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VS Rest of the World'의 구도로만 본다면, 제가 읽는 소설들 중 한국 소설의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별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독서에서 차지하고 있는 꽤나 높은 일본 소설의 비중은 또한 그런 구도로는 설명될 수 없기도 하지요. (이런 것에도 '원인'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그 원인을 따져보자면 아마도... 제가 독서 초기에 접했었던 한국 소설들이 제게 크나큰 실망만을 안겨주었던 반면 (「오빠가 돌아왔다」와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결정!적이었죠),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처음 접했었던 일본 소설은 그 이후 별 커다란 편차없이 제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어왔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게 아직까지는 질리질 않기에, 우리나라의 작가가 쓴 미스테리 소설로 '정말 재미있다!'​란 평을 받는 이 책, 「궁극의 아이」를 사놓은 건 꽤 오래전입니다만, 그간 매번 뒤로만 밀려오던 중... 이웃 핑키님께서 올리시는 서평들이 죄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이어 차마 서평 자체는 읽지 않고, '나중에 이 책 읽고 와서 서평 읽어보겠습니다'란 덧글만 쓰는 게 더 이상 민망스러웠다라는 것이... 한국 작가가 쓴 추리 소설류를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해보게된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만, 처음 몇 장을 넘기는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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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야라는 한국인 남자와 엘리스라는 미국인 여자가 십 년 전, 어찌어찌 만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엘리스는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이걸 병이라 불러야 하는지조차 의문스러운 증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녀는 그녀가 일곱 살 이후 벌어진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하고 있지요. 그 상대인 신가야 또한 비범한 인물이어서 일명 '궁극의 아이'라 불리우는 사람으로, 이 '궁극의 아이'는 자신의 모든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헌데 신가야는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의 미래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는 '진정한 궁극의 아이'로 설정되어 있지요. 소설은 이처럼 두 인물이 각각 가지고 있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특별한 능력들을 사용해 개인적 차원의 문제들을 풀어가다가 결국엔 이 세상을 '지켜내게 된다'는 사뭇 거대한 결말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헌데 표현이 좀 어색하죠? '미래를 본다'라는 말은 들어봤을 수 있지만, '미래기억한다'라는 말은 당췌 두 단어의 정의상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조합이니까요. ---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이 특이한 표현에 대해 소설은 "궁극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기억을 갖고 태어나오. 인생 전체를 뇌 속에 이미 저장한 채 세상에 나오는거지"라는 대답을 해주며, '미래를 본다'라는 일반적(?) 표현에 대해선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래를 본다는 건 강물에 흩어진 책을 모으는 것과 흡사한 일이야. 어떤 부분은 휩쓸려 가고, 어떤 부분은 번져서 읽을 수가 없지. 중요한 건 클라이맥스를 찾았다고 섣불리 결말을 예상했다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거야.

즉, 주인공 신가야는 위와 같은 '확률분포를 지닌 예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100%의 확률을 지닌 확실한 예언'을 하는 인물라는거지요. (문득 '찢어진 백과사전'이란 말이 생각나더군요. 아는 건 확실하게 아는데, 그렇게 알고 있는게 꽤 많기도 한데... 모르는 건 또 아예 모른다는 상황을 말할 때 쓰이는 표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가야의 예언은 틀리는 적도, 빗나가는 적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식의 애매모호함조차 없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신'의 말이 되는겁니다. 이러한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할 때, 세상은 당연히 그를 원할 것이고 또 그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된다라는 건... 굳이 '작가적 상상력'을 필요로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예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겠지요.

