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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케어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한창 술마시며 다녔던 청춘 시절, 좀 취했다 싶으면 일부러 오바이트를 하고 다시 술을 마셨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렇게 하면 술도 깨고, 술이 깨니 더 마실 수 있었고, 게다가... 엄청 시원!하기까지 했었거든요. 이 '시원함'에 대한 당시 저의 해석은 이러했었었으니 :
"우리의 식도는 곱창같은 얇은 관일테고, 음식물이 원샷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안될테니 식도의 양 옆에는 돌기같은 것이 있겠지. 헌데 이 돌기들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음식물들만을 맞이하므로 항상 아래 방향을 향해 있을꺼야. 그런데 오바이트를 하면 일시적으로 이 돌기들이 역방향, 즉 목구멍쪽을 향하게 될 것이고, 돌기들이 이 상태로 여전히 되어 있는, 그러니까 오바이트를 하고 난 바로 직후에 들이키는 맥주 한 잔은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이 돌기들을 다시 제 방향으로 돌려주게 되므로, 이 때 '나'는 그 맥주로부터 보통 때완 비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
술 좋아하는, 한 치기어린 청춘에 의해 만들어진 가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고, - 당시의 저는 이것을 사실로 확신하고 주변에 전파했었었다는... --;; - 이 가설로 인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아직까지는) 발생된 것도 아니기에,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지금도 딱히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만!!! 만약 이런 류의 한 가설이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되돌이킬 수 없는 시술'의 형태로 시행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발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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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우루시하라는 '이진자카 클리닉'이라는 노인 간호 병원의 원장입니다. 이곳은 치매나 노환으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을 돌보아주며, 이들에게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이케어 서비스를 하고 있는 병원이지요. 노인들을 치료 · 관찰하면서 우루시하라는 노인 의료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노인들이 하고 있는 재활 운동이란 게 기껏해야 현상 유지 혹은 관절 구축의 예방 정도밖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작 노인들은 이러한 재활 운동을 열심히 하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된다거나 원래대로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루시하라는 이 간극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 닥쳐올 현실에의 인식으로부터 노인들이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노인 의료'란 노인을 안심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라 믿고 있는 그에게 이것은 어떻게든 꼭 해결해야 할/해결해내고 싶은 문제였었었지요. 게다가!!!
데이케어의 직원들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간호하는 것은 여간한 육체적 중노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간호사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 좀 낫지만, 데이케어가 끝나고 노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이후는 온전히 가족들의 몫이 되는 거지요. 즉! 그 노인이 살아 있는 한, 가족들에게는 '가혹한 간호'라는 의무가 계속될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날마다 그 부담은 증가되기만 하며, 이러한 암울함으로 인해 결국 노인 학대라는 현상마저 빈번하게 생겨나게 되는겁니다. 노인들은 불편한 자신의 육신 뿐 아니라, 그러한 육신에 가해지는 학대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노인 학대의 진정한 공포란 무엇일까요. 유아 학대인 경우에는 피해자가 성장하면 자기 방위나 경우에 따라서는 복수도 가능합니다. 노인의 경우에는 입장이 역전될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약해지기만 할 뿐이라, 더 저항할 수 없게 되어서 계속해서 증오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가 됩니다. 완전한 약자로서 죽을 때까지 괴롭힘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인 학대의 공포입니다.
(현직 의사이기도 한 작가가 쓴 이 소설에 의하면) 치매는 원인에 따라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뇌혈관성 치매'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뇌혈관성 치매'가 대략 전체 치매 환자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합니다. 이들 뇌혈관성 치매 환자들은 대부분 (정신은 멀쩡한 채) 사지의 일부가 마비되는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마비된 사지는 예를 들어 '갈고리 형태로 굳은 손이 옷을 갈아입힐 때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바지를 입을 때에 굳은 다리가 잘 들어가지 않아서 고생하는 사람'등과 같이, 환자 본인 뿐만 아니라 간호하는 사람에게도 커다란 불편함을 준다는 것이지요.
자! 여기까지 읽어 본 여러분은 만약 당신이 이러한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라면, 혹은 내 가족이 이러한 환자라면,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킨다거나 혹은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해결 방안으로 과연 어떠한 상상을 어디까지 해볼 수 있으신가요? (물론 이 상상이 지향하여야 할 주목적은, 환자를 간호하는 데 들어가는 주위의 고통을 줄이려는 시도라는 부수적 목적과 더불어, 진정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걸 전제로 하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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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용신(廢用身) :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의학 용어로, 뇌경색 등의 이유로 마비되어서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팔다리를 가리키는 말.
