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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평점 :
사회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 본래 학자는 사유의 대리인이다. …… 사유의 대리인으로 위임장을 받았기에, 학자의 전문성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조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을 대리할 수 있는 능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 (저자 자신인) 사회학자는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세속으로의 잠행을 통해 채집한,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자전적 사회학자'였던 사람들의 세상 경험을 각각 씨실과 날실로 삼고 사회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테피스트리를 짜는 제작자이고자 했다. -- <머리말> 중.
'무엇'에 관한 책이라 설명해야 할지, 있는 없는 솜씨를 죄다 발휘해 그 '무엇'을 어찌어찌해 골라내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 책의 저자가 그 '무엇에 관해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를 과연 내가 정리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 '명품, 프랜차이즈, 열광, 해외여행'등의 일상에서부터 '자살, 죽음, 수치심'등의 어두운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섹스, 취미, 가족, 명예, 수치심'등의 매우 개인적 영역까지를 아우르는 모두 스물 다섯개의 키워드에 대해 각각의 키워드와 관련된 책들에 등장하는 이론에서부터 결국엔 그 키워드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까지를 그야말로 콕콕! 집어 설명해주고 있는, 실제의 두께를 훨씬 뛰어넘는 그런... 엄청난 깊이를 가지고 있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자가 나누어 놓은 스물 다섯개의 키워드들 중 몇몇을 제 임의대로 한데 묶어 어줍잖은 감상문을 써보려합니다. 이 모든 것은 결코... 겸손함의 표현이 아닌, 그야말로 제 진심.임을 이렇게 미리 밝히고...서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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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사회가 있다면, 과연 그 사회는 유토피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라는, 사뭇 '상식적'이어보이는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우리의 상식관 다르게도 '아니다!'입니다. --- 나의 상식과 당신의 상식, 그렇게 상식과 상식이 만나고 서로 견제할 때 몰상식은 생겨나지 못합니다만, '단 하나의 상식'만이 사회에 존재하게 되면 그 상식은 필연적으로 몰상식으로 변질되어버리며, 결국 그 사회는 몰상식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것이 자신의 대답에 대한 저자의 설명입니다. 이 '단 하나의 상식'의 일례로 저자는 대한민국에 퍼져 있는 '부자 되기 욕망'을 들고 있는데, 다른 상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유일한 상식으로 사회 구성의 모두의 뇌리 속에 자리잡게 된 '부자 되기'는 부동산 거품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둔 아파트의 가격만큼은 하락해서는 안 된다는 자폐적 사유를 만들어 내었으며, 이러한 사유는 그 지배적인 상식이라는 괴물에게 자신 스스로가 바쳐질 제물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모든 상식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각 개인들은 각자의 상식에 근거를 둔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독립 가게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표준화된 프랜차이즈를 선택하는 건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합리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들의 결과로 깁밥천국 옆에 있는 김가네 김밥집을,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나란히 영업을 하고 있는 어이없는 풍경을 우리는 목격하게 되지요. 저자는 이를 두고 '하나하나의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순간'이라 표현하며, 이처럼 작은 합리적 선택이 쌓여 빚어낸 거대한 비합리성은 서로가 서로를 복제한 듯 비슷해져 있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냈고, 결국 우리가 이러한 풍경 속에서 읽어내게 되는 건 오로지 자본의 축적과 유동뿐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적 다수에 근거한 보편성인 상식이라는 것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낳는 것과 연관해, '성장'과 '성숙'에 관한 저자의 설명 또한 매우 흥미롭습니다. --- 성숙이란 성장통을 겪은 후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성충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과도 같다라 저자는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성장이 성숙을 낳고 배움이 인격을 낳는 비율을 성숙률이라 정의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성숙률은 출산율과 더불어 OECD 국가 최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유식'과 '교양'이, '성장'과 성숙'이 결합하지 않은 얼치기 배움이 판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양적 팽창을 의미하는 것에 부과한 '성장'이 '성숙'을 대체하여 삶의 목표가 되어 있기에, 외양적으로는 지식 사회인듯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배운 사람과 성숙한 사람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상식이 바람직함까지를 갖추었을때 비로소 양식良識이 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회는 상식을 그러한 양식으로까지 아직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문득 진중권의 '한국의 천민성'을 떠올려 주는데, 이와 관련하여 저자 노명우는 <명예>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지배하는 