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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는 논리 - 개정판 ㅣ 문지푸른책 밝은눈 3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평점 :
사회가 빨리 변화하고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세계관으로 삶을 영위하고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한계가 드러날 때 …… 당연시되어온 명제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나타날 때 …… 우리는 확고하게 지탱되어온 신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나의 사고방식에 허점은 없는가? 우리들 사이에 통용되어온 상식에 어떤 모순이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는 거기에 일정한 틀을 제공하는 지식의 체계가 암묵적으로 깔려있는데, 그러한 체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왔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또한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변화에 비하여) 매우 느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식 체계를 일종의 삶에 주어진 변할 수 없는 조건, 즉 '환경'으로서 인식하게 되고 그러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보통 때에는 의식의 대상으로조차 떠오르지 않게 만든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뭔 소리냐구요?
저자는 이러한 상황의 단적인 예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우화를 들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 우화가 '열심히 노력한 자가 결국엔 보상을 받는다'는 교훈을 가르친다라 배웠었습니다. 그 가르침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 우화는 이러한 교훈을 담고 있다. 질문 사절. 끝!'이라 말해주었고, 그 결과 '열심히 노력한 자는 결국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라는 교훈은 우리의 머리속에서 이미 하나의 '변함없는 객관적 사실'로 각인되어 버림과 동시에, 이 경주가 왜 애초부터 꼭 땅에서 치루어지는 걸 전제로 했어야했나, 즉 만약 똑같은 경주가 물에서 이루어졌다면 어떠한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느냐에 대한 의문의 여지는 아예 생겨날 수조차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은 이러한 '당연시되어온 명제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나타나'고 있기에 그러한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이 상황에 그저 우왕좌왕할 수밖엔 없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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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여기서 정보사회로. 한국에서는 이 과정이 유난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서구에서는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 비교적 큰 시간차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세 가지 시간대가 공존한다. 근대화의 급속함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인 몸속에 강한 전근대성을 남겼고, 뒤처졌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특유의 성급함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을 그 어느 곳보다 미래주의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
20세기에 일어난 변화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몇백만 년 동안 겪은 변화를 능가한다. …… 그러한 변화가 가져다 주는 충격과 혼란은 한국 사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산업화의 대열에 갑자기 뛰어든 사회일수록 훨씬 증폭되어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의 체험 속에는 보릿고개의 처절한 기억과 공업화의 힘찬 약진,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이 공존하고 있다. ……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은 우리 삶의 뚜렷한 발자국이다.
- 김찬호 著 「사회를 보는 논리」 중
이 책 「사회를 보는 논리」는 여러 면에서 「호모 코레아니쿠스」와 같은 상황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자 김찬호 역시 우리나라가 지금 처해있는 문제적 상황의 근본적 원인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로부터의 가르침으로 대변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잘못된 교육'을 꼽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 진화의 비결을 '질문할 수 있는 능력'으로 들고 있는데, 인간은 주어진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 속에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지요. 헌데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정해진 물음과 정답의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회로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지식의 주체가 되어볼 기회를 아예 가져보지도 못했었다는 겁니다. 그런 교육의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에 과연 답할 가치가 있는가?'와 같은 주체적 의문은 아예 생겨날 수도 없었었으며, 주입되어진 수많은 지식들조차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그저 단순히 잡다한 지식의 나열에만 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지요.
이미 축적되어 있는 굳은 지식을 암기하는 쪽으로 치중하고 있는 지금의 학습은 근본적으로 궤도 수정되어야 한다. 그 기능은 기계가 더 훌륭하게 수행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머릿속에 집어넣는 데이터는 지금 기술로 조그만 침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칩 수천만 개로도 못 해내는 창의력이다.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이 '창의력의 부재'와 관련하여 --- 70-80년대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었던 대한민국이었지만 그 대한민국이 결코 당시의 '기술강국'일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바로 '기능'과 '기술'의 차이로부터 연유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지만, 기능공은 그저 깎으라는 것만 선반으로 깎을 수 있을 뿐, 왜 이런 모양으로 깎아야하는지 혹은 이것이 나중에 전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게될지를 전혀 그려낼 수 없다는 거지요. 김찬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주력해서 연마해온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본뜨는 복제 능력이었다. 그것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그 능력을 키우는 데 교육의 모든 힘을 집중시켰고, 그 능력에 따라 자리가 배분되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매우 숙달되어 있다. …… 말하자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리고 심지어 국가까지도 자신의 발전 모델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바깥에 의지해온 것이다. ……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 더 이상 '봐주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가 자기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우리가 연마한 실력은 '주어진'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목표 그 자체를 스스로 설정하는 안목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마인드이다.
저자는 지금 한국 사회가 맞고 있는 위기는 그럴듯하게 외형만 부풀려 온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문득 이번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제 더 이상은 미뤄질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위에서 서술해 놓은 대한민국의 교육 패러다임은 여전히 현재에까지도 지속되어와, 아이들은 선생님 혹은 부모님들이 '하라는 것만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것만을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지상과제로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어져왔고 그 결과, 고등학생이나 되는 아이들마저도 배가 현저히 기우는 상황에서조차 탈출해야겠다는 본능까지를 억누른 채 "제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지시에 따랐었다라는 상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한 그러하기에 그들의 죽음이 결국엔 대한민국의 교육때문이었다라는 비판을 극복해낼 수 있는 대응논리가 과연 있을수 있을지... 와 같은 의문들, 그리고 그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그러한 교육 자체를 바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나하는 생각말이죠.
