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와 춘장의 비유  

 

이영돈 PD의 '착한 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조미료를 쓰지 않는 짜장면집을 찾아 나섰는데, 저도 가보았던, 일산의 한 중국집이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제보에 카메라가 출동했었었지요. 가보니 실제로 그 식당의 주방에서는 짜장면을 만들 때 조미료를 넣지 않고 있었음에도... 결국 그 식당은 (그 잘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더랬습니다. 납품받아 사용하고 있던 기성품 춘장에 이미!!! 조미료가 들어있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못내 수긍하는 표정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주방장... 속으론 엄청 억울해 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헌데...

 

그 방송을 보고나니, '역사(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어쩌면 그 ​짜장면의 춘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히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 우리가 읽는 역사책들에는 이미! '저자의 주관'이라는 조미료가 들어가 있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독자가 제 아무리 ('생각없이'가 아닌) 편견 없이 어느 역사책을 읽어보려 한들, 제거해 낼 수 없는, 이미! 들어가 있는 조미료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산 짜장면 집 주방장의 억울함관 달리, 바로 이 점!이... 역사책을 읽는 것에 있어서 진짜 재미가 아닐까 싶기도 한겁니다. 저자마다 같지 않을, 그들 각자만의 조미료가 들어가 있는 해석을 서로 비교·섭취해보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창조가 아닌 '조합'으로서의 새로운 나만의 조미료를 가지게 된다라는 거, 이 점이 바로...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유희의 모습을 띤 역사책 읽기가 되어줄 수도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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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에서 저자 안소영은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그 책을 썼다라 말했었지요. 미시사(微時史) 전공의 역사학자인, 이 책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의 저자 백승종 교수는 이 책에서 '접착제 혹은 보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걸핏하면, '술이부작(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는 않는다)'이라 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해보니 그런 역사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차라리 역사란 '술이작(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 역사가가 탐구하는 진실을 흑과 백의 대조처럼 선명하지 않다. 한 사람의 진실이 다른 사람에게는 허위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 결국 내가 이 책에서 시도한 작업은 바로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진실을 캐는 것이었다. ……  (이처럼) 역사적 상상과 추리와 판단이 어우러진 이 책의 서술 방식을 '역사가의 상상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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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고 쓰는 행위는 일종의 '게임'이다. ……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상상 게임'이라 불릴 만하다. '상상 게임'을 하는 데는 팩션이 빠질 수 없다. 내가 말하는 팩션은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허구라 해도 역사적 상상이 빚어낸 허구라 하겠다. …… 역사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상상이 개입된 허구는 말 그대로의 허구가 절대 아니다. …… 이 경우의 허구란 깨진 청자 조각과 조각 사이를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것, 달아난 부분을 메워 항아리의 원형을 보여주는 보철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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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에 대한 관심은 이문열 작가의 「황제를 위하여」를 읽으면서 생겼더랬습니다. 그래 그때 바로 이 책을 사놓고는 이제서야 읽어 본 거죠. 그러하기에 사실 전... 이 책으로부터 <정감록>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했었습니다만, 정작 이 책은 <정감록> 자체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는 않고 있더군요. <정감록>에 대한 설명은 다음이 그 전부입니다.

 

정작 이 책을 언제 누가 저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정도전이 저자라는 설도 있으나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혹은 선조 때 반란을 꾀했다 해서 잡혀 죽은 정여립이 저자라는 말도 있었으나 역시 확인할 길은 없다. …… <정감록>의 내용은 새 왕조의 출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요점을 간추리면 …… 이제 조선왕조가 망할 테니 살고 싶으면 십승지 또는 길지로 들어가 숨으라고 했다. 그러면 정씨 성을 가진 진인이 나타나 계룡산이 수도를 둔 채 새 왕조를 창건한다는 것이다.

 

「황제를 위하여」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감록>과 얽혀있는, (역사의 흐름까지를 바꿀 수는 없었던) 일종의 개인사적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었다라면, 이 책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정감록> 자체보다는, <정감록>을 매개로 하여 발생했었던 역모사건들을 통해 영·정조 시대의 사회·정치적 권력 구조를 해석해 내는 것에 그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정감록> 의 내용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될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이처럼 이 책의 포인트가 되고 있는, 그러한 역모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었던 사회적 동인(動因)들의 생성과 작동 과정을, 다음에 적어놓은 저자의 주장에 따라, 중인 계급, 종교계, 그리고 (양반과 왕실이라는) 권력층의 세 부류로 나누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진실을 '결정'하는 권력은 현실 속의 부와 명예와 정치적 지배력이어서는 곤란하다. 진실은 결국 하나일지라도 우리는 그'하나'를 대뜸 찾지 못한다. 하나의 진실에 포함된 여러 빛깔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역사의 진실게임은 전부를 얻거나 또는 전부를 잃는 도박이 아니다.