사회이고, 이 사회에선 돈이 곧 명예이고, 명예 또한 돈으로 환산되는데, '아너스'클럽이 명예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 돈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고, 명예박사는 영리를 위해 살지 않았던 마더 테레사와 같은 사람에게 선물하는 존경의 표시가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재벌 충수가 챙기는 전리품으로 전락해 버려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우리 사회에서의 명예는 일종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승리자가 받는 표식'이 되어있다 말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부자는 이제 돈만이 아니라 명예까지도 손에 쥐고 있는, 질투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현대적 위인'이 되어 있는데,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 '현대적 위인'들의 일상을 부러워할 뿐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모방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을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이를 '허구적 욕망'이라, 김찬호는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 '차이에의 집착'이라 각각 표현했지요. 하지만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경제력의 발목에 잡혀 부자인 척 보이고 싶어하는 이러한 욕망을 실현할 수 없게되었고, 결국 '짝퉁'이라는 사회적 용어를 만들어내는데, 저자 노명우는 여기서 '진품'과 '짝퉁'의 차이는 오직 경제력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창출되는 현상은 소비 사회의 일반적 모습이긴하지만, 김찬호는 이에 대해 '한국 사회처럼 일면적인 근대화가 급속하게 추진된 결과 물질적인 조건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반면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획일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회일수록 더 심각하고 왜곡된 양상으로 드러'날 수밖엔 없다고 지적했지요.
진품의 명품은 타인들에게 내가 성공했음을, 내가 돈이 있음을 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며, 이 메시지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사회의 대다수인 중산층입니다. 자신의 소비 수준이 곧 '체면'이 되는 소비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경쟁으로붙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은 이러한 명품에 아예 관심도 없을 수 있지만, 한쪽 발은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다른 한쪽 발은 욕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딛고 있는 중산층은 명품이라는 잡힐듯 말듯한 그 훈장이 너무도 탐날 수 밖엔 없기 때문이지요.
여기까지의 설명이라면 이 책이 그냥 꽤 잘 쓴 매력적인 사회학 책으로만 머물러 있었겠습니다만, 이러한 현실이 의미하는 바를 확장시켜 놓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사뭇 섬뜩하기까지도 한 해석은 저로 하여금 이 책을 '대한민국의 현실에 무언가 불만/아쉬움/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승리하지 못했으나 승리가 부러운 사람 …… 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층의 과시적 소비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 …… 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화한다. 유권자일 때 유효하던 1인 1표제라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평등은, 소비자로 변화하자마자 구석에 처박힌다. 유권자는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축적된 부를 단죄하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지만, 소비자로 변화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승자와 패자로 분리된다. …… (그렇게)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부자들의 불법 상속에 무관심해지고, 쇼핑몰에 습관적으로 북적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투표율은 낮아지고,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공적인 일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법이다.
이를 진중권은 "'개인'이란 말은 in+dividual, 즉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라는 뜻이다. 하지만 컴퓨터에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을 때 정신이 다양한 관심사로 분할되듯이, 이처럼 전통적 의미의 '개인'은 해체된다"라고 서술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여러 면에서 앞서 읽었던 진중권과 김찬호의 책에서 다루었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천민성'으로 표현되었던 것과 관련한 저자의 주장과 진중권의 주장은 다음에서 보여지듯이 그 표현만이 다를 뿐, 거의 완벽하게 똑같은 주장을 담고 있기도 하지요.
● 외국인을 만나면 제일 먼저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묻는다. …… 상대가 대답을 하면 이제 머릿속에 당장 그 나라의 1인당 GDP가 떠오른다. 모든 문화적 가치를 화폐의 양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돈 내고 돈 먹는 사회의 '시장주의 코드'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좌변에 그 나라의 GDP, 우변에 우리나라의 GDP를 놓는다.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좌변과 우변 사이에 들어올 부등호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보다 GDP가 많으면 괜히 그가 존경스러워진다. 우리보다 적으면 은근히 무시하면서 괜히 그에게 '잘살아보세". 새마을운동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사람을 늘 위아래로 놓고 보는 '보수주의 코드'다.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 중.
