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ㅣ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 성서는 기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 진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거짓 역시 그렇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이 책의 앞 표지, 그리고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위의 두 문장들이,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해도 될겁니다. 책의 전반에 걸쳐 내내 자신을 이교도라 칭하고 있는 저자는, 물론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성서의 내용을 그린 '명화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저자가 '이교도임'이라는 사실은, (그리 신실하지도 못한) 기독교인인 제가 보기에도 이 책 자체를 매우 독특!하게 받아들이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독특'이라는 게 - 출판사의 표현은 '색다른 시각'으로 되어 있지요 -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
이교도는 확실히 성경 가르침의 본질은 알 수 없습니다. ……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혹은 종교화를 통해 성경과 역사와 화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교도가 보는 성경에는 …… '괴상한' 부분이 잔뜩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기묘한 이야기를 과연 화가는 이런 식으로 궁리해서 표현했던 것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리면 갑자기 그 그림은 매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 …… '종교화도 신화화神話畵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문화로 즐기면 된다'라고 하면 기독교인들은 불쾌할지도 모르지만, 부디 너그러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신사를 매일 참배하는 우리 동포에 대해 이교도인 외국인이 '여우 따위에 손을 모으다니'하고 코웃음을 쳤다지만 우리는 누구 한 사람 크게 화내지 않습니다. 여우를 모시는 데 이른 민중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비웃는 상대를 이론으로 굴복시켜 여우 신앙을 전도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양 문화사 전문가인 저자이지만, 이 책은 이처럼 자신이 이교도임과 일본인임을 또한 적극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기도 합니다. '여우를 모시는 데 이른 민중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비웃는 상대를 이론으로 굴복시켜 여우 신앙을 전도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라는 저자의 표현에, 저 또한 기독교의 전도라는 것도 그러해야 한다라는 동의를 표하게도 합니다만, 그 안에 숨어 있는(듯 느껴졌던), '너네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잖아? 성서는 지금의 이치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데도 말이야!'라는 조롱이 웬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귀에 들려왔었다라는 것 또한 꼭 밝히고 싶네요. 저자 개인의 의견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 부분의 서술들은 뭔가 알듯 말듯하게 시니컬했다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
.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상대방에게 전해 주고 싶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선, 우선! 그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옳바른 순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듣다보면, 내가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이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진실)을 전달해야겠구나,를 깨닫게 될 수도, 어쩌면 내가 속해 있던 세상이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들을 들어볼 수 있게 될지도, 심하게는 내가 말하려 했던 이야기(진실)의 '진실됨'에까지 의문을 가져보게도 될 지 모르니까 말이죠. 나 스스로 '진실됨'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책의 저자가 대놓고! '이교도'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이 비록 (저처럼) 기독교 신자일지라도, 그 사실을 잠시 내려놓고 이 책을 읽어가는 것이, 최소한 싸지도 않는 가격의 이 책으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몇몇 흥미로운 사실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요.
① 정말로 아담이 흙덩이에서 생겨났다면 과연 아담에게 배꼽이 있어도 좋은 걸까?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은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져 있는 <아담의 창조>를 통해, 아담과 이브에게 배꼽이 있었음을 승인한 것이라 보아도 되지 않을까?
② 성서에는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라고 적혀 있지 않지만 : 그리스 신화의 영향으로 회화에서는 선악과가 관례적으로 사과로 그려지게 된 것이다.
자 이제... 기독교인인 제 관점에서, 기분 나빴다!라기보다는, 아하!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 느꼈던 몇몇 부분들을 (약간의 편집을 가미해) 옮겨 놓는 것으로 이 책의 감상문을 대신해 볼까 합니다. (저자의 개인적 의견일 수도, 또는 미술사에서 거론되고 있는 일종의 학설일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술을 다루고 있는 책의 감상문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미술 성적이 '美'였던 제가 가타부타한다라는 것 자체가 또 한 편의 코미디가 될 수도 있을테니 말이죠.
