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두달 전쯤인가... 종원군이 하도 '가족이 다 함께' 이 영화 보는 것을 원한다해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보았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캡틴 어메리카>였었죠. 뭐... 제목부터 뻔합니다. 지구를 정복/파괴하려는 악당들에 맞서 '캡틴 어메리카'라는 인물이 신나게 그들을 무찌르는, 그런 영화일꺼야!라는게 영화 제목에서부터 진동을 하니까요. 대충... 그렇게 예상되었던 뻔한 스토리대로 영화가 흘러 갔었음에도, 이 영화... 정말! 무지하게!!! 엄청!!! 재미있는 겁니다. 저와 조교수 모두... 영화를 보고나와, 이 영화를 보게해주어서 고마워~란 말을 종원군에게 했었었을만큼 말이죠. (이처럼 뻔하디 뻔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도, 관객들이 그에 여지없이 호응하는 걸 보면 역시 헐리웃의 힘은 대단하기만 하죠.)
이런 류의 수많은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는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을 종종 영화 비평글들에서 보게 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마음이 더 큽니다. --- 싸우고 죽이고 하는 일은 분명... 현재로선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나라이며, 현재 이 세상이 (아직까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라는 것 또한 (이에 대한 비판에까지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틀린 사실을 관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영화는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사실을 조금 과장하여 그려냈다라는 것까지 비난/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건 너무 가혹하지요. 그러하기에 이런 류의 영화에 대해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거론하는 비판보다는 오히려!!! : 악당이 나쁜 짓(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부분 이 '나쁜 짓'으로부터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만이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영화 속 전개에서는 미국만이 공격을 당하고 있더라도 결국엔 전 세계를 재패하려는 것이 악당들의 최종 목표임을 내세우고 있지요. 만약 미국만이 오로지 당하는 설정이라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들을 '악당'이라 생각하게 될, 그 '악당'에 맞서 싸우는 미국의 영웅에 온전히 감정이입을 하게 될 개연성은 현저히 떨어질 테니까요. 그것만으로도 혹시 부족할까 하여 거의 대부분, 일단 주인공 쪽을 보편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착한/정당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의 도입부를 우리가 항상 보게되는 것은 일종의 보너스라고나 할까요?)을 하고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나쁜 짓을 하기에 악당으로 그려지게 되는 존재), 그 악당을 미국이 물리쳐주니까 우리가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악'을 상대하는 자로서의) '미국'이란 나라에 환호성을 질러주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이 '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라는 걸 우리 스스로 (비록 환호성은 질렀을지언정)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은 겁니다. 즉, '악'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미국'에게는 사뭇 열렬하기까지도 한 응원을 보내지만, '악'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미국에게 그 열렬함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라는 거, 다시 말해 ('악'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기준에서까지도 미국이 '무조건적인, 항상적인 선'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한 포인트라는 거지요. (나를 괴롭히는 깡패 A를 반대파 조직의 깡패 B가 나타나 무찔러 줄 때, 그 깡패 B를 응원하고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는 되겠지만/가지는 건 괜찮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선한 사마리아인'으로까지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애초에 A가 나를 괴롭혔었고, 그 순간에 B가 나타나, 어떤 이유에서건, A와 맞서 싸워주었다라는... 이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A와 B는 모두 그저 깡패들로만 인식될 테니까요.)
.
.
