이 각주들 없이 「돈키호테」를 즐긴다라는 건 있을 수 없다!'란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예를 들어,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공장장이고 …… 경찰청 창살 쇠창살' 등의 우리말 혹은 그 우리말이 어떤 의미/문맥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외국어로 옮길 수는 없겠듯, 끝끝내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는 작가의 언어적 유희들이 유럽인들과 제가 이 작품을 읽고 받게 되는 감동에 극복해낼 수 없는 '감동의 차이'를 낳게 된다라는 걸, 비록 아쉽긴 하나 미리! 마음 속에 새겨만 놓을 수 있다면!!!

 

이 작품 「돈키호테 1권」은 줄거리만을 빼놓은 요약본이 아닌, 반드시 원작 그대로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소설이며 게다가!!! 놓치기엔 정말 아까운, (조금만 현대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연애 편지 - 요즘도 이런 거 쓰긴 하나요? --;; - 에 써도 될 듯 싶은) 주옥같은 몇몇 표현/철학들 또한, '읽(기만 하)는 육체적 행위'가 아닌, '이해하는 정신적 행위'로서의 독서가 선사해 주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저에게 안겨주기도 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건 많은 경우 욕망에 지나지 않고, 욕망의 궁극적인 목적은 쾌락인데, 이 쾌락을 얻고 나면 사랑은 그치고 마는 법입니다. 또한 사랑으로 보였던 것도 뒤돌아 가기 마련이지요. 그런 사랑은 자연이 정해 놓은 한계를 넘어 더 나아갈 수가 없거든요. 진정한 사랑에는 그런 한계가 없지만요. (pp343-344)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내가 확신한다는 걸 네가 알고 있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야. 알아준 사랑은 결코 불행한 적이 없었어. (p159)


​………………………………………………

물론 「돈키호테」라는 이 소설을 언젠간 읽어보리라,란 마음은 가지고 있었었고, 그러하기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한 권 가지고(만) 있었습니다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정말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 정말 '행운'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런 제안을 받았다라는 게 계기가 되어, 다른 때 같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두께의 책을 일단! 한 권은 다 읽어낼 수 있었었네요.

사실은 "『돈키호테』의 작품 세계와 보다 재미있게 읽는 법"에 대한 강연이라는 오늘의 행사에 참석히기 이전에, '가급적 이 작품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가져보고 싶다'라는 이유로 독서란 거에 뭔 데드라인 같은 게 있는 걸 참 싫어하면서도 이 날짜에 맞춰 다 읽어내고, 또 감상문까지 써내고 그 강의를 듣고 싶었었거늘, 겨우!!! 어쨌!든 둘 다 해내긴 했네요. 여기에 더해 --- '781'이라는 숫자로 끝이나는 페이지의 책을 한 번 읽고 나니, 앞으로... 어지간히 두꺼운 책을 봐도 미리 쫄지는 않겠구나,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얻게된 부수적 성과이기도 합니다... 만! 솔직히 말해

일단 '927'이라는 페이지 숫자를 가지고 있는 「돈키호테 2권」이 제 앞에 놓여 있으니, 이걸 '기대된다'라 해야할지, 아님 '걱정된다'라 해야할지... 는 잘 모르겠네요. --;;

※ 이 작품과 무언가 공통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作, 「롤리타

- 이문열 作, 「황제를 위하여

 

* 제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이다 보니, 써놓은 각주들은 하나도 보이질 않네요. 각주가 보이는 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koolpark/22019528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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