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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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년법】​

 

​◆ 일본 형법 41조 :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 14세 미만의 소년은 형사책임능력이 없다. 그러하기에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도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촉법소년이라고 불려 체포의 대상이 아닌, 보호 수속의 대상이 된다. 소년법의 이념에 의하면 어린이는 세공용 점토와 같다. 어린이의 범죄는 미숙함 탓에 환경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범죄를 범한 어린이는 죄의 처벌을 하는 게 아니라 재기를 위해 교육적인 수단으로 지도한다는 이념이 성립되어 있다. 가소성이 풍부한 어린이는 충분한 지원이 있으면 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소년법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일본 소년법 60조 : 형을 마친 소년은 장래를 위해 형의 언도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위의 법령 문구와 그에 관한 해설로부터는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법률도 또한 일본이 그것과 별반 차이는 없을 것도 같구요. '어린이는 세공용 점토과 같아 풍부한 가소성이 있다'라는 표현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도 해, 심지어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개인적으로는 가장 쓸데없는 논쟁 중 하나라 생각하는) 성악설에게 완벽한 KO 펀치를 날리고 난 후 환호작약하는 성선설의 모습까지도 떠올려 주기도 합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은 모두 (범위를 좁혀 본다면)일본 소년법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넓게 본다면 물론 '사적 복수'에 관한 이야기들이겠죠) 그렇다면 과연... 작가 야쿠마루 가쿠는 「천사의 나이프」를 통해 일본 소년법에 관한 어떠한 메세지를 전해주려 했던 것이며, 그 메세지는 과연 앞의 두 작가가 건네어 주었던 것들과는 (좁은 범위와 넓은 범위 모두에서)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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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에서 소년법의 한계로 인해 피해자가 스스로 딸의 복수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통해, 결국엔... '성공한 복수라해도, 피해자의 가슴 속 상처를 완전히 지워줄 수는 없다'라는 일견 역설적이기도 한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방황하는 칼날」에서 (소년법과 사적 복수라는 두 측면 모두에서) 이야기의 초점을 피해자보다는 경찰의 입장​에 더 집중해 바라보고 있었었지요. 피해자의 아버지가 가해자가 된 순간부터,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버린 (원인 제공의) 가해자를 지켜내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역시나 인간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인) 경찰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심적 갈등을...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삼고 있었던 것부터가 미나토 가나에와는 완전히 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있었던 겁니다. (「고백」에는 경찰을 비롯한 그 어떤 공적 영역도 등장하질 않지요. 즉, 사적 복수의 허무함을 오로지 사적인 영역으로부터만 이끌어 내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 점이 제게 이 소설을 특이하다/대단하다라 여기게 만들어 주었지요.)

위의 두 작품들과 동일한 정서 - 소년법의 문제점, 그리고 사적 복수 - 를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 「천사의 나이프」는 스토리의 구조는 좀 더 복잡하며... 등장 인물들의 화법은 좀 더 솔직 하고, 그리고 결론은 좀 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또한 새드 엔딩에 가까웠던 두 작품에 비해, 「천사의 나이프」는 최악의 상황에서 비교적 해피 엔딩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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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가족】​

​주인공 히야마의 부인 쇼코는 세 명의 중학생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일본의 형법은 예의 그 세 명의 신상을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으며, 형사처벌을 내리지도 않았지요. 법이 앞장서서 가해자는 보호해주면서도,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아무런 배려를 해주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일본 소년법의 이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억울해 분통 터질 수밖에 없는 불합리로 다가오는 거지요.

죄를 범한 어린이들의 재기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념은 범죄피해자나 그 가족의 통곡을 짓밟고서 성립되어 있었다. 죄를 범한 어린이들은 과잉된 인권 의식에 의해 극진하게 보호 받는다. 그럼 살해당한 쇼코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것일까. 죽어 버린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일까. 잃어버린 생명이나 상처 받은 마음은 결코 점토처럼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 피해자 측에 있어서는 가해자가 성인이든 미성년이든 잃어버린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째서 미성년에게 살해당한 순간부터 피해자의 생명이 가진 가치는 가벼워지고 마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은 소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조차 없는 것일까. 소년들이 어째서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소년들이 지금 어떤 기분을 안고 있는지를 어째서 알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심판에 참가해 소년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부인을 살해한 범인들에 대한 히야마의 증오는 결국/그러하기에... 이러한 자신의 증오를 밖으로 표출해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경찰과 사법계 전체를 향하게 됩니다. ---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사사로운 행복을 바라는 일반 시민을 지켜주는 것이 경찰이고 법률이 아니었던가' ---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응보를 일본 형법으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히야마는 어쨌든 자신의 분노나 증오의 창끝을 향할 구체적인 존재를 필요로 했고, 이의 일 방편으로 민사소송을 알아봅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가정으로부터 고액의 배상금을 뜯어내 그들이 의식주조차 어려운 생활고 속에서 평생 죄의 무게를 생각하며 살게 만들어버리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복수의 방법마저도 일본 법은 가해자들에게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너무도 많이 남겨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절망하게 되지요.