2001년에 발간된 이 책의 주장이 지난 십몇 년간 지속적으로 무시되어왔기에 우리는 결국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을 막지 않은 것이 아닐까싶기도 한 뒤늦은 아쉬움과 함께, '하라는 대로만 하면'이라는 당연시되어온 명제가 무너져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나타난 이제, 대한민국의 교육이 과연 변화되기는 할 것인지, 또 변화된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될 것인지는... 또한 앞으로 그 대한민국의 교육에 제 아이를 맡겨야하는 부모된 입장에서는 정말로 고민해 보야할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과연 대한민국의 교육관료들도 이러한 고민을 하고는 계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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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학에서 교양과목의 교재로 사용되기 위해 쓰여진 듯한) 이 책은 이 밖에도 문화, 환경문제, 건강, 도시 계획 등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제가 특별히 관심있게 읽었었던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문화의 상대성을 먼저 거론하는데, 이는 사회에 따라 중시되거나 혹은 하찮게 여겨지는 문화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벤다이어그램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자면, 서구에서 개인들 간의 관계는 서로 접한 원들로 표시할 수 있다. 서로 접한 원들은 하나의 점만을 공유한다. 반면 공동체 정서가 강한 동양에서 원들은 종종 서로 겹쳐 교집합을 이룬다. 이 겹쳐진 부분이 인간미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교집합에서 또한 남의 옷차림에 간섭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야단치거나, 트인 장소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들어낼 권리가 나오기도 한다. ……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은 내가 내리는 결정에 주위 사람들이 개입할 권리를 의미하며, 내 삶에 주위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자격을 의미하며, 내가 하는 행동에 주위 사람의 눈이 감시할 권한을 의미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남에게 양도하는 이 권리만큼 남도 나에게 같은 양의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세상 너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바로 이 원칙의 단호한 표명이다.
저자 김찬호는 이 책에서 '노처녀 히스테리'를 바로 이 교집합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말을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것이 결혼을 하지 못한 데서 오는 욕구 불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정 부분 그러한 면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경우는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사회의 눈이 그들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하고 그것이 누적되어 심리적인 '비정상'으로 굳어지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는 (개인/집단간 문화의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는 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를 거부하고 간단하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그들을 '비정상' 혹은 '일탈자'로 규정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이런 사회적 분위기 하에서는 당연히 그 누구도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하지 않게 되며, 그러한 사회 분위기의 결과로 나타난 내면 세계를 개성적으로 가꿔가면서 그것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의 부족은 결국 한국인으로 하여금 외면적인 것에 집착하게되어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아주느냐에 따라서만 자기를 규정하게 되는, 즉 자기 존엄의 기반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에서 찾게 만들었다는 거지요.
이와 관련하여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한국 사회의 윤리를 형성하는 감정이 죄책감이 아닌 수치심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죄책감이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지만, 수치심은 자신의 죄를 지었다는 것이 타인들에게 드러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 분이 자신의 형에게 뇌물을 주었던 대기업 사장을 향해 "배울만큼 배운 분이 촌로를 찾아가 뭐하는 짓이냐"는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을 들은 날 그 대기업 사장이 자살을 한 일을 진중권은 그의 자살을 뇌물을 주었다는 '죄책감'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공공연히 드러나 자신의 스타일이 구겨진 데서 오는 '수치심'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더군요. (저 또한 이 시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찬호는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보편적 욕망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체면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게 된 근본적 원인을 저자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빈곤함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는데, 진중권 또한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옥정호의 2001년 작품 <꿈의 궁전 - 봄클 웨딩홀>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화적 빈곤함이 초래한 도시 건축의 천박함을 한국인의 삶과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꼬집어주었지요.

장식성을 갖고 싶어 안달하는 건물 …… 생명 없는 회색 시멘트 건물들 틈에서 요란하게 양식적 파격을 자랑하는 한국의 예식장 건물들. 중세의 궁전이고 싶어하는 예식장을 배경으로 은발의 왕자와 금발의 공주가 드라마를 연출한다. 유치원 꼬마들을 위한 동화극을 연상시킨다. 백마 탄 왕자와 드레스를 입은 공주는 결혼의 '이상'이요, 저 뒤에서 무뚝뚝하게 빨래는 걷는 여인은 한바탕 꿈을 꾸고 난 왕자와 공주들 앞에 닥칠 결혼의 '현실'이고 …… 또한 이것이 한국식 포스트모던의 도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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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와 「사회를 보는 논리」,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우울한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않느냐'라는 반론 또한 충분히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역사는 삶의 시간적 축적이고 그에 대한 해석이다. 그리고 그 축적은 연속적인 과정인 만큼 오늘 나의 삶으로도 이어지는 고리들이 있다"라는 김찬호의 말을 빌어, 우리의 역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알고 그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은 분명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개별성/배타성'을 지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인정한다면... 결국 그러한 반론이 가지는 무게는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엔 없지않을까 싶네요. ---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분명... 저에게서도 발견되는 것들일겁니다. 사회를 바꾸어 간다라는 건 그렇게 작고 작은 개인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고쳐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겠지요. 나는 과연 내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가하는 자책, 또 나는... 김찬호가 지적한 '문화적 빈곤함', 그리고 진중권이 지적한 '한국인의 천민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하는 반성... 모두 저를 고개 숙이게 만들어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