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독서로부터...도! '짜릿한 희열'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라는 건 진즉에 경험해 보았더랬습니다...만, 이번의 독서를 통해, 그 희열이란 게 사뭇 씁쓸한 여운을 남겨줄 수도 있다라는 건 처음 알게되었네요. --- 뭔가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 「제노사이드」를 읽었었고, 그걸 다 읽고 나니 다시금 '진화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고, 그래 「작은 인간」이란 책을 힘들게 읽어낸 후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혹성 탈출>에서처럼 뭔가, 그 '진화론'의 논리대로 인류 사회가 흐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 할 듯한, 그 영화의 원작이라는 이 소설 「혹성 탈출」을 읽으며, 앞서 읽은 두 책으로부터의 기억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었던... 그런 독서로부터의 희열을 느꼈었거늘, 그와 함께 남는 씁쓸함의 여운은... 사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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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만 년 전, 언어나 의식이 있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두 발로 곧게 서서 걸어다녔다. …… 왜 자연은 어떤 한 종류의 유인원(만)을 두 발로 걷도록 만들었을까? …… 두 발과 두 손을 가진 유인원이 진화론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그들만이 땅 위에서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그로써 일상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데 있다.

 

동물들은 뇌가 크지 않아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인원과 원숭이들 역시 지능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능한데도 도구 사용의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 인간을 뺀 나머지 동물의 왕국에서 현재 가장 탁월한 도구 사용 솜씨를 가진 것은 침팬지이다. … (동물원에서 길러지고 있는 침팬지들은 더더욱 뛰어난 도구 사용 능력을 보여주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침팬지는 필요가 생기면 도구의 제작 및 사용을 확대할 줄 안다는 점이다. 야생 상태에서 비교적 도구 사용이 드문 것은 지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동기 부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야생에서 그들은 대개 그냥 타고난 신체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비용-효과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 자연 선택은 누구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었을까? 최상의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가장 빨리 익히고 그것을 언제 사용하는지를 가장 현명하게 결정하며, 계절에 따라 동식물의 번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맞춰 생산을 최대화하는 개체들이었다. 바로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보다 하빌리스의 뇌가 40-50% 더 커졌다고 풀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인류의 진화/역사를 설명해 놓은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와는 다르게!!!

 

"침팬지인 내 의견은... 우리가 사수류(四手類)라는 사실이 우리의 정신적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해. 덕분에 우리는 쉽게 나무에 오르고 공간의 3차원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반대로 인간은 손이 두 개뿐인 데다다 손가락이 짧고 서툴러 땅바닥에 고착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평면의 2차원에만 안주해야했지. 신체적 장애로 인해 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던 인간에 비해 우리는 능숙하게 도구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지혜를 가지게 된 것이었어."

 

즉! ①지혜로웠기 때문에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가 아닌, 도구를 사용했기에 (뇌의 용량이 커져) 지혜로워졌다,라 주장했던 마빈 해리스의 사회·문화적 진화의 논리를 그.대.로. 유인원들이 가져다 사용한다라면, ②마빈 해리스가 말하는 '도구'의 개념과 유인원들이 말하는 '도구'의 개념이 반드시 똑같은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면, ③유인원들에게도 어떠한 연유에서든지 '도구 사용'에의 동기 부여가 주어졌었다라면, 종국적으로 ④모든 것을 우리 인간의 시선으로 보고 해석하는 본능과도 같은 습관을 버려낼 수 있다면!!! (이 책, 「혹성 탈출」에 나와 있는) 침팬지의 위와 같은 주장이... 과연 허무맹랑한 것이라고만 여겨져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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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스스로를 많이 진화되었고 상당히 문명화되었으며 최고의 지성과 지혜를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라는 우물 안에서 그 우물을 지배하고 사는 인류의 관점에 불과하다.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자연계와 동물계는 인류에게 상생의 존재가 아니라 지배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의 절대적 위상은 광대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 앞에서도 똑같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소설이 바로 「혹성 탈출」이다.

- <옮긴이의 말> 중

 

마빈 해리스의 주장에 의하면, 유인원 중 가장 지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는 침팬지조차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뇌가 아니라 에 있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언어를 발음해내기 위해서는 인두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침팬지 뿐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에는 그 인두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는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유인원 -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등 - 들이 인간의 언어를 말하지 못한다라는 점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 그들의 단점이라 말한다는 건 거꾸로 보자면, 치타가 인간의 뜀뛰기가 느리다고, 강아지가 인간의 후각을 자신들의 그것보다 미개하다라고, 물고기가 깊은 바다속을 헤엄치지 못하는 우리를, 하늘을 날지 못한다하여 새들이 우리에게 조롱을 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게 되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런 수도 없이 많은 육체적 단점들을 지니고 있는 인류가 (최소한 지구 내에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 해답은 '도구의 사용'입니다. "가장 커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는 동물이 가장 커다란 이빨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는 동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라 이 소설 속에 표현되어 있기도 하듯이, 머리 좋은 놈과 힘만 센 놈이 붙어, 머리 좋은 놈이 승리를 차지했다라는 것이지요. 그럼 만약에!!! 힘만 셌던 놈이 (어떠한 이유로든간에) 머리까지 좋아졌다면, 그렇다면 그 때에도 둘 간의 지배-종속 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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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복제된 인간들이 떼거지로 현실의 세상으로 뛰쳐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말을 보면서, 저들이 현실의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과연 저들에게 더 좋은 것일까? '그 이후'에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라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에서도 현생 인류보다 진화한 초인류가 번식의 조건을 모두 갖춘 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져 버림으로 '그 이후'의 진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만, 무려!!! 1963년에 출간되었다는 이 소설은 제가 궁금해했던 '그 이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요.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 우주에 우연은 없다."