.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는, 주된 스토리의 전개 이전에 그 스토리를 이끌어내어주는 각종 배경들 - 등장인물, 환경, 갈등구조 등등등 - 을 작품의 초반부에 만들어 놓지요. 1968년생 작가답게 박민규는 1969년생인 저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요소들을 작품 초반에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 포스트를 읽고 있는 분들 중 이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분들이 분명 있을) '지진아'였었습니다. 같은 반의 지진아들끼리 선생님도 없이 '나머지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때 '정예 지진아'였던 한 친구가 보여준 포르노 잡지를 보는 장면에서... 예의, '작가 박민규표' 표현이 등장하지요. --- "(잡지 속) 여자들은 대개 프리즘을 거쳐 분산된 햇빛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 길고 매끈한 다리의 사이에는 그래서 영롱한 무지개라든지, 그 빛을 받은 찬란한 화초라든지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 썰어놓은 돼지의 간肝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 지진아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각 한자의 뜻을 떠나, '지진아'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모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 지진아들은, 뭔가 굴레와도 같은 것으로 엮여져 '육성회비 미납자' 명단에도 또한 대부분 올려져 있었었지요. 만약 지금의 세태에서 그런 단어를 쓴다라면, 혹은 아이들을 그렇게 누구나 알 수 있게 나누어 놓는다면 학부모들은 차치하고라고, 아이들도 또한 그들을 조롱/왕따의 대상으로 삼을 것 같습니다만, 저희 세대때만 해도 '지진아'란 표현이 그저 '공부 좀 못하는 친구'를 일컫는, '선생님들만 자주 쓰는' 한 단어쯤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암튼... 이런 면만 보아도 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현재의 시각으로 이해하려 한다라는 게 자칫 매우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그 당시엔 편을 나누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얘기를 하다가도 꼭 친구들은 '넌 어떤 편이야?'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나뉘어 대립해 있던 시절이었다. 세계는 미국과 소련으로, 나라는 남과 북으로, 운동회에선 청군과 백군이, 영화에선 좋은 놈과 나쁜 놈이. …… 소련이 언제 핵을 쏠지 모르고, 북한은 연신 땅굴을 파대는 이 불안한 세계 속에서, …… 정의는 늘 승리했다.
작가의 표현처럼, 당시의 제가 속한 '우리' (작품 속 배경을 따라 1979년 국민학교 3-4학년)도 항상 '편 가르기'를 했었었고 또 보아왔지만, 그것이 엄밀한 "정의"의 개념에 입각한 편 가르기는 결코 아니었었습니다. '내가 속한 곳'이 곧 '정의의 편'이 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단순한 기준만이 존재했었을 뿐이며, 이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소련이나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는 미국과 남한이 곧 '악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었을 것이고, (여전히 '미국과 남한'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그 사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악'으로 보여진다라는 것- 을 반드시 인정해야만, 또 인정할 수 있어야지만이...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비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
.
'지진아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포르노 잡지를 함께 보다 선생님에게 걸려,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통지를 받고는, 도저히 그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가 없어, 주인공은 결국 자살을 결심했고, 기어이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내렸었거늘 …… (사람의 용기가 보여주는 방향성이란게 때론 참으로 신기하지요? 학교에 부모님 모시고 올 용기 대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발휘한다라는 것만 봐도 말이죠) 그때 마침 한국 상공을 날고 있던 슈퍼맨의 눈에 띄어 극적인 구출을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슈퍼맨, 배트맨과 로빈, 원더우먼, 그리고 아쿠아맨 등으로 구성된 '슈퍼특공대(Super Friends' Archive)'의 근거지인 '정의의 본부(Hall of Justice)'로 데려가져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지요.
'정의의 본부'에서 잡무부터 시작해 일을 배우게 된 주인공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스스로 '나는 더 이상 지진아가 아니었다. 나는 더이상, 한국인이 아니었다'라 생각하게 되며, 결국엔 그 자신도 슈퍼특공대 멤버들과 같은 '영웅'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만!!! --- 미국 유학시절, 기숙사 옆 방에 한국말을 꽤 잘하는, Law School에 재학중이었던 교포2세 친구가 하나 있었었는데 그 친구 왈, 자신의 최종목표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국말을 꽤 잘한다 해도, 여전히 스물 여덟살!의 제 아내를 '사모님'이라 지칭하는 수준이었었고, 또 한국에서의 법률용어들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다라는 걸 그 친구가 모르지는 않을텐데... 라는 생각에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란 질문을 그에게 던졌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고, 보너스로 한국어까지 나름 잘할 수 있다해도, 자기는 이 땅에선 여전히 '황인종'이기 때문이라는 당시 그의 대답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지요.
