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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지음, 조군현 옮김 / 사군자 / 2012년 11월
평점 :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아주 대놓고,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다 까발려놓고 시작하는 책입니다. 장하준 교수가 (이제 막 읽으려 하는 책인) 「경제학 강의」의 처음에 써놓은 "이 책을 읽는 법"을 카피해본다면, <들어가는 말>과 <1장. 뿌리 : 경제학이 문제다>만 꼼꼼하게 읽는다면 이 책의 핵심은 모두 다 이해하게 될 정도로 말이죠. --- '왜 우리는 중세의 농부들보다 더 오래 일을 해야하는가?, '왜 영국은 초콜릿 와플을 수출하고 또 그만큼 수입하는가?', '왜 월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투표율은 하락하는가?' 등의, 매우 흥미로운 8가지의 주제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해 본다면... '전통경제학'(이기적 경제학)을 호되게 비판하며, '새로운 경제학 The New Economics'(이타적 경제학)라는 이름으로 그에 대한 대안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 <들어가는 말>에서 제시된 전통경제학의 문제점들 중 (제가 생각하기에) 뼈대가 되는 세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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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출현한 이래 20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자본주의를 지지한 전통경제학의 주장이 옳았다면, 그들이 말한 경제성장으로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빈곤이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0년 동안 전 기간에 걸쳐 빈부 격차가 좁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확대되어 왔다. 전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빈부 격차도 '확장과 분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넓게 퍼져나갔다. …… 경제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중세 시대 때 공동토지에서 일했던 평범한 농부 한 사람이 연간 15주 정도 일하면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년 동안 유래없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중세시대의 소작농들보다도 더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200년 간의 경제성장의 결과로 우리의 삶이 더 가혹해졌다고 주장한다하여, 저자들이 '성장'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 '새로운 경제학' - 역시 성장은 앞으로도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전통경제학이 이제껏 우리에게 제시해왔던 '성장에 대한 해석'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라 지적하고 있는, 즉 전통경제학의 근본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거지요.
저자들은 전통경제학이 경제성장을 오로지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하고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일반적으로 화폐의 근원적 기능을 '가치의 척도'와 '교환의 수단'으로 적고 있는데, 저자들은 이러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 화폐는 엄연히! 인간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음을 전통경제학이 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국가에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돈으로 환산한 수치'인 국내총생산(GDP)는 분명 국가 경제의 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인데, 현재에는 이 <수단>이 국가 경제활동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매년 '목표 경제성장률'이라는 게 발표되지요. 심지어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도 등장하는. --;; )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는 열대우림의 파괴, 공해, 범죄 등을 경제성장의 대가로 치러야하는 부작용들을 (그 이름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외부효과'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제외시켜버리는 반면, 이러한 부작용들을 교정하기 위한 경제활동들 - 예를 들어 농약, 총기류 등의 제조 - 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인으로 상정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낳게합니다. 이런 기준의 '경제성장'은 결코 발전이 아니며, 오히려 (전통경제학자들이 변화 혹은 진보라 칭하는) 경제성장으로 인해 삶의 질은 ,어떤 면에서는 실질적 소득마저도, 더 저하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저자들의에 따르면, 유럽에서만도 천이백만 명에 이르는 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전통경제학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이른바 '다운시프팅(downshifting)' - 더 큰 행복을 위해 돈을 적게 벌고 적게 쓰는 현상 - 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헌데 문제는 이러한 '다운시프팅'의 삶은 전통경제학에서 상정하고 있는 '합리적 인간'의 '합리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전통경제학은 '소득의 극대화를 통한 소비(효용)의 극대화'를 하나의 공리(axiom)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류경제학만을 배웠었고, 그러하기에 (저자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전통경제학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저에게, 저자들의 이 주장은 진심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 현상을 알아채지 못했었기 때문이지요. 저자들은 전통경제학은 여전히 '다운시프팅'과 같은 현상에 대해 극히 예외적인 일부라 폄하하고 있다지만,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라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저자 노명우 교수의 말을 떠올려 볼 때, 엄연히 사회과학의 한 분야인 경제학은 현재 현실에서 보여지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그 원인부터 시작되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전통경제학의 내용에 적잖은 수정이 가해져야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만 됩니다. (다만! 저자들의 주장대로 과연 전통경제학이 이러한 비난을 받아들이느냐/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겠지만서도...)