 

발달된 과학기술로 인해, 지구의 인간 세 명이 '마이너스 엡실론 광속'으로 우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부터 300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베텔게우스계로 탐험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지구와 매우 유사한 환경을 지닌 행성 하나를 발견한 세 사람은 곧 그 별에 착륙을 하지요. 예상대로 그곳의 대기와 자연 환경은 지구의 그것들과 매우 흡사했었고, 이에 그들은 '자매'라는 뜻의 라틴어인 '소로르'를 그 행성의 이름으로 지어줍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지구와 유사한 소로르에, 지구와 다른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으니 바로... 유인원들이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인간들은 지구에서의 유인원들처럼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라는 것이었지요.

 

주인공 윌리스 메로는 이 역전된 상황 속에서, (어찌어찌한 과정을 거쳐) 소로르 행성을 다스리고 있던 유인원들로부터 '이성(理性)을 지닌 인간'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의 역전이 과연 왜/어떻게 발생되었는가를 파헤쳐 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이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은 1968년 개봉되었던 영화 <혹성 탈출>과 비슷합니다만, 전개 과정은 판이하게 다르지요.) 코르넬리우스와 지라, 이 두 과학자 침팬지의 도움을 받아 윌리스 메로가, 한 인간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해 결국 알게 된 진실은 다름 아닌...

 

모든 유인원들이 얼마 전부터 끊임없이 번식하고 있다. 그들 종족은 조만간에 사라질 것 같았는데 …… 만일 그들이 번식을 계속한다면 곧 우리와 비슷하게 많아질 것이다. ……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교만해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시선에 눈을 똑바로 뜨고 맞서도 있다. 우리가 길들여온, 특히 하인처럼 부려온 그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 실수였다. 바로 그 유인원들이 가장 오만해졌다. ……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실험실에서 실험의 대상으로 취급받고 있었던) 유인원들 가운데 한 마리가 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과학의 위대한 승리로 간주했다. 그들은 이 사건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 그들이 처음으로 말을 사용한 것은 사람들이 복종을 요구했을 때 그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 사람들은 두뇌를 쓰는 일을 싫어하게 되었다. …… 그러는 사이 유인원들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들의 두뇌는 고독한 사색 속에서 발달했다. …… 마침내 그들은 (전부가) 말하기 시작했다.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는 하느님의 섭리는, 무기력해진 인간들이 이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더 뛰어난 종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즉!!! 유인원들이 인간의 뒤를 계승하였다라는 게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간의 뒤를 계승한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야. …… 이성을 지닌 인간이 임기를 끝내자 우수한 유인원이 인간을 계승했고, 비록 침체기이긴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일으킨 문명을 보존하며 그 결과들을 제 것으로 만들고 있어. 그리고 이제 곧 새로운 미래를 위해 도약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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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 탈출」은 이처럼 「작은 인간」에서 다루었던 진화의 사회·문화적 맥락의 방향을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정반대로 바꾸어버림으로써, 「제노사이드」에서처럼 현생 인류보다 더 진화된 초인류가 등장한다는 설정이 아닌, '인간의 퇴화와 유인원의 진화'라는 상대적 역전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실험실의 침팬지가 말을 한 것)을 과학의 위대한 승리로 간주했다."라는 소설 속 인간의 후회를 읽는 순간, 「작은 인간」에서 보았던 다음의 구절들이 지체 없이 떠오르더군요.


자연선택은 종종 어느 한 가지 기능을 위해서 선택된 구조를 이용하여 전혀 다른 기능을 가진 구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 기각류는 돌고래나 바다표범처럼 바다에 사는 포유류를 말하는데 뇌가 크고 사회성이 높다. …… 미국의 해군은 기각류들을 훈련시켜 바다 밑에 떨어진 미사일의 폭발물 부분을 물어다가 적군의 배 밑에다가 갖다 붙이도록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돌고래 여섯 마리가 샌디에고를 떠나 페르시아만까지 파견되었다. 그러나 도구를 사용하거나 물체를 조작해야 하는 자연적인 필요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기각류 동물들의 뇌는 에렉투스에서 사피엔스로 넘어오면서 일어난 재구성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와서 보자면 그들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만일 그러한 재구성이 일어났다면 지금쯤 그들은 해군 신병 훈련소에 수용되어 바다 밑에서 서로를 죽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 「작은 인간」 pp 68-69

