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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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외삼촌」에서 이주인 시즈카가 그려낸 아버지는 굉장히 강인한 인물이었습니다(사실 '아버지'로서 강했다기 보다는 '남편'으로서 강했던거지만).  「나는 아버지입니다」속 아버지는 (결과적으로는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작업이 약간은 결부되어있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야말로 '희생의 아이콘' 그 자체였었었지요. 이 두 작품 속 아버지들은 말 그대로 우리가 본받아야한다라 말해지는 '교과서적인 이미지'의 아버지들이었습니다만!!!

 

위화의 「인생」에서 그려졌던 아버지 푸구이 옹은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또한 어쨌든 결국엔 그의 삶이란 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독자들은 알게 됩니다. 오히려 박범신의 「소금」에 등장하는 아버지야말로 이 표현,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란 말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었지요.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을 위해 가족을 등지는, 감히 정상적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는 모습의 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나보았더랬습니다만!!!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무능력한 아버지, 그와 대비되는 「아버지와 외삼촌」, 「나는 아버지입니다」속의 강한/희생하는 아버지들. ---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려보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도 이런, 양극단의 아버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어중간하면 기억되지 않는다고 말해지기도 합니다만) 이는 그만큼 우리가, 현실적이지 않은 아버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세상엔! 이런, 엄청 강인한/희생적인/무능력한 아버지보다는 (저를 포함하여) 그냥... 그냥저냥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러다보면 때론 강한/희생적인 아버지가 되기도, 다른 때엔 무능력한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 그야말로 '어중간한' 아버지들이 대부분 아닐까요? (안... 그런가요? --;;)

 

그런, 여러가지 모습의 아버지의 이미지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비교적 일정합니다. 어느 영화건 소설이건, 심지어 현실의 뉴스에서 마저도 어머니란 단어는 대부분 '희생'이란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곤하지요. 아마도... 우리나라 소설 중에서 '엄마'에 관해서만큼은 가장 유명한 듯 보이는 이 작품 「엄마를 부탁해」는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모습의 '엄마'를 그려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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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 본문과 <해설> 중

이 작품은 '대상의 부재를 통한 그 대상에 대한 존재의 깨달음'이라는, 비교적 흔한 방식을 통해 '엄마'이고 '아내'인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다라는 사실을 통해 '잊고'있었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딸의 시선으로, 아들(장남)의 시선, 마지막으로 남편의 시선으로 '엄마이고 아내'인 한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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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인간관계를 벗어난, '사회'라는 곳에서의 모습관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딸'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가 바라보는 '엄마'라는 존재는 특이할 수 밖엔 없을겁니다. 그녀 또한... ('일반적'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면) 언젠간 그 '엄마'가 될 테니까말이죠. 소설 속 화자는 '모녀 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라는 말로써 엄마와 딸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가는 '너'라는, 소설의 주인공을 지칭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인칭대명사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을 '바로 당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기에 어쩌면 이 작품이 여성을 주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더랬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를 떠나,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만큼은 그보다 더 상위의 개념인 '자식'된 입장에서 본다라면 말이죠...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있다. 혼만 내지 말고 ……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 엄마를 잃어버린 지금까지도, 엄마라고 부를 때의 너의 마음에는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 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를 벗어난, '사회'라는 곳에서의 모습관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장남'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가, 특히나 어쩌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의 '장남'이란 위치에서 바라보는 '엄마'라는 존재 또한, 특이할 수 밖엔 없습니다.

그날 밤 둘이 누워 서울 처음 보니 어떠세요?라 물었고, 엄마는 별것 아니구나,라 대답했었다. ……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폈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꼭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두 같구.  ……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두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랠 불렀네.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

