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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간 -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김찬호 옮김 / 민음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이웃분께서 덧글로 '니 글은 다른 데 같다놔도 니가 쓴 글인지 딱! 알 수 있을꺼 같다'라 써주셨더군요. (물론! 표현이 이렇지는 않았고, 사뭇 칭찬의 뉘앙스마저도 느껴졌던 글이었습니다.) --- 일단 문장 하나가 무쟈게 길지요. 저도 나름 짧게 줄여보려 노력해봅니다만 웬지... 제가 써놓은 긴 한 문장을 두 세개로 끊어버리면, 읽는 데 있어 뭔가 제가 원하는 맛(!)이라는 게 살지도 않거니와, 뜻마저도 약간 다르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그 노력을 항상 이겨버리는겁니다. 근데 문제는 말이죠!
제가 말할 때에도 그 비슷한, 끊어내지 못해 이야기가 길어지는, 심지어는 옆길로 새어버리는 일마저 생겨난다라는 겁니다. --- C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A와 B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걸 토대로 C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어!란 생각에 친구와 마주앉아 우선 A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근데 이 상황이란 게... 저 혼자 연설을 하는 상황은 아닌거잖아요. 제가 뭔가 이야기를 하면 친구가 그에 대한 맞장구를, 혹은 다른 의견을 말하곤 하니까요. 그럼 그때 A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전 어느덧 A1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뭐 그렇게 A2, A3 …… 로 나가다보면, 그날... 제 입에서, 정작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C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나오지도 못한 채 술기운이 저를 지배하는 순간을 영접하고 말지요. 거의... 예외 없이! (두괄식 화법이라도 배워야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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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최초의 인간 사회와 언어는 어떠했을까? 각각의 문화들이 다양하게 진화하면서도 그 경로들이 놀랍게 수렴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계급 구분은 왜 생겨났는가? 작은 밴드 및 촌락 사회가 군장 사회로 대체되고 그것이 다시 강력한 국가에 흡수된 경위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분은 나만큼 관심이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조건 가운데 얼마만큼이 유전자이고 얼마만큼이 문화적 유산인지, 질투, 전쟁, 가난, 그리고 남녀 차별은 불가피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 인류는 도대체 살아남을 가망이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나만큼 궁금해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 당신은 당신 집의 굴뚝 연기를 넘어서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를 인류 전체의 일원으로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특정한 부족, 국가, 종교, 성, 인종, 군중 등의 일원으로 생각하면서 세상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고? 그러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이렇게나 감출 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는 듯 보이는,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아보이는 그 자신감을, 읽는 이로 하여금 끝내 매력으로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위와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Z를 말하기 위해 A부터 시작되어 나아가는 과정을, 저처럼 곁길로 빠져버리는 일 없이, 매우 충실하게 하나하나 서술해 놓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 마빈 해리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Z는 바로... "인간의 삶에 대해 비교문화적이고 범지구적이며 진화론적인 안목을 심어 …… 그래서 우리가 어떤 종(種)이고 우리 문화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없는지를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무쟈게 거창하죠? --- 네! 이런 거창한 Z를 이야기하기 위해 전개되는 A부터의 내용들은, 읽어내기에 (A1, A2등의 샛길로 매번 빠지기만 하는 사고를 가진 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매우 어려웠더랬습니다. '이 책은, 지금 나 같은 사람이 한 번 읽어본다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관련된 다른 책들 - 소설을 포함하여 - 을 읽어갈 때면 어김없이 찾아 뒤적이며 부분부분이나마 다시금 읽게 될, 그리고 인용하게 될 그런 책이긴 하다!' 라는 억지스런 위로를 했었어야할만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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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려워서 절반쯤 읽다 포기했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 (반쯤 읽어 본) 수준에서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인간의 진화를 오로지(?) 생물학적 이유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같은 사람은 도킨스의 주장을 자칫(!)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이해해 버리게도 되지요. (사실 전, 지금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해가 틀렸을꺼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지만. --;;) 이에 반해 마빈 해리스는, 물론 그가 문화인류학자라는 배경 때문이겠지만, 인류의 진화 거의 대부분을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제 생각/해석엔 말입니다!라는 강한 단서하에, 엄청나게 다른 결론을 각각 낳게 됩니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렌즈로 바라본다면, 생물학적인 이유로 인해 인류가 과거로부터 그런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게 되었던 것일테고, 따라서 현재의 인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밖엔 진화할 수 없었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왜? 생물학적으로 그러니까! 반면 마빈 해리스가 이 책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진화를 바라본다면, 현재 인류의 '지금과 같은 모습'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게 되어버립니다. 왼쪽으로도, 혹은 오른쪽으로, 아니면 그냥 직진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셋 중 한 길을 선택하게 했었다라는 게 되니까요. ('생물학적 결정론'에는 물론 아예 이런 선택지 자체가 없겠지요.)
