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복음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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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1+1=365'라는 누군가의 주장에 놀라거나 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비웃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겁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그저 '아~ 일 더하기 일은 삼백육십오구나. 몰랐었어'라는 말 밖엔 나오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는 그렇게... 한동안 '일 더하기 일은 삼백육십오'라 알고 지내게 되는거겠죠. 이제껏 제가 성경에 관한 네 권의 책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이 소설 「예수복음」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서였었다라 말할 수 있을겁니다. '내 작품을 읽는 동안은 내가 써준대로만 생각해!'라 명령하는듯한 그의 소설로부터, 인구의 94%이상이 카톨릭교 신자인 조국 포르투칼에서 1992년 발표한 이 작품으로 인해 결국 스페인으로 쫒겨나야했었던 주제 사라마구, 그리고 그런 그가 1998년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교황청이 유감을 표명했던 원인이었던 이 작품 「예수복음」이 담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충격을 받게되건, 이제껏 제가 가져왔던 작가 주제 사라마구에 대한 존경심에 상처를 받게되건, 그 어떤 결과를 얻게 된다한들 일단!은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 기본전제가 될 테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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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책 뒷장의 도발적 문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처음부터 성경 속 가장 의미있는 fact를 부정하며 시작됩니다.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요셉과 열여섯 살의 마리아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었고, 그들의 첫째 아이인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부여하신 욕망 중 하나인 성욕의 발현, 즉 그들의 섹스로부터 태어났다고 적고 있는 것이지요.

요셉은 조용히 다가가 천천히 시트를 걷었다. 그녀는 눈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자신의 튜닉 가두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것을 배꼽께까지 들어 올리자마자 요셉은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 마리아의 다리는 벌려져 있었다. 어쩌면 꿈을 꾸면서 저절로 벌려젔는데 갑작스러운 나른함 때문에 미처 닫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의 의무를 아는 결혼한 여자로서 어떤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닫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초반부에선 예수의 탄생 당시 베들레헴의 세살 아래 사내아이들이 예수의 탄생으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사건에,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그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에게 '원죄'가 지워져 있는 것과 같은 의미가 부여되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즉,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기 이전에,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에게 헤롯왕의 그 잔인한 명령을 전해주기만 했더라도 스물다섯 명의 어린 사내아이들이 죽임을 당하지않을 수도 있었다라는 것을 요셉의 '죄'로 규정하며 또한 그것이 아들 예수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지요.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처럼 이 작품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에 자신만의 상상을 개입시켜 자유자재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해 받기도 하듯) 창녀로 설정된 막달라 마리아와 청년 예수가 섹스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며,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여러가지 기적들을 예수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지요. 또한 이전에 제가 읽었던 작품들에서 '죽음'이라든가 '상식'등을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는 하나님과 악마를 각각 눈에 보여지는 하나의 '존재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이제까지 읽어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예수복음」이라는 이 작품 또한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자들로서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말도 안되는, 심지어는 불경스럽다.라는 할 수도 있는 표현들을 하고 있는 줄거리로 받아들여지겠지만 말이죠. 이 작품을 끝까지 커다란 거부감없이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만약 저의 '부족한 신앙'때문이라면, 그 '부족한 신앙'으로 인해 매우 흥미로운 의문 한 가지를 이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라 말하고 싶네요.

​옮긴이 정영목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책, 「예수복음」을 작가 주제 사라마구만 특유의 성경에 대한 해석이 깃들여 있는 작품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엔 그저 성경으로부터 (비록 이런 제 의견이 이 소설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으나) 등장인물과 배경, 그리고 여러 사건들만을 차용한, 그렇게 작가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창작되어진 그야말로/말 그대로의 '픽션'으로만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도 싶었습니다. 비록 주제 사라마구가 평소에도 기독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고는 하나, 이 작품이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또는 기독교 교리의 헛점을 파헤쳐내기위해 쓰여진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이해한 바!의 이 작품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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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가 이해했던 바, 이 소설의 핵심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바로 이 문구입니다. '신은 절대선이다'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그리고 현재의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의심할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는 '하나님은 절대 선이다'라는, 바로 이 (또한) 절대적인 명제에 대해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이 작품을 통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그를 조국으로부터 쫒겨나게 만들었으며, 그의 노벨 문학상의 수상까지도 마뜩찮아하는 시선을 자아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음의 장면들이, 제 생각에, 이 소설의 핵심이며 작가가 기독교계로부터 배척을 당해야했던 가장 주된 부분이 아닐었을까 싶네요. '충격 1단계'입니다. ------ 안개 자욱한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로 혼자서 배를 저어 나간 예수는 그 배위에서 그의 눈 앞에 현신한 하나님, 그리고 악마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예수에게 순교자의 역할을 요구하지요. 거기에 더해 순교자의 죽음은 고통스러워야하며, 가능하다면 수치스러워야한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런 형태의 순교야말로 신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신앙을 퍼뜨리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최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예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어떤 것에도 이용할 수 있는 나뭇조각이지. …… 너는 숟가락이 될 거야, 나는 그 숟가락을 인류에게 집어넣어 내가 앞으로 되고자 하는 새로운 신을 믿는 사람들을 가득 떠올리게 될 거다.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단다. …… 영혼을 구하려면 몸은 희생되어야 한단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 속에서 하나님은 왜 사람들앞에 직접 나타나시지 않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그건 '신들간의 합의'때문이라는 대답을 하십니다. 즉,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하나님 스스로가 부정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거지요.

