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예수
칼릴 지브란 지음 / 프리윌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꼼수의 멤버인) 김용민이 쓴 책, 「맨 얼굴의 예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인간에게 끝없이 다가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복음서를 갖고 예수를 인간으로부터 끝없이 갈라놓는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민중과 한 몸이다. 그런데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교리와 신학을 들이대면서 예수를 자꾸만 신격화해서 민중과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초월적인 그리스도로 둔갑시킨다.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신자들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과는 무관한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모시는 서글픈 일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벌어진다.

-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연구위원의 말​

그 책에는 또한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를 신으로 믿고서야 이해할 수 있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말이 있기도 하지요. 무언가 일맥상통하는 듯 보이기도 하는, 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예수를 말하고 있음 또한 느껴지기도 하는 이러한 차이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성서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성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용민은 그 책에서 자신의 해석으로 예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나는 예수가 능히 빵과 물고기를 십수 광주리 남길 만큼 곱절로 만들어 낼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는다. 그러나 파울루스의 해석처럼, 어린아이가 가져온 음식을 이웃과 나누려는 예수의 모습이 감명 받은 주변의 군중이 자기들도 먹을거리를 풀어 이웃과 나눴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오병이어는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기묘한 남자의 마술쇼가 아닌 수많은 군중이 스승인 예수와 함께 만들어 낸 집단적 사랑의 기적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 그의 사역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시작됐다. 가난하고 병들고 못 배운 자를 모아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다. 로마 제국의 온전성과 완결성이 강조되는 마당에 오히려 새로운 나라의 건설을 언명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행동했나. 들어가자마자 성전을 뒤엎었다. 상인들에게만 뭐라고 한 게 아니다. 그들과 결탁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보란 듯이 다그쳤다. 예수는 기득권 세력이 두려워하는 혁명가였다. 

…………………………………

(기독교 신자에게는 약간 거부감을 줄지도 모를 제목의) 이 책 「사람의 아들 예수」에는 성서 속 인물들 (가공의 인물로 생각되는 사람도 있는듯 합니다. 여전히 성경에 대한 저의 지식이 정말로 한심한 수준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네요. --;;)의 입을 빌어 예수에 관해, 그리고 그의 행적들에 관해 칼릴 지브란의 작가적 상상력을 곁들여져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멋지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간' 예수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심지어는 제목조차 모르고 있지만 언젠간 꼭 한번 읽어보고싶은) 흡사 '조조'의 관점에서 쓰여진 「삼국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 '가버나움의 제사장'이 보는 예수는 그저 "마술사이며 마법사"였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대제사장 안데스'에게도 또한 예수는 "선동자였고 약탈자였으며, 협잡꾼이었고 자기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자"였을 뿐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나사렛의 어느 부자에게 예수는 훌륭한 목수로서, 상인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으로, 약제사의 눈에는 위대한 의사로, 시인에게는 천상의 시인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릅을 탁 칠만큼'이라는 오래된 표현이 딱 들어맞을만큼 재미있었던, 예수를 따라 그의 제자가 된 이의 어머니에게는 '어미와 자식을 생이별 시킨 잔인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책은 물론?/오히려? '육체를 입고 온 계시'로서의 예수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은 "거룩한 그리스도였던 예수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함께 하기 위해 '사람의 아들'로 불리기를 원했"다 말하고 있으며, '여성 제자 라헬'은 "그분의 마음은 포도주 짜는 기계 같아서 우리가 잔을 들고 다가서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사랑을 마실 수 있었"다라고 예수를 기억하고 있지요.

또한 작가는 '바빌론의 천문학자 멜라기'의 입을 빌어 예수가 행했던 기적들에 대해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는 기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자연의 법칙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적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함석헌 선생의 표현대로) 「사람의 아들, 예수」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결국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제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던 구절 두 곳을 옮겨 놓는 것으로 이하를 대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 - 마태> 중 : "스승이시여, 저는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하고 싶을 때는 너희의 바라는 바를 그대로 말로 옮기면 되느니라. 내가 하는 바를 보아라. 내가 지금 바라는 것, 즉 나의 기도는 이것이니라. '땅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길 바라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부십시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들을 불쌍이 여기시어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또 저희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어둠속에 빠져 있는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 저희들을 아버지께로 이끌어주십시오. 모든 영광이 아버지께 있사오며, 아버지 안에 저희들의 힘과 완성이 있음을 믿사옵니다.'" --- 주기도문의 의미를 이제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관하여 - 막달라 마리아> 중 :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것이에요. …… 저는 사람들이 그분의 부활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거에요. 악기 속에 들어있는 음악을 찾으려고 하프나 수금을 부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머지않아 열매가 맺힐 나무의 열매가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라고 베어 버리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 이제까지의 제 신앙이 바로 이런 것이었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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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에서 작가 칼릴 지브란은 <그로부터 1900년 후 : 레바논에서 온 사람>이라는 제목의 장을 통해 "사람들은 당신이 신(神)이 되기에는 너무나 허약하고 가냘픈 인간이었다고 말하고, 예배와 찬송을 받이게는 너무 인간적인 신(神)이었다고 말합니다" 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칼릴 지브란의 복음서>라는 글을 통해 함석헌 선생은 "현대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고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못 보는 면이 많다"라고 쓰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다시 한번 성경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두고 음란한 소설이라 말했던 사람들은 분명, 그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말했던 저 역시, 이 책 「사람의 아들 예수」의 제목으로부터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다시 한번 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예의 「롤리타」를 두고 더 이상은 음란한 내용의 소설이라 생각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이 책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성경에 매우 충실한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기만한 제 신앙에... 참으로 깊은 의미를 안겨다 준 독서였었던 이 책의 여러 구절들 중, 가장 감명 깊었었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감상문을 끝맺겠습니다.

 

 

<예수의 희생에 관하여 : 삭게오> 중 : 그분은 얼마든지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피해 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한밤의 이리떼들로부터 자신의 양떼들을 지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분은 마치 농부가 자신이 수확한 곡식을 모아 두었다가 봄에 그것을 뿌러 가을에 수확하기를 바라듯, 또 건축가가 집을 지을 때 가장 큰 돌을 모퉁잇돌로 놓듯이 자신의 죽음을 그렇게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죽인 자는 누구입니까? 로마인들입니까, 아니면 유대의 제사장들입니까?" 로마인들도 예루살렘의 제사장들도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죄악이 그분을 언덕 위 십자가 고통 위에 매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온 세상이 그분의 보혈의 은혜 아래에 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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