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병호의 성경 공부 - 성경에서 답을 찾다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평점 :
편견을 내려놓고,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그 안의 글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성경>속 문장들 안에서 놀라운 것들을 찾아내는 독서가 <성경>을 읽는 멋진 방법입니다. ……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성경>에서 그런 흥미진진함과 감동 그리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틈틈이 시간을 내서 …… 그 깊은 뜻이 마음에 퍼져가는 것을 누구든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리트머스 종이에 잉크가 퍼져가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사람' --- 경제적 ·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은 기독교 신자를 가리켜 같은 신자들이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만 또한 저자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이런 사람들은 흔하지 않아보입니다. 그러하기에 주일 예배중에 목사님께서 해주시는 설교도 주로 (지나친 일반화일 여지가 충분히 있는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어려움을 극복해나감에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걸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억하게 해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라는 것의 적나라한 증거라 말해지기를 원치는 않지만) 주일날의 설교가 그러하다하여 불만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매우 여러번 목사님의 그러한 설교말씀으로부터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
.
.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또한 그저... 아직!은 제가 저자가 권하는 '편견을 내려놓고,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엔 없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저의 신앙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기도 했지만요), '어떠어떠한 상황에 걸맞는 성경의 구절들을 적절히 인용해오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그럴듯하게 섞어내어놓는 타입의 간증'에는 아직!!!도 아무리 해보려해도 동의할 수 없겠노라고, 차라리 '이건 오로지 나의 신앙적 미숙함이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자책하는 것이 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길인듯 싶기때문이지요. 이 책도 예의 여러가지 상황을 나누어놓고 각각에 알맞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하며 그와 더불어 저자의 생각을 펼쳐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그 각각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것 - 결국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믿고 기다리며 이겨내라'가 전부인 - 이 끝내 저에겐 지극히 추상적으로만 다가오더군요. 왜... 그랬던걸까요?
자기 만족을 위해 쓰여지고 출간된 책이 아니라면, 분명 그 책은 타겟으로 삼는 독자층이 있겠지요. 예를 들어 책의 머리말에 이 책은 학부생을 위해 쓰여진 미시경제학책이다라 쓰여있는 책이 있고, 석사과정을 위해 쓰여진 더 어려운 미시경제학책이 있으며, 박사과정에서까지도 뒤적여야만 하는 (환상적인!!!) 미시경제학책이 있듯이 말이죠.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과연 이 책은 누구를 위해 쓰여진 책인가?'라는 점이었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건 '내 수준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은 신앙심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이 책을 읽고 제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라는 것이 저자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주제도 모르고 까불며' 이 책을 읽겠다라 맘먹었었던 저의 잘못이었다라는 걸 전제로, '중하'정도 수준의 신자가 '최상'의 신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을 읽고 쓴 감상문임을 미리 밝히겠습니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디모데후서 3:16-17
저자는 위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믿는 자들에게 <성경>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물론이고, 현재와 미래에도 내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매우 충실한/올바른 '해석'이겠지요. 저 또한... '언젠간 나도 꼭 똑같은 고백을 하고 싶어'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말이죠...
"믿음은 순종입니다. 그런데 순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구원받는 일도 믿기가 힘듭니다. ……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가는 길인 성령 충만도 믿기 힘든 일이지요. 실험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으니까요"까지의 수준으로 넘어가게 되니, 저자의 말에 많은 양보를 곁들여 절반에 가까운 동의를 한다.라 말한다하더라도, 끝끝내 제 마음 속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남아 '절반을 넘는 동의'를 주저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첫 번째는 사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 사놓고 아직 읽지는 않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계의 창조론자들이 '지적 설계론'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른바 '창조론도 엄연히 과학이다'라는 창조과학을 계속 주장하며 지치지도 않고 그야말로 꾸준하게 진화론을 공격했었습니다.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그들의 공격에 대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코미디라 생각해왔었었기에 잠자코만 있어왔었습니다만, 어느 순간 '이제 더 이상은 못참겠어!'라는 기류가 진화론의 진영내에 흘렀고, 그리하여 진화론의 여러 분야 대표 학자들이 위와 같은 제목으로 지적설계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책을 내게 된거지요. 이처럼 창조론 또한 '과학'이라는 외투를 두르고 싶어합니다. 일단 그런 외양을 띠고 있으면 '믿음'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일은 최소한 아니라는 말을 하게될 수는 있을테니까 말이죠.