A로부터 출발하여 Z의 단계에까지 이르르는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정리해낸다는 건 제 능력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자의 시각, 즉 인류의 진화를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설명하고 있는, 제 생각에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들, 주로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가? (이 책의 원 부제 중 Who We Are, Where We Came From 에 초점을 둔) 부분들만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의 서술보다는 인용한 부분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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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류가 두 발로 걷게 되었다라는 사건, 그리고 '호모 파베르'로 불리울만큼 도구의 이용에 탁월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다음의 문장들에,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이라는 렌즈의 특징이 단적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4백만 년 전, 언어나 의식이 있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두 발로 곧게 서서 걸어다녔다. …… 다른 유인원들은 손처럼 생긴 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 큰 발가락은 … 숲속에서 높은 가지의 과일을 딸 때 나뭇가지에 걸고 매달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딴 과일을 제 힘 닿는대로 한가득 운반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다. …… 왜 자연은 어떤 한 종류의 유인원을 두 발로 걷도록 만들었을까? 그 해답은 그러한 동물이 땅 위에서 번식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 두 발과 두 손을 가진 유인원이 진화론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그들만이 땅 위에서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그로써 일상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데 있다.
동물들은 뇌가 크지 않아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인원과 원숭이들 역시 지능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능한데도 도구 사용의 범위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 인간을 뺀 나머지 동물의 왕국에서 현재 가장 탁월한 도구 사용 솜씨를 가진 것은 침팬지이다. … (동물원에서 길러지고 있는 침팬지들은 더더욱 뛰어난 도구 사용 능력을 보여주는데) …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침팬지는 필요가 생기면 도구의 제작 및 사용을 확대할 줄 안다는 점이다. 야생 상태에서 비교적 도구 사용이 드문 것은 지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동기 부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야생에서 그들은 대개 그냥 타고난 신체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비용-효과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 자연 선택은 누구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었을까? 최상의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가장 빨리 익히고 그것을 언제 사용하는지를 가장 현명하게 결정하며, 계절에 따라 동식물의 번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맞춰 생산을 최대화하는 개체들이었다. 바로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보다 하빌리스의 뇌가 40-50% 더 커졌다고 풀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즉 뇌의 용량이 커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다,가 아니라 도구의 사용으로 인해 뇌의 용량이 커졌다라는 것인데, 이 사실 자체도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논리의 전개를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현생 인류의 선조들이 직립 보행을 했었던 것까지를 '동기 부여'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보게 된다라는 점이 정말!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지는 것 중 하나는, 다른 유인원들과는 뚜렷이 구분되었던 현생 인류의 선조들, 하지만 아마도 외모적으로, 최소한! 피부의 색은 똑같았었을 우리 선조들에게서 어떠한 이유로 인해 지금과 같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여러 인종의 후손들이 나오게 된 걸까 하는 점이겠지요.
