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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① 전화 서비스란게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 당연!히 처음으로 큰 돈 들여 전화기를 구입해 전화 서비스에 가입한 누군가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양방향 통신이라는 전화 서비스의 특성상, 자기 혼자만 전화 서비스에 가입했다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화를 걸/걸어올 상대가 아무도 없으니까요.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 의 가입자들이 생겨나겠지만, 여전히 그들이 서로를 알지 못한다면 여전히 자신의 수중에 있는 전화기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 이제 시간이 좀 흘러, 드디어! 내가 아는 누군가도 전화 서비스에 가입을 했습니다. 이제서야... 전화기가/전화 서비스에 가입했다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거죠. --- 이처럼... 전화, 철도, 전기, 심지어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서비스까지를 포함하는 '네트워크 산업'이 소비자들에게 의미있는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 수익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가입자 수가 필수적입니다. 헌데 말이죠!!! 전화 서비스 산업에서의 가입자 수 증가에는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답니다. 바로... 'critical mass(임계군)'라는 일정 수준의 가입자 수를 넘어가면 그 이후부터는, 서비스 제공 기업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망외부성(network externalities)'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서비스 제공 기업은, 초창기에는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가입된 가입자 수가 '망외부성'을 불러일으키는 이 critical mass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겁니다...라는게 1997년 제 석사 논문의 주제였었답니다. ^^;;
자! 왜 이 이야기를 했느냐하면... 이 '망외부성' 비슷한 게 '독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라는 걸 이 책, 「제노사이드」를 읽고 문득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독서가 (독서 감상문이라는 걸 써놓은 덕분에) 현재의 독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는 거, 또한 지금 읽고 있는 책으로부터 생겨난 호기심이 미래의 독서를 결정지어 주기도 한다라는 거, 하지만 이 긍정적인 영향들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독서에도 또한! critical mass를 넘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걸 느꼈다는 거지요. 이건 꼭! 양의 문제만이 아닌, 어쩌면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의 문제일 수도 있겠는, 뭐 그런 것 말이죠. 여전히 아직은 제가 이러한 외부성을 즐길만한 수준의 양과 범위를 충족시킨건 아닙니다만, 운좋게도 제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시간 속에, 제가... 진화론과 수학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었었다라는 게, 이 소설을 읽는데 있어 배가된 재미와 함께, 저에게 '이 소설을 읽는 이유'를 더더욱 확고히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주더군요. 그렇다면... 과연 '소설을 읽는 이유'라는 게 뭘까요? 제 생각엔 말이죠...
② 제 책꽂이에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살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읽을 것 같았던 「불평등의 대가 The Price of Inequality」라는 책이 한 권 꽂혀져 있습니다.
불평등이 사회에 해로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불평등은 비효율적이다. 부유층은 상위 1퍼센트의 이익이 나머지 99퍼센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어 주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중산층과 빈민층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오늘날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이 어떻게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 준다.