"꿈도 꾸지마." 슈퍼맨은 한마디로 나의 얘기를 일축했다. "넌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슈퍼맨이 얘기했다. "그럼 미국인이 될 테야." 내가 소리쳤다. "소용없어." 다시 슈퍼맨이 말을 이었다. "그런다 해도 넌 백인이 아니니까."
주인공은 결국 영웅의 일원으로 승인받게 되고, 미국 시민권까지 받게 됩니다. 비록 그 이유가 그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향후를 대비해 영웅의 인종 구성을 미리 다양화 시켜놓을 필요가 있다는 다분히 시혜적이고 노골적인 인종주의의 근거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그는 그저 자신을 영웅의 일원으로 받아준 다른 영웅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그에게 붙여진, '겉은 노랗지만, 속은 희다'라는 다분히 인종차별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바나나 맨'이라는 그의 새로운 이름에도 무척이나 만족해 하지요. "이게 현실일까?"라며 감격해 하는 그에게 슈퍼맨이 말해 줍니다. "물론, (이제) 너의 영혼은 백인이니까."
.
.
.
지구위에 어떤 나라가 생긴다면, 일단은 그 나라를 '정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거야. 만약 그러지 못하면, 썩어버리거나 나쁜 무리들의 먹이가 될 게 뻔하니까. …… 그래서 그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거야. 그건 우리의 사과를 상자에 담는 일이고, 그 사과를 썩지않게 보관하는 일이란다. …… 이 지구를 위해서도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란다. …… 이를테면 석유를 생각해보렴. …… 만약 소련이 어떤 나라를 차지해버린다면, …… 그 나라의 자원은 모두 나쁜 일을 하는 데 쓰여 고갈되고 말겠지? '정의'를 위해 쓰여야 할 자원이 나쁜 일을 하는 데 쓰인다는 건 보통 아까운 게 아니지. …… 소련의 가장 나쁜 점이 무엇인지 아니? 더럽고 추잡한 빨갱이들의 사상? 아니, 그건 두번째에 불과해. 뭐니뭐니해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건 나와 맞먹는 힘을 가지려 드는 것이란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이지. …… 내가 가진 힘 …… 그건 이 지구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나 외의 존재가 그런 힘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야. 나라면 안심할 수 있지. 왜? 내가 곧 이 세계의 '정의'니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리고 아쿠아맨은 각기 다른 모습의 미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정의도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얘기야"라는 슈퍼맨의 말에서도 쉽게 알아챌 수 있지요) 그 중 슈퍼맨은 힘(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가려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소설의 전체를 통해, 슈퍼맨이 말하고 있는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또한 왜 슈퍼맨이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힘에 제일 세다는 것이 곧 '정의'가 되는, 우리는 그런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제까지 살아왔었던 것이며, 그 '힘'의 덕분에 가까스로 이렇게까지 커올 수 있었다라는 사고는 '정의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왜 미국이 정의인가?'에 대한 의문 자체를 아예 자라날 수 조차 없게 했었다라는 걸 의미라도 하듯 말입니다. --- 크림반도의 분쟁에서도 보여졌듯이, 미국이 말하는 '정의'란 결국/애시당초부터 자국의 이익에 합치되느냐의 문제였었던 겁니다. 그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라는 것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 결국 석유를 가지고 있는 중동의 문제에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개입했었던 것이며, 베트남전에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정의'라는 명분이 내세워졌던거죠. 소설 속에서 바나나 맨은 별다른 이유 없이 슈퍼맨의 '정의'를 곧 자신의 '정의'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미국의 '정의'를 우리도 똑같이 '정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군복입고 시청앞 광장에 종종 모여드는 할아버지들 같은 분들의) 주장은 "그럼 나도 미국인이 될 테야"라는 바나나 맨의 반응과 전혀 다를 게 없지 않을까요?
