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4월 후금의 홍타이지는 국호를 중국식 이름인 청(淸)으로 바꾸고 ……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아울러 청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지닌 주전론자들을 압송하라는 주문(을 내린다) ……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 요구를 받아줄리 없다. 드디어 그 해 12월 청 태종(홍타이지)은 직접 12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침략에 나서는데,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전쟁의 양상은 9년 전의 정묘호란 때와 거의 다를 바 없다. 불과 보름 만에 청군은 평양을 거쳐 개성 부근까지 내려왔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또 다시 도대체 뭘 믿고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 가지 전(정묘호란)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정부의 무능함을 익히 알고 있는 백성들이 서둘러 피난 보따리를 쌌다는 점이다.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방에서 오는 군대도 자연히 남한산성으로 집결하면서 이곳은 조선의 임시 수도가 되었는데 …… 예상치 못한 피난처였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1만 명 넘게 불어난 성의 수비대를 감안할 때 비축 식량으로는 두 달을 채 버티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청 태종은 굳이 성을 공략하지 않는다. 이제 20만으로 늘어난 군대로 성을 포위한 채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선군을 경기도 일대에서 차단하면서 기다릴 뿐이다.
그동안 산성 내의 '임시정부'에서는 뻔한 결론을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항복하는 것 이외에 달리 도리가 없는데도 항복과 항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애초에 승산이 제로인데도 청에게 호전적인 태도를 취했던 사대부들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남한산성에서 논쟁이 주화론으로 정리되어 갈 무렵인 1637년 1월 하순 드디어 청군은 배로 인천 앞바다를 건넜다. …… (왕실의 부녀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비보는 남한산성 임시정부의 행보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 나라보다 가족들 걱정이 먼저인 인조는 적의 요구를 무조건 수락하고 항복을 결정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삼전도에 나가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올림으로써 두 달 동안의 전란은 끝났다.
- 남경태 著, 「종횡무진 한국사」 하권, pp 199-202 중 발췌
이상은 (이 소설 「남한산성」의 시대적 배경인) 병자호란에 대한 한 역사가의 서술입니다. 역사가의 서술은 태생적으로 이처럼 간결하고 건조할 수 밖엔 없습니다. 비록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조미료가 역사를 서술해 냄에 사용되어졌다 할지라도 '역사책'이라는 공간은 분명! 역사가의 상상이 자유로이 펼쳐지도록 허락되어진 곳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 그렇다면! 그러한 상상이 허락된 공간, 즉! 소설이라는 공간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만의 상상을 담아낼 수 있는 소설가의 글은 과연... 역사가의 서술과 어떻게, 얼마만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요?
(과거로부터 전해져 현재에도 남아 있는) 기록된 역사라는 것이 집권층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것에, 그러하기에 우리가 읽게 되는 대부분의 역사책들 또한 집권층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불만없음이 곧 피지배층이었던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들을 몰라도 된다/알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비록 일반 백성들의 하루 하루 삶에 관하여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는 기록들에 자세하게 담겨져 있지 않겠지만, 오히려 그러!하기에 현재를 살고 있는 역사가나 소설가들 모두에게 (앞서 읽은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의 저자 백승종 교수가 말했던) '역사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상상'을 개입시킬 수 있는 공간이, 집권층에 관한 이야기의 공간보다는 더 넓게 주어져 있다 말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그 공간의 넓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채워내느냐는 온전히 작가(때로는 역사가)의 몫/능력일진데, 이렇게 존재하는/주어진 그 상상의 공간인 이 책 「남한산성」에 작가 김훈이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만든 그만의 '역사적 상상게임'의 외양과 속은 이러...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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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남한산성」으로 전 작가 김훈을 처음으로 만나보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한 편의 소설로 그가 어떤 작가인지를 온전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을 읽고 박민규 작가의 표현력에 흠뻑 빠졌던 저로서는, 보다 더 고급스럽고, 보다 더 잦은 반복으로 등장되고 있는, 김훈 작가의 문장들에 한껏! 매료되어버렸다라는 걸, 이 작품의 내용, 메세지 등에 앞서 우선 적고 싶네요.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사뭇, 겨울의 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이는, 별 특별한 기교가 있지도 않은 위의 문장들은 읽히기에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리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문장들로 작가는... 결국!엔 이 전란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질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며, 마치 유행가의 후렴구 가사와도 같이 다른 곳에도 내내 반복되어 등장하는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 등장의 장소·시점에서마다 모두 다!!! 다른 뜻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박민규의 문장이 '슬픔이 깃들어 있는 유쾌함'을 보여주었다라면, 이문열의 문장들이 치열한 논리를 바탕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듯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라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졌던) 작가 김훈의 문장들은 '반복과 나열'을 통해 생겨난 (마치 한 곡의 랩을 듣는듯도 한)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힘이 느껴지는 그런 리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쉼표에서 쉬어가며 소리내어 읽어보면 이내 곧 느껴지게 되는 리듬말이죠.