- <네이버 책소개> 중
지금 나 먹고 사는 것도 머리아파 죽겠는데... 라는 이유로 '사회의 불평등, 그리고 그 불평등이 초래하는 경제 성장의 저하' 등을 지금 제가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제가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제아무리 분노한다 한들, 저의 분노만으로 그 불평등이 시정되지도 않을테구요. 그리고 이건... 바로 이전에 올린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장 티롤 교수님이 받았다라는 사실에 제가 흥분감까지 느꼈다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이 질문 하나면 저의 입은 콱! 막혀버리잖아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는, 거기에 더해 '호모 루덴스'라고까지 부르는 이유가 바로... 현재의 내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며, 그와 더불어! (상상이라는) 지적 유희의 일 수단으로서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를 읽게 만드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사자가 사슴이라는 종(種)의 존속을 걱정해 자신의 허기짐을 참아내지는 않듯이, 사슴들 또한 자신의 무리들 중 유독 병약한 모습의 동료 사슴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 듯 그렇게... 우리가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루덴스의 특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즉 누구나 다!!!에게 이 작품 「제노사이드」는 더할 나위 없는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토리의 스케일이 가지고 있는 장대함도 그 유희의 증가에 한 몫 하겠지만 무엇보다... (캐내어 보자면 상당히 많은 주제들을 끄집어낼 수 있겠으나, 일단!)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 주제만으로도 독자 스스로 자신이 호모 사피엔스임과 호모 루덴스임을 깨닫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다라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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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개인의 인격 】
무서운 것은 지력(知力)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조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나? 겨우 20퍼센트다." --- 전후 미국은 이 20퍼센트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병사들의 훈련 방법을 바꾸었다고 소설은 적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확률의 증가가 아닙니다. 왜 애초부터 20퍼센트 밖에 안되는냐의 이유가 중요한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는 한 심리학자의 입을 빌어 죽여야 할 상대와의 거리, 즉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윤리적으로도 열등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철저하게 가르쳐두면 정의를 위한 살육이 된다. …… 살육병기의 개발은 적을 얼마나 멀리, 보다 간단하게 대량의 희생자를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미국의 대통령 번즈에게 이라크는 물리적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먼 상대였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또한 전쟁 개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쥐어져 있었지요. 천재 과학자 루벤스는 번즈의 이라크 침공이 '정의를 위한다'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석유를 노린 침략 전쟁이었다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루벤스는 곧... 자신의 금전욕을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사상으로 호도하는 정치가들 한 사람 한 사람도 이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참가자들이지만, 그들보다! 국가 기관인 대통령으로서의 번즈가 아닌, 개인/인간으로서의 번즈에 대해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게되지요.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혀서라도 식량이나 자원, 영토를 빼앗고 싶어 했다. 이 본성을 적에게 투영하여 공포를 느끼고 공격하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폭력의 행사에는 국가나 종교라는 세력이 면죄부가 되었다. …… 이러한 악으로부터 눈을 감고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동종 간의 살육을 비난할 만한 지성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조차도 이교도의 살해를 장려했다.
이러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아프리카의 콩고에 '본 적 없는 생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생물이 현생 인류를 능가하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첩보가 번즈 대통령에게 보고됩니다.
위협이란 '힘'이었다. 두려운 점은 핵폭탄의 파괴력이나 최첨단 과학 기술력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앎의 힘 그 자체였다.
첩보의 내용에는 이 생물체가 고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추상적 수학 사고 능력이 매우 뛰어나 40자리 합성수를 단 5초만에 두 개의 소수(素數)로 분리해내었다고 적혀져 있었었지요. 미국 NSA가 이 첩보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생물체의 수학적 능력, 정확하게는 소인수 분해 능력이었는데, 만약 이 생물체가 적국에게 넘어간다면 미 정보국/국방성의 암호가 무력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겁니다. 미국은 여러 첩보를 종합해 인류의 진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생물체를 '진화한 인류'로 간주하지요. 그리고! 바로 이 앎의 힘을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번즈 대통령은, 이교도 대신에 나타난 새로운 적인 그 '진화한 인류'를 말살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인류를 능가하는 지성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고하면 미국 같은 초거대국이 어떻게 대처할까? 역시 죽이려 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이익이 되도록 초인적인 지성을 이용하려 해도 지적으로 열등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지배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사전은 '제노사이드'란 단어를 '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떠올리게 되는 '제노사이드'에는 '대량 학살'의 이미지가 강합니다만, 이 작품에서 핵심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건 숫자의 문제라기 보다 '절멸'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번즈 대통령이 내린 명령은, 즉! 개인으로서의 번즈가 아닌, 국가의 인격 바로 그 자체로서의 의사 결정권자 번즈 대통령이 내린 명령이 바로 단 한 개체만이 존재하는 종(種)인 '진화한 인류'에 대한 제거, 즉! '제노사이드'였기 때문이지요. --- 유전자 변형 씨앗 하나는 우리 인간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관리할 수 없는, 어쩌면 자라나서 우리를 관리하려들지도 모를, 하지만 아직은 씨앗일 뿐인 것이 있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처가, 형식적으로는 국가의 인격을 가진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 작품은... 루벤스의 입을 빌어, 이 결정이 개인 번즈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이라 보고 있으며, 이는 어쩌면...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제노사이드'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작가가 독자와 함께 공유하길 원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제노사이드가 악한 행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만!
