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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조선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포로 출항하면서 발발했다. 7년 동안 이어진 전란으로 조선의 국토와 민생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보름 여만에 서울이 함락되고(5월 2일) 선조는 급히 몽진해 압록강변의 의주(義州)에 도착했다(6월 22일). 개전 두 달만에 조선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몰린 것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왜란에서 이순신은 임진년 5월 7일 옥포(玉浦)해전부터 계유년(1598) 11월 18일 노량(露梁)해전까지 20여 회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했다. 그 승전들은 그야말로 패색이 짙은 전황을 뒤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는 왜란이 일어난 1년 뒤인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해 해군을 통솔하면서 공격과 방어, 집중과 분산의 작전을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나라는 전란에 휩싸였고 그는 국운을 책임진 해군의 수장으로서 엄청난 책임과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험난했던 그동안의 관직 생활에서 보면 최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기간이기도 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다고 할만한 고난이 닥친 것은 1597년(선조 30) 1월이었다. 그는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죽음 직전에 이르는 혹독한 신문을 받은 끝에 4월 1일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고 풀려났다.
- 네이버 캐스트, <인물 한국사 : 이순신> 중 발췌
'영웅'이라는 단어조차 모자란 듯, '성웅'이라 불리우고 있는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우리는 정작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 중학교 1학년 즈음, 「난중일기」를 읽었었더랬습니다만, 무지하게 재미없었었다란 기억 외에, 그 내용에 관하여는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하셨었다는, 죽는 순간에까지도 '나의 죽음을 병사들에게 알리지 말라!'라 명령하셨다라는 위대한 장군... 이 제가 (어쩌면 당신도?) 가지고 있는 그 분에 대한 모든 것일 뿐이지요. 종원군이 두 번이나 보았던, 하지만 아빠는 못봤으니 아빠랑 또 같이 볼꺼라 했었던 영화 <명량>마저도 그다지 끌려해하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건 그저 위의 밑줄 그어놓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라 생각해왔었거늘... 나이 마흔 여섯에야 기어이 이순신 장군의 참 모습을, 저의 머릿 속에 남겨져 있는 것들이 전혀 충분하지 않.았.다.라는 깨달음을 이렇게...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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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년, 이순신은 그의 나이 마흔 다섯에 종육품인 정읍 현감에 임명되었고, 그 8개월 후 종삼품인 병마첨절제사로의 파격적 승진을 명받는 것 이후, 2년간 무려 세 번의 인사발령과 취소를 겪게 되었는데, 작가는 이를 '조정 대신들 간의 권력투쟁과 당쟁의 여파였던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을 통해 작가가 비판했었던 권력층 내부의 알력과 대립은 이 때부터 이미! 존재했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러한 권력의 갈등이 그저 한 무관의 승진에만 관계된 것이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차라리 그나마 평온했었을 겁니다. --- 1590년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돌아온 통신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지지요. 통신사의 No.1 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이 곧 쳐들어올 것 같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라 임금에게 보고했으나, No.2 김성일은 그럴 위험은 없다라는 상반된 보고를 올렸던 겁니다. 결국 조정은 No.2 김성일의 의견을 취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김성일이 동인이었고, 황윤길은 서인이었다라는 것 때문!
이렇듯 임진왜란이 비록, 명나라 침략을 위해 그 걸림돌이었던 조선을 먼저 치워버리고자 했던 일본에 의해 일어난 전쟁임에는 틀림없으나, 눈 앞의 권력만을 놓고 다툼을 하는 자들에 의해서도 그 전란의 시작이 초래되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어쨌!든...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은 또 반드시 따로 있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던 '명분'이었으니... --- 전라좌수사의 직책으로 임진년(1592년)에 시작된 일본과의 전투에 임했던 이순신은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이었던 옥포만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의 전과를 쌓아갔습니다만, 수색섬멸에서 유인섬멸로 작전을 바꾼 것이 결국 그에게 화(禍)가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군공(軍功)을 날조해서 임금을 기만하고 적장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라는 죄목으로 이순신은 결국 체포되고 말지요. 그 당시 이순신의 심정을 작가는 이렇게 적어내고 있습니다. ---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조정은 작전 전체의 승패보다도 가토의 머리를 간절하게 원했다. …… 임금은 가토의 머리에 걸린 정치적 상징성을 목말라했다. ……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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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는 이순신으로부터 한산 통제영을 인수받은 원균은 곧이어 벌어진 칠천량 전투에서 일본 수군에게 대패를 당하고 맙니다.
내가 원균에게 인계한 병력과 장비는 한산 통제영에서 삼 년 반 동안 확보한 군비의 전체였으며, 조선 수군 총 군비의 팔할이 넘는 것이었다. 그 팔할이 칠천량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 하룻밤 하룻낮의 전투였다.
이에 다급해진 조정은 이순신을 기소했던 권율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묻지요. "자네 무슨 방책이 없겠나?"