이 책의 저자인 공병호 박사님 또한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신 듯 보이기도 합니다. '실험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으니까요'란, 아니붙이셔도 될 구절을 굳이 '믿음'이라는 것에의 설명에 넣고 있으시죠. --- 우리가 실험을 통해 증명해내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론'이라 부르는 것, 그것이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실험들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이 특정 조건하의 특정 상황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 어느 상황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이론'이 되는 것일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한 가지!!!는 바로 --- "과학의 이론은 나열된 여러 사실들을 설명해 주는 수단이다. …… (그리고) 이론은 특성상 그릇됨만 증명할 수 있고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즉, 나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실험을 통해 참이라고 증명될 수 없다라는 사실은 '과학을 통한 증명'이 원래부터 그럴 수밖엔 없기에 가지게 되는 내재적이고 원천적인 한계이지, 증명의 대상이 '믿음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다'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가는 길인 성령 충만도 믿기 힘든 일이지요'라는 표현은 신앙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신앙이란 것이 지극히 개인적/내면적 차원의 문제이기에 그러하다라 말해져야 하는 것이지,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과학'이라는 이름을 꺼내어야만 하는 논리의 부족함으로부터 발생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제 표현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만) --- 이건 마치 유치원생에게 세상 최고의 게임이론 학자가 'Infinitely repeated games'의 solution을 설명하려했지만 유치원생이 끝내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 서로 헤어진 후 그 게임이론 학자는 게임이론 세미나에서 동료들에게 자기가 가르쳤던 유치원생의 지적능력이 심히 의심스럽다 말하며, 그 유치원생 또한 자기네 병아리반 친구들에게 대학교수란 사람이 '게임'하나 제대로 설명도 못하더라라 말하는, 저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런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여야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게 되버리는 거지요. (참... 쓰고나서도 맘에 들지 않는 표현이네요. --;;) 과연 이 책 「공병호의 성경공부」가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라면, 누군가는 (이젠 거의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있는) '공병호'라는 이름으로 인해, 또 누군가는 '성경공부'라는 것을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 했을 때... '하나님은 항상 우리곁에 계십니다.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세요'라는 말만이 내내 반복되고 있는 이 책으로부터 과연 얼마만큼의 독자들이 자신의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원하던 바를 얻었다라 말할 수 있을지 전... 그게 의심스러웠고,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그렇다면 나의 개인적/내면적 신앙을 타인(비기독교인이건 초보적 수준의 기독교 신자이건)에게도 온전히 전해주고 싶다라 할 때, 과연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따질 때, 그렇다면 우리 손에는 '무엇'이 쥐어져 있는 걸까요? 이와 관련하여...
두 번째는 첫 번째와도 관련이 있는, 그리고 저를 동의하지 못하게 만든 매우매우 커다란 이유, 그러니까 --- '믿음은 순종입니다'라는 말로부터 기인하는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진실/진리, 그 어떤 이름으로든 암튼 제가 '믿는다'라는 것은 제가 피타고라스의 정리에게 복종/순종하게 되었다라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패배하였다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받아들인다'라는 것일 뿐이지요. 저자 또한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집착하는 신비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이라 말하고 있듯이,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이야기는 사실 당사자인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 생각하고 있는 저 또한 가끔 듣게되는 간증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라는 것이 사실 그다지 미덥지도, 공감이 가지고, 감동을 받지도 못했었습니다. 그러한 간증들로 초보 신자들/비기독교인들을 신자의 길로 들어서게하려는 그 많은 부흥회라든가 전도집회들이 과연 정말 목적에 적절한 수단인가하는 의구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세상의 의사들은 다 내가 얼마 못가 죽는다 했지만, 하나님의 은사로 이렇게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살아있습니다. 아멘!!!'이라는 외침보다는 「아빠는 목사, 아들은 동자승」에서 저자와 그 가족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나에게 어떠한 결과가 주어진다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과 사랑에는 변함이 없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비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부흥회나 전도집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해주는 '무엇'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헌데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집착하는 신비주의는 경계해야겠지만"이라는 표현 뒤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그 자체에 신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을 덧붙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저도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때때로 '신비스러운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서 받아들이게 해준다라는 것 또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기초에는 분명히 '인간이기에 가동시켜보지 않을 수 없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라는 걸 (이 연사, 두 주먹쥐고 힘주어!!!) 