이 작품은 예의 그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데,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만들어 낸 시나리오는 (실제 존재했었던 '로쉴드 가문'의 이야기를 차용한 듯 보이는) 호크쉴드 가문이 그 '궁극의 아이'를 손아귀에 넣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예의 주인공인 신가야를 중심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연결되고 있는데, 그 연결 고리들 모두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치밀한 연결 고리들'은 이 소설을 '너무너무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결정적 바탕을 이루어주기도 하지요. 또한 작가는 이 소설의 배경에 다음과 같은 윤리적(?) 질문을 깔아놓음으로써 이 작품을 그저 '재미만 있는'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고도 있습니다...만!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첫 번째는 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에 현혹되어 폭탄이 잔뜩 실린 자동차를 몰고 건물로 돌진하는 사람이에요. 두 번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지한 부하들에게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폭탄이 든 차를 몰고 건물로 돌진하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마지막 세 번째는 이들에게는 폭탄을, 반대편에는 이들을 찾아 없앨 수 있는 미사일을 팔아요. 뿐만 아니라 무기를 팔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요. 그리고 이들이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샴페인을 마셔요. 자, 이 세 종류의 사람 중 누가 최고의 악당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독자는 당연히 세 번째 인물을 최고의 악당으로 지목할 수 밖엔 없으며, 작가는 이 뻔하디 뻔한 '윤리적 상식'을... 방대한 스토리를 지닌 이 소설의 결말을 이끌어 내는 '출구 전략'으로 삼고 있는겁니다. (모든 소설에 반전이 있어야하는건 아니겠습니다만) 이처럼 이 작품은 누가 결국 승리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손쉬운 예상을 허용하고 있으며, 작가 또한 자신이 허용했던 그 손쉬운 예상을 예의 어김없이 자기충족(self-fulfilling) 해주고 있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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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는 집을 직는 것과 흡사하다. 누구가 꿈꾸는 집 한 채쯤은 있을 것이다. 한적한 교외에 백일홍나무가 있는 아담한 정원이 있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는 나만의 집. 겨울에는 장작을 땔 수 있는 벽난로가 있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는 시원한 숲이 뒤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집을 가슴에 품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겨 나갈 것이다. 나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집을 내 손으로 한 채씩 지어 가는 것이다.   - <작가의 말>중

정말로 훌륭하게 지어진 한 채의 집을 보았습니다. 작가가 위에서 말한 그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고 독자 스스로 의심의 여지없이 느끼게 되는 집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내가 꿈꾸는 집'이 갖추고 있었으면 하는 거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해도, 아담한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선 매일 하루 종일 땀흘려 유지보수를 해야한다면, 집 앞의 강과 집 뒤의 시원한 숲으로 말미암아 한 여름에는 그 집이 모기와 날파리들의 지상낙원이 되어버린다라면, 게다가 너무도 한적한 곳이어서 쌀 한 봉지 사려해도 한 시간 이상을 차몰고 나가야만 하는 곳의 집이라면 아마도 우린... '집에 대한 나의 꿈' 자체를 즉각 바꾸게 되지 않을까요?

대학 1학년 때, 소개팅해 만났던 여학생을 두 번째로 만났던 날이었었습니다. 어디서 뭘 했었던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나름 즐겁게 있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죠. 삐삐조차 없었던 시절이라 다음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이냐를 그 자리에서 정해야했던 순간! 저보다 꽤나 작았던 그녀의 가르마에서 뭔가 비듬스러워보이는 것들이 몇 개나! 보이는겁니다. 결국 '또 연락할께요~'란 말과 함께 그녀는 그렇게 저에게서 지워졌었지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하니, 여자 선배들은 '그게 비듬이 아니라 스프레이를 과하게 뿌려 생긴 것일 수도 있다'라며 그녀를 옹호해주기도 했었습니다만 '사람을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가르마 사이의 그 무언가로 인해, 심지어 뒤돌아선 그녀의 올나간 스타킹을 보는 것으로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 정말로 재미있게 읽어 내려간 책이었습니다만, 책을 다 덮고 나니 이처럼... 꽤 괜찮게 생각했었던 그녀의 가르마 사이에서 무언가를 본 듯한, 뭔가 '미완성의 마감'이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더군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소설에 대한 취향'과 이 작품과 딱히 코드가 맞지 않았다라 말하는 게 옳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냥... 무지하게 속도감 있고 재미 만땅인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이라 말할 수 밖엔 없으며, "이번 소설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다. 누구나 꿈꾸지만 마음으로 그릴 수밖에 없는 애절한 사랑. 가슴 깊이 흉터로 남았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 이것이 이번 소설의 대들보이다. 거기에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설계가가 디자인한 멋진 외양을 덧붙이려고 했다."라는 작가의 말에선 오히려! 죄송스럽게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이 떠올랐다는 말을 또 하지않을 수 없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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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정말로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보다 훨씬 더 높은 평점을 받을 수도 있겠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런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도 한 작품이기도 하구 말이죠. 제 취향을 바탕으로 그리하여/그렇게... 이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표현해 본다면, (책의 무게도, 그리고 책의 주제도 무겁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를 내포하고 있는) <휴가지에(서 행여라도 책을 읽게 된다면) 가지고 가도 괜찮을 책>의 리스트에서 '원 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책 정도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뭐... 제 현실은 집에서 맥주와 함께한 독서.였었지만서도.

(읽어본 작품들 중) 휴가지에 가지고 가 읽어도 괜찮을 듯한 소설들

- 미치오 슈스케 作, 「외눈박이 원숭이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용의자 X의 헌신

- 오기와라 히로시 作, 「소문 
- 아비코 다케마루 作, 「살육에 이르는 병 
- 위화 作, 「 허삼관 매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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