【 선과 악의 정의(definition) 】
지금부터 약 50년 전, 트루먼 대통령이 알버트 아이슈타인에게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만약 우주인이 지구에 찾아오면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를. 아이슈타인의 대답은 '결코 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류를 뛰어넘는 지적 생명체에게 전쟁을 건다한들,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대통령 과학 고문인 가드너 박사의 말
어설픈 기독교 신자로서 전... 지구 이외의 어느 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거의 확실히!'란 대답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에만 생명체를 만드셨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외계인이 과연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인류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외계인을 '인류를 뛰어넘는 지적 생명체'라 단언한 아이슈타인의 말은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아니죠. 질문 자체가 '우주인이 지구에 찾아오면'이었기에, 아인슈타인의 대답이 그러했던 것이었으니까요.
미국이 입수한 첩보는 아프리카에 있는 그 '본 적 없는 생물체'가 피그미족의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즉! 최소한 '우주인이 지구에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에도 '누스(Nous)'라 명명되어진, 그 '본 적 없는 생물체'는 초인적인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이 생명체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진화라는 현상에는 점진과 단속(斷續)의 두 가지 방향에서 생물종을 탄생시키는 미지의 메커니즘이 잠재한다. 그리고 이 주장은 우리 영장류에게도 해당된다. ……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간은 ……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 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발간된, 인류의 멸망 가능 시나리오를 담고 있는 <하이즈만 리포트>는, 현재 살고 있는 인류를 마지막으로 진화가 멈췄다고 하는 생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논리로, 인류가 아직 진화의 도중에 있다고 추론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바로 이 <하이즈만 리포트>에 근거하여 누스가 '진화한 인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었죠. 여기서...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침팬지 무리의 싸움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의 중반이 넘어가서야 독자는 알아차리게 됩니다. 정글 속을 진군하고 있던 네 명의 용병으로 구성된 '누스' 제거팀은 두 무리의 침팬지들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승패가 기울어지고, 승자가 패자 집단 우두머리 침팬지의 아이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본 한 용병, 믹이 승자 침팬지와 그가 살해하고 있던 어린 침팬지 모두를 총으로 쏴버립니다. 이 장면을 본 팀의 리더 예거는 믹의 행위가 어린 침팬지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승자 침팬지의 행위가 부당하다 느껴서였는지에 대해 궁금했지만, 결국 이를 그저 의문으로만 남겨 두지요. 하지만 이 의문이 결국...
그럼 새로이 탄생한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할까? 우리를 멸망시키려 들리라는 것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 그들이 본 현생인류는 같은 종끼리 살육의 나날을 보내는 데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기만 하느 과학 기술을 갖고 있는 등,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한 하등 동물이다.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생물종은 보다 고도의 지성에 의해 말살된다. 인류의 진화가 일어나면 얼마 안 가 우리는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되는 것이다.
<하이즈먼 리포트>는 위와 같은 결론을 '진화한 인류'에게 내리고 있었는데, 작가는 예거가 숲에서 보았던 침팬지 집단간의 전쟁을 종식시켰던 것이 결국 (침팬지 보다 진화해 있는) 인간이었다라는 점을 보여주며, 이 리포트의 결론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하이즈먼 리포트>를 작성했던 하이즈만 박사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확인시켜 주고 있기도 하지요.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일찍이 지구상에 있던 다른 종류의 인류, 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네. …… 우리가 살아남게 된 것은 지성이 아니라 잔학성이 이겼기 때문이야. …… 현생인류는 다른 인류와의 공존을 바라지 않았다네. ……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미국 정부는 '진화한 인류'를 끝까지 제거하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습니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는 미국에게 불리해지기만 합니다. 이 때 등장하는 하이즈만 박사의 한 마디, "누스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네. 침팬지에게 습격당하면 인간도 당연히 역습하겠지. 그걸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말은, 누스와의 대결이 '인간과 침팬지의 대결'이라는 진화 단계가 다른 두 종간의 대결에서 우리 인류가 약자의 입장에 놓여져 있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은 누스를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이지요.
