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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합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읽어갈 때는 잘 못느꼈는데, 다 읽고나서도 금방은 잘 느껴지지 않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더 기억에 남게 되는 소설들이 있지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이라는 작품이 바로 그런 소설들 중 하나였었습니다. 우선... 어설프게 써놓은 그 작품의 짧은 감상문을 먼저 읽어보시겠어요?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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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작가는 「변신」에서 뇌의 일부가 다른 사람의 것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나인 나, 내가 아닌 나. 나는 누구인가?"에 관해 물었었습니다만, 이 작품 「비밀」을 통해서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1인칭의 질문 대신 '나는 아버지이면서 아버지가 아니다. 남편이면서 남편이 아니다. …… 내가 잃어버리는 사람은 아내인가 딸인가!'라는 3인칭의 시점 - 화자를 지칭하는 시점의 의미라기보다는, 「변신」에서는 변화된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변화된 사람의 남편/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변화된 사람을 바라보는 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라는 의미에서의 3인칭 시점 - 을 통해, 즉 관계의 모호함이라는 설정을 통해 「변신」에서와 같은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뭔... 소리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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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8년이 그랬듯이 오늘도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가 될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기보다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피라미드를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도 자신이 놀랄 만한 뉴스가 흘러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가령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의 하루가 시작될 때, 우리가 하는 생각 그대로 주인공 헤이스케도 이전의 일상과 다름없는 하루가 또 이어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나오코)와 초등학교 6학년인 딸(모나미)이 탄 버스가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났고, 아내는 심한 외상으로 사망하였으나, 딸 모나미는 엄마의 희생으로 외상 없이 뇌에만 손상을 입게 됩니다. 아내를 잃은 헤이스케는 딸마저도 식물인간이 될지 모른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었는데... 기적적으로 딸 모나미가 깨어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소설을 읽어감에 있어, 의학적으로 이런 현상이 가능하냐의 여부를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거니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 요소로까지 작용한다라 생각합니다. --- 의식을 되찾은 딸 모나미. 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모나미의 것이었지만 정신은 완벽하게 자신의 아내 나오코였던 것입니다!!! --- 이런 엄청난/말도 안되는 일을 두 당사자가 너무도 쉽게 받아들였다라는 비판 또한...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꺼란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설정을 통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안겨주는 잔향이 너무도 길기 때문이지요.
이제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한 가지는 바로... 이 작가가 작품 속 소단락의 제목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짓는다는 것이었었습니다. 이 작품 「비밀」에서도 이러한 작가의 능력은 여지없이 발휘되어, 한 소단락을 다 읽고나면 그 소단락의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꼭 들어맞는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었지요. 작품 속 소단락들의 제목 몇 가지를 인용해... 이 소설을 읽고 제게 남겨진 잔향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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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가 딸인가>
당연한... 의문입니다. 겉모습은 초등학교 6학년생 딸인데, 하는 행동이나 말은 모두 완벽하게 자신의 아내이니까요. 하지만 소설은 이 도입부, 그러니까 이런 뒤바뀜을 대하는 주인공 헤이스케/나오코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이보다는 다른 부분을 이 소설의 주제로 정하고 싶었기 때문이아닐까하는 막연한 추측만을 해볼 뿐입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비중이 소설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위에도 적었듯이... 이 소설의 백미는 이런 설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슬픔으로 자리했다. …… 그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 나오코는 자신이 딸의 영혼을 내쫒고 몸을 빼앗은 것이라 자책하지만, 여기서 헤이스케는 오히려 '당신이 모나미의 몸을 구한거야'라는 말로 그녀를 위로합니다. 이런 위로 덕분인지 아내 나오코는 딸의 몸을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오래지 않아 마음의 적응을 하게 됩니다만, 정작 헤이스케 자신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지요. '내가 잃어버리는 사람은 아내인가 딸인가!' (이 소설은 철저하게 헤이스케, 즉 제 3자의 시선으로 진행되기에 변화의 당사자인 나오코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어쩌면... - 발표 순서는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 온전히 「변신」이라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 추측을 해보게 해주더군요.)
<육체의 장벽 / 어색한 부부>
뭐 당연히... 대중소설을 읽는 '대중'으로서 가져보게 되는 의문입니다. 애정이 넘치는 부부사이였던 헤이스케와 나오코가 과연... 부부관계를 어떻게 가졌을까,하는 의문말이죠. 물론!!!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아내이지만, 눈으로 보이는 육체는 엄연히 자신의 딸이기에 헤이스케는 (아내이자 딸인) 그녀와 성관계를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 자체까지를 봉쇄해버릴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헤이스케는 자위로 그 욕구를 해결하는데, 그때마다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인은 아내의 나오코의 모습이 아니라, 딸 모나미의 담임 선생님인 다에코였었었지요. 하지만!!! 헤이스케는 진심으로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었었기에, 그 이외의 어떠한 성적 일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상황도 모르는 채, 재혼하라는 주변의 권유, 심지어 장인의 권유마저도 거절한 채 딸의 모습을 한 아내와 계속 둘이서 살아갔지요. (다에코라는 인물은 이처럼 헤이스케의 심적 방황을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로서만 사용되는 인물이었던겁니다. 뭐... 이 정도 스포일러는 별 문제가 안될듯,이라 믿. --;;)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비단 육체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단 둘이만 있을 때에는 서로 부부간의 호칭을 불렀고, 타인들 앞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보여지려 노력했습니다만, 순간순간 발생되는 실수들까지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었었지요. 모나미(실제로는 엄마인 나오코)의, 그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한 정신 세계는 친구들 뿐 아니라 담임 선생님에게도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만, 어찌어찌... 둘은 그러한 상황들에 점차 적응해나가게 됩니다.