【 평민 · 중인 계층 】


① 당시 중인 계층 가운데에는, 널리 보급된 서당의 영향으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즉, 서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그들은 의술, 산수, 천문, 통역 등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업무에 주로 종사했던 관계로 양반을 가까이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라 합니다. 그 결과 중인들은 양반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잘 알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과 양반층을 구별하고 있는 신분적인 경계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라는 좌절감 또한 크게 느끼고 있었었지요. 한편, 서북지방은 조선왕조의 창건자인 이성계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중앙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북방으로부터의 침입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는 이유, 그리고 서북지방 사람들의 기질이 과격하다하여, 과거에서조차도 서북지방 사람들은 좀처럼 등용되지 못했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사회적 불평등 및 소외의 문제로 인해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이 점차 쌓여가게 되었고, 그것이 서북지방에서 처음 등장한 <정감록>이라는 예언서와 결합되어 일반 백성들의 울분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역모사건들이라는 겁니다. 비록 <정감록>과 관련된 일반 백성들의 역모사건이 당시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때 생겨난 전국 규모의 민중운동의 싹은 18-19세기 내내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갔으며, 이 때의 역모사건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성이 결국 19세기 말 대두된 동학에서 꽃을 피워 결국 최제우가 주도한 (역시 종교성을 띠고 있었던) 동학운동이라는 과실을 맺게 해주었다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설명이지요. 그렇다면... 영·정조 당시의 역모사건들은 종교와는 과연 어떤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요?

 


【 종교계 】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사회의 주변 집단으로 격하되는 열악한 처지에 놓이고 맙니다. 17세기 이후 정치·사회·문화의 각 방면에서 성리학자들의 독점적인 지위가 더욱 강화되면서 불교계가 지배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것이지요. 이를 계기로 불교계에는 차츰 반왕조적인 성향의 승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약화된 불교의 자리를 도교가 차지하게 되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중인 계층의 평민지식인들이 바로 이러한 친도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이었지요. 이러한 연유로 '<남사고비결> 역모사건'에는 승려가,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문양해 역모 사건'의 배경에는 도교가 자리하고 있게 되었던 겁니다.


조선 후기에도 근대를 향한 나름의 대안 사상이 있지 않았는가 궁금(했었고) …… <정감록>을 연구할수록 그것이 조선 후기 성리학에 반발하여 평민지식인들이 내놓은 일종의 대항 이데올로기라는 확신이 섰다. …… 18-19세기에 일어난 굵직한 역모사건에는 <정감록>을 비롯해 각종 예언서가 거의 빠짐없이 개입되었다. 이들 예언서에는 조선 후기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한 굶주림과 전염병 그리고 외세의 침입에 대한 공포심이 나타나 있었다. 또한 새 세상의 도래를 바랐던 그 시대 사람들의 열망도 담겨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소멸된 불교적 이상세계, 즉 미륵하생의 새 왕국을 꿈꾸고 있었다. 이것이 지난 세월 내 눈에 비친 <정감록>의 모습이다.

 

즉,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의구심과 신분제에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사회 변혁의 욕구가 불교와 도교라는 종교와 차례로 결합되어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세 개의 역모사건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라 저자는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저자가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문양해 역모사건'의 경우, 주동자 문양해가 종교적 카리스마를 소유한 교주의 역할을 담당했었으며, 그를 정점으로 한 무리의 역모자들이 일종의 신종교 단체를 구성해 역모를 꾀했다라는 것이지요. 즉, 훗날 등장하는 최제우를 중심으로 한 동학운동의 잉태를 '문양해 역모 사건'으로부터 보고 있으며, 이러한 민중운동의 종교성과 관련하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 전쟁과 굶주림, 질병이 세상을 휩쓸고 난 다음, 진인왕이 다스리는 새 세상이 온다라는 <정감록>의 내용과 말세의 혼란을 묘사하는 신약성서의 몇몇 구절들, 구세주의 강림이라는 천주교의 가르침이 유사하다라는 견해까지를 저자는 이 책에서 피력하고도 있지요.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종교, 그거 다 똑같은 거야'라는 비아냥이 들리는 듯도 하였었지만, 설마!라는 마음에 차마! --;;)  


 

【 권력 계층 】

 