그때 나는 의금부 형틀에서 죽었기를 바랐다. 방책 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찾는다. …… 권율이 돌아간 뒤, 나는 칼을 갈았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은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임금은 자신 스스로 '털끝만치도 용서해줄 수 없다'라 말했던 이순신을 다시 충청,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합니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백이십 명이었고 내 전선은 열두 척이었다. ……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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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대답으로 임금의 명을 받아든 이순신을, 비록 명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었으나 다분히 버선발 붙잡고 매달리는 심정이었을 임금은 그럼에도... 그를 완전하게 믿지는 못했더랬습니다. 탈영 장군 배설을 찾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순신이 머물고 있던 영내를 며칠 간 샅샅이 뒤져, 혹시 역모의 기운이 있지는 않는가를 확인하기도 했었었지요.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작가 김훈은 이후,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라는 앞서의 서술에 걸맞게, 철저하게 '군인으로서의 이순신'의 모습을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임진년에 나는 농사를 짓듯이, 고기를 잡듯이, 적을 죽였다. …… 임진년 바다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절박하게 내 몸을 조여오는 그 거대한 적의(敵意)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창검과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 나는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영화로 새삼 유명해진 명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의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라는 명령은 이처럼 '적의 적으로 죽어지는 자연사'를 원했던 그의 마음 뿐만이 아니라, 변변한 지원조차 받지 못했던 당시의 어쩔 수 없었던 현실로부터도 나온 것이었다라 작가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적이 울돌목의 사지로 들어와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전선 열두 척으로 적을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전략이었다. 전략이라기보다는 그 이외에는 아무런 방책이 없었다. ……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전선의 장수와 병사들은 이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고 있거늘, 뭐 하나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임금은 내내 이러한 이순신을 다구치기만 합니다. --- '남쪽 바다의 장수는 무얼 하고 있느냐. 너는 수군을 이끌고 물길로 나아가 적의 중원 병력을 바다에서 부수어라. …… 즉시 경상 해안 쪽의 적을 없애라.', '너는 빼앗은 왜적의 조총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 하니 그중 성한 것을 골라서 서울로 보내라.', '종이가 모자라 문서와 전적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 …… 너희들의 남쪽 바닷가에는 종이를 만들 만한 상서로운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하더구나. 너는 속히 종이를 장만해서 조정으로 보내라.' ---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바로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권력'과, 이 작품 「칼의 노래」에 등장하고 있는 '권력'은 이처럼 소름끼치도록 똑같습니다. 백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죽어가고, '적들이 지나간 마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적의 말똥에 섞여나온 곡식 낟알을 꼬챙이로 찍어 먹'고 있었음에도, 오로지 '사직은 종묘 제단 위에 있었고 조정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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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출동한 명의 군대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어주지 않은 채, 내내 후방에만 머물고 있었는데, 이러던 중 명과 일본이 비밀리에 강화협상을 통해 조선을 둘로 나누어 분할통치를 하기로 하고, 이 전쟁을 끝내려 한다는 소문이 이순신의 귀에 들려옵니다.
나는 강화 협상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골로 뒤덮인 강토에 쑥부쟁이가 우거졌고, 도성은 잿더미가 되었다. 적이 나의 강토와 연안을 내습했으므로, 적이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면 군대를 거두어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온 국토를 갈아엎고 돌아가는 적을 온전히 살려서 돌려 보낼 것인지, 종자를 박멸해서 시체로 바다를 덮을 것인지는 적이 아니라 나와 내 함대가 결정할 일이었다. 적은 귀로의 바다 위에서 죽음을 통과해야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고, 그 바다에서 적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또 한번 뒤엉킬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토록 단순하고 자명한 일이 단순하지도 자명하지도 않았다. …… 명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해서 강화한다면 나는 고려 때의 삼별초들처럼 함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때는 명과 일본이, 그리고 조정 전체가 나의 군사적인 적이 될 것이었다.
이 부분이 이순신이 진정한 군인이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혹자는 이 부분 마지막과 "나는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라는 그의 말을 들어, 이순신이 역모를 꿈꾸고 있었다라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거야말로 「방황하는 칼날」을 읽고 '개인의 총기 소지에 보다 더 강력한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라 외치는 격이겠지요. (만약 이 소설 '전부'를 읽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그 돈으로 앞으로는 책 사지 말고 걍 술 사 드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와중에 명의 대장 진린은 이순신에게 '일본군이 곧 물러갈 것이니 괜한 전투 벌이지 말고 군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라'라는 내용의, 권고의 형식이었으나 기실 명령과 다름없는 편지 한 통 불쑥 보내옵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명군 지휘부가 조선 조정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조선의 수군에게 군대 해산과 적대행위 종료를 명령하고 있다라는 점에 격분한 이순신은 이 사실을 곧 조정에 알립니다만 이내 그의 머리 속엔... '다시 서울 의금부에 끌려가 베어지는 내 머리의 환영이 떠'오르게 되지요. 임금도 그를 믿지 못했었지만, 이순신 역시 임금을 위시한 '권력'을 믿지 못했던 겁니다. ---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이순신의 편지에 대한, 그러한 명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임금의 답장은... 명의 수군을 설득해 그곳으로 보낼테니, 부족함이 없이 잘 맞이해주라는 내용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미쳐 돌아버리는 거지요.