<흔들리는 마음/ 질투>
자... 이제부터가 제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질문을 해보지요. 물론! 실현가능성 0%의 상황이기에 상상의 나래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되며, 그러한 상상의 나래는 대부분...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후회의 재발방지를 다짐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지곤 합니다. 작품 속 나오코도 또한 다르지 않아서 --- 30대 중반의 정신 연령인 초등학교 6학년생인 나오코는 자신이 나오코의 육신으로는 하지 못했었었던 것들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간단히 말해, 공부 열심히 해서 뭔가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그녀는 의대에 진학해 뇌과학 분야를 연구해보겠다는 희망(?)을 남편 헤이스케에게 피력합니다. 그리곤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지요.
이제... 헤이스케와 나오코의 사이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었던 간극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전히 흘러가는 시간은 헤이스케에게는 40대의 볼품없는 남자로서의 길을 재촉하는 반면, 나오코에게는 자신의 목표가 조금씩 실현되어나가는 희망의 계단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지요. 여전히 '남자로서의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헤이스케이지만,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나오코에게는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점점 성숙해져가는 모나미의 모습을 보며, 헤이스케는 여전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내인지 딸인지, 그것조차 이해할 수 없'어 합니다. (모나미의 몸 속에 존재하고 있는)나오코 또한 어느 순간부터, 이전에는 당연시했던 함께 샤워하는 것을 꺼려하게 되지요. 그녀는 그렇게 변해 있는 자신을 자책하며, 헤이스케 앞에서 울부짖습니다. "이렇게 무너져가는 건가요?"라고 말이죠.
이 작품의 전개는 사실 충분히 예상가능한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기는 합니다. 육신과 정신의 간극을 보통 사람이 이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이런 간극을 대하는 헤이스케의 다음 질투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하지만! 이런 말을 한 헤이스케 역시 마음 속으로는 엄청난 갈등을 하고 있을거란 짐작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모두... 공감되어질 수 있을테고 말이죠.
당신한테 평범하게 행동할 권리는 없어! …… 잘 들어. 당신은 내 아내야! 아무리 모습이 모나미라고 해도, 당신이 내 아내라는 사실에서는 도망칠 수 없어! 당신은 젊은 육체를 손에 넣어 다시 인생을 시작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녀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벽한 여고생으로 사람들 속에 융화되어 있는 것을 보기가 두려웠다. 그것을 확인했을 때 자신이 맛보게 될 상실감이나 고독감, 초조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자신은 추악한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젊음을 손에 넣은 나오코를 질투하고 있다. 그런 나오코와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젊은 남자들을 질투하고 있다. 동시에 나오코에게 연애감정이나 육욕을 가질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저주하고 있다. …… 그는 화내고 싶어도 화를 낼 수 없었다. 그 대신 나오코와 자기 사이에 놓여 있는, 영원히 메울 길 없는 늪의 존재를 인식하고 견딜 수 없는 서글픔을 느꼈다.
헤이스케의 이러한 질투/주장을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라 생각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수 있을꺼라 생각합니다만, '만약 내가!!!'라는 상상 속에서는 저 역시... 헤이스케와 똑같은 말을 하게되지 않을까싶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결말지어내야 하는가 따위는, 최소한 지금 당장엔... 우리의 고려 대상이 아닌거라구 말이죠.
그렇다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엄청난/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수습시켜놓았을까요? 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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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길을 선택한다"
(제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결론을 말해주고 있는 메세지입니다. 이 생각에 대해 주인공 헤이스케는 애초에는 분명하게 반대의 입장을 보여주었었어요. 자신은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라구 말이죠. 하지만!!!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마무리짓는 장면에서는 결국... 헤이스케가 이 말에 동의하였다라는 것이 은연중에 보여집니다. --- 사고 이후, 이제까지의 삶이 일종의 연극이었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연극을 진짜 현실로 바꾸어 버리는 것에 결국 헤이스케와 나오코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어찌어찌해도 결코 해피엔딩을 도출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의 해피엔딩을 선택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과연!!! 이 결말이 둘 중 어느 누구에게 더 커다란 해피엔딩일 것이냐는 독자마다 다 생각이 다를 것 같지만,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을 가지게 되는듯 보이는 헤이스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길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 (이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지/불러도 되는지까지는 자신없으나) 최소한의 불행만을 안겨주는, (그리하여) 가장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바로... 소설의 결말이기도 하지요.) 비록... 헤이스케가 이러한 결말을 받아들이면서는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내어 울었!지만 말이죠. (이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땐, 웬지 제가 헤이스케가 된 듯 꽤나 슬퍼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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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작가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이지만... 추리가 등장하지 않는 그의 소설들 - 「변신」, 「레몬」, 「방황하는 칼날」, 「비밀」 등 - 에서도 그의 매력이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등의 추리 소설들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발휘되고 있지 않나,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소설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까지 느끼게도 되는... 그런 작가입니다.
이 작품 「비밀」은... (일반적으로 독자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기대하는) 스릴넘치는 추리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의 다른 작품 「변신」과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꽤나 오랫동안, 여러 모습의 잔향들을 계속 만들어내줄 듯 싶네요. 어느덧 13편의 작품들을 읽었습니다만, 여전히... 훨씬 더 많은 그의 작품들이 남아 있으며, 여전히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라는 사실이 못내... 행복!하기만 합니다.
★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 : 「용의자 X의 헌신」 · 「편지」 · 「마구(魔球)」 · 「변신」 · 「도키오」 · 「레몬」 · 「방황하는 칼날」
★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발간순) : 「졸업」 - 「잠자는 숲」 - 「악의(惡意)」 -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 「내가 그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