무거운 무언가를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기려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인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가는 동선상에 걸림돌이 없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이를 (좀 심할 정도로까지) 일반화시켜보자면 '목적 달성에 있어 불필요한 것들은 배제시킨다'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또한 이것을 '합리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주인공 우루시하라는 바로 이런 합리주의를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데이케어의 환자 중 한 사람인 이와가미 씨는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입니다. 당연히 그를 간호하는 모든 행위는 다른 환자의 경우보다 더 힘들 수 밖에 없지요. 사지 중 오른쪽 팔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는 이러한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 본, '합리주의자' 우루시하라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요.
자신이 신체를 고의로 상처 입히는 것은 자신보다 고위의 존재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사지 절단에는 그러한 본능적인 경외가 붙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요? …… 새로운 한걸음에는 그 시대의 '경외'가 따라붙지만, 유효성이 인지되면 다음 시대에는 사라져 버리는 법입니다. …… 저는 '폐용신이 된 다리를 잃는다'라는 마음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습니다. …… 부모님에게 받은 것은 다리뿐만이 아닌데, 마비된 다리 때문에 다른 것이 소용없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님에게 죄송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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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용신이 초래하는 고통은 마비로 움직이지 않는 것뿐 만이 아닙니다. 통증이나 증오나 미련 등, 정신적인 문제도 큽니다. 그것은 폐용신이 저주처럼 달라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쪽 손에는 무관심하고 마비된 팔에만 신경 쓰는 사람. 두 팔은 자유로운데 걷는 것만 집착하는 사람. 그런 노인을 보면 어떻게든 폐용신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의 머리에 '절단'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이 소설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이 가설이 현실로 실행되어지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절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amputation'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A 케어'라는, 즉 cure의 개념이 아닌 care의 개념으로 폐용신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님에도) 절단시켜버리는 것이지요. --- "불필요한 것을 배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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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때, 이와가미 씨의 왼쪽 다리에 패혈증이 생겼고, 우루시하라는 그 왼쪽 다리를 절단합니다. 이 결정은 패혈증으로 잃게될 수도 있는 이와가미 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었지요. 헌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절단된 왼쪽 다리 덕분(?)에 이와가미 씨의 왼쪽 엉덩이에 있던 욕창이 사라졌는데, 붙어 있는 오른쪽 다리와 이어져 있는 오른쪽 엉덩이에는 여전히 욕창이 심하게 남아 있던 거지요.
마비된 팔다리는 '절단'하면 이와가미 씨의 몸도 단숨이 가벼워진다!!! …… 90킬로그램의 몸무게지만 폐용신의 두 다리와 왼쪽 팔을 떼어 내면 50킬로그램 정도로 감량된다. …… 절단해서는 안 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폐용신의 절단'을 선택지에 넣자마자, 저의 눈앞에는 미지의 영역이 단숨에 펼쳐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좋은 치료법이 있는데 환자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해 그 치료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의사의 태만함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루시하라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 - A 케어 - 을 이전에 언뜻 이와가미 씨에게 비추었었는데, 마침! 패혈증으로 인해 그의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던 겁니다. 그런데!!! 자신을 괴롭히던 욕창이 사라진 것을 경험한 이와가미 씨가 우루시하라에게 찾아와 나머지 폐용신인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도 절단해달라 부탁한 것이지요.
'정말로 이것이 잘하는 일인가, 그 밖에 해결법은 없는가'라는 자문을 수술실에서까지 마지막으로 던져보며 결국 우루시하라는 이와가미 씨의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에 'A 케어'를 시행합니다. 이제 이 소설의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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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케어' 이후 이와가미 씨는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매우 활기찬 삶을 살아갑니다. 성격만 밝아진 것이 아니라 심지어! 절단되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는 양쪽 넓적다리를 이용해 스스로 이동할 수 있게도 되었지요. 이런 이와가미 씨를 본 다른 노인들은 처음엔 놀랐지만 점차 그들도 이 'A 케어'를 받고 싶어해 합니다. 결국 1년 간 13명의 환자가 (본인 또는 본인의 의식불명인 상황에서 가족의 동의를 받아) 'A 케어'를 받게 되지요. 헌데 말입니다!!!
