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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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각 단어들이 - 박사, 사랑, 수식 -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간단하게 적어 볼까 합니다. 가능한 한, 책을 안읽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읽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 한도까지만....요.



① 박사


나는 미혼모이고, 나의 아들은 초등학생, 나의 직업은 파출부입니다.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역시나 남편 없이 나를 키워야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던지라 어릴 적부터 집안 일에는 도가 텄었기에, 파출부 소개소에서 꽤나 알아주는 고참급에 속하지요. 어느 날, 이전에 9명의 파출부가 퇴짜를 맞았다는 꽤나 까다로워 보이는 곳으로 소장이 나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까다로운 주인들이기에 9명의 파출부를 바꾸었을까요?


한 노부인이 나를 맞아주었는데, 그녀의 집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별채에 있는, 예순 네살 노신사의 일을 담당하는 것이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노신사의 형수였던) 노부인의 주문은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만, 그 노신사분이... 별다르시더군요. 노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 분은 말이죠...


딱! 80분간만의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분이시랍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는 그 분은 17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뇌에 손상을 입었고, 그 이후로 그 분의 기억은 멈춰버렸다더군요. 즉, 30년전에 자신이 발견한 수학적 정리는 온전히 그 분의 머리속에 간직되어 있지만, 81분전에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을 할 수 없으시다는거지요.   

 

뇌 속에 80분짜리 테이프 딱 한 개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새로운 것을 녹화하면 이전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집니다. 도련님의 기억은 80분밖에 가지 않아요. 정확하게 1시간 20분. 

나를 처음 본 순간, 그 분의 질문은 이름도, 나이도 아닌... "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였었답니다. 24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 분은 "실로 청결한 숫자로군. 4의 계승이야. 1에서 4까지의 자연수를 모두 곱하면 24가 되지"라는 말씀을 하셨었지요. 이 뿐 아니라 우리집 전화번호도 물으시길래, '576에 1455예요'라 대답했더니 글쎄 말이죠!!! "5761455라구? 정말 멋진 수가 아닌가?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정확히 일치하는군." ---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말 대신 숫자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그 분의 버릇이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그것은 그 분이 타인과 교류하기 위해 고안해 낸, 그 분만의 방법이었던 거였죠.  

 

그 분의 기억이 80분 밖엔 유효하지 않다라는 사실 때문에... 전 시장을 보러 가서도 가능한 한 '1시간 20분' 내에 돌아올 수 있도록 애를 쎠야했었죠. "다녀올게요" 이렇게 말하고 1시간 20분 내에 돌아오면 그 분은 저에게 "어서 오게, 수고했어"라며 맞아주셨지만, 예를 들어 1시간 22분이 걸렸을 때 그 분의 첫 마디는 "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였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제가 그 분을 모시는 데 어떤 불편함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답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계셨던 그 분은, 그 분 나름대로의 대처 방법을 가지고 계셨었지요. 자신이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모두를... 조그마한 메모지에 적어, 자신이 입고 있는 양복 곳곳에 클립으로 꽂아둠으로써, 자신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자신의 머리 속이 아닌 곳에 보관해 두셨었답니다. --- 하지만 말이에요, 저를.... 참으로 곤란하게 만들었던 건 다름아닌 :

 

한 가지 곤란한 것은 박사의 기억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미망인(노부인)은 그의 기억이 1975년에 멈춰 있다고 했는데, 가령 그에게 어제는 언제인지, 내일이 있다는 것은 아는지, 그 부자유스러움이 그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분은 나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내가 이 집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혼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내 아들을 방과 후에 이 집으로 오게 하라고, 거의 강제적으로 말씀하셨었지요. 그렇게... 내 아들을 본 그 분은, 내 아들의 머리가 평평하다며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든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라시며, 소맷자락에 있는 메모지에 다음과 같이 적으셨었지요. '내 파출부... 와 그 아들 열 살 √.'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박사'라 부르기로 했답니다.  



② 사랑

​'박사'와 파출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 에로틱, 플라토닉, 뭐 이런 거 말고, 그냥 우리가 살아가면서 머리 속에서 떠올려볼 수 있는 '사랑'이란 것이 말이죠...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아이를, 내 부모와 내 형제를 또한 '사랑'합니다. 정말로 친한 친구와 술마시고 헤어질 때에도 '사랑한다, OO아!'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저는 또한 술을 참으로 '사랑'하며, 담배는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에 또...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상상해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랑'의 대상/관계중엔 아마도... 이 작품 속, 제 인물들이 나누는 '사랑'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파출부가, 자신이 일하는 집의 주인(정확히 '주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쉽게 표현해보자면)을, 거기에 자신의 아들도 또한 그 주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건, 일반적으론 쉽게 떠올려볼 수 있는 사랑이 분명 아니니까요.물론! 이 '사랑'은 남녀간의 뭐 그런 종류의 사랑이 아닙니다. 박사가 가지고 있는 상황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가급적 혼란의 여지를 안겨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자의 '사랑', 자신과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도 아닌, 그저 금전적으로 맺어진 고용의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는 '루트'를 향한 박사의 진심이 담긴 '사랑'은, 말 그대로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들이었습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루트가 박사의 강력한 권유/요구로 (엄마가 일하고 있는 곳인) 박사의 집으로 하교했던 첫 날의 다음 모습이 루트를 향한 박사의 사랑을, 또한 박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그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보려했고 진심으로 걱정했었던 파출부의 마음이... 이들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 가방을 멘 아들의 모습이 현관에 나타났을 때,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아들을 포옹했다.…… 나의 아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안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 "이렇게 먼 곳까지 잘 왔다. 고맙다, 고마워." 박사는 말했다. 매일 아침 처음 보는 것처럼 되풀이되는 질문은 없었다. …… 루트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는 박사의 모습은 더 이상 맥없는 노인도, 생각에 사로잡힌 수학자도 아닌, 어린아이에게 한없이 애정을 쏟는 할아버지 같았다.  

