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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단 한 순간도 정확히 한 개의 숫자로 표현되어질 수 없는, 그러하기에 그저 '수많은'이라고 밖에는 표현되어질 수 없는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 중에 나와 똑같이(라 말해도 무방할만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그리 허황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동의를 할 수 있다면, '머리카락 · 눈 · 코 · 입, 그리고 귀'... 이 다섯 가지만의 조합이 낳게되는 결과물인 얼굴이 (똑같다!라는 표현과 거의 다름없는 수준으로) 매우매우 비슷한 사람을 어디에선가 (직접이건 화면이나 인쇄물에서건) 마주치게되는 일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행운보다 나에게 더 먼저 찾아올 지도 모른다라 생각하는게 결코 이상한 게 아닐겁니다. 이런 상상은 이미 1881년 마크 트웨인에 의해 「왕자와 거지」라는 작품 속에서도 등장했던, 지극히 평범한, '독창성 下'의 평점을 받게 될 상상입니다...만!
신앙심이 바다보다도 더 깊은 장로/권사님에게, '자! 때가 왔습니다. 오늘 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계신 하늘나라로 가실 겁니다'라는 말을 전했을 때 과연 그 장로/권사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요? --- 물론 매우 조악한 예입니다만, 그런 분을 찾는 것 또한 로또 1등 당첨과 비슷한 행운이 따라주어야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래 살 수 있기를 원하고,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여전히 죽음의 순간과는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기를 원하는 게, 태어날 때 인간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본성일겁니다. 비록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그 본성조차 이겨낼 수 없을만큼의 고통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은 오래 살기를 원한다'라는 명제는 유효하다 말할 수 있겠지요. 그 명제에 충실한 상상은 결국 거의 죽음의 단계에 다가섰었던 사람을 기계의 힘을 빌어서라도 다시 살려놓고야 만다는 <로보캅>과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었고, 그러한 상상에 대해서 주어지는 '독창성 中'의 평가가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 그리 야박한 건 아닐겁니다...만!!
이제 인간은 '오래 살기를 원한다'라는 명제에 '건강한 육신과 맑은 정신상태로!'라는 추가조건까지를 원하게 되었고, 그 추가조건까지를 고려한 인간의 상상력은 드디어 영화 <아일랜드> 그리고 「나를 보내지 마」와 같은 '복제인간'이 존재하는 작품들이 그려내는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근원자 - 그 원문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으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된 인간을 낳게 한 원래의 진짜 인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요. - 는 자신의 육체에 이상이 생기는 그 순간,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해 복제인간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복제인간들의 심리묘사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작품 「나를 보내지 마」는 <아일랜드>에서와 같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간들이 복제인간들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장기를 적출해낸다는 설정까지를 상상해내고 있습니다. 윤리적 논란들에 눈감고 귀막아 버린다라면 이 두 작품에게는 '독창성 上'의 표창장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야말로 획기적인 상상이라 도저히 말을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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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는 유전적으로도 완벽하게 똑같은 근원자와 복제품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은 복제품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근원자로부터 만들어졌는지 등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지요.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작품에서 그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복제품들의 내면 그리고 그들을 교육/사육하는 진짜 인간들의 고뇌등을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자... 이와 동일한 주제에 대해 가즈오 이시구로와는 장르가 다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떠한 메세지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 이 작품 「레몬」 또한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 자체만으로는 '독창성 特上'의 표창장을 주저함 없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만. --;;
추리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답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간복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이 모르는 출생의 비밀을 찾아낸다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작가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습니다... 만, 제 생각에 소설의 줄거리는 이 작품을 이해해냄에 있어 일단/최소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1992년 9월에 연재되기 시작했고, 1993년 9월에 단행본으로 일본에서 발행되었다는 이 소설 (원작의 제목은 「분신分身」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레몬」으로 바꾼 이유도, 근거도 사실 선뜻 마음에 와닿지는 않더군요.) 에 등장하는 의학적 내용들이 과연 의학적으로 성립가능한 상상인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설혹 실현가능한 현실이 되어있다하더라도, 사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철학적·윤리적 질문의 무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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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정상적'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방법으로 여성의 자궁에 태아가 들어서게 되는 것의 여집합, 즉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해 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한두 개가 아닌가봅니다. 예를 들어, 남자의 정자에 유전적 문제가 있다거나 아예 아이를 낳은 수 없는 상황에는 '인공수정'이라는 대안이 있다 합니다. 이 때에는 부부관계에 있는 남성으로부터 정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제 3자의 정자가 사용되어 여성이 임신을 할 수있게 된다고 합니다만, 반대로 여성에게 문제가 있어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황 - 이 작품에는 여성의 난관 두 개가 모두 막혀있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 에는 '체외수정'이라는 방법이 사용되는데, (의학적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체외수정의 경우에는 타인의 정자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는 핵심적 아이디어입니다.