​물론! 위의 모든 감정들은 첫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똑같을겁니다만, 아무래도... 열 달간 그 자식을 자신의 몸 안에서 품고 있던 엄마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에는 다다르지 못할 꺼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엄마가 자신이 낳은 첫 아이, 그것도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에게까지는 거의 '필사적 의무'이기까지도 했었던) '장남'에 대해 가지게 되는 기대는 그녀가 학식이 많건적건, 돈이 많건적건을 떠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은 '절박한 무언가'를 의미했었겠지요. 소설 속 '장남'에게 엄마는 그로 하여금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결의를 품게 하는 존재였다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훗날 장남은 자신에게 그러한 결의를, 더 먼저는, 그러한 꿈을 가지게 해주었던 동인이 다름아닌 엄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 엄마는 그에게 니가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 했지만 그는 그것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청년시절에 꾼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엄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 개인적으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당신들의 자식들에게 가졌던 꿈과, 현재 초··고딩들의 엄마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가지고 있는 꿈이, 겉으로는 똑같은 모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확연하게 다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당신들이 '할 수 없었던 것들' 을 자식들이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던 것이지만, 현재의 엄마들은 자신들이 '하지 않았던 것들'을 자식들이 해주기를, 그것도 남의 자식들보다 더 많이! 더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 생각에 대한 동의를 굳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까지 구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부분을 읽으며, 저 또한, 결국엔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장남'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더랬습니다. 그리곤 가만 되돌아보니, 그 시작은 저만의 꿈이었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의 꿈이 되었었었고, 마지막으론 내 아내가 될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되었었다라는 걸, 하지만! 비록 '타의 반'이라는 상황이 저의 손 밖에서 일어나긴 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 절반은 여전히 '자의 반'이었었다라는 사실, 하지만 어느새 제가 그 '자의 반'에 대한 책임까지도 모두 '타의 반'에게 떠넘긴 채, 내 부모와 내 아내에게도 전이되어 있는 그, 이루어지지 못한 꿈을, 제가 가장 먼저 잊으려 노력했었었고 결국엔 잊은 채...로! 그 이후를 살아왔었었다라는 사실 또한 다시금 깨달았구 말이죠.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엄마는 어느덧 일흔을 훌쩍 넘기신 연세가 되어있는 지금!에야 말입니다. --;;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를 벗어난, '사회'라는 곳에서의 모습관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남편'은, '아내'라는 존재와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특별해질 수 밖엔 없는 사람입니다. 각기 '남남'으로서 따로 떨어져, 그저 '남자'와 '여자'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부부'라는 관계를 통해 드디어 '그저'가 아닌, '세상에 유일한!' 남자와 여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극히 국민윤리적인 시각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유일한!'이라니요. --;;) 즉, 한 여자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나서야 엄마가 될 수 있기에, 엄마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시선과,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은, 비록 한 사람을 향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많은 점에서 다를 수 밖엔 없을겁니다. 하지만 작가 신경숙은 이 작품에서... 이 또한 (그녀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지요. 소설의 제목은 「엄마를 부탁해」이지만, 웬지... 저에게는 '아내'로서 묘사되는 '엄마'의 장면들이 훨씬 더 가슴을 찌르더군요. 겉으로 보여지기엔 다정한 남편일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었기 때문인가요?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가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당신은 헛간에 놓여 있는 빈 평상을 향해 웅얼거렸다. …… 그때는 왜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란 걸 몰랐을까. 아내한테 미역국 한번 끓여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 어찌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 …… (아내의) 투박한 손을 볼 적마다 당신도 아내가 당신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기를 바랐다. 당신이 죽은 뒤에 아내의 손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을 쓸어주고, 자식들 앞에서 당신의 식어가는 몸을 닦아주고 그 손으로 수의를 입혀주기를. ……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당신은 이제야 아내가 장에 탈이 나 며칠씩 입에 곡기를 끊을 때조차 따뜻한 물 한 대접 아내 앞에 가져다줘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평생을 당신은 늘 아내보다 앞서서 걸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도 했다. 뒤처져서 아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왜 그리 걸음이 늦느냐고 타박했다. 그러는 사이 오십년이 흘렀다. 아내는 걸음이 늦긴 했어도 당신이 얼마간 기다려주면 뺨이 붉어진 채로 곁으로 다가와서는 여전히 좀 천천히 가면 좋겄네,하며 웃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깨닫는다. 당신의 아내에게 그 상처를 죄다 떠넘기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내였건만 함구해버림으로써 아내를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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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서 눈물을 짜내겠다,라 작정하고 만든 영화들이 있지요. 제가 본 가장 최근의 그런 영화는 바로 <7번방의 선물>이었습니다. 저 또한 물론! (예의상?) 그러한 감독의 작정대로 눈시울이 시큰해졌었더랬습니다만... 그처럼 작정에 의해 나오는 눈물은 양이 많지도 않거니와 금새 말라버리곤 하죠. 이 작품 「엄마를 부탁해」에도 또한 그런 류의 의도가 있을거라 생각했었더랬습니다...만! 다 읽고난 지금에도 물론! 그런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작가 신경숙은 딸에게의 엄마를, 아들(장남)에게의 엄마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식들의 엄마이자 자신에게는 아내인 남편으로 각기 나누어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나는 상관없음!'이란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그저 제 3자로서만 볼 수 밖엔 없었던 영화 <7번방의 선물>의 감독과는 차원이 다른, '작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처럼 특정 메시지의 전달보다는, (부디 저의 誤譯이 아니길 바라며...) 특정한 행위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딱히 새롭지는 않은, 또한 '대상의 부재를 통해 대상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이끌어낸다라는, 역시나 새롭지도 않은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향한 그러한 새롭지 않음에 대한 불평보다는, 이 작품을 제가 너무도 늦게 읽었기 때문이라는, 독자로서의 게으름에 대한 자책만을 가져보게 되는, 참으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엄마'라는 대상에 대한 감정 - 사랑, 애틋함, 심지어 증오일 수도 있을, 그 어떤 모습이든 - 이라는 게, 아무리 배가 불러도 단 몇 시간만 흐르고 나면 다시 허기짐을 느끼게 되는 인간의 본성관 달리, 아무리 반복된다한들 지겹다,란 단어를 떠올릴 수 없는, 그런...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품 속의) 아들, 딸, 그리고 남편... 이 말하는, 이젠 더 이상 그들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아내에 대한 후회어린 표현들을 한데 적어보는 것으로... 이 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 입에 넣을 때는 조그마했던 것이 뱃속에서 점점 불어나 꽤나 오랫동안의 포만감을 주는 그 무엇처럼... 뭔가, 엄청나게 뭉클!할 꺼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던 이 소설은, 엄청!이라는 표현대신 참으로 오랫동안!이라는 말로써 제게 남게 될 듯 하네요.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는 언제부턴가 대체로 엄마를 잊고 지냈다. ……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나는 엄마처럼 못 하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말히란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았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부탁헌다. 니 엄마, 니 엄마를 말이다.

 

※ 본문에서 인용되었던 포스트들 : 아버지와 외삼촌」 · 「나는 아버지입니다」 · 「인생」 · 「소금」 · 「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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