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제가 태어난 이 곳 대한민국을 떠나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그야말로 '생활해보고 싶다'의 수준이었지 결코 '살고싶다'는 아니었지요. (술 좋아하는 제 나이 부근의 남자에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천국!이니까요. ^^;;) 헌데 어젠가...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자하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50%에 근접하는 학생들이 이 나라를 떠나살고 싶다라는 응답을 했다더군요. 물론 '세월호 참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론조사였었음을 감안해야겠지만, '외국에서 한 번쯤 생활해보고도 싶다'라는 욕망이 저의 20-30대엔 '외국이 더 좋을 것 같기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었다면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여기 대한민국이 싫어서!'라는 이유로 말미암아 아예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라는 건 그야말로... 상당한 놀라움이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각종 추악한 모습들, 그리고 집단적 추모를 뛰어넘어 결국엔 '국가적 우울증'을 걱정하고 있는 이 나라. ------ 사건 이후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되어 나타난 여러가지 사회적 현상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를 떠나... '왜! 우리나라는 이럴까?'라는, 제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매우 무책임할 수도 있는 자조적 의문,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아 지금의 나이에까지 이르러 있는 제가... 과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문득 들더군요. 여기서의 '얼마나'에는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도 포함되어야하겠습니다만, 당장은... 제가 살아온 시간내에서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래서 해봤더랬습니다. 그때 그때 '언젠간 읽겠지'라는 생각으로 사놓았던 책들 중 다행히 이에 관한 책들이 몇 권 되더군요. 그렇게 하여 정해 본...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사뭇 포괄적이고 주관적이기도할 선택이 가능한 "ring boo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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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이나 '정체성'이라는 단어보다) 이 책의 의도에 더 적합한 것이 있다면, 아마 '하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일 것이다.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 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類的' 특성을 가지나,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은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의 몸에는 타고난 자연의 바탕 위에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층위가 얹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인의 몸에서 그 '구성된' 층위를,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하비투스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

작년에 1950년대와 1960년대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역사가 참으로 슬프다'라는 감정을 가졌었더랬습니다. 물론 '외부/내부로부터의 침략'이라는 불행이 그 슬픔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만, 한 순간의 쓰라린 기억이 이후 그의 일생에 걸쳐 어쩌면 삶 자체를 변질시키기도 하는 일 개인의 경우에서처럼 '침략'으로 인해 그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주체가 걸어가게될 길이 달라져야했다라는 게 사실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불행스런 대한민국의 운명이었기 때문이지요. 

 

저자 진중권 교수는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라는 미셀 푸코의 말대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근대화 또한 '전태일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잔인한 폭력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 말로 '근대화 자체를 비판'했던 푸코완 달리 대한민국의 우익은 푸코의 그말을 자의적으로 인용해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라는 '한국적 근대화의 폭력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둔갑시켜버렸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라는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노동력의 시간적 이동' 즉, 농경사회의 자연적 리듬을 따르던 신체들을 공장의 시간과 기계의 속도에 강제로 뜯어맞추는 과정을 통해 농민들을 일종의 '산업전사'로 변모시켰고, 어느덧 이러한 산업화 과정을 일정 정도 마친 대한민국은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은 리듬을 요구하게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경사회의 자연적 속도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 이주노동자들은 이 땅의 리듬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한민국 사회는 이를 곧바로 '게으름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아예 그 게으름(?)을 그들이 살다온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확정지어버립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인간을 배려하고 삶의 질을 고려할 의사가 전혀 없다'라 사뭇 서슬퍼렇게 해석해버리지요. 

 

이제 세상이 바뀌어 대한민국의 권력이 국가로부터 시장으로 전이되면서 과거엔 국가를 향했던 공적 충성의 의무가 고스란히 회사를 향한 사적 충성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기업에로의 인력공급원으로 전락해버린 대한민국의 대학, 그리고 대학생들은 과거처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뜯어고치고 있다는 것인데, 언뜻 자발적으로 보이는 이 '존재미학'이 사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요한 '생존미학'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새로운 한류라고까지 불리우기도 한다는 우리나라의 성형열풍을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기를 포기한, 바야흐로 자신의 신체까지를 예술의 재료로 만들어버리는 현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은 그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왜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저에게 일깨워주기도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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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주제를 놓고 정녕 알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었고, (다행히도!!!) 저자 진중권 교수 또한 이 책을 통해 이러한 분석보다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의식/문화'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부르주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궁정에서 귀족문화를 접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기 시작했고, 몇 세대에 걸쳐 완벽하게 자신의 몸에 체화시킬 수 있었었지만, 급속한 근대화를 보내야했던 한국의 부르주아들은 옛 양반들의 교양과 예법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었다는 차이를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민(부르주아)들이 막대한 돈을 주고 양반신분을 사려했던 주요한 이유는 양반들의 교양이나 격조를 원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차별해도 되고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높은 신분 그 자체였었었고, 일단 그러한 신분을 획득한 상민들은 그 이전에 자신들이 당해야했었던 차별의 한을 풀기위해 더 필사적인 차별을 했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그렇지않아도 앙상해져버려 그저 관혼상제 의식의 화려함이라는 껍데기정도만 남아있었던 양반문화라는 것은 결국 '신분제 의식'이라는 형태로 현재에까지 계승이 되었다는 거지요.  

