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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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사소하다라 생각하는 것. ---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었을 수도, 혹 고개를 숙이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의 감사를 표시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또는... 누군가의 일생에 걸친 최대의 숙제가 될 수도 있다!라는 사실.  


● 생선회 한 점, 그 위에 편마늘 하나, 다시 그 위에 회 한 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회를 먹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앞에 이 햄버거스런 생선회가 있다해도 숟가락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어요. 생선회를 먹을 땐, 나무 젓가락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나무 젓가락으로도 집을 수 없는, 이런 햄버거스런 모양으로 먹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는 생선회를 먹을 때에도 반드시 수저를 필요로 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회를 왜 수저로 먹냐?' --- 이런 저에게 이 소설은, 솔직히 말하자면... 쇠젓가락 한 벌만 주면서 얇게 썬 복어회에 미나리 돌돌 말아 싸먹으라 말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맛있다고들 하니까 먹어보고는 싶은데, 살짝 대 본 혀끝은 이거 정말 맛있을 거 같아!란 생각을 저에게 해주는데... 제 앞엔 나무 젓가락도 아닌 쇠젓가락이 놓여져 있고, 게다가! 수저도 없는 상황. 이 길지 않은 작품을, 뭐... 그렇게 쇠젓가락만으로 어쨌!든 복어회에 미나리 말아 힘들게 먹어내긴 했는데...   

 

(제가 쓰는 감상문들이 대부분, 책을 소개한다기보다는, 이미 그 책을 읽어본 분들을 머리에 두고 쓰여진 것들입니다만 특히!나 이번 감상문은 절대적으로 이 작품을 읽어본 분들만을 상정하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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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읽었었던 소설들 중, '개인적 감정'에의 한도내에서... 읽고 난 후 저의 마음 속에 가장 날카로운 바늘이 되었던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를 꼽게 됩니다. 만약 하나를 더 꼽아보라 한다면 류전윈의 <닭털같은 나날>이 간발의 차로 그 뒤를 잇게 되지요. ---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바늘의 우연스런 공통점은 모두!!! 그 마지막 문장에 가서/마지막 문장으로 저를 무너뜨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두 작품을 읽었을 때엔, 이미! 이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무너질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고있기에 처음부터 작품 속 주인공에게 소위 말하는 '감정 이입'이라는 게  무서우리만치 생겨났었었지요. 만약!!! 그 '감정 이입'이라는 걸 용케, 작품의 결말을 알지도 못한 채, 억지로라도 이 소설 「인간실격」의 시작에서부터 해낼 수만 있다면, 만약 그렇게...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는 소설의 두 번째 문장에, 주인공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쓴 수기의 두 번째 문장인 이 말에, 전적인 동의를 해주고 시작할 수만 있다면만약 독자가 '나에게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일을 해서 벌어먹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만큼 난해하고 애매모호하고 그러면서도 협박의 여운을 강하게 풍기는 말은 없습니다'라는 그의 독백을 그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않아 준다면... 이 작품은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질 꺼라 생각합니다.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의 말년에 가서까지도 '내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라 고백하게 만드는, 그의 인생, 결국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 규정해버리는 그 인생이 바로...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일을 해서 벌어먹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이 말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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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이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는 불안감, 나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고 자칫 미쳐버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주인공은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시코라는 여자와 결혼한 후의 얼마간, 단지 행복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희망을 '어렴풋이 가슴속에서 키워'갔던 그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었지요. 그 원인이야, 참!으로 많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참으로 독특한 주인공에게는 아마도 다음의 한 문장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서로 사기를 치면서도 다들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가 인간의 삶에 가득한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도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 같은 인간이 내게는 난해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이 '인간의 난해함'을 극복해보려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하면 뭐든 다 주신다는데 그게 정말이냐?라 묻는 시게코의 질문을 받고는 그 스스로 "나야말로 그런 기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냉정한 의지를 주시옵소서. 내게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라 속으로 외쳤기도 했었을만큼, 그의 마음 속에는 '인간의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같은 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신의 사랑은 믿을 수 없었고, 신의 처벌만을 믿었었던 그는, 지옥은 믿어져도 천국의 존재는 믿어지지 않았다 말하는 그는 결국... 주위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집니다. 그렇게...