영·정조 당시의 조선의 성리학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성리학적 명분에 가장 충실했던 것이 바로 양반 계층이었었습니다. 영조와 정조를 향한 이들 양반 계층의 속내는 ---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기는 했으나 궁녀의 소생이었고, 정조 또한 이처럼 외가의 근본이 미천한 영조의 손자일 뿐 아니라, 아버지 사도세자는 패륜아로 낙인찍힌 인물일 뿐이라는 것이었지요. 양반의 법도로 보면 패륜아의 아들은 또한 패륜아이며, 미천한 사람의 자손 역시 미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런 것을 조선의 양반들은 '명분'이라 했었었고, 바로 이 명분을 무기 삼아 대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왔던 양반들로서는 영조나 정조를 (진심으로) 왕이라 받아들이기를 썩 내켜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나마 노론이라는 특정 정파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받고 있던 영조는 비록 모든 정쟁을 종식한다며 탕평책을 펼쳤지만 정치판은 결과적으로 노론의 일당집권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앙 정치로부터 점차 소외된 소론과 남인들이 결국 중인 계층이었던 평민 지식인들과 결탁하여 동상이몽의 역모를 꾸며냈던 겁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역모 사건들은 이처럼 양반 계층과 중인 계층이 함께 모의한 것들인데, 여기서 --- 양반 출신들은 쿠데타를 통한 재집권을 꿈꾸었으나, 평민 출신 지식인들은 기성 체제로의 편입이라는 단순한 욕망을, 혹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면적인 사회개혁을 소망했었었었지요. 비록 저자가 이러한 동상이몽을 역모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러한 동상이몽으로 인해 역모가 만약 성공했었다 하더라도 애초 그들의 소망이 그대로 실현되었을까에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엔 없었다라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모든 역모는 결국 다 실패로 돌아갔고, 왕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특정 당파들은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작업을 펼치게 됩니다. 역모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되지 않았던 자신들의 반대파 인물들까지도 모두 그 역모사건으로 한데 몰아넣어 제거해버렸던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영조와 정조 시대는 우리에게 문예부흥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여러 역모사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발생했던 시기였었다고 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영조와 정조의 즉위에 불만을 품은 정치 세력이 적지 않았던 데다가, 이 시기에 사회·경제적 변동이 심화되어 조선왕조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이었죠. 후대의 우리들에게 이른바 '업적'으로 칭송받고 있는 영조와 정조의 각종 정책들도 당시 양반들이 보기에는 그저 출생의 하자를 감추거나 즉위의 부당성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들을 향한 이러한 시선들을 잘 알고 있었던 영조와 정조는 각종 역모사건들을 되려 왕권의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 냅니다. 일례로, 궁궐 수비를 담당하는 '징용위'라는 특수 부대를 창설한 정조가 이 징용위를 통해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여러 정파를 제거해 버렸었듯이, '신분제에의 불만, 권력으로부터의 소외'를 가졌던 중인, 종교계, 양반들의 역모가 오히려 권력층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되어 그러한 불만의 요인들을 더더욱 고착되게 만들어버린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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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에 대한 신임을 국민의 투표로 묻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 권좌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주인 노릇을 하게 되어 있던 왕조시대에 역모를 통해 정치적 불만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자가 바라보는 역모사건들의 실체는 이러합니다. 이것을 바꾸려는 당시의 시도들이 비록 그 때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훗날 동학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엔... 지금과 같은 '권력자에 대한 신임을 국민의 투표로 물을 수 있는 시절'을 만들어 내었다라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처럼 역사라는 것에는 단 하나의 사건도 우연에 의해 생겨난 건 없다라는, 우리가 현재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역시,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기만 한 타인의 가르침만이 아닌, 우리 선조들의, 목숨을 건 숨은 노력들이 베어 있다라는 사실이, 역모사건 개개의 내용들보다 우리가 이 책으로부터 진정 배워야 하는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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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그저 기록자의 생각일 따름이다.

역사는 기록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기록의 벽을 깨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사고다.

 
 

 

 

 

 

이제까지 읽어 본 대부분의 역사 관련 책들은, 심지어 중·고교 시절의 교과서들 마저도 '기록은 그저 기록자의 생각일 따름이다'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라 생각됩니다. 물론 「책만 읽는 바보」와 같은 인물 평전이나 「황제를 위하여」, 「에네껜 아이들」, 「왕경(王京)」 등과 같은 역사 소설들은 모두 나름 '기록의 벽'을 보완하는 작업들을 담고 있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 백승종 교수가 언급한 '하나의 진실에 포함된 여러 빛깔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책들이었었지요. 부분 부분에 따라서는 저자의 '상상이 빚어낸 허구'에 대해 과도한 상상/해석이라 여겨지는 내용들도 적잖이 있었습니다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보여준 '역사가의 새로운 상상게임'이라는 서술 방식은 분명!!! 역사책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를 이 책의 모든 독자들에게 어김 없이 안겨줄 꺼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겐... 이전관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책과의 만남이었기도 했네요. (조선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상상게임'의 독서는 몇 권 더... 계속되지 않을까도 싶.

 

 

※ 본문에 등장하는 책들의 감상문 

- 안소영 作, 「책만 보는 바보

- 이문열 作, 「황제를 위하여

- 문영숙 作, 「에네껜 아이들

- 손정미 作, 「왕경(王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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