① 임금이 성 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곧 청병(淸兵)이 들이닥쳐 성을 에워싸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갇혀서 마르고 시드는 날들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갇혀서 마르는 날들 끝에 청병이 성벽을 넘어와서 세상을 다 없애버릴지는, 아니면 그 전에 성 안이 먼저 말라서 스러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누구나 알았지만 누구도 입을 벌려서 그 알고 모름을 말하지 않았다.
②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이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 그날이 머지않았는데, 버티는 힘이 다해서 성문을 열고 나가 투항하는 날, 그날까지 저것들을 먹일 수 있을 것인지 김류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것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김류는 생각했다.
③ 칸이 오면 성이 열린다는 말과 칸이 오면 성이 끝난다는 말이 뒤섞였다. 칸이 오면 성은 밟혀 죽고, 칸이 오지 않으면 성은 말라 죽는다는 말이 부딪쳤는데, 성이 열리는 날이 곧 끝나는 날이고, 밟혀서 끝나는 마지막과 말라서 끝나는 마지막이 다르지 않고, 열려서 끝나나 깨져서 끝나나, 말라서 열리나 깨져서 열리나 다르지 않으므로 칸이 오거나 안 오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었다. 칸은 서쪽으로 명을 몰아 대고 있으므로 요동을 비우고 오기가 어려워 심양에 머물면서 소문만 내려보낸 것인데, 소문의 뒤를 따라 칸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므로 온 것보다 무섭고 오지 않는 것보다도 무서우며, 소문이 이미 당도하였으므로 칸이 오지 않더라도 이미 온 것과 다름없다는 말은 삼거리 북쪽 술도가 쪽에서 흘러나왔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낮게 깔려서 뒤섞이고 부딪치는 말들은 대부분 '마찬가지'로 끝났다.
또한 저를 감동시켰었던 문장들이기도 합니다. --- 이 문장들이 그저 읽어내기에의 리듬감이라는 언어적 유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대로 녹아져 있기도 했기에,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쩌면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감탄을 절로 내뱉을 수 밖에 없었더랬죠.
① 청나라와의 이 싸움에서 결코 조선이 승자가 될 수는 없다라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다만 인정하지 못하는/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 말하고 있는 작가 김훈은 당시 권력층의 그 '인정할 수 없'었던 버팀이, 어느 날 자신들에게 갑자기 닥쳐온 그 영문모를 상황을 그저 이겨내도록 강요받아야 했던 남한산성 내의 백성들, 그리고 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의 최전선에 서야했던 군졸들에게 과연 합당하고 정당하며, 중대한! 것이었느냐라 묻고 있습니다.
② 이런 상황에서 명분을 내세운 주전론, 실리를 앞세운 주화론이 산성 내에서 충돌하지요. 그들, 권력층의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는 동안 백성들과 군졸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통을 감내했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고통이 한 때 있었다 하더라도, 주화론이건 주전론이건 금새 어느 한 쪽으로의 결론이 지어졌더라면 그 고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었겠지요. 허나!!! '그것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 생각했다'라는 문장에서 보여지듯, 결정을 내려야하는 자들은 그 결정을 내내 뒤로 미루고만 있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 모든, 정말로 사소한 것까지 모든 결정을 왕으로부터 기다리기만 했던, 즉! 오로지 전란 후에 있을지도 모를 공(功)과 과(過)의 처분으로부터의 유리함만을 생각했었던 신료들, 그리고 '그것이 임금이 정할 일이냐?'라 되묻기만 했던 무능한 왕이 그 백성들과 군졸들이 모시고 있었던/모셔야 했었던 권력이었기 때문이라는 데 있었던 겁니다. (다음의 독서로 읽으려 펼쳐 본 「칼의 노래」에 실려있는 한 사진 아래에 작가 김훈은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라는 구절을 써놓기도 했네요.)