②
저자는 아마도 갈색이었었을 1만 년 전 조상들의 피부색이 북유럽인에게는 흰 색으로, 중앙 아프리카인들에게는 검은 색으로 변하게 된 시초를 '특수한 적응의 결과'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빛은 멜라닌이라는 분자에 의해 결정된다. 멜라닌의 일차적인 기능은 가장 윗쪽의 피부를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 멜라닌 분자가 많을수록 피부는 더 검어지고 햇빛 화상과 모든 피부암에 걸릴 위험은 적어진다. …… (하지만) 만약 햇빛이 오로지 해만 끼칠 뿐이라면 자연은 모든 인구 집단을 검은 피부빛으로만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햇빛은 순전히 위협만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부에 와 닿으면서 표피 속의 지방질을 비타민 D로 전환시켜 준다. …… 비타민 D는 몇 가지 음식에서 얻어질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바다 물고기의 기름과 간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러나 내륙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중요한 물질을 공급받는데 햇빛과 자기의 피부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 피부의 독특한 색깔은 상당한 정도가, 햇빛이 너무 많아 화상이나 피부암에 걸릴 위험과 너무 적어서 구루병이나 골종에 걸릴 위험 사이의 어떤 타협인 셈이다. 인류의 대다수가 갈색 피부를 가진 것이나, 열대 지방 사람들의 피부가 검고 위도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피부가 희어지는 것도 바로 그런 타협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피부색으로 나뉘어지는 인종간의 차이는 사실 알고보면 별 것 아니었던겁니다. 헌데! 우리, 현재의 인류는 (자연의 선택일 뿐이었던) 이 별 것 아닌 피부색의 차이를 가지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엄청난 '인종간 차별'을 만들어 버렸지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영원히 뒤처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 잘못된 믿음에 대한 저자의 다음 설명/반론은 (어쩌면 현재에도 진행중일지 모르는) '인류의 진화'가 왜?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바라보아져야/파악되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 의해 유럽의 기술이 전해지지 못했다. 게다가 사막 남쪽 사람들은 사막을 횡단하는 데만 골몰한 나머지, 바다로 모험을 나설 만한 동기를 갖지 못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포르투갈 배가 15세기 가나 해안에 도착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것이 이후 5백년 간의 아프리카의 운명을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금광이 바닥나자,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유럽에 노예로 넘기고 그 대가로 옷과 무기를 얻는 데 몰두, 그 결과 엄청난 전쟁, 반란, 그리고 자생적인 봉건 왕국의 파탄이 빚어지면서 아프리카의 정치적 발전 궤도는 중단(되었던 것이다.) …… 식민 정부들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아프리카가 종속적이고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었다. 부족들 사이에 전쟁을 부추기고, 가장 최소한의 수준으로 교육을 제한하며, 무엇보다도 정치적 독립을 이룬 후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도록 산업의 하부구조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그 주요한 방법이었다. 그런 역사를 이어받은 아프리카인들이 만일 다음 세기 중반 이전까지 독자적인 선진 산업 사회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은 인종적으로 열등한 것이 아니라 매우 탁월한 것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이것이 왜 사회·문화적 맥락인가? 이건 역사적 맥락에서 본 아프리카의 과거 아닌가?라는 질문은, 제 생각에는, 그들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서구만의 전형적인 시각일 뿐입니다. 피지배집단의 개개인들에게 그 상황은 세계사의 흐름으로 읽혀졌던 것이 아니라, '먹고, 숨쉬고, 배설하고, 짝을 짓고, 자녀를 낳고, 앉고, 돌아다니고, 잠자고, 눕고 하는 모든 행위 속에서 반드시 자기 사회의 문화의 어떤 측면을 따르거나 그것을 드러내기 마련'인 인간으로서 한 개인의 일상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실제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IQ가 낮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라는 반박에 대해서도 저자는 위에서와 같은 사회·문화적 견지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저개발과 마찬가지로 미국 흑인들의 낮은 IQ도 수백 년 동안의 체계적인 억압의 결과이다. 아프리카의 저개발, 또는 미국 흑인들이 고통받는 빈곤, 범죄, 마약 등을 두고서 그것이 선천적인 지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흑인들의 평등한 지위 쟁취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흑인들이라고 해서 다른 인종과 달리 과학 기술과 사회 변동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유전자를 가진 것은 전혀 아니다. 언젠가 그들도 빛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③
이 책은,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 해도 될 만큼, 다양한 주제들 - 무려! 102개의 챕터!!! - 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우리는 왜 잔치를 벌이는가>라는 장은, '잔치'라는 것의 인류학적 근원 자체도 흥미로왔지만, 그것을 인용해 현재의 현실을 꼬집어내고 있는 부분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고픔이라는 경험은 산업 사회 이전 전체 기간 동안의 인류에게는 '잉여 음식 에너지를 지방질로 저장해 놓는 능력'을 생물학적 유산으로 남겨주었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방질로 저장된 여분의 에너지는 그 다음번 추위, 가뭄 또는 궁핍기를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반응이었다라는 것이고, '잔치'라는 사회적 문화는 지방질을 저장하기 위한 하나의 생존 행위였었던 거라는 거죠. 하지만!!! 지금 미국인들이 '반쯤 아사 상태로 있다가 고갈된 지방질 저장고를 빨리 보충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건 아닙니다. 이렇듯...