이러한 전통경제학의 오류를 저자들은 '벽 자체보다는 벽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과 같다'라 비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통경제학은 '성장의 목적은 빈곤 퇴치이다. 하지만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선 성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 일단 경제를 성장시키자! 그러려면 우선 가진 자들을 (더 많이 가지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자/이미 부자가 된 국가들의 국민이 소비량을 더 늘리게 하자'는 '낙수효과(trickle down)'를 주장한다는 것이지요. - 사실 이 '낙수효과'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전통경제학 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Five Zombie Economic Ideas That Refuse to Die" 참조 -
새로운 경제학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낙수효과'와는 반대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직접적으로 늘려 소득을 증가시키면 결국 '소비증가 - 생산투자'로 이어지게 됨으로 경제활성화와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게 된다라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trickle up)'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낙수효과'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되는 환경 파괴나 공해등의 비용을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시킬 뿐, 정작 경제성장의 과실은 온전히/여전히 부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한다는 것이지요. 전통경제학도 지지않고 '그렇다면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대가로 치러야 할 비용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 되묻는데, 이에 대한 새로운 경제학의 대답은 한 마디로 매우 시니컬합니다. : "하기야 100층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마지막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까지는 하나도 안 다치고 멀쩡하긴 하지."
이처럼 전통경제학의 '수단과 목적의 전이'를 비판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② 지금의 경제시스템은 인간이 가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돈이 가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더 소중한 사람과 생태환경이 지닌 가산 가치는 보지 못한다. …… 전통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의 목표가 어떤 상황에서든 물질적인 부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즉 (GDP의 증가로만 대변되는) 경제성장이 최선이라고 가정하는 바람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 가운데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좁은 의미로 세상을 제한하였다. …… (다시 말해) 전통경제학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부 wealth'로 인식하는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 '부'의 개념을 물질적인 측면으로만 좁게 정의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삶의 폭도 좁게 만들어버렸다. …… (그 결과)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가치들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 이런 생각이 사회 조류 속에 강하게 스여들어서 일반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물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느냐가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원천이 되었다. …… (그 결과)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나면 행복의 크기도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많은 행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 현재와 같이 물질적인 부만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에서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요구되고, 이런 경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욕망을 부채질해야만 한다. 그 결과 개인들은 새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계속해서 또 벌어야하지만,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과 박탈감으로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불만이 쌓여가며 삶의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 따라서 더 이상 이런 무의미한 '경제성장'으로 '삶의 질'을 맞바꾸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비효율적이며 자원을 낭비하는 태도인 것이다.
새로운 경제학이 주장하고 있는 것들을 읽으며,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내내 떠올랐었습니다. 와타나베 이타루도 "(마르크스 사후) 150년이 지나 사회는 확실히 편리해지고 물자가 넘치게 되었다. 그래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강요되는 가혹한 환경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가?"라 는 물음으로 책을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해 경제를 뒤룩뒤룩 살찌게 한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이윤만 늘면 된다. GDP만 키우면 된다,"라는 비판 의식도 가지고 있었었지요.
새로운 경제학은 '물질적 부'와 '진정한 부' 사이에 놓여있는 거리를 좁히자라는, 즉 명목상의 성장보다는 인간의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하는 '실질적인 부'를 추구하자는 주장을 하며, 이를 위해 GDP를 대체할 대안을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만족도 ·자기실현의 삶 ·사회적인 삶의 질 등이 우선시되는, 그럼으로써 물질적인 부를 원래의 올바른 위치로, 즉 물질적인 부를 단지 삶의 필요한 수단으로만 평가하자라는 것이지요. 이럴 때에야 (현실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하지만 전통경제학의 시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비로소 돈은 적게 벌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즐기면서 생활의 여유를 가지고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다운시프트족이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윤리적 선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려는 결정들이 이해/설명될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경제학은 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한다. 물질적인 부는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삶에 필요한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경제학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p38)
'물질적인 부를 삶의 필요한 수단으로 평가하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역시나 '수단과 목적의 전이'를 되돌리자라는 점에서 동의를 할 수 있습니다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물질적인 부'와 '실질적/정신적인 부'간의 우선 순위를 무엇으로 해야하느냐에 관해서는 선뜻! 새로운 경제학의 주장에 제 발을 옮겨놓게는 되지 않더군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왜 전통경제학이 현재처럼 '수단과 목적의 전이'라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해 새로운 경제학은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습니다.