 

이제 나는 죄인은 고사하고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뇨, 결단코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미쳤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아, 미친 사람은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는군요. …… 이곳을 나가더라도 나의 이마에는 미친 사람,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겠지요. 인간실격. 이제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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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독자 대부분은 아마도... 주인공의 '단 한 순간이라도 미쳤던 적은 없습니다'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미친 사람은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는군요'라는 말 또한 정말 그렇지 않나요? 미친 사람치고 나 미쳤어요라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의학적 개념이 아닌) 상식의 잣대로 보았을 때... '자신이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이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가졌던 주인공의 행동들로부터 주변의 사람들이 '그는 미쳤어'라는 생각을 한 것 자체는 어찌보면 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당시 어쨌든 분명 굉장히 심한 약물중독 상태였었으니까요. --- 제 생각에!!! 주인공 또한 자신에게 정신병원에 한 번 입원한 경력이 생겼다라는, 단지 그 사실만으로 스스로에게 '이제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라 선고를 내린 건 아니었지 싶습니다. 그렇담?...

 

바로 앞서 읽었던 「도련님」의 (유클리드 공간의 사고를 하고 있었던) 주인공에게는 '학교'라는 (비유클리드) 공간을 떠날 수 있는 자유도, 그리고 떠나 머물 수 있는 다른 공간도 있었습니다. 설정 자체가 '학교'라는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실격」의 주인공이 설정해 놓은 공간은 '인간의 삶 자체'라는, 더 이상 커다랗게 설정되어질 수 없는, 고로 여타의 다른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이었던겁니다. 물론!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그 공간을 떠날 수 있는 자유는 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건 다름아닌 생의 마감일 수 밖엔 없는 것이었지요. --- ① '이제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라는 주인공의 자책에서의 '인간'은 이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도 없는 그 공간 자체를 의미한다고,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는, '난 아빠/남편/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없어'에서처럼 어느 특정 '사회적 신분/위치'와 같은 의미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자신이 속해지지 못했던 '인간'이라는 공간에 적응하지 못한 것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전 이 소설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이 만나 서로 얽히고 설켜 살아가고 있는 '인간 사회'라는 것에... 서의 자신을 작가 스스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 기 때문에 말이죠.


'음지인(陰地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배자, 악덕한 자를 가리키는 말인 모양이지만, 나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음지인인것만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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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마시지 못한 한 잔의 압셍트. …… 나는 영원히 보상받기 어려운 그 상실감을 나 혼자 그렇게 표현합니다.

 

작가의 생애를 읽어보면, 이 작품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아채게 됩니다. --- 영화배우란 직업이 너무너무 해보고 싶다라 제 블로그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영화배우처럼 (비록 영화 속에서지만) 수많은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다른 직업은 없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자신의 과거를, 이처럼 하나의 문학 작품의 형태를 빌어 타인들에게 (비록 100%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에 또한 매력을 아니 느낄 수 없겠지요. 물론!!! 이 작품처럼 불행한 삶을 가졌었다라는 것 자체는 부러움의 대상도, 매력의 원천도 아니겠습니다만, 최.소.한! 이런 수준의 아름다운 표현으로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다라는 건 분명!!! 작가로서 다자이 오사무를 바라보는 독자에게는 부러움과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은 틀림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손 체조만 좀 했어도 그의 우울은 치유됐을 것'이라는 (몸 좋은!) 미시마 유키오의 냉소가 사뭇 고개를 끄덕이게도 될 만큼, 저같은 사람이 이해하기엔 정녕 버거운 일생을 보여준 작가가 쓴, 자신의 이야기스러운 이 소설... 은, 작가의 실제 일생만큼이나 읽고 이해해내기에 정말! 많이 어려웠더랬습니다. (한 번 더!) 그럼에도 희한하게...


동화되고는 싶었었으나 끝내 동화되지 못했던, 그러했기에 스스로에게 '실격'이라는 판단을 했었어야 했던 주인공이... 이 공간을 떠나 속하게 될 다른 공간에서는 부디 남아있던 한 잔의 압셍트를 다 비워낼 수 있었었기를, 그리하여 이 공간에서는 차마 채우지 못했던 그 상실감을 끝내는 다 채웠기를, 이상스럽게도 제가 다 바래어보게는 되더군요. 다자이 오사무가 묘... 하게 매력적인 작가임에는 틀림 없는 듯.  

 

 

※ 본문에 등장하는 작가/작품

- 나쓰메 소세키 作, 「도련님

- 미시마 유키오 作, 「금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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