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33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호텔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신호가 바뀌어 급정거한 Mercedez S600을 소나타 차량이 뒤에서 받은 사고였지요. 큰 충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두 차량의 외관이 찌그러졌다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소나타 운전자는 (뒷차니까) 당연히 그리고 정중하게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먼저 물은 후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 보험처리를 약속했습니다...만, S600 운전자는 이 차가 얼마짜린지 알기나 하냐, 당신 차를 판다해도 수리비의 절반도 안될거라는 둥,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재수가 없다는 둥... 의 소리를 혼자서 마구 지껄이다, 길바닥 위에 크윽~하는 소리와 함께 가래침을 내뱉으며 '별 그지같은 놈 때문에...'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 고등학교 중퇴 후, 건달 비슷한 생활을 계속해오다, 돈을 벌기 위해 술집 웨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고 약간의 노력과 엄청난 우연등에 힘입어 현재 서울과 일산에서 가장 커다란 주류도매업자가 되어 있는 S600의 운전자, '나꼬장' 사장은 그로부터 대략 20여 분 후, 자신의 못배운 한을 풀어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의 대학원 은사이자 박사학위논문의 지도교수, 그리고 한 달후 그 소중한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시게 될 분을 미리 그 자리에 와 있었던 아들로부터 소개받게 됩니다. 그의 앞에 서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소나타 차량의 운전자이자, 얼마 전 박사학위를 받은 자기 아들의 이후 학계에서의 자리를 결정지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 경제학계의 최고 빅샷인 '왕뒤끝' 교수였지요.】 

​분명 뭔가 좀 더 멋진 예화를 만들어내고는 싶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밖에는 만들어낼 능력이 되지않는다는 이유로 써놓은 이 유치한 설정의 이야기를, (이런 타이틀이 정말 책의 판매에 도움이 되는건지 궁금하기만한) '<가디언>지가 선정한 어른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30선' 중 한 권이라는 「오만과 편견」에의 감상문 첫머리에 놓은 이유가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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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類的' 특성을 가지나,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은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의 몸에는 타고난 자연의 바탕 위에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층위가 얹혀 있기 때문이다.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프롤로그' 중.​

1813년 영국에서 발표된 게다가 여성 작가가 쓴 이 작품이 2014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어느덧 중년 남성이 되어 있는 --;; 저에게 '공감'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해 줄꺼라고는, 제 아무리 "모든 인간은 같은 '류'로서 이른바 공통된 '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고전을 읽어본다'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었던 이 작품을 다 읽고나니, 바로 위에 인용해놓은 진중권 교수의 서술에 대해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최대치의 표현으로 쓰여져 있는, 그리고 그 이야기로부터 또한 독자에게도 그가 지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여 이 이야기로부터 각자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보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네요. 도대체, 과연... 무슨 이야기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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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건 혹은 드라마나 영화속 등장인물들을 통해서건... 우리가 흔히 보게되는 여러가지 버젼의 전형적 특징들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결혼'을 둘러싼 개인적 감정의 변화,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가족으로 인해 생겨나는 일종의 politics. 이 별 특별할 것 없는 주제를 가지고 이 기나긴 이야기를 제인 오스틴은 만들어냈고 결국... 그 이야기를 가지고 읽는이들을 훅~ 가게 만들어 준거지요.

<작품 해설>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이 작품은 다아시로 대변되는 '오만'과 엘리자베스로 대변되는 '편견'이라는 두 세계가 대립하고, 화합하고, 공존을 이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 영국에서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어쩌면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존재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결혼관이란 건 '결혼 생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결혼만이 그녀의 목표였다. 지체 높은 집안의 여자들에게 재산이 별로 없을 경우,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방편이 되었고, 그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이 아무리 불확실한 것이라 해도 궁핍한 생활을 모면할 수 있는 최상의 방지책이었다'라 고백하는 샬럿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이 작동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친구인 샬럿이 위와 같은 이유로 남성으로서 아무런 매력도 가지고 있지 않는 콜린스와 결혼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자기 중심적이고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 반응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평소에 결혼에 대한 샬럿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똑같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샬럿이 막상 결혼을 결정하는 순간에 세속적인 유익을 위해 그보다 중요한 모든 감정을 희생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콜린스의 아내가 된 샬럿의 모습은 너무도 굴욕적인 그림이었다. 그녀는 친구가 수치스러운 선택을 해서 자신을 실망시킨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샬럿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을 행복하게 살아 낼 수 없을 거라는 우울한 확신이었다.