아내를 잃은 히야마가 이러한 분노와 좌절을 겪는 것과는 달리, 쇼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들에 대해 히야마로서는 일견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 이유를 묻는 히야마에게 장모는 이렇게 말해주지요. --- "소중한 사람이 당한 것과 같은 괴로움을 맛보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분을 꾹 억누르고 있지. 이 이상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라 말했던, 「방황하는 칼날」속 아버지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히야마는 결국... 장모의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소년들을 증오한다고 죽어버린 쇼코가 돌아오는 건 아니다'라는 히야마의 말은 「고백」의 주인공 유코가 했던 독백과 완벽하게 똑같지요. 비록 「고백」의 주인공이 자신의 복수를 모두 끝마친 뒤에야 이를 깨달았다는 차이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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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의 주인공 유코의 이 말을 통해 '성공한 복수라해도 그것이 아픈 기억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라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해주었었습니다. 작가 야쿠마루 가쿠가 「천사의 나이프」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결국엔 이와 똑같은 내용입니다. 헌데... 훨씬 더 가슴이 아프죠. --- 「고백」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피해자가 (또 다른 사건의) 가해자로 변해버리지요. 이 작품 「천사의 나이프」에서는 '피해자 -가해자'의 구분이 매우 혼란스러우며 그 혼란이 바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만들어 내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가 되어주고 있고, 결국 이러한 혼란이 '거듭되는 반전'을 거쳐, (비록 소설적 작위가 좀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마지막에 가서는 의외의 인물을 '끝까지 속죄하기를 거부한 진정한 범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책의 뒷표지에 쓰여있는 '3중 트릭'을 통한 '혼란의 마무리'를 자아냅니다. --- 책의 마지막 30여 페이지가 보여주는 살인 사건의 진실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란 말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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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소년들이 스스로 범한 죄를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사회로 돌아와 자신들과 마주 서기를, 잃어버린 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지만 피해자 측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가해자들뿐인지도 모른다. …… (가해자의) 인생에 묻어 버린 검은 얼룩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닦을 수 없다. 아무리 어리고 미숙하다 한들, 스스로 멋대로 닦아 내서는 안 되는 거다. 그것을 닦아 줄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처 입힌 피해자나 그 가족뿐이다. 피해자가 정말로 용서해 줄 때까지 끊임없이 속죄하는 것이 진짜 갱생인 거다.

"가해자... 가 남은 일생을 통해 느껴야하는 괴로움 …… 그것을 닦아 줄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처 입힌 피해자나 그 가족 뿐이다'라는 작가의 메세지. --- 이 작품을 읽어본 분이라면 이 메세지의 참뜻을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는 분에게는 얼핏 이해되지 않을 , 혹은 심정적 반발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제가 이해한 바의) 「고백」에서의 메세지는 피해자들에게 완전한 상처의 치유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의 메세지는 자신들에게 상처를 안겨준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서는 안되는거다쯤이 되는 거겠죠. 이 작품 「천사의 나이프」는...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가 지니는 범위나 무게면에서 위의 두 작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더 무겁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그들이 가져야할/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을 한 작품을 통해 모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이 작품의 메세지는 그 무게만큼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느 한 장면> ---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라는 말을 통해 푸코는 사실 '근대화 자체에 대한 비난'하고자 했었음에도, 대한민국의 우익은 이를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었단다'라는 의도적 오역誤譯을 통해 '한국적 근대화의 폭력성을 옹호'해 왔었었지요. --- '가해자가 일평생 겪게 될 양심의 가책을 닦아 줄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처 입힌 피해자나 그 가족 뿐이다'라는 명제의 의도적 오역 또한, 과거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층이 <현대사의 어느 한 장면>, 그 피해자들을 향해 '이제 그만 다 용서해라, 앞날을 위해서라도 <그 장면>은 이젠 완결된 과거가 되어야만 한다.'라 강요했었던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물론 작가는 이러한 오역을 단호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위의 명제. '가해자가 일평생 겪게 될 양심의 가책을 닦아 줄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처 입힌 피해자나 그 가족 뿐이다'가 성립될 수 있는 기본적 전제는 바로 가해자의 진심어린 참회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갱생인 것이며, 그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피해자(의 유족)에게도 가해자의 얼룩을 닦아달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지요. 즉, 「고백」과 「방황하는 칼날」이 가지고 있는 메세지들이 매우 직선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의 메세지는 '가해자의 속죄'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만 이해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에 더해 미나토 가나에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제시하지 못했던 '사적 복수를 반대함의 이유'/'사적 복수를 참아내게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야쿠마루 가쿠는 나름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기도 하지요. --- 가해자의 <속죄>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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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 뒤치락... 하는 여러 번의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지고 있는 소설입니다. 비록 이 감상문에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1/10도 적어내지 않았습니다만, 이 소설을 읽었던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 소설의 핵심이 <속죄>라는 단어에 있다는 것에는 동의해주지 않을까, 그와 더불어...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 그런데! 그 두 상극의 지위가 시간을 뛰어넘어 가슴 아프게 한 점으로 모이게 되는 여러 장면들, 그 상황에서 내뱉어지는 한 인물의 다음 절규가,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저를 정말로 찌릿!!!하게 해주더라는 걸,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편이 아냐! 공범이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는 기분을 모르는 넌 같은 편이 아냐!"
 
 
'공범이긴 하지만, 같은 편은 아니다'라는 이 말을 자아내게 만든 가슴 아픈 이야기... 가 건네주는 찌릿함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또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하시다면, 바로 이 작품 「천사의 나이프」가 아마도 그 완벽에 가까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듯 하다라는 저의 개인적 의견에 한 번쯤 속아봐주시는 건 어떨까... 도 싶다는 말로써, 이 작품의 감상문을 마칩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라페스타의 Angel-in-Us는... 그야말로 사립 독서실이군요. ^^
 
 
 
※ 이 작품과 더불어 꼭!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해 드리는 소설들
- 미나토 가나에 作, 고백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방황하는 칼날
- 조세희 作,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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