'잉여 음식 에너지를 지방질로 저장해 놓는 능력'이 배고픔으로부터 유래된 생물학적 유산이었지만, 사실 우리의 선조들은 먹을 것 자체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었던 탓에 살찔 틈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연 선택'이라는 기제는 비만 때문에 심장과 동맥을 손상받을 정도로 많이 먹는 이들을 도태시켜볼 기회를 아예 가지지 못했었던, 즉 인간의 몸에 디자인된 유전적 결함인 과식,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비만은 자연 선택도 미처 제거해 내지 못한 인간의 약점이 되어버렸다라는 거지요. 헌데... 이 비만이라는 '인간의 약점'이 '모든' 인간의 약점은 아니라는 문제점을 향해있는 저자의 시선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보다 여전히 키가 작지만, 이제 그들은 더 살이 쪄 있다. …… 이러한 패러독스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체중 조절은 칼로리와 영양, 그리고 비만이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없다. 조깅, 에어로빅, 그 밖의 많은 스포츠는 시간을 많이 들여야하고 또한 흔히 비용도 많이 치러야 한다. 설탕과 녹말이 많은 음식은 칼로리가 적으면서도 영양가가 많은 고기나 생선보다 싸다. 끝으로 임금이 낮은 서비스업이나 노조도 없는 공장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공공 복지의 혜택으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위를 쫒는 중산층이 유지해야 하는 복장과 와모의 기준에 순응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사실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에서도 위와 비슷한 주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 책 「작은 인간」은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더해, 그 현상의 근원까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표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창피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참!으로 속시원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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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인지라, 편집면에서는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해) 매우 불친절합니다. 그렇잖아도 빡빡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거기에 줄 간격마저도 매우 촘촘한, 게다가 무겁기까지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화적 특성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문화적으로 거듭거듭 선택되어온 것은 거의 어느 상황에서든 단지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라는 저자의 핵심적 주장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촘촘한 연결로 이루어져있는 A로부터 Z까지의 인류 진화에 관한 내용 속에, 한 시도 잊혀지지 않은 채 녹아들어 있기에 참으로 많은, 이제까지 미처 생각할 수 없었었던 부분들에까지 뻗쳐있는, 책 속 102가지의 주제들에서, 읽는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 상당히 유익한 지적 충격을 건네어 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위에 제가 언급한 주제들 말고도 '문화적 선택이 유전적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의 능력에 날카로운 차이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남자 아이들이 수학 점수가 놓은 까닭은?>이라는 장과, 성차별과 전쟁이라는 현상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전쟁과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전쟁의 발생 이유를 생태학적이고 인구학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가> 등의 장이 매우 흥미롭게 읽혀졌었었지요. (솔직히 말해, 하지만!... 흥미롭지 않게 읽혀졌던/지루했던 장이 더 많기는 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 중 'Where We Are Going' 부분이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가장 관심가는 부분이었습니다만, 가장 읽어내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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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만족도는, 읽는 이가 지니고 있는 학문·지식의 배경, 개인적 관심사, 어쩌면 (세계관을 포함한) 종교관에 따라서도 지극히 극과 극으로 나뉘어질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예전에 읽었었던 「블랙 라이크 미」나 「노동의 배신」과 같은 사회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들, 거기에 더해 바로 이전에 읽었던 「제노사이드」가 건네주었던 메세지들을 다시금 되새겨봄에 있어서, 또한! 이제 읽으려 하는 「혹성탈출」과 같은 소설을 이해함에 있어서마저도, 그 밖에 '인간의 본성'에 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을 읽을 때면, 마치 재수 시절의 제가, 고1때 샀던 해법수학을 여전히 뒤적였던 것 마냥, 그렇게 꽤나 (끝을 알 수 없는) 오랫동안 (복습과 인용을 반복할) 참고서스러운 역할을 하게 될거란 사실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최소한... 제가 지금처럼, 혹 지금처럼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독서라는 이 훌륭한 취미를 잃지 않는 한 말이죠. 자... 이젠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은, 읽어내기에 별 부담도 없을 듯 보이는, 피에르 불의 「혹성탈출」 그 첫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