이런 엘리자베스 앞에 다아시라는, 잘 생기고 돈도 많은, 하지만 심히 건방져 보이는 귀족 남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집안에 불명예가 될 엘리자베스의 열등한 신분이 처음에는 엘리자베스를 향한 그의 애정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었으나, 결국엔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제 감정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흠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는 프로포즈를 엘리자베스에게 하게 되지요. 물론 다아시의 오만함을 싫어했던 엘리자베스는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만, '자신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아시에게 강렬한 애정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 그녀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던 (자뻑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결혼할 때 돈만 추구하는 것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신중함이 끝나고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은 또한 어디쯤 되는 걸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져 마음 속 방황을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외삼촌 부부와 함께 다아시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방문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집을 구경하며 '내가 이 집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었어. 그랬다면 지금쯤 이 방들이 이렇게 낯설지 않고 익숙했겠지. 손님 자격으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주인으로서 느긋하게 삼촌과 숙모를 손님으로 대접할 수 있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다아시의 하녀가 집안을 구경시키며 주인인 다아시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자 드디어 마음속에 다아시와 가깝게 지낼 때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더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며 점차 흔들리게 되지요.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심이 애정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면, 엘리자베스의 감정의 변화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사랑이란 감정이 상대방을 처음 만나 두 마디 말을 채 건네기도 전에 생기는 그런 감정이라면, 감사나 존중에서 비롯되 감정이 자연스럽고 진정한 애정이 아니라면, 엘리자베스의 감정적인 변화는 한 가지로밖에는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위컴에 대한 편파적인 호감에서 비롯된 자연 발생적인 애정의 방편을 모색하다가 실패하자, 그보다는 무미건조한 감정이지만 인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애정의 방편을 택하게 되었다는 변론밖에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엘리자베스는 점점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다아시든 위컴이든 생각하면 할수록 맹목적이고 편파적이고 어리석었던 자신에 대해 후회와 자책이 몰려들었다. "내가 너무 경솔하고 천박하게 행동했어. 내 판단력을 너무 과신했어. 내 지성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 내 어리석음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허영심 때문이었어. 두 남자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난 너무 분별력이 없었어. 한 사람이 내게 호감을 표시하는 데 기분이 우쭐했고, 다른 한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두 사람의 일에 관해서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었어. 이 순간까지도 나는 자신을 너무 몰랐어" ……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해 품었던 불손한 감정과 그에게 퍼부었던 건방진 말들을 가슴 깊이 뉘우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감정을 느겼고, 다아시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과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181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현대의 소설들도 보여주기 힘든 반전의 연속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지나 결국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사랑으로 맺어지게 되는 것으로 끝맺음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위와 같이 극복이 되며, 다아시의 또한 스스로의 반성으로 자신의 '오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지요.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보여준 이 이야기로부터 이제 독자 자신만의 해석을 요구합니다. 과연 다아시를 '오만'이라는 단어로,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편견'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작가의 질문에 대한 독자의 해답이 바로... 그 해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가져보게 되는 겁니다.

사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가졌던 '오만과 편견'은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만과 편견'은 인간의 '유적 특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온 층위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단 이러한 저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면) 그러하기에 그 층위가 점점 더 세분화되어 나누어질수록, 그리고 그 세분화된 층위가 여러 상징물들을 통해 누구나에게 다 보여질수록 우리가 가지게 되는/받게 되는 '오만과 편견'들은 점점 더 굳건하게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게 되겠지요. 이런 이유로 'S600'이라는 상징물의 소유자 나꼬장씨는 '소나타'라는 상징물로 보여지는 왕뒤끝씨를 그런 식으로 대했던 것이고, 잠시 후 각자의 사회적 지위/역할을 보여주는 '명함'이라는 새로운 상징물이 각각 나꼬장씨와 왕뒤끝씨를 표현하게 되는 순간에는 또한  주류업자와 대학교수라는 새로운 모습의 position을 둘 사이에서 각자가 점유하게 되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는 걸겁니다. 물론 (저도 물론 포함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꼬장씨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될겁니다만, 솔직하게 말해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나꼬장씨의 오만을 가져보지 않았노라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소나타 운전자'로서 규정받게되는 '대학교수' 왕뒤끝씨의 억울함을 경험한 적이 적지않게 있었노라고, 그래서 내가 왕뒤끝 '교수님'의 position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 억울함을 더해 더 커다래져 있는 '오만'을 취했었노라... 말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자기 반성류의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느꼈던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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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다아시를 '오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편견'이라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하는, 약간은 낯설 수도 있는 의문. 이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제가 이 작품을 '대단하다!'라 생각하게 된 결정적 이유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없다라는 이유로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쌍꺼풀이 서양인의 눈에는 모두 다 있기에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될 수 없듯이,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소설에서는 '오만과 편견'이라 표현되어 있는 것들이 2014년에도 정녕 '오만과 편견'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사실 다아시에게도 '편견'이 있었으며, 엘리자베스에게도 '오만'이 있었었다라 말할 수 있는 이 이야기로부터 가져보게 되는 이 의문. ------ 어쩌면... 이 의문을 읽는 이에게 가지게 만들어내고, 또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라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 「오만과 편견」을 우리가 말 그대로 '진정한 고전'이라 불러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 롯데를 응원하는 팬들은 아웃이라 말하고, 상대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세이프라 말하게 되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야구에서완 달리 아웃과 세이프를 결정지어주는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또한...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도 싶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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