③ 원래 경제학은 도덕 철학의 한 분야로 시작되었으며, 경제학이란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학문이다. 이것이 경제학의 본질이다. 그러나 전통경제학은 인간의 도덕과 인본주의적 면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무시한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나 확대만을 강조하는 현재와 같은 이런 편협한 경제시스템을 낳았고, 진짜 추구해야 할 세계의 가치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인간과 환경의 가치를 소진하는 데 돌진해왔다. …… 새로운 경제학은 시장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 소통이 필요한 것처럼 재화와 서비스를 배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움직이는 요인에 가격보다 더 중요한 다른 가치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돈보다고 가치 있는 일을 하려하고, 이타적, 윤리적 및 친환경적 소비행태 등 가격과는 상관없는 요소들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전통경제학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야말로 경제의 궁극적 작동 원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모든 사회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해내려 하고 있는 거지요. 이 책에서는 헌혈의 경우를 예로 들어 전통경제학이 인간을 이성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잘못된 가정들 때문에 경제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정책 실패를 가져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와있는 헌혈의 경우는 전통경제학에서도 '역선택'이라는, 일종의 시장실패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시각으로 전통경제학을 비판하는 것은 이 책보다는 오히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저자 마이클 센델의 설명이 더 정확하지/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센델 교수는 '시장의 교환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재화의 가치를 변질시킨다'라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성적이 좋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주겠다는, 일종의, 성적과 돈의 '시장 교환거래'는 공부를 잘하게 하려는 부모들의 본래의 의도완 달리, 아이들로 하여금 돈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장적 인센티브(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돈)가 비시장적 인센티브(학습 자체에 대한 열정의 결과/부산물로서의 좋은 성적)를 밀어내기 때문이라는 게 센델 교수의 설명이지요. 이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까지 모두 '시장의 교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게 되면 결국 시민적 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사회의 모든 도덕적 덕목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입니다. 결국 '시장의 공정성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전통경제학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는, 조나단 와이트의 「애덤 스미스 구하기」에 나오는, 현세에 환생한 아담 스미스의 발언들을 옮겨 놓는 것이 더 깊은 이해를 도와주지 않을까 싶네요. 좀 길지만 인용해 보자면...
심지와 밀랍만 있으면 뭐 하나. 정작 산소가 없으면 양초는 탈 수 없지. …… 나는 전반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의 움직임에 만족하네.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 시장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핵심 요소를 자네들이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야. …… (핵심 요소는 바로)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추적인 힘이 되고,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의 기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얘기야. …… 나는 과도한 노동 분업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했네. 인간의 고귀한 본질이 소멸되고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야. …… 시장은 절대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어. 사람들과 공존하며, 바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지. 시장의 힘이 비인간적이라고 해서 사람들까지 비인간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거야! …… 시장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사람인 나까지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뜻이지.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만 안달이지. 부가 삶의 최종 목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건 잊은 채 말이야. …… 어떤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까? ……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바로 '마음의 평화'라네. 평온한 존재감! 그거야 말로 행복의 근원이지. …… 인간은 분명 물질적인 발전 뿐 아니라 도덕적 성숙을 위한 방법 역시 터득할 필요가 있어.
이제 읽기 시작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장하준 교수 또한 경제 문제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에 직접 와닿지 않는 이야기 (p14)'가 되어있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새로운 경제학이 주장하고 있는 바는 결국 위에서 인용한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심리학적이고 생물학적이었던 원래 경제학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 경제학의 도덕적 뿌리를 되찾자는 것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잘못된 경제학이 낳은 문제점들을 다시 경제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일견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들은 '나와 너가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의 '이타적 경제학'이야말로 '이기적 경제학'이었던 전통경제학이 낳은 문제점들을 해결해낼 수 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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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학자가 아닌 언론인들이 쓴, 그리고 영국인들이 쓴 책인지라 영국의 현실이 주로 등장하는 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현실과 과연 합치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드는 부분도 적잖게 있기도 했었었네요. 또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지않느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도 몇몇 있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표현을 따르자면) 전통경제학만을 배웠었던 저에게 이 책의 주장들은 적잖이 신선했었고 유익하기도 했었다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외에도 신자유주의라 불리우는 현재의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대한 비판 또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통경제학에 대한 거의 모든 비판이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촉발된 세계적 금융 위기 이후의 현상들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라는 것이, 뒤집어 보자면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학 The New Economics'의 약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는 되더군요.
'소득이 많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게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늘어나는 개인 빚과 국가부채 때문이다'라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을까도 싶은) 저자들의 일갈을 다시 한번 「애덤 스미스 구하기」를 읽고 적었던 감상문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졸라 긴 --;;) 감상문을 마칠까 합니다. 아담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가, 단지 그가 「국부론」의 저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다음의 표현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싶네요.
21세기에 팀스의 몸을 빌어 등장한 애덤 스미스는 "행복이란 평온함 가운데 존재한다. 건강하고, 남에게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며, 명석한 의식을 소유한 자가 지닌 행복에 그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부의 증대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오두막이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 응당 속도 편안하고 잠도 달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가 너무도 분명하고, 빈번하게 발생한다"라는 구절을 설명해 주며, 질적 풍요가 지속되면 반드시 심각한 심리적·정신적 문제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법이고, 부의 무절제한 추구는 반드시 '부패로 연결되기' 마련이며, 나아가 결국에는 삶에 궁극적인 의미와 행복을 안겨 주는 핵심 요소인 도덕적 양심까지를 앗아간다 말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한 책들
- 조나단 B. 와이트 著,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장하준 著,「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와타나베 이타루 著,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마이클 센델 著,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엄기호 著,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유시민 著,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