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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나다
김형민 지음 / 집사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제 장인 어른과 '유치원-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직장'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의 반평생을 같은 길을 걸어오신 친구분이 계십니다. 그렇게 반평생도 모자라, 직장에서조차 같이 진급 트랙을 거치셨었고, 결국엔 같은 자리에서 정년퇴임하신... 그야말로 한평생을 함께 걸어온 두 분의 사이이시지요. 그처럼 한평생 같은 길을 걸어오셨다하더라도 두 분의 삶 자체까지 똑같다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일단! (당연한 말이지만) 각기 다른 분과 결혼을 하셨고, 그렇게 따로 가정을 이루셨잖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삶'은 세상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른, 오로지 나만의 것임에도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타인이 살아가고 있는/살아왔었던 삶에 적잖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릴 적 읽기를 강요(!)받았던 위인전에 등장했던 소위 '위인'이라 불리었던 사람들의 일생을 들여다 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부모님들은 당신의 자식들도 (비록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런 '괜찮은 삶'을 살아가게되길 바라셨을 터이고, 이제 스스로의 선택을 하게된 나이가 되어서는 '나는 이렇게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혹은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조바심에 무언가 롤모델을 찾는 심정으로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의 가장 큰 이유는 '저런 삶도 있는데, 내 삶은 그에 비하면 감사할 일 천지네!'라는 자기 위안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이 아닐까도 싶지요.
유시민이 쓴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이 표현이 적합한 것인지에는 자신 없습니다만)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 흡사 교과서의 저자와 같은 관점/기준에서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알려주고 있었다라면... 제가 읽어본 이 저자의 책 두 권에 모두 ★표시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김형민은 이 책 「삶을 만나다」에서 그 제목 그대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 삶을 통해 독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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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송호근이 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은 한국 사회의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눈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안함/애잔함/서글픔 등등의 눈물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만, 그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의 삶을 본질적인 점에서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저자의 직업적 한계로 인해, 그의 글들은 그것을 읽는 내내 제겐 그 어떠한 감동도 전해주질 못했었지요. 하지만 김형민의 글은 (집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고 있는 북카페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눈에 어느 순간순간... 뜨거운 무언가를 울컥!하고 올라오게 만들어주더군요.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이야기에서는 퇴출 기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어느 건설회사 직원들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포의 어느 껍데기집에서 술잔을 들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전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문득 서글픔을 느꼈다고 적고 있지요.
(저자가 서글퍼졌던 까닭은) 몇 달 전이라면 기쁨으로 휘둘러졌을 일상이 흔들바위 같은 슬픔과 절망으로 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다음 달이 산달인 것이, 자식놈이 대학에 합격한 것이, 자식처럼 기른 막내 동생이 해를 넘기기 전에 상투를 튼다는 것이 다시 없는 십자가의 무게로 그 어깨를 짓눌러 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자 스스로는 자신에게 특별난 글쓰기 능력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똑같은 무언가'를 보고 저자처럼 자신만의 해석이 담긴 '무언가로부터의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라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위의 글에 이어지고 있는 --- '제가 만나고 접했던 분들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과거에는 그 아픔의 조각들이 알알이 박혀 있을 겁니다. 그 아픔의 조각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보석들로 바뀌었기를, 그리고 앞으로 바뀌어 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내일은 해가 뜨고 인생은 칠십부터라는 말에 현혹(?)되어 기운차고도 명랑하게 하루하루를 엮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뜹니다'라는, 다른 곳에서 이미 여러 번 보았을 법한, 그런 상투적 표현들조차도 읽는 이에게 이전과는 전혀다른 뜨거운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게 되는거지요.