●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인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낱알을 얻어먹으리라."에 대한 해석 : 서양 남자들이 '행복한 은퇴'에 집착하는 것은 노동의 형벌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라는 주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 이브가 어쩌면 뱀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 바보인 채로 낙원에 갇혀서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불사를 잃었지만 자아에 눈을 뜨고 지식욕과 성욕을 갖게 되었으며 인생의 고난에 맞서 희로애락을 느끼게 되었다. 실러는 말했다. 이 타락이야말로 인류에게는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 애초에 아브라함은 갈등을 하기나 했을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복종와 아들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마침내 신앙을 선택한 순간 하나님에게 축복받는다는 '이삭의 희생'장면만을 보면 제법 감동적이지만 앞서 그가 해왔던 일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그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아내를 왕에게 바칠 때도, 애인과 자식을 황야로 내쫒을 때도, 뒤를 이을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도 확고한 신앙이 있었으니 고민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무엇보다 이 모든 시련을 아브라함이 겪는 것이라면 괜찮다. 그런데 항상 쓰라린 일을 겪거나 목숨이 위태로웠던 이는 그가 아니라 그의 아내나 첩이나 아들이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에서 천사가 들고 있는 백합에는 수술과 암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그려져 있다. 이것은 혹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스로가 처녀 수태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건 아닐까? 또한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주님의 여종을 보라!>에 나타나 있는 전체적인 장면은, 신이 없는 세상인 19세기 중반, 대천사에게서 수태고지를 받아 '나는 하나님의 아이를 낳을 거예요'라고 진지하게 주장한 여인이 있을 곳은 오로지 정신병원뿐일지도 모른다라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 오늘날의 점성가들과 달리 당시의 점성술사는 최첨단의 천문학자였다. 그런 대단한 외국의 학자들까지 예수 탄생을 축복하고 예배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성서는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박사와 칼 세이건이 핼리 혜성의 움직임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교도의 땅에 있는 오두막까지 선물을 들고 인사를 하러 찾아간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박사의 의미 자체도 점차 거창해졌다. 처음에는 세 사람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윽고 노년기, 장년기, 청년기의 마기 세 사람으로 정해지면서 예수가 모든 연령대의 사람에게 축복받았다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여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가스파르, 멜키오르, 발타자르 같은 이름을 얻었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대표하는 존재하게 되었다.
● 일반적으로 일본인에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느는 난해하고 두 교회를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 가톨릭 국가(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음식이 대체로 맛있는 반면,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트 국가(미국, 영국, 북유럽 각국 등)의 음식은 맛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여, 황송하옵니다.
……………………………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를 신봉하는 분들로서는 화가 날 부분이 많을지도 모르지만, 부디 너그러이 여겨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로 저자는 이 책의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화'는 전혀 나지 않았더랬습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부분이 더 많았었지요. --- '화'보다는 '재미'를 느꼈다라는 것이, 어쩌면 저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이 정도의 이야기엔 제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듯/더 있어 보이는 듯(^^;;) 할 꺼 같네요.
상당히 많은 그림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만, 그들 중 '브뤼헐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와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에 대한 설명을 압권이었다!라 꼽고 싶습니다. 다만!!! 두 페이지에 걸쳐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경우, 가운데 부분이 심하게 겹쳐 그 부분을 살펴볼 수 없었다는 점, 혹은 그림 자체가 너무 작은 사이즈로 인쇄되어 있었다는 점 등이 많이 아쉬웠다는 말을 꼭 적고 싶습니다. 싸지도 않은 가격인데... 그런 그림들은 간지 형태의 한 장으로 인쇄해주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 어린 바램을 가져보게도 되더군요.
그나저나...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아마도 처음으로 읽어본 듯 한데 이 출판사, 카피 문구 하나만큼은 참 잘/그럴 듯 하게 뽑아냈네요.
"권위와 편견을 버려라, 그리고 즐겨라!"
※ (읽어본) '성경'에 관한 책들 : 「유쾌한 성경책」 · 「가장 오래된 교양」 · 「공병호의 성경공부」
※ (읽어본) '미술'에 관한 책들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 「그림값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