말하고 싶은겁니다. 이성에 기초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하여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 신앙... 이것이 신자들이 가져야할 올바른 믿음이고, 우리가 비기독교인에게 전해야할 믿음이지, 이 책에서 저자가 내내 말하고 있는 (저자에게는 상당히 죄송스러운 표현입니다만)'자기 최면'류의 믿음은 결코 아니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의 내용에 비록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중하'수준밖엔 안되는 신자이기때문에!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절반 이상의 동의를 할 수는 없다는거였지요. 우리의 '이성'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껏 사용하라 선사해주신 선물이 아니라 말할 수는 없겠죠. 만약 교회가 '하나님의 은사로 말미암아 세상이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부터 완치되었다'라는 것을 '무엇'으로 삼아 비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고자 한다면, 그래 '믿어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만 반복해서 말한다라면, 과연 우리의 교회와 저 어릴 적의 길거리 약장사들과 무슨 차이가 있게 됩니까. 이 책이 어떤 층을 타겟으로 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기독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보기에는 너무도 평이한/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비기독교인들 혹은 저와 같은 수준의 신앙심만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자들을 위한 전도/입문서 정도로 쓰여진 것이라면 그 설명의 방식이 전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설정되어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겁니다. 이 책이 최소한 공병호 박사님 자신의 자기만족만을 위한 일기장은 아닐테니까말이죠.

커쇼의 이 말이야말로 나의 신앙을 타인에게도 전해주는 가장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요?
(출처 : 엠팍 불펜게시판 중 "커쇼의 신념.jpg")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제가... 매일 아침 회사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읽곤하는 성경 구절들입니다. 저 개인적 어려움에 닥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찾게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뭔가 일이 해결되지도 않았건만 제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오는 것 또한 (제 개인적 경험에 집착하는 신비주의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이었구요. 하지만 '믿음'이란 건...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라는, 듣기에 따라선 매우 조소섞인 비아냥을 상대방으로부터 듣지 않으려면, 우리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선물해주신 우리의 '이성'을 사용해야하죠. 그저 '믿음은 순종이다'라는 말로 그들/비기독교인들을 설득하려는 것이 2014년의 현재에도 통할꺼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설교도 '이성을 바탕으로 한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되어야하며, 세상의 물리적 법칙을 어긋나게 하면서까지 발생하는 하나님의 기적은 아마도 이제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을꺼라는 걸, 하지만 그것이 결코 하나님이 그러하실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처럼 로또를 사고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들 모두가 1등에 당첨되는 현실이 벌어질 때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는 거, 그러한 세상의 혼란을 원치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열심히 기도하며 로또를 사는 기독교 신자들도 거의 매주 5,000원짜리에도 당첨되지 못한 로또를 휴지통에 버려야만 한다는 걸, 그건 결코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그들의 '끊임없이 간구한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걸, 그러나 그 반대로 당신이 호기심에 샀던 한 장의 로또가 1등에 당첨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또한 온전히 '하나님의 은사'로 돌리는 건 옳지 않은 해석일 수도 있다고... 이젠 우리의 교회도 이런 말들을 당당하게 전할 수 있어야한다고 (이 연사~~ --;;) 생각하는겁니다.
.
.
.
주저리주저리 많은 말을 했습니다만, 또한 적혀져 있는 글의 내용과 저의 생각을 정확하게 일치시키지 못한 표현이 너무도 많다는 아쉬움도 어마무시하게도 남아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무리를 더하여 딱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신앙은 결코 자기최면이 되어서는 안되며, 신앙이라는 개인적/내면적 믿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해주신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쯤... 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언젠가... 는 꼭! 다시 한번 읽어('보고싶은'이 아닌)볼 책입니다. 부디... 그때엔 리트머스지에 퍼져있는 잉크처럼, 신앙적으로 훨씬 더 성장해 있는,그리고 좀 더 겸손해져 있는, 제 모습이길 또한 지금부터 바래어 보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