또한 저자 김형민은 위와 같은 상투적 표현들로 뿐 아니라 '나의 삶을 표현해냄에 있어 과연 어떤 단어의 조합들로 나타낼 수 있을까/내어야 할까'를 미처 알지 못했던 저에게 다음과 같은, 아버지인 내가 읽어도 '아버지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만 되는 예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힘겨운 구름다리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며 버티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족 부양을 위해서, 목에 풀칠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경황 없는 힘겨움 때문에 아빠들은, 아버지들은 자신이 지탱하는 가족에게서 동떨어져 가고, 아버지로서 줄 수 있는 가르침과 본보기를 제공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겠지요.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권리와 의무를 어쩔 수 없이 잊은 채 말입니다. 저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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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9일의 '오늘'은 공사판과 파출부일로 각각 집을 나서야했던 다섯살 혜영이와 세살 영철이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걱정되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던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방안에서 놀꺼리가 없어 성냥을 만지작거리다 화재가 나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화재로 자신의 두 아이들을 잃게 됩니다. 만약 집으로 배달되어 온 조간신문속 '기사'로 이 이야기를 접했더라면 아마도 '무책임한/무자비한'이란 형용사들을 앞에 붙여 혜영이와 영철이의 부모를 잠시 탓하고마는 그리 길지 않는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이 슬픔 사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오역吾歷'을 이야기 해줍니다.
보육시설 확대를 주장하면 "애는 엄마가 길러야지"식의 논리가 정면으로 박치기 하고 나서는 (1990년 당시의) 분위기였다. 보육은 부모의 책임이지 사회가 뭘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암담함 속에서 파출부 나가는 엄마는 자물쇠를 잠가야 했고 아이들은 뜨거워지는 벽과 문을 긁어 대다가 숨이 막혀야 했다. …… 세상에서 가장 옳은 명제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명제인지도 모른다. 가정은 지켜져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옳고 지당한 책임을 사회가 전담 내지는 분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밀 때, 옳아서 더욱 단단하고 마땅하여 배로 갑갑한 명제의 동아줄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목을 잡아 죈다.
제가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 언제나 그 1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인 「그들이 살았던 오늘」을 읽고 썼었던 감상문의 일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옳은 명제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명제인지도 모른다. 가정은 지켜져야 하며 ……' 라는 저자의 주장과 관련하여 <아빠 힘내세요 정식이 나을께요>라는 이야기 또한 '혜영이와 영철이'의 부모를 다시금 떠올리게만 해주더군요.
정식이의 부모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그러하기에 백혈병에 걸린 정식이의 병원비를 감당할 처지가 못되었지요. 결국 그들이 선택한/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탈출구는 위장이혼을 통해 정식이의 엄마가 생활수급자가 됨으로써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그 부부가 이혼 도장을 받아 법원 문을 나섰을 때의 심경에 대해 '무능한 자신들을 원망했을까요, 뜻밖의 병을 주신 하늘을 탓했을까요, 이혼 서류를 내밀지 않고서는 속절없이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했을까요'라 묻고 있기도, 또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가 '부부의 이혼만이 아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마치 로또 당첨을 바라는 듯한 심정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내내 우리는 따스한 온정의 손길을 입에 달고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따스한 온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는 걸 말입니다. 온정조차 베풀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고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걸 잊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만, 불현듯 저는 온정이라는 말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1%'의 사람들 외에, 평범하게 세상을 엮고 사는 누구에게라도 저런 위기는 별안간 찾아들 수 있으며, 그때에도 결국 기댈 수 있는 벽이란 '따스한 온정' 이외에는 사실상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서였을 겁니다. 혜연이의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처럼 사람들은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 삶 속에서 사랑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데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라 말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의 뒷표지에 적혀 있던 다음의 문구가...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대한민국을 유효하게 설명해내고 있다라는 걸 과연... 누가 부인해낼 수 있을까요?