 

 

자... ​충격의 강도를 한 단계 더 올려보죠. ------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교를 하게된다면, 자신이 죽고나서도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꺼냐 묻는 예수에게 하나님은 또 다음과 같은 대답을 주십니다. "(그들은) 천국에서는 행복을 얻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될 거야, 나는 천국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고 그들은 천국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살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지." 하나님의 이 대답을 예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이것이 주제 사라마구 자신의 해석이기도 할 듯한) "당신은 사람들이 천국이 아니라 지상에서 당신을 위해 살려고 태어난 것임에도 그들이 당신을 위해서 죽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거로군요, 천국에서는 그들에게 삶의 기쁨을 전혀 주지도 못할 거면서."

 

 

 

 

● "세상이 무자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의 폭력에 맡겨져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제사로 그 노여움을 달랠 수 있고 찬미와 기도로 축복을 빌 수도 있는 신의 질서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는 쪽이 저들에게 얼마나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인가. 우리가 한 일은 다만 그 같은 저들의 믿음을 가로막거나 깨뜨리지 않은 것 뿐이었다."  --- 이문열 著 「사람의 아들」 중 어느 제사장의 말

 

"대개의 설교는 가난한 사람들만 얘기해요. 앞으로도 쭉 같이 살아갈 가난뱅이 말이죠. 설령 한 푼도 없더라도 그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얌전하게 견디고 있으면 죽어서 금쟁반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얘기밖에 가르쳐주지 않아요." --- <분노의 포도>중 톰의 말

 

 

종교가 '천국'이라는 마약과도 같은 상징을 이용해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부정/이겨내게 만드는 이런 내용은 표현의 강도만 다를 뿐, 위의 인용에 나타난 것 처럼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바로 이러하다.라고 김용민이 「맨 얼굴의 예수」에서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주제 사라마구가 만약 여기서 그쳤더라면, 조국에서 추방당하는 대신 옛날 우리 문학계에서 마광수 교수가 받아야했던 그런 종류의 시선을 감당해야하는 걸로 끝났을지도 모를겁니다. (물론 그것도 당사자에겐 꽤나 견뎌내기 힘든 일종의 형벌이겠지만.) 그러나 예의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끝내 다음과 같은 가장 강력한 강도의 충격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주지요.

​'서양의 작가들치고 어떤 식으로든 성경에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가 몇이나 되겠냐만'이라는 옮긴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서양의 문화는 기독교를 뼈대로 하여 구성되어져 왔으며, 그 영향은 현재에도 엄연하게 남아있기도 하지요. <메가마인드>라는 만화영화를 정말로 재미있게 봤더랬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그 흐름을 담아내는 화면으로부터의 재미도 만만치않았습니다만, 무엇!보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선'이 없어진 세상에 무료함을 느낀 '악'이 자신과 맞서 싸워줄 새로운 '선'을 만들어낸다라는 설정 자체가 너무도 멋졌었기 때문이었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예수복음」을 읽고서 그 스토리를 떠올린건지, 혹은 이것이 서양인들의 정신에 기본장착되어있는것인지...까지를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주제 사라마구는 이 설정을 기어코 하나님에게도 적용을 시키고야 맙니다.

 

예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앉아있는 하나님과 악마. 하나님은 이때... 앞으로 벌어질 인간 세상에서의 각종 비극들 - 순교,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 등- 을 악마와 예수에게 미리 이야기해줍니다. 예수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악마조차도 마음이 안좋아졌고, 결국... 악마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게 되지요.  