우루시하라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A 케어'를 받은 환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A 케어'를 받은 거의 모든 환자들이 케어 이후 이와가미 씨처럼 성격이 밝아졌고, 사지 중 남아 있는 부분을 이용해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운동능력들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 치매까지도 호전되는 경이적인 현상들을 보여주는 겁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 그 답의 힌트는 <오체미완성>의 저자, 오토사다 고헤이 씨에게 있었습니다.
오토사다 씨는 팔다리가 없지만 머리와 몸통만은 보통 사람과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장도 보통 사이즈가 아닐까요? 그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 오토사다 씨의 심장은 팔다리에 혈액을 보낼 필요가 없는 만큼, 여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힘을 뇌에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오토사다 씨의 뇌는 우리들의 뇌보다 혈액을 공급받기 훨씬 쉬운 상황인 것입니다. 즉 뇌의 혈류량만을 놓고 보면, 오토사다 씨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지능지수와 뇌 혈류량의 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 혈액의 흐름이 나빠져서 치매가 걸린다면 혈류량이 늘어나면 치매도 개선되는 것은 아닐까요. 너무 단순한 발상이라고 웃지는 마세요. 사실 인간의 생리는 단순한 이론에 지배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A 케어' 뒤에는 정신적으로도 그때까지 폐용신에 집중되어 있던 의식이 마비되지 않은 팔다리로 향하게 되므로 기능성이 높아집니다. …… 인간의 뇌에는 신체의 운동을 다스리는 부위인 운동령(運動領)이 정해져 있습니다. …… 운동령의 크기는 신체 부위에 비례하지 않고, 세밀한 움직임이 많은 손끝이나 입술 등이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두 팔이 없는 사람의 팔을 다스리는 운동령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그 부분은 생후에 서서히 위축되어 갑니다. 조종해야 할 팔이 없으므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개골 내부란 공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뇌는 그 안에서 필요한 부분을 증대시켜서 기능을 높입니다. 두 팔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다리를 사용하는 것에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다리를 다스리는 운동령이 보통 사람보다 확대되겠지요. 두개골 내에는 위축되어서 생겨난 여분의 공간이 있으니까요. …… 이것이 선천적으로 두 팔이 없는 사람이 발로 바이올린을 켜거나 자수를 할 경우에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능숙하게 해내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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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읽고, 그 간략한 내용을 조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더랬습니다. --- "부인과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부인만 죽었어. 근데 부인의 정신은 살아서 딸의 육체 속으로 들어갔지. 딸은 육체만 살았고 정신이 없어진거고. 그렇게 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인과 살아가는 아버지이자 남편인 한 남자. 그 둘이 겪게 되는 현실적, 정신적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이야."
피식~ 하고 웃더군요. 아마 저라도, 다른 이가 이런 내용의 소설을 읽었다라고 이렇게 말해준다면 '뭐 그런 짜장같은...'이라 말하며 피식~ 웃었을겁니다. 요약해 내면 이렇듯 이상한 소설이 되어버리지만, 실제! 읽어본 「비밀」은 애잔한 슬픔과 함께, 그 현실성마저 잊게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상상까지를 해보게 해주었었죠. --- 소설이란게...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라 생각합니다. 현실성의 여부를 떠나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혀준다라거나 혹은 이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었던 새로운 사고의 방향을 독자에게 알려준다라는 것.
이런 점에서만! 보았을 때, 이제까지 저의 독서 내력 한에서는 --- '나만 빼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이라든가, '만약 세상에 아무도 죽지 않게 된다면? (「죽음의 중지」)', 혹은 '나와 완벽히 똑같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 내 주변에 존재한다면? (「도플갱어」)' 등과 같은, 현실성의 여부를 개의치 않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질문을 담고 있는 작품들등을 써낸 작가 주제 사라마구와 '나는 과연 어디서부터 나일 수 있는가? (「변신」)'와 '나는 과연 누구인가? (「레몬」)'등과 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 의문조차 가져보지 않았던 화두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해 주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야 말로 단연코 독보적인 두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오로지 이 관점만으로 소설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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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정리 해고'라는 개념으로 'A 케어'를 고안해냈던 우루시하라의 논리에, 그 과정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거의 아무런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노인 간호'라는 것이 아직은 저에게 현실로 닥쳐와있지 않기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현실로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라면 과연? 이라는 의문, 그리고 아마도! 라는 저 스스로만의 대답을 하게 되었을 만큼 말이죠.