승산이 없는 우리로서는 누스의 의도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네. …… 어떻게 지느냐,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네. …… 인류와 초인류 사이의 힘 관계는 인간과 신의 관계와 동등하지. 어쨌건 상대는 초월적인 힘으로 반격하고 있으니, 거기서 누스가 선택한 것은 신의 전략이네. 처음에는 인간에게 협조하려 하지. 그에 반해서 인간이 배신하면 뼈아픈 보복을 하고, 인간이 협조하면 즉각 그 쪽도 협조를 해 주겠지. 복수심 따위는 없어.
한 마디로, 누스와 인간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 전략을 서로 들고 맞서고 있으며, 인간이 누스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누스로부터 최대한의 호의를 이끌어내야한다라는 것이 바로 하이즈먼 박사의 충고였습니다. 헌데! 우리가 만약 하이즈먼 박사의 이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한 가지 이율배반적 문제가 튀어나오게 되지요. 다름 아닌... '제노사이드'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른 제노사이드는 분명 '악'이라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애초에 미국이 누스를 제거하려 했던 것이 과연 '악한 행동'인가라는 거지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에는 복제된 인간을 바라보는 실제 인간의 인식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 인간의 심리에는 이처럼 스스로 단순해져버림으로써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습성이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습성이 실제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라면, 그렇다면!!! 아마도 현생 인류가 '진화된 인류'인 누스를 제노사이드 해버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 또한 누스를 '별개의 존재'로, '인간 이상의 존재'로 인식해버린다면, 그리하여 누스와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어버린다면 그 때에는... 이 제노사이드는 '악'이라 불리워질 수는/조차 없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메세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물론, 스토리의 마지막 결말을 보며, 저의 이 해석이 틀렸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이 작품의 결말을 이렇게 낸 것은... 그 반대의 경우로 결말이 지어졌다면, 어쩌면 진화라는 것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모순을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추측을 곁들여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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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행위에 대해 그것을 반드시 '선' 혹은 '악'으로 규정지어야하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제노사이드와 같이 '악'이라 확실하게 규정지어진 이 개념에 대해, 이것이 언제나 '악'이기만 한 것일까,라는 새로운 시선을 던져준 이 작품은, 또한 그런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숙제를 남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이 왜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앞으로도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그런 호모 루덴스로서의 독자가 되는 것만이, 이 훌륭한 작품을 써 준 작가에 대한 옳바른 예의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초반부의 약간 지루한 부분을 지나, <2장>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책을 덮지 못할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가진 이 소설, 읽는 내내... 분명! 영화로도 만들어지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 작품을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와 비교하는 감상문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스케일이나 이야기의 빠른 전개 등은 비슷할지 몰라도, 결국 독자에게 남겨놓는 질문의 무게만큼은 사뭇... 「궁극의 아이」와 비교한다라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분명... 한 때의 유행으로 읽혀져서만은 안되는 작품이기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죠.
※ 읽어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책 : 「13계단」
※ 함께 읽으면 좋은 듯한 책들
- 장용민 作, 「궁극의 아이」 : 재미 하나 만큼은!
- 가즈오 이시구로 作, 「나를 보내지마」 : 나와는 별개인 존재를 향한 (진짜) 인간의 심리!
- 김영미 著, 「세계는 왜 싸우는가?」 : 도대체 왜?
- 주제 사라마구 作, 「예수복음」 : 선과 악의 상대성에 대한 충격적 묘사!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 :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면?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악의(惡意)」 : '이유없는 악의'의 이유를 찾아서!
- 전종환 著, 「오래된 연장통」 : 그러니까 '진화'란 뭐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