당신의 권세를 인정하고, 그것이 그렇게 많은 죽음 없이도 땅끝까지 퍼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자, 당신은 당신을 방해하고 부인하는 모든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대표하고 관장하는 악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십니다, 따라서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이 나를 당신의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줄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내 과거의 허물은 내가 미래에 저지르지 않을 허물로 씻어내는 걸로 하고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이 선택한 천사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 행복한 시절처럼 내 복종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 당신은 나를 루시퍼라 불렀지요, 빛을 나르는 자라는 뜻으로요, 물론 내 영혼이 당신과 동등해지고자 하는 야망에 사로잡혀 다신에게 반역을 하기 전 일입니다만. …… 당신이 용서를 나에게 내려주시면, 악은 멈출 것이고, 당신의 아들은 죽을 필요가 없고, 당신의 왕국은 히브리인의 땅을 넘어, 현재 알려진, 그리고 앞으로 발견될 지구 전체를 끌어안을 정도로 넓어지고, 어디에나 선의가 지배하고, 나는 줄곧 당신에게 충성했던 천사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나는 회개했으므로 그들 누구보다 더 충성할 것이고, 나는 당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것이고, 모든 것이 생기지도 않았던 것처럼 끝이날 것이고, 모든 것이 늘 그랬어야 할 것처럼 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이 놀랍고도 대담하며 사뭇 자기희생적이기까지도 한 제안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중의 백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난) 자네를 받아들이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거야, 자네가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훨씬 나아,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네가 지금보다 더 나빠졌으면 좋겠어. 왜? 내가 대표하는 선은 자네가 대표하는 악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자네 없이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네가 끝나면 나도 끝나는 거야,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게 긴요해, 악마가 악마가 아니면 하나님도 하나님일 수 없는거야."

그의 다른 작품인 「죽음의 중지」에서 '죽음'이 없어진 상황에 대해, 즉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죽지않게 된 상황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존재의 의미'를 잃게될까 걱정하는 곳은 장의업계도 아니고, 사설노인복지지설도 아니라 바로 카톨릭계인걸로 그려지고 있지요.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고, 그렇다면 교회의 존립근거 또한 없어진다라는 이유때문이었지요. 이처럼 자신의 존재 근거가 다름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로부터 생겨나는 모순적인 경우가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흔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기독교에서의 하나님의 정의는 그야말로 '불가침'의 영역으로 전해져왔고, 지금도 그러하거늘 주제 사라마구는 이에대해 이렇게 정면으로 반기를 든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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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이렇듯 자비롭지도 심지어 선하지도 않은 분입니다. 이 분의 목적은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역이 넓어지는 것을 원할 뿐이지요. 결국 소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로 하여금 '그 순간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희생 제단에 가는 양처럼 꾐에 빠진 것이다. 그의 생명이 처음부터 죽음을 위해 계획된 것임을 알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읽어본 그의 작품들이 다 그러했듯이 이 작품 또한 소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혹은 심하다싶을 정도로 뒤틀어놓은, 그러하기에 어쩌면 (이 표현이 맞는 건지는 자신없습니다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라는 느낌으로부터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유스러울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읽는 동안에는 잠시의 틈에서조차 쉴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기에, 읽는다라는 것이 매우 힘든 정신적 노동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읽는다라는 것으로부터의 신비스러운 재미를 느끼게도 해준다.'라는 저의 개인적 생각은 이 작품에서도 또한 여전히 유지될 수 있었었지요. 작품의 매우 초반에 등장하는 다음의 문구, 과연 이 문구에서의 '선'과 '악'에 대해, 특히 기독교 신자로서 과연 '절대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과연 어떠한 대답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나 스스로 '기독교 신자로서'라는 수식어를 제거해낼 수 있겠는가... 라는 참으로 답해내기 힘든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시 한번 더 말해) 별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는 이 작품 「예수복음」으로부터 제가 얻게된 지적 소득이 아니었나 싶네요. 여전히 저에겐... No.1의 작가로 남아있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이시라는. 

     

"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ring books' on <성경>

- 나가오 다케시 著, 유쾌한 성경책 : 정말 '유쾌'하고 쉽기까지 한 '성경은 어떤 책이며, 어떠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입문서.

- 크리스틴 스웬슨 著, 「가장 오래된 교양」​ : 기독교 신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성경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 신자가 아닌 당신도 어쩌면!!!

- 공병호 著, 「공병호의 성경공부」​ : 신앙이란, 믿음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책. 저자의 신앙관에는 (아직은) 동의할 수 없음.
- 칼릴 지브란 著, 「사람의 아들 예수 : '사람의 아들' 예수의 모습을 통해 결국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한 권의 책. 
 
 
  (읽어본) 주제 사라마구의 다른 작품들 :  눈먼 자들의 도시」 · 「죽음의 중지」 ·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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