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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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재미있는 역사책이 있습니다. 남경태C가 쓴 「종횡무진 한국사」라는 책이지요. --- 이 책에서 보여지고 있는 역사관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과 조금씩, 때로는 아주 많은 차이가 나는데, 그 차이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매우 시니컬하기도 한, 그럼에도 결국엔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라는 점에 바로 이 책의 재미가 있는 겁니다. 잠시 「종횡무진 한국사」의 上권에서 묘사되고 있는 삼국통일의 배경을 살펴볼까요?

 

7세기 초반 중국과 한반도 세 나라의 입장 차이 --- 통일시대에 들어선 중국은 변방 정리의 마무리 작업으로 한반도를 복속시키고자 하며, 그 관건이 고구려 정벌임을 알고 있다. 한편 고구려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남진정책을 추구해 온 데다가 중국이 랴오둥을 노리는 것을 알고부터는 신라에게 잃은 죽령 이북의 땅이 더욱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백제는 왕조가 일어난 고향이자 오랜 터전이었던 한강 하류를 신라에게 빼앗겼으므로 역시 고구려와 같이 실지 수복을 노리고 있다. 따라서 신라는 죽령 이북과 한강 하류(쉽게 말해 한반도 중부)를 유지하려면 백제, 고구려와 계속 등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므로 어떻게든 중국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당 태종은 이런 신라의 다급한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당시는 중국과 고구려가 맞선 가운데 백제와 신라가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처신하는 복잡미묘한 정세였다. 바로 이런 구도가 7세기 후반 삼국통일에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p199)

 

● 646년 드디어 ……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길에 올랐다. 수 양제의 패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용의주도 하게 전쟁을 준비한 덕분일까? 아무튼 스타트는 순조로웠다. …… 믿었던 요동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 ……  이세민이나 연개소문이나 그것으로 고구려의 등불은 꺼졌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꺼진 불도 다시 보게 만든 것은 안시성이었다. …… 밤낮으로 두 달간을 공략한 끝에 당 태종은 안시성을 부술 수 없음을, 아울러 고구려를 정벌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  전쟁은 중국의 패배였다.  (pp215-218)

 

● 당나라의 고구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648년에 신라의 김춘추는 직접 중국 외교길에 오른다. …… 좌절과 분노에 가득 찬 당 태종에게 신라의 사신은 상심을 달래줄 애완견이나 다름없었다. …… 이제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가닥이 잡혔다. 중국은 고구려 정벌을 원하고 신라는 백제의 정벌을 원한다. 때마침 고구려와 백제는 동맹 체제에 있으니 전선을 뚜렷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통일, 신라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남부의 통일이 목표다. 이렇게 해서 양측의 통일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시나리오를 무대에 올리는 것뿐이다. (pp21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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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왕경(王京)」은 바로 딱 요맘 때의 상황을 배경으로, 이 작품의 줄거리를 따로 적지 않아도 될만큼 딱! 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역사 소설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전개에 대해서도 매우 정확하고 간략한 소개를 해주고 있기도 하지요.) --- 사실 전 역사 소설에 대해 그다지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가장 근본적 이유는... 제가 역사 공부를 참으로 싫어했었었고, 그로 인해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라는 점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사실(史實)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 사실(史實)에 작가의 상상을 더한 소설을 읽는다라면 자칫! 드라마 <대장금>에서와 같이, 우리 역사에 '대장금'이라 불리웠던 한 슈퍼 우먼이 있었었노라... 와 같은 잘못된 확신이 특정 역사적 사실(事實)에 덧칠되어 제 머리 속에 남게될까,하는 염려 때문이지요. 

 

다행히... 이 작품 「왕경」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의 역사적 사실(事實)은 위에서 언급한 「종횡무진 한국사」에의 기억으로, 혹시 몰라 그 일부분만을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사실(史實)에 대한 오해는 저 스스로 방어해 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와 춘장의 비유'에서, 적어도 맛이 없거나 상한 춘장으로 만들어진 짜장면 정도는 먹기 전에 미리 알아챌 수 있었다라는 거지요. 자...  그렇다면 과연 이 소설은 어떤 맛의 춘장으로 짜장면을 만들어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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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같이 재수해서 89학번이었던 저의 불알 친구, 그리고 원샷에 대학에 가 88학번이었던 고등학교 여자 동창 하나, 그리고 저. --- 이렇게 셋이서 종종 만나 술 한잔씩 하면서 이런 저런, 지금 아무리 기억해보려해도 기억나지 않는, 뭐 아마도 소개팅이나 당시 어느 나이트가 물 좋냐 등이 주가 아니었을까 싶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정말 정말로 재미있었었지요. 제 생각에... 그 남녀가 섞인 작은 모임이 그렇게 재미나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셋 사이에 그 아무런 연애의 감정 라인이 (최소한 겉으로는) 없었었다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 제 친구가 그 여자 동창을 속으로 좋아했는데, 그 여자 동창은 대놓고 저를 좋아했었다, 뭐 이러면 그 셋의 모임이 재미나게 흘러갈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저만 모르게 둘 간에 어떤 연애 감정이 있었으리라고는 차마 상상 못하겠고요. --;;) 