 

매일 아침, 박사는 잠에서 깨어나 옷을 입을 때마다 제 손으로 쓴 메모를 읽으면서 자신의 병을 깨닫는다. 어젯밤에 꾼 꿈은 어젯밤의 꿈이 아니라 먼 옛날,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밤에 꾼 꿈이라는 것을 안다. …… 매일매일, 그가 홀로 침대 위에서 그런 잔인한 선고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서로를 향한 이 아름다운 사랑은 과연... 어떠한 끝맺음을 맞이하게 될까요?

 


③ 수식

 

제게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코!!! 수학의 용어들이 정말로 아름다운 언어들로 표현/설명되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파출부의 아들에게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박사가 하셨던 표현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라든가, (파출부의 생일인 2월 20일에서 나온) 220과 (자신의 손목 시계에 새겨져 있는 일련 번호인) 284로부터는, (자기 자신은 빼고) 각자의 약수를 모두 더하면 상대방이 되는, 즉 220의 약수 모두를 더하면 284가 되고, 284의 약수 모두를 더하면 또한 220이 되는 '우애수'라는 개념으로 박사와 파출부의 인연을 만들어내는 장면. 그리고 야구장에 갔을  때, 자신의 좌석 번호인 '7-14'와 루트의 좌석번호인 '7-15'로부터 '루스-아론 쌍'을 떠올려내는 장면 등은, 이런 개념들을 모른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수학을 싫어하는 분들일지라도 틀림없이 뭔가 찌릿!해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714는 베이브 루스가 1935년에 작성한 통산 홈런 기록이고, 1974년 4월 8일 행크 아론은 …… 이 기록을 깨는 715호 홈런을 기록했지. 714와 715의 곱은 제일 작은 소수 일곱 개의 곱과 같고, 또 714의 소인수의 합과 715의 소인수의 합은 같아. 이런 성직을 지닌, 연속하는 정수의 쌍은 그리 흔하지 않아. 20000이하에는 스물여섯 쌍밖에 존재하지 않지. …… 중요한 것은 내가 7-14고 루트가 7-15에 앉는다는 거야. 그 반대면 절대 안 되지. 옛 기록을 새로이 나타난 자가 깬다, 그것이 세상 사는 이치야.

하지만, 정말!로 이 소설에서 의미를 갖고 있는 수학적 개념은, '박사'가 좋아했던 한신 타이거스의 투수인 에나쓰 선수의 등번호인 28이 가지고 있는 성질인 '완전수', 그리고 '오일러의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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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오일러의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만, 박사의 형수인 노부인이 파출부와 루트를 의심하며 몰아가고 있을 때 박사는 이 오일러의 공식이 적혀져 있는 메모지 한 장을 형수 앞에 내밈으로써 그 순간을 마무리지었더랬고, 그래서 이 공식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자 도서관에서 알아보았던 파출부가 표현한 다음의 문장은 그야말로 '더 이상 아름다운 언어로 오일러의 공식을 표현해 낼 수는 없을 것'이란 말을 서슴없이 제 입에서 나오게끔 만들어줍니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 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참으로... 재미있는 수학의 여러 내용들을 이 소설 속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수학적 내용들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하등의 도움을 줄 수 없는 것들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수학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빠져 수학을 연구하는 소설 속 박사가 수학에 대해 해주는 다음의 말은, 덧셈과 곱셈만이 수학의 전부라고 생각할 초등 6학년인 종원군에게도 반드시... 들려주여야겠을만큼,가슴 뭉클해지기까지 했었었네요.

 

문제를 만든 사람은 답을 알고 있지. 반드시 답이 있다고 보장된 문제를 푸는 것은, 가이드를 따라 저기 보이는 정상을 향해 그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더구나 그 장소가 정상이란 보장은 없어. 깎아지른 벼랑과 벼랑 사이일 수도 있고, 골짜기 일수도 있고. …… 수학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니 먼 옛날부터 아무도 모르게 존재해왔던 정리를 파헤쳐내는 거야. 신의 수첩에만 기록돼 있는 진리를 한 줄씩 베껴 쓰는 것이나 다름없지. 그 수첩이 어디에 있고, 언제 펼쳐질지는 아무도 몰라.      

………………………………… 

 

시간이 흘렀고... 엄마보다 20센티미터나 키가 크고 수염이 숭숭 나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박사에게 루트는 보호해주어야 마땅한 어린애였다고 회상되어지고 있습니다. 박사가 그 모자에게 남겨주었던 마지막 수업은,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그리고 지금도 매달리고 있는 '소수'에 관한 것이었고, 그리고... 루트는 결국 수학 선생님이 되었.지요.  


(다시 한번) 그들의, 서로를 향한 이 아름다운 사랑은 과연... 어떠한 끝맺음을 맞이하게 될까요? --- 그 끝맺음은 뭔가 참... 제겐 아쉬움과 안타까운 여운이 동시에 남는, 상당히 독특했던 한 편의 소설이었네요. 그나저나... 참... 책도 잘 안읽히지만, 독후감도 지지리 안써지는 요즈음입니다. --;;



※ '수학'에 관한, 읽어본 책들

- EBS 제작팀 著, 문명과 수학

- 장우석 著,수학, 철학에 미치다

- 사쿠라이 스스무 著,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이야기

- 실비아 네이사 著, 「뷰티풀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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