인간에게는 유전의 원천이 되는 염색체가 마흔여섯 개 있어. 원래 아기는 그 가운데 스물세 개를 어머니로부터, 나머지 스물세 개를 아버지로부터 받지. 우지이에가 제안한 방법은 수정 후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제거하고, 특수한 방법을 써서 어머니 것을 곱절로 만든다는 거였어. 그렇게 되면 아기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정보를 이어받을 일이 없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의학적 아이디어는 이처럼 한 생명을 잉태하게 됨에 있어, 결과적으로 오로지 엄마의 유전자 정보만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가 탄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유전적 질병으로 인해 자신의 정자로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 아이도 또한 자신과 같은 질병으로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된 다카시로는 당시만해도 그저 연구실에서 실험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던 위의 방법으로라도 아이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던 아내 아키코의 거부로 다카시로는 결국 자신의 혈육을 이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지요. 하지만 이 때 채취되었던 아키코의 난자 중 두 개가 비공식적으로/비밀리에 냉동보존되었었고, 각각의 이유로 그 두 개의 냉동보존되었던 난자는 얼마 뒤 해동이 되어 누군가에 의해 생명으로 탄생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하여 마리코와 후타바라는, 완전하게 동일한 두 '인간'이 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세상에 탄생한 것이지요.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도,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모두 복제된 인간들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무어라 불리우든) 근원자들은 등장하지 않기에, 그들이 자신들의 복제품들에 대해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이 작품 「레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둘을 직접 만나게 해줍니다. 아키코만의 유전자로만 만들어진, 즉 완전하게 아키코의 육체와 똑같은 후타바는 30여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또한 아키코는 30여년 전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후타바를 바로 눈 앞에서 보게되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아키코가 느끼는 감정은 이 작품을 읽어보게 될 분들을 위해 적지는 않겠...지만, 저의 (지금 내 눈앞에 열여섯 살의 내가 서 있다는 상황에 대한) 상상은 작품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아키고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만은 남기고 싶네요.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가져보게 된 가장 커다란 충격!!!은 이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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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말미에 한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자신의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물론 그렇게 낳은 둘째의 골수가 첫째에게 생체적으로 적합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그렇게해서라도 첫째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이 둘째를 낳게 했다는 거죠. (제 기억에 이 이야기가 작가가 지어낸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디에선가 본/들었던 듯) 이 부모의 행동에 대해 '그럼 둘째는 뭐냐? 걔는 완전히 첫째를 위한 도구로서 태어난 거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이를 뛰어넘어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보았었듯 '첫째를 치료하기 위해 확실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둘째는 낳는' 수준이 아닌, 아예 '여분의 내 육체'를 하나 더 만들어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 즉시 그것을 사용하는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습니다. 이 소설에도 정자에 문제가 있어 여자에게 아이를 가지게 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자가 골수성 백혈병으로 죽어가자,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내 그 클론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으려는 시도를 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 그 권력자는 훨씬 이전에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미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했었었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었습니다. 즉, 자신(A)의 생명연장을 위해 복제인간(A´)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A)이 죽고나서도 이 세상에는 (비록 정신세계까지는 똑같지않겠지만) 자신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 자신의 클론(A´)이 자신의 대를 이어가게 되는 끔찍한 유산(?)을 남겨놓고 간다는 겁니다. (작가는 그 클론이 면역체계의 문제로 청소년기에 죽는다는 설정으로 이 엄청난 일이 소설속에서라도 벌어지지 않게하고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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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목적과 수단이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그 소설에 대한 평가를 갈라놓을 것 같다라고도 썼었습니다만, 이 작품 「레몬」도 또한 그처럼 극단적으로 '목적과 수단을 바꾸어 버리는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만, 이 소설에 대해 느끼는 바가 갈라지는 일은 없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상상이 언젠가 현실이 된다면, 정말 만약 그런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말입니다... 소설은 생각만해도 오싹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상황을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아키코는 결국 자신과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자신의 복제인간을 자신의 자궁속에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비록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 그 아키코의 복제인간이 아키코의 몸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자의 몸을 통해 결국 마리코와 후타바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아키코는 후타바를 실제로 만나게 됨으로써 20여년 전의 자신과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육체와 마주서게 된 것이었죠. 둘째, 마리코의 아버지는 대학시절 아키코를 사랑했지만 결국 아키코와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코의 냉동배를 해동하여 자신의 부인에게 몰래 착상시킴으로써 아키코의 복제인간을 딸로 얻게 됩니다. 훗날 그는 딸 마리코에게 써놓은 마지막 편지를 통해 자신 스스로 '너를 전혀 딸로 보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이 불쾌하기도 했어'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남기기도 하지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 두가지의 상황들만으로도 인간이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비윤리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소름이 끼치도록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에 그치지 않고, 물론 불가능한 탄생을 가능케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지만 약간의 도움만 받으면 한 생명의 부모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현재의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도를 넘어서 유전자에 대한 마사지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만을 가진 생명'을 상상한다는, 이 '독창성 特上'의 상상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를, 그저 그것이 윤리적 혹은 신학적으로 옳지않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또한 의학적으로 그렇게해서 탄생한 생명체에 어떠한 심각한 문제점이 있느냐를 차치하고서라도) 이제까지 지탱되어온 '인간의 사회'가 어쩌면 그러한 시도들에 의해 결국엔 모두 망가뜨려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된 섬뜩.한 독서였었습니다. 정녕...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아나는 경험을 원하신다면 이 작품은 빼놓지 말고 읽어보셔야 할 듯. (덧붙여... 이 작품은 단숨에 읽어내실 것을 권합니다. ^^;;)
★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 : 「용의자 X의 헌신」 · 「편지」 · 「마구(魔球)」 · 「변신」 · 「도키오」
★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발간순) : 「졸업」 - 「잠자는 숲」 - 「악의(惡意)」 -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 「내가 그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