 

말 그대로 유인원들의 진화의 시작에서 나왔던 "그들은 이 사건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라는 소설 속 한 인간의 탄식이, 단지 작가의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위의 문장에서, 독자는 소름끼치도록 느끼게 됩니다. 몇년 전 개봉했었던 영화 <혹성 탈출 : 진화의 시작> 속 상황이 결코! 영화 속 상상의 장면만은 아니었던 거니까요. 그렇다면 이 소설도 또한! 단지 이런 비현실적/상상 속 상황을 가정하여 그려내고 있는, 하나의 '허구(fiction)'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중국 작가 위화의 다음 문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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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은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새로이 해석될 수 있다.

 
 

 

 

 

이 소설이... 인류의 진화라는 사뭇 거창하기만 한, 그러하기에 나의 일생동안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하나의 지적 유희로서 즐겨보는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저에게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느낌은... 어쩌면 당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도.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는 하느님의 섭리는, 무기력해진 인간들이 이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더 뛰어난 종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즉!!! 유인원들이 인간의 뒤를 계승하였다라는 게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 개인의 일생을 '인류의 역사'에 빗대어 본다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태어나 생활을, 지식을 습득하며 자라났고, 어느 순간이 되어 그간의 축적된 모든 것들이 만개하여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았던 적이 있었었으며, 그리고 또한!!!... 그 성취 후에 다가왔던, '정해진 성장의 마지막 과정에 무사히 들어섰다는 데서 오는 방심'으로부터 기인된 무기력에 의해 결국엔, '나의 지위'를 누군가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저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모든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다라는 걸 이 소설이 꼬집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차마... 이 곳에 써낼 수는 없는, 사실은 길고 길게 썼다가 다 지워버린, 하지만 분명! 저의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집어보자라니, 작가 피에르 불의 이 경고 - 인간의 퇴화와 유인원의 진화 - 가 작품 속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윌리스 메로가 받았을 충격의 강도와 똑같은 세기의 '두려움과 씁쓸함'을 2014년 현실의 저에게 그대로...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것이 독서로부터 얻게 되는 짜릿!한 희열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겁니다.   

 

지금 제가 영위하고 있는 이 사회 생활이라는 거 --- 무기력함에 빠져 있는/있었던 '나'를, 어느 순간 획!하며 제치고 앞서 나갈 수 있는/나아가버리는 정말로 많은 유인원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인 '나'를 향해 "너는 정말로 못생겼어!"라 말하는 유인원들이... '나'의 주위에서 쉬임없이 '나'를 지켜/노려보고 있다라는, 그러한 '상황의 역전'이 최소한 소로르 행성에서는 진실이었었듯, 지금 제가 서있는 곳 또한 어쩌면 그 소로르 행성일 수도 있다라는, 바로 그 점이 저를 씁쓸하게 만들어 주었던 거지요. 

 


"나의 베텔게우스 세계로의 여행은 미리 정해진 섭리였다. 그러니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은총을 잃은 이 인류의 새로운 구세주가 되는 것이 내 임무였다."


주인공 윌리스 메로의 위와 같은 결심이,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사뭇 헛웃음까지 자아내게 해주었었던 이 결심이 어쩌면... 지금의 저에게 가장 필요한 다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비록 소설은 주인공 윌리스 메로의 위와 같은 다짐이 너무 늦어 버린, 그래 이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만, 저의 현실은... 차마 너무 늦어 버린건 아니라고, 그러하기에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여력이 아직은 남아 있는 거라고 믿으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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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은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새로이 해석될 수 있다'라는 중국 작가 위화의 말에 기대어 제가 이 작품을 이렇게 되새김질 해보았듯, 이 소설 「혹성 탈출」이... '나'와는 다른 일상을 살아 온/가고 있는 다른 사람인 '당신'들에게는 과연 어떻게 읽혀질까... 가 문득 궁금해지네요. 저에게... 언제 한 번 들려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소설이 정말로 대단!한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표시까지 붙어있는 만족도에는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도 깃들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P.S. 이 작품은 (아주 얇은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액자의 마지막 테두리에서 드러나는 (액자 속) 등장인물들의 실체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문」의 마지막 장에서 받게 되는 충격에 전혀 뒤지지 않는 소름 돋음!을 선사해 줍니다. 영화 <혹성 탈출>의 마지막 장면인,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을 주인공이, 그리고 시청자가 보게되는 순간을 최소한... 100만 배는 뛰어넘는. 

 

 

  

※ 이 포스트에 등장하는 책들의 감상문

- 다카노 가즈아키 作, 「제노사이드

- 마빈 해리스 著, 작은 인간

- 아비코 다케마루 作, 「살육에 이르는 병

- 오기와라 히로시 作,「소문」​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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