"탈출구가 없어요. ……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비상구가 없지요. 쩝. …… 건물마다 비상구를 알리는 녹색 네온은 빛나지만 문이 열리지 않아요. …… 열쇠공이라도 부르고 싶은데, 열쇠공은 이 나라에 더 이상 없다고 합니다." - 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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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이 소위 말해지는 좌파 인사에 의해 쓰여진 '사회 비평서'는 아닙니다. (제가 살고 있는 사회가 김형민을 '좌파'로 낙인찍는 사회라면, 전 그 순간 기꺼이 저 또한 좌파라 말할겁니다!) 우리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타인들의 삶을 통해 (지금 나의 삶과는 관계없을 수 있으나) 그들의 삶이 '개인의 탓'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 구조적인 무언가'에 의해 그런 처지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라는 저자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을 뿐이지요. 과연 그 누가... '혜영이와 영철이네', '정식이네' 그리고 '혜연이네'가 겪어야 하는 삶이 온전히 그들 부모들 개인의 탓이었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 아저씨의 체면>은 '개인의 탓'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오로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한 개인의 한 번 뿐인 운명을 결정지어주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숙명여중·고의 전속 사진사인 일명 '개미 아저씨'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을 때 홀로 38선을 넘어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헤어진 부인을 잊지 못하고 이후의 반평생을 홀로 살아왔지요. 왜 결혼하지 않으셨냐는 저자의 질문에 개미 아저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 "체면이 안 선다 이거지. 남의 집 귀한 딸 데리고 와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내버려 두고 왔는데, 내가 새살림 차려 버리면 내 체면이 뭐가 돼요. 난 그렇게 못해요. 미안하다 그거지."
물론 이 아저씨의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이기적이다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약 당신이 개미 아저씨의 말을 직접 들었었다면, 당신은 개미 아저씨 이야기로부터 과연 '무엇'을 끄집어 낼 수 있었겠나요?
'남의 집 귀한 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평생을 혼자 살았다는 개미 아저씨는 또 주섬주섬 카메라를 들고 학교 순례를 나섰습니다. 그 꾸부정한 어깨와 길쭉길쭉한 다리를 흔들며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 뒷 모습에 저는 왠지 부아가 치밀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백 배 천 배 더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절대로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고, 진심으로 한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그 미안함으로 스스로를 결박했던 한 고집센 노인의 체면과 만인에게 미안할 짓을 저지르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배짱을 부리고 받을 대접 다 받고 챙길 몫은 다 챙기고 다니는 군상들의 두꺼운 안면이 겹쳐졌던 탓도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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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형민의 글을, 그의 글쓰는 스타일을, 심지어는 그가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마저도 무.조.건. 좋아하는 저이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편견 가득한 공감'이 제 (머리속이 아닌)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편견 가득한 공감'으로 인해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던, 이 책을 읽었던 그 짧았던 시간 동안 정확히 세 번... 제 가슴이 울컥.했었더랬지요. 그마저도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는 곳이었었기에 세 번 뿐이었을꺼라고, 만약 당신이...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에서도 '편견 가득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소유자라면,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타인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순수한 의미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를, 용기를, 그리고/혹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게 다가왔었던 세 번의 울컥함은 당신이 느끼게 될 그 최소한의 횟수일꺼라는 걸... 꼭 적어놓고 싶네요.
딱히... 무지하게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미 아저씨의 체면>을 읽고 있던 마침 그 때, 제 귀의 이어폰에서 '백수와 조씨'의 <보고싶었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더군요. 이 노래의 가사와 개미 아저씨의 이야기가 같은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혹여라도 이 책의 이 부분을 읽게 되신다면 꼬...옥!!!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한 여학생이 개미 아저씨에게 건네었다는 말... '통일될 때까지 사셔서요, 꼭 북한의 가족들 만나세요'라는 말이 혹여라도 이루어져, 아저씨와 부인이 서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머리속에서나마 그려보며 말이죠. (논리와 감상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이... 처음부터 그 마지막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정에 치우쳐 있는 듯 합니다만, 딱히 그렇다고 해 불만이 생기지는 않네요. 김형민의 책은 어떻게 읽어내든... 무방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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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걸
우리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시간이라는 걸
나 알지만
보고싶었어 보고싶었어
이렇게라도 만나길 기다렸어
잠시 후면 별들이 쏟아지고 강물이 솟구치고
꿈에서 깨어날거야
내일 밤에도 우리 여기서 만나
못다한 얘길 나눴으면 좋겠어
잠시 후면 별들이 쏟아지고 강물이 솟구치고
꿈에서 깨어날거야
내일 밤에도 우리 여기서 만나
못다한 얘길 나눴으면 좋겠어
보고싶었어 보고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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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본) 김형민의 다른 책들 :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썸데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