 

 지금 제 머릿 속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는 한, 제가 평생 까게 될 드라마 한 편이 있습니다. 장혁과 장나라가 주연을 했었던 <명랑소녀 성공기>라는 드라마지요. 정확히 몇 회짜리 드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만약 20회였다면 19회까지는 여주인공 장나라가 죽도록 고생하다가 20회 중반이나 되어서야 드디어 '성공'하게 된다는, 그런 찌글찌글한 '성공기'였었지요. 대체 왜!!! '성공'에는 말도 안 되는 고생들이 꼭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채, 그저 '이렇게 고생하고 있더라도 언젠가 장나라처럼 나중엔 성공할 수도 있다!'라는 마약같은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결국! 그 드라마 한 편으로 인해 그 이후 지금까지 제가 한국 드라마를 안 보는 그런 (어찌보면 좋은!) 결과를 낳게 해준 드라마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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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을 읽고, '개인의 총기 소지에 대해 보다 더 엄격한 규제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라는 메세지를 뽑아내는 독자는 없을꺼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사냥총을 가지고 있다라는 설정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만, 작가의 능력은 그러한 설정을 작위적이라 느껴지지 않도록, 매우 우연한 coincidence로 처리해 내고 있었죠. 

 

이 작품의 전체적 스토리와 그 전개는 예전에 읽었던 김탁환 작가의 「뱅크」와 매우 유사합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는 모임이 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 조건인 '남자 둘과 (매력적인!) 여자 하나'의 등장 인물 구성이 그렇죠. 물론, 이 작품과 「뱅크」에서는 셋 간에 어느 정도의 연애 감정이 흐르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거야... 뭔가 갈등구조를 필요로 하는 소설의 특성상 충분히 이해가 되는 설정이라 생각합니다. 단!!!

 

 「뱅크」에서 작가 김탁환은 그 연애 감정에 너무도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자칫! 「방황하는 칼날」을 읽고 '개인의 총기 소지에 보다 더 엄격한 규제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라는 류의, 촛점을 잘못 짚은 이해, 즉 그 소설을 일종의 연애 소설로 이해하게 되는 우(愚)를 자아낼 수도 있게 만들었다라 생각했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분명... 그 소설에는 "100년전 일제와 조선 스페셜리스트들 간의 숨 막히는 화폐전쟁!"이 그려지고 있다라 말했었음에도 말이죠. 

 

반면 이 작품 「왕경」은 세 등장 인물간의 연애 라인에 대해 보다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계림의 김유, 고구려의 진수, 그리고 백제의 정. --- 이 세 사람에게 주어진 태생적 · 개인적 원한 관계가 자칫, 연애 감정이 지나치게 자라날 수 있는 상황을 아예 기본적으로 막아주고 있다는, 설정으로부터의 도움도 있겠습니다만, 작가 스스로도 적절한 시점에서 그 연애 감정의 부각을 매우 세심하게 관리(?)해 놓았다는 인상을 받았었었죠. 일단! 이 점에서는 '역사 소설'로서의 포지션에 매우 충실하고 있습니다. 


「뱅크」에서 작가는 세 등장인물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고생을 안겨줍니다. 특히 주인공 장철호의 삶은, 그저 일개 독자일 뿐이 저에게조차 '내가 뭐 도와줄 꺼 없을까?'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을 정도였었죠. 비록 <명랑소녀 성공기>완 다르게, 장철호가 겪었던 고생들엔 나름 합리적인 전후사정이 주어지긴 했었습니다만 역시!나... '성공을 위해선 가혹한 고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라 읽혀지기만 했던 그 상황은 그 소설을 읽는 내내 저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었더랬습니다. 

 