진린은 적과 알맞은 거리에 떨어져서 전쟁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부스러기들을 이득으로 챙겨서 돌아갈 것이었다. 임금은 이 진린을 나에게 보내왔다. ……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 내 마음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이순신의 예상대로, 진린은 도착한 후 술판만 벌이며 딱히 전투에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국 진린과 일본은 몰래 내통하여 적당한 거래를 성사시켰고, 이내 일본군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광양만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여기는 내가 죽을 자리는 아니었다. 나는 적의 전체를 내 전방에 두어야 했다. 나는 노량바다로 가기로 했다. …… 적보다 먼저 노량으로 들어가서, 적 퇴로의 진행방향 앞에 나는 포진해야 했다. …… 그날 밤, 함대는 광양만을 떠났다. …… 격군장들은 북을 울리지 않았다. 함대는 고요히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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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국토를 더럽히고 우리의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한 적들과의 전투조차 당시의 조선 수군은, 조정의 지원도 못받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렇듯 눈치를 보며 수행해야 했었던 겁니다. ① 만약! 이순신이 상황을 그렇게 만든 조정이 하라는 대로 했더라면! 노량해전이라는 전투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겠지요. ② 만약! 이순신이 자신의 조국 조선을 조금만 덜! 사랑했었더라면, 그는 명의 장수 진린의 권유대로 명나라로 가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으며 어쩌면 군인으로서 더 큰 뜻을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순신에게는, 자신의 조국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이순신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었던거였지요.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전란의 와중에도 그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는 자신을 믿지 않는, 자신도 또한 믿을 수 없는 임금, 그리고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백성들... 사이에서 어쩌면! 이순신 장군은 지독히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아들 면이 일본군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가 가마니 위에 엎드려 숨죽여 울어야만 했던 것으로 대변되는 그런... 외로움 말이죠.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한 마디는, 저같은 일개 독자에게 따로이 저만의 생각을 만들어낼 필요를 생겨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작가 이문열의 작품에 대한 감상문에서와는 이렇듯 또 다른 의미로, 이 작품의 감상문을 써냄에 있어, 유난히도 많이 작품 속 작가의 구절들을 인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라는 이 한 마디를 감히 이겨낼 생각조차 할 수/할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 하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지금, '무력한 권력은 그 무력함만으로도 사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란 말 또한 성립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물론! 이 때의 '무력함'이란 내부를 겨눈 힘의 무력함이 아닌, 내부를 지켜내기 위해 외부를 향해 있는 힘의 무력함이지요. 권력, 그 실체로서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 존재 이유는 바로 내부를 지켜내기 위해 외부를 향한 힘일진데, 그것을 결여하고 있는 권력은 응당 자신의 본분을 이행치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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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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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우리들이 그에게 '영웅'도 아닌, '성웅'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들,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란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2014년의 우리가 '성웅'이라 부르고 있는, 1598년 전사한 이순신 장군이 바로 그 1년 전, 천하의 역적으로 잡혔었듯이, 2400년대 우리의 후손들이 또한 '성웅'이라 부를게 될 누군가를 2014년의 우리는 '역적'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라 작가가 이름 붙여 놓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나와 있는, 노량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의 위 다짐이, 나라를 위한 한 신하의 이 '사랑'이 당시의 조선 뿐 아니라, 2014년의 대한민국에도 여젼히 '들리지 않는' 건 아닌지...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런 난데없는!!!'이라 말할지도 모를, 그런 생각을 해보게도 되네요.
「남한산성」에서와 같이, 예의 작가는 이 책의 말머리에에도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라 적어놓았습니다만, 세세한 내용이 아닌, 군인 이순신의 모습을 알게됨에는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생각합니다. 비록 독서란 걸 취미로 삼은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후 새롭게 알게 된 많은 작가들보다 더 늦게... 작가 김훈을 알게 되었다라는 게 은근 후회되기도, 그러다... 이런 후회를 저에게 느끼게 만들어 줄 작가들은 여전히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에... 어여어여 더 열심히 책!책!책!을 읽읍시다 하고 싶습니다만, 그게 참... --;;
※ 읽어본 김훈 작가의 다른 책 : 「남한산성」
※ (시각의 넓고 좁음을 떠나 보았을 때) '권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읽어본 책들
- 율리 체 作, 「어떤 소송」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 쑤퉁 作, 「나, 제왕의 생애」
- 류전윈 作, 「닭털같은 나날」
- 박민규 作, 「지구영웅전설」
- 알베르 카뮈 作, 「이방인」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