내가 지금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유사한 문체로 쓰여여 있는, 우루시하라가 직접 쓴 원고인 1부에서는 이처럼 'A 케어'가 현실로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이후의 2부에서는 각종 언론들에 의해 과정되어 폭로되는 'A 케어'와 개인 우루시하라 씨의 과거사에 관한 내용들, 그리고 살인에 관한 매우 충격적인 묘사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만, 그것들보다!!!
'필요 없는 동물을 죽여도 괜찮다'라는 생각. …… 이것이 '필요 없는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라는 식으로 발전하면 이른바 노숙자 살상이나 노인 학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비된 팔다리는 잘라낸다는 발상은, 이것에 가까운 뭔가를 느끼게 하는군요.
라는 한 사회심리학자의 말에, 그때까지 '거부감 없음'의 감정으로, 일견 'A 케어'에 동조하는 마음으로마저 읽어왔던 우루시하라의 논리는, 그리고 그 논리를 따라와있던 독자는 결정적 치명타를 받게 됩니다. 크게 보자면 결국 독자는... 무엇이 가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를 잠시나마 혼동하게 되는거지요. (이러한 혼동은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도 일어나는데, 이 책이 앞뒤의 겉표지만 빼고는 마치 또 다른 한 권의 책인 듯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 이해해내는데 은근... 시간이 걸렸었다는... --;;)
소설의 감상에 대한 저의 취향은 이처럼 대체적으로 '소재의 신선함과 그로부터의 충격'을 주로 향해 있는데, 그런 이유 - 소재의 신선함 그리고 그로부터의 충격 - 로 인해, 이 작품 「A 케어」는 저로 하여금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처음으로 두 개의 ★ 표시를 붙여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소설이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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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해결해낼 수 없는 간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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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이렇게 정리해내고 싶네요.
…………
입학식도 치르기 전, 제 손의 쥐어졌던 한 장의 연극 안내장! --- 뭔가 찌릿한 사진이었기에 책갈피로 쓰다가 결국! 이를 스캔까지 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해결해낼 수 없는 간극'이라는 메세지를 이 사진, 그리고 "떠날 수도 없고 떠나지 않을 수도 없을 때"란 문구가 더할 나위 없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게 참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가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랑 노래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라 물으신다면 제 마음 속 그 이유를 정확히... 글이나 말로써 표현해 내지 못하겠는 것처럼 말이죠. --;;)

이 소설 속에는 불효의 자식과 아내도 등장합니다만, 또한 자신의 결혼까지 포기하고 치매의 어머니를 간호하며 사는 딸도 등장합니다. 어쩌!면 노인 간호라는 현실적 고통과 그 노인이 바로 나를 낳아준 '나의 부모'라는 윤리 사이의 갈등이, 또한 '합리성의 추구'와 '의료 윤리' 사이에서 빚어지는 한 의사의 갈등이 바로... 이 사진 속 어머니가 저 순간 느끼고 있는 그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아닐까 싶었었고, 이 간극은 사회적 문제이기에 앞서 언젠가 '나'에게도 생겨날 수 있는 그런... '발생가능한 현실'이었었기에 더더욱...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제 마음 속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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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부모가 치매에 걸렸다면, 또는 내가 치매 환자가 된다면! 등과 같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들이, 그 '현실성의 여부를 떠나!!!' 나에게 닥쳐 온다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우루시하라의 'A 케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 뭐... '사서 고생한다'란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이러한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여전히! '사서 고생하는 소설 읽기'의 진정한 유익함이 아닐까도 싶네요.
암튼!!! 이 소설... 이런 걸 떠나서라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을 만큼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무지하게 두껍고, 게다가 두 권짜리이기까지 한) 이 작가의 다른 소설 「신의 손」도 상당히 끌리는군요. 그 작품에선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데 과연 또 어떤 충격을 건네어 줄지... 사뭇 궁금궁금합니다.
※ '치매'를 이야기하고 있는 읽어본 작품 :
- 오기와라 히로시 作, 「내일의 기억」 : 환자 본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치매'
※ 본문에 등장하는 소설들의 감상문 :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 · 「도플갱어」 · 「죽음의 중지」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비밀」 · 「레몬」 · 「변신」
- 미나토 가나에 作,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