이 작품은 계림의 수도인 왕경(경주의 옛 이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 '김유'는 든든한 어머니의 배경과 뛰어난 외모·무예·학문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심지어 화랑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인물입니다.  '진수'라는 인물 또한 고구려 출신으로, 고구려에서는 (신라의 풍월주와 비슷한) '선배'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가장 유력했었던, 역시나 매우 뛰어난 청년이었죠. 백제 출신의 '정'이라는 소녀는 예의 예쁘고 똑똑하고, 게다가 야심까지도 만땅으로 가지고 있는, 암튼! 세 사람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뛰어난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홈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김유에 비해, 원정경기를 치르고 있는, 게다가 졸지에 노비 신세가 되어버린 진수와 일개 몸종 수준의 신분이었던 정의 처지는 상대적으로나 절대적 기준으로나 매우 고생스러울 수 밖에 없었었지요. 그러나!!! 진수와 정의 삶도, 물론 그들의 심적 상태야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민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무지막지하고 말도 안되는 고생담의 연속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바로 그 점!이... 저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해주었던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던 겁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여러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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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그러한 점들로 인해 이 소설에는 긴장감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교과서적인 인물들이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상궤(常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인물들조차도 지극히 예상가능한 행동들만을, 그것도 살짝 맛만 보여주는 정도로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뱅크」라는 소설에 ①번과 ②번 같은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불편했던 점이 있었었다라 말했음에도, 제가 「왕경」보다 「뱅크」에 더 높은 만족도를 주게 되는 건, 역설적임에 분명한 이 이유가 바로... ①,②와 같은 조미료를 적절히 선택해낼 수 있는 '작가의 대중성'으로부터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이 작품 「왕경」이 손정미 작가의 데뷔작이라 하는군요.)

 

조미료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몸에 덜 해롭다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집에서는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밖에 나가선 조미료 없는 음식에 '심심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며, 결국!!! 조미료 없이, 직접 정성스레 만든 춘장으로 만들어낸 짜장면이 손님들의 맛없다는 항의를 받게 되더라는, 그래 어쩔 수 없이 그 짜장면집이 문을 닫게 되었다라는 역설적 상황이 소설을 읽는 것에도 예의 등장했다라는 거지요.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이기에 조미료가 전혀 안들어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 양이, 대중을 자극하기엔 지나치게 적절!하다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 작품이 뭔가 자극적인/독특한 역사적 상황/인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더라면, 혹 그런 조미료스러운 부분이 덜 가미되었다해도 대중이 느끼는 재미를 충분히 만들어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 다 알고 있는, 너무도 평범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너무도 착하고 예측 가능한 행동들만하는 인물들만을 등장시켰기에 결국! '심심하다'란 느낌만을 남겨주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겁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정'의 실체 정도가 약간의 놀라움을 주었다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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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통일을 과연 통일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한반도에 국호를 가진 나라가 신라만 남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삼국통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그것은 통일이 아니다. 우선 영토를 보면, 당시 신라가 확보한 영토는 지금의 대동강와 원산만을 잇는 선의 남쪽에 그쳤으니 고구려의 영토까지 포함하면 삼국의 영토 가운데 절반이 되지 못한다. (애초에 신라는 백제만을 병합하고자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또한 정치적으로 신라는 당에 조공하면서 간접 지배를 받게 되었으니 완전한 독립 왕국이라 할 수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한반도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 왕국에서 하나의 중국 군현으로, '삼군에서 일군(一郡)으로 전락한 셈이 될 것이다.  (pp 240-241)

 

사실(史實)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라는 사실로부터 위와 같은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만!!! (역사) 소설까지 똑같은 평가를 내려야 하는 건 아닐 수도, 또한/그러하기에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정 정도의 여유 공간을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여유 공간의 인테리어는 그야말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 컨셉이 정해지는 것이겠지요. 작가 손정미는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에 남경태와는 달리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라는 인테리어를 해놓았으며, 그 인테리어의 하이라이트로 전... 김유의 다음 독백을 꼽게 됩니다.  

 

백제가 계림을 쳐들어와 가족 같은 화랑들을 죽였지만 정이 창칼을 든 적군은 아니었다. 상황이 삼국을 대치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먹고 마시며 울고 웃는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일 뿐이었다. 단군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과정은 충분히! 심지어 100%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 역시 '사람들'이었다라는 점이 김유의 갈등엔 빠져 있지요. 물론! 이 작품의 작가가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 또한 '사람들'이었음까지를 파헤쳐내야 했었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 그리고 작가의 의도는 분명! 그런 곳에 있지는 않았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만약 작가가 소설의 분량을 「뱅크」 수준으로 가져갔었다면, 즉 자신이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설정했더라면 상당히 치밀하고 매력적인, 허나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될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합니다. 


삼국통일의 과정을, 그 속에서 계림·고구려·백제 출신의 인물들이 겪게 되는 심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삼국통일의 과정을 딱딱한 서술이 아닌, (매우!) 적당한 / 최소한으로만 가미된 양의 조미료와 함께 즐기고 싶다면, 바로 이 소설이... 역사에 대한 당신의 판단을 결코! 해하지 않을, 메인 디쉬로 들어가기 직전에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에피타이저 역할로는 차고 넘치도록 충분한 한 권의 책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에겐... 당분간 아마도 역사 관련 책들을 읽지 않을까 싶도록 만들어주기도 한.

 

 

 

※ 본문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의 감상문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방황하는 칼날

- 김탁환 作, 「뱅크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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