● 서양에 다녀왔기에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이른바 유학생의 전성시대는 <서유견문>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 소위 '사회 지도층'은 서양이라는 본래 모호한 지리적 개념을 우리가 있는 '이곳'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시킨다. …… 선진국 타령은 내치의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이 단골로 사용하는 무기이다. 노동조합이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파업을 해도,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해도, 그 어떤 주장이나 요구도 모두 잠재우는 만병통치약은 "선진국이 될 것이냐 여기서 주저않을 것이냐"라는 협박성 구호이다. 유길준의 안경을 변조한 박정희의 선글라스를 여전히 쓰고 있는 사람들은 이 협박에 쉽게 굴복당한다. 이 협박에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은 나라와 나라의 수평적 관계 따위는 아예 상상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상식 속 나라 사이의 관계는 …… 수직적이기만 하다. 수직적 관계만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 앞에선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근거 없이 깔보기 일쑤다. …… 그래서 입만 열면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미국에서는…"이나 "선진국에서는요"를 들먹여야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아적인 사고방식이 전문가의 식견으로 둔갑하고, 미디어는 정체불명의 유령 기호인 '선진국'을 들먹이며 외국에 대한 열패감을 조장하느라 바쁘다.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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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까지는 저 개인만의 영역이기에 그것에 대한 애로 또한 완전히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만, 물론 순전히 훗날에의 '개인적' 기억을 위한 '개인적' 기록이라고는 하나,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감상문을 쓴다는 건 제가 이 포스트를 다 쓰고 '확인'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이후부터는 개인적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거겠지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대한민국에서 자라고 나이들어 온, 여전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이기에 김찬호, 진중권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노명우가 지적했던 대로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저 또한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이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저자가 <에필로그>에 써놓은 글 일부를 다시 한번 그대로 인용해 놓는 것으로 그러한 시선들로부터의 부담감에 대한 일종의 면피용 방패를 삼아보는 것으로 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써놓은 이 감상문은 이 책이 전해주고 있는 깨우침의 1/100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 그러하기에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나아가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원하신다면 부디 일독을 권해봅니다.
시장은 범죄율을 숨기고 여자 의원은 주저하고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정작 투표일을 까먹고
일기 예보관은 맑은 날을 예고했는데 비가 온다고 투덜대고
모두가 저항하고 있는데, 남자친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지 말라 하고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없고, 여자들도 보호받지 못하고
정치인들은 이용당하는 사람들을 써먹고
오염된 강물처럼 마피아 세력은 커져만 가고
당신은 이게 현실이나 내게 말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는 지끈거리고
침대에서 흘러나오며 내던졌던 옷들을 끼어 입고
창을 열고 뉴스를 들어도 지배층들의 블루스만 들을 수 있을 뿐이고
총은 불티나게 팔리고, 주부들은 삶이 따분하고
이혼만이 해법이고, 흡연은 암을 유발하고
열 받아 있는 젊은이들의 노래 속에서 이 따위 체제는 곧 망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구체적인 냉혹한 사실일 뿐이고.
- 로드리게스, "이것은 노래가 아니고 분노야", <콜드 팩트> 앨범 중에서.
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 ……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신 마음 속의 고통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콜드 팩트'라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삶은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지 않은 채 치유될 수 없다. …… 나의 불행의 근원이 모두 기구한 팔자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환등상의 불을 끄고 그 어둠 속에서 세속의 리얼리티와 마주칠 때 그리고 '콜드 팩트'를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힐링의 대상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죄가 없는 개인들이 죄가 많은 사회에게 불만을 말하는 애처로운 시도이다. 모두가 리얼리티에서 눈을 돌리고 위안을 찾기 위해 위안의 노래만을 듣는 시대에 사회학자는 '콜드 팩트'를 혼자 부르고 있다. 그 외로운 노래가 합창이 될 때, 상처받은 사회는 비로소 자기 치유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