③ 비록! 당시의 지배적 사상이 그러했기에 백성들과 군졸들이 그런 왕과 신하들의 권력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시시각각 악화되어가는 상황에서 권력의 최상층부가 우왕좌왕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해하고 있던 것관 달리, '서날쇠(徐生金)'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대변하고 있는 일반 백성들은 그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고, 기어코 찾아냈으며, 그리하여 결국엔 살아남았었는데, 이들의 '살아남음'은 왕을 비롯해 그 주변의 신하들이 찾아낸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음'과는 분명! 전혀 다른 것이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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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남한산성으로 찾아가는 예조판서 김상헌에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늙은 사공이 있었습니다. 강을 건넌 김상헌은 그에게 자기와 함께 산성으로 들어가자 말합니다만, 그 사공은 거절합니다. 뒤에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좀 얻어 볼까 한다라는 그 사공의 이유를 듣고 김상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요. (그리곤 결국 그 사공을 죽여버립니다. 청병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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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이던가. … 이것이 백성이로구나. 이것이 백성일 수 있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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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는 그의 말로 미루어 보아, 작가는 '이러한 백성들'을 결코 탓할 수는 없다, 탓해서는 안 된다라 생각하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 기록된 역사라는 것이 원래, 지배층과 관련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하여,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같은 처지의) 우리들마저도 '고통 받았던' 하지만 '기록되지는 못했던' 자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건 결코 옳은 사고가 될 수 없을겁니다. 그건... 비록! 역사는 피라미드를 세웠던 이집트의 파라오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피라미드를 세우다 죽어갔을 수많은 기록되지 않았던, 그러하기에 기억되지도 못하는 당시의 '우리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 될테니 말이죠.
<1942년을 돌아보다>에 쓰여져 있는, 이 역시 작가 류전윈의 메세지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라 여겨지는 다음의 글이, 작가 김훈이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남한산성」을 읽고난 후, 다시 읽어보는 류전윈의 글은 「남한산성」과 서로 상통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짜릿!했던 감동을 받았었던 것을 넘어, 이 소설을 읽고나니, <1942년을 돌아보다>에서 작가 류전윈은 그 작품에서 뭔가 울컥함이 깃든 반성까지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는 --- 이 감동과 반성이 ,어쩌면 제가 이 작품 「남한산성」을 읽고 기억으로 간직하여야 할 가장 큰 무엇이 아닐까 싶... 네요.
송미령(장개석의 부인)이 미국을 방문했고, 인도의 간디가 단식을 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대혈전이 벌어졌고, 영국의 수상 처칠이 감기에 걸렸다. 1942년의 세계 상황 속에서는 하남성에서 삼백만 명이 굶어 죽은 것보다 이러한 사건들이 더 중요했다.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처칠, 간디, 아름답던 송미령,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대혈전은 알아도, 내 고향에서 가뭄으로 삼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다는 것은 모른다. …… 초라한 수많은 백성을 무시한다면, 중국의 파란만장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재난과 성공의 역사에서, 최대의 피해자이자 최종 수혜자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과는 인연이 없었다. 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넓은 홀에서만 이루어졌다.
- 류전윈 作, <1942년을 돌아보다> 중
일산의 음식점에서, 그리고 길에서도 두세 번정도 김훈 작가와 마주쳤었었거늘, 이젠... 혹시 또 다시 생겨날지 모를 그 우연을 기다리는 마음에 이 분의 소설 한 권정도 가방에 넣고 다닐지도 모르겠. ^^
※ 본문과 각주에 등장하는 책들의 감상문
- 안소영 作, 「책만 보는 바보」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 류전윈 作, 「닭털같은 나날」 중 <1942년을 돌아보다>
- 박민규 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