 

저자는 이를 '한국의 천민성'이라는 사뭇 드러내놓기 꺼려들 하는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로 인해 현재에도 판사와 같은 일부 직업을 (판사를 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판사 스스로조차도)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신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이 생겨났으며,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정도로 (양반의 또 다른 버젼인) '사회적 지위'를 욕망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일반 대중과 뚜렷하게 선긋고 싶어하는 엘리트층이 만들어 낸 명품이라는 아이콘에 대해 결국 한국의 대중은 짝퉁을 통해 그러한 선을 지우고 상류층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허구적으로나마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가지!!! --- 이 책 전반을 통해 진중권 교수는 내내 황우석 박사를 '까고 '있는데, 저자는 황우석 사건 역시도 과학기술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싶은 대중적 욕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허구라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국의 천민성'이 그럼 과연 오로지 과거로부터의 아름답지 못한 유산이기만한 것일까?라는 저의 의문에 대해 저자는 '절대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지요. 가정에서 아이를 사회로 내보낼 때부터 '어떻게 하면 서로 편하게 더불어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남들의 위에 서느냐'를 중시하는 것, 한마디로 아이가 사회화라는 것을 공공의 규칙이 아니라 특권적 지위의 문제로 사고하게끔 부모가 앞장서서 만들고 있는, 엄연한 현재진행형의 현상이라는 거지요. 시험문제는 하나라도 틀리면 세상이 무너질듯 난리를 치면서도, 내 아이가 공공의 규칙을 깨는 데서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부모들로 인해 이러한 천민성은 여전히 꾸준하게 재생산되고 있으며, 그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은 규칙을 따르는 것을 '융통성 없는 것' 심지어는 '무능한 것'으로까지 여기고도 있고, '떵떵거리며 살기'를 위해서라면 사회적 규칙정도는 위반해도 괜찮은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우리의 머릿속에 무난히 자리잡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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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유시민을 이길 사람이 없고, 글로는 진중권을 이길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저자 스스로 이 책에 인용해놓고 있더군요. 가끔 인터넷에서 보이는 그의 짧은 트위터 글을 보면서 저 또한 종종 (전부는 아니었지만, 50%는 훨씬 넘는 빈도로) 그가 적어놓은 촌철살인의 비유에 감탄을 하기도 했었었습니다만, 처음 읽어본 그의 호흡 긴 문장들, 그리고 그보다는 저자의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저자의 독특한(?) 시각들은 저로 하여금 이 책을 읽었다라는 것을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라 느끼게는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황우석 사건에 대해 책 전반을 통해 '기-승-전-황까'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조차에도, 저자가 펼치고 있는 주장/논리의 과정에 동의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최소한 '누군가/무언가를 비판하려면' 이 정도의 논리 자체는 가지고 있어야한다라는 것을 속시원히 보여주고 있는 걸 보며 그가 '글로는 진중권을 이길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들을만한 넘치도록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걸 저 또한 확실하게 깨닫기도 했구말이죠.

  

우리의 아버지/어머니 세대들이 시대적 환경때문에 지금의 세대들이 당연한듯 누리고 있는 교육받을 권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그 세대 분들이 대중앞에 적어내는 이력의 마지막이 'OO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라고 적혀 있는 것에는 (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움 또는 촌스러움... 을 넘어 결국엔 '한국의 천민성'이라는 저자의 표현을 아니떠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천민성이 단지 우리의 윗 세대들만을 향해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거지요. 비근한 예로 얼마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인문학 열풍' 또한 그것이 과연 스스로의 내적 요구에 의해 생겨난 것일지, 아니면 밖으로/남에게 보여지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 그것이 어쩌면 그러한 천민성을 가진 주체가 이 대한민국 사회에 세대를 뛰어넘어 얼마만큼 널리 퍼져 있는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저의 생각에 당신이 만약 동감해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또 이렇게 얄팍한 감상문마저 적고 나니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문제는 죄다 과거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고, 그처럼 어쩔 수 없는 원죄를 물려받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슬프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저자가 이런 뉘앙스 - 모든 것이 과거때문이다 - 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 (이 책을 그리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뭔가 뚜렷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있지도 않지요. ------ 어쨌든!!!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주제에 관한 첫 발걸음으로서의 이 책 자체는 꽤나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에 쫒긴다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방하리만큼) 급하게 적어내려간 이 감상문이 마음에 안들기는 하네요. (앞으로 당분간 읽어야 할) 이런 류의 책이 확실히 (이젠 나름 익숙해져있는) 소설보다는 정리해내기 훨씬 어렵다라는 궁색한 핑계를 꼭 적어놓아야 할만큼...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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