'바나나 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같은 영웅의 일원으로 받아졌음에도, '바나나 맨'의 역할은 여전히 간식 심부름이라든지 원더우먼의 탐폰을 사다준다든지 하는 등의 하찮은 것들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 "미국은 대한민국을 '우방'이라 불러줍니다만, 과연...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우방'의 대접을 받고는 있습니까?" 어쩌면 작가는 이 질문이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 그러하기에 '나쁜 무리'들이 왜 '나쁘다'는 건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흰 피부색의 영웅들이 자신을 '바나나 맨'이라 부르고 있음에도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그런 주인공을 통해, '사실 너는 약간의 친절에 홀려 그들의 뜻에 의해 완전히 조종당하는 신세'였다라는 걸, 만화 속 주인공들을 데려다 이야기해주면서 말이죠.
바나나 맨 : "우린 친구지?"
슈퍼맨 : "물론."
바나나맨 : "내가 도울 일이라도 있어?"
슈퍼맨 : "딴 건 필요 없고, 열심히 응원이나 해. 포즈나 확실히 잡아주고 말이야."
바나나 맨 : "물론, 나의 삶 그 자체니까."
………………………………
월드컵 조추점 직후, 우리가 속한 H조가 사실은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닐 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친구와 했었더랬습니다. 차라리 같은 조에 브라질 같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 팀 모두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질 것이 쉽게 예상되는, 그렇기에 브라질을 제외한 세 나라에게는 오로지 두 번의 경기 결과만이 중요한, 즉, 집중해야 할 경기의 수가 줄어드는 조의 2위를 노려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행운의 결과가 아니겠느냐라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었지요.
비록 그것이 결국엔 다 자신을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라는 건 사실 매우 피곤한 일일겁니다. 이래저래 자신에게 와 신세한탄을 늘어놓으며 좀 도와달라 말하는 자신의 '사과 상자 속 사과'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으니, 듣는 시늉이라도 해주어야만 할 것이고, 가끔은 내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내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미래의 더 큰 이득을 기대하며 지금 당장에는 내 호주머니에서 적잖은 돈을 끄집어 내기도 해야할... 그런 '정의'의 소유자가 되기보다는, 어쩌면! 그의 '정의'를 그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댓가로 그의 우산 아래에서, 그의 버팀목에 기대어, 때로는 억지 눈물로 나의 억울함을 과장하여 졸라보기도 할 수 있는, 이건 마치 어차피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16강 정도가 목표인, 운 좋으면 8강까지도 꿈 꿔보기는 하는 실력의 축구팀으로서는, 우승을 당연하게 노리고 있는, 확실한 조 1위팀이 존재하는 조에서 조 2위를 노려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유리한 그런 상황과도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마력은 이런거니까... 란 핑계를 꼭 붙여서 말이죠. --;;
.
.
.
"시간이 없어 길게 씁니다" --- 파스칼이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는 표현이라더군요. 정신적으로 피로하다는 건 저에게 물리적 시간마저도 앗아가는 듯 합니다. 그러했기에 저도 '시간이 없어 길게 썼습니다'라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요약한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을 '정리해낸다'라는 것이 저의 능력에는 여기, 이 정도 길이까지 뿐이라는 실토를 할 수 밖엔 없네요. --- 작가의 데뷔작이어서일까요? 초반의 힘찬 전개에 비해, 중반 이후는 횡설수설이라 여겨지는 부분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물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저를 놀라게 해주었던 '박민규표 표현'들이 이 작품에도 적잖게 등장합니다만, 그 호흡이 대단히 짧은 것 또한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작가 박민규에게, 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도 또한 그만큼 진화해 왔다라는 말을, 좀 이른 듯한 이 시점에서 미리 해도 되지않을까 싶네요. 아직... 사놓은, 그의 작품이 세 개나 남아 있지만서도.
※ (읽어본) 박민규의 다른 작품들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