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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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80 Days」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책, 「Around the World in 80 Trades」(번역서의 제목은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의 저자 코너 우드먼이 쓴 또 하나의 '세계일주 시리즈(?)'인 이 책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를 '세계일주'라는 공통점을 들어 「80일간의 세계일주」의 꼬리를 무는 책으로 선택했던 건 나름 괜찮네!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었던 시작이었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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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잔에 새겨져 있던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라는 문구로부터 저자 우드먼은 '이 말이 정말일까?'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후 그가 카메룬의 어느 해안지방에 머물러 있었을 때, 바로 앞 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생선요리를 즐기고 있었던 우드먼관 달리 정작 그 생선을 잡아왔던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잡았던 그 생선들의 시장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그 지역으로부터 6천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모로코에서 수입한 말린 생선을 먹고 있다라는 희안한 사실을 목격하고는 다시금 커피잔의 문구를 떠올리게 되지요. 이에 우드먼은 당시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있던 '공정 무역'이란 것이 실제로 '공정한가'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겠다 결심하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일주(?)'를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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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먼이 가졌던 의문이 그리 특별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어떤 특정한 커피를 사마신다고해 지구 반대쪽 누군가의 삶이 나아진다라는 게 말이 되는가하는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잖아요. 허나 그저 그런 의문을 가져보는 것에 그쳤던 우리들관 달리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 상품의 유통과정을 한번 역추적해보겠다'란 생각을 실행에 옮긴 이 책의 저자 코넌 우드먼에게는 그런 점에 대해서만.큼은 분명 <대단하다>는 형용사를 붙여주어도 될 것 같아요. (물론 그 '용기'란 것도 사실은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공정한 거래를 약속한다는 문장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제3세계 생산자와 '공정한 거래를 약속합니다'보다는 '공정한 거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가 차라리 솔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뿌듯해진 이유도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기 때무이 아니라, 무언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뿌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이런 윤리 인증 사업이 의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니카라과 - 영국 - 중국 - 라오스 - 콩고 민주 공화국 - 아프가니스탄 - 탄자니아 - 코트디부아르>의 여정을 통해 과연 '공정 무역이 진정으로 '공정한가'하는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 코너 우드먼이 그 '목숨을 건' 여행을 통해 얻은 해답을 허무하리만치 짧게 저의 생각대로 정리해 보자면... 

 

<현재의 세계 무역시장은 매우 불공정한 많은 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 무역 재단'은 나름 '공정한'의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라기 보다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 하는 것이 맞을 듯하며, 대기업의 마케팅의 주요한 요소정도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이 '공정 무역'보다 훨씬 더 공정한 무역이 분명 존재하고 있더라>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헌데... 겨우 이 정도의 결론을 내리자고 본인 스스로 말한바와 같은 '목숨을 건 여행'을 했던거야?란 가소로운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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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아주 간단하게 <Unfair Trade>이에요. 헌데 이를 한국의 출판사가 저자의 전작과 무리하게 연결시키려다 보니 '세계일주'란 단어를 써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라는 심히 무리수를 둔 제목을 뽑아낸듯 합니다. 이 책에 붙어 있는 꽤 높은 네이버 평점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별다른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던, 좀 심하게 말해도 된다면 '오직 말장난을 통한 마케팅의 승리!'쯤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듯 하달까요?

 

각 나라를 돌아다니는 과정 중에 유난히 '중국'이란 나라의 등장이 참 많이 보였습니다. 저자 역시 "이번 여행에서는 어디를 가나 중국 경제 기구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라 쓰고 있기도 하지요. 여기서 나타난 저자 코너 우드먼의 전형적인 서구식 해석을 한번 보시죠.

 

 

현재 서양의 자본주의은 식민주의 역사와 싸우고 있다. 콩고 동부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실패를 서양 탓으로 돌리는 국가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리는 윤리적 난제에 발목을 잡혔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식민지 수탈에 대한 나쁜 기억에서 자유로운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 …… 중국은 명목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지만 세계관은 뼛속까지 자본주의적이다. 라오스 북부의 정글에서 나는 천연자원에 목마른 중국이 개발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세계 빈곤층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는 현실을 보았다 

- <중국을 경계하라>라는 제목의 글 중

한마디로 서양의 제국주의·식민주의적 역사는 도외시 한 채, 현재 자신들의 실패를 '과거의 서양 탓'으로 돌리고 있는 나라들을 도와주는 게 과연 맞는거야? 뭔가 좀 억울하지 않아?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이들과 아무런 과거의 인연이 없는 중국이 난데없이 끼어들어 무차별적인 돈 공세로 그들의 자원을 앗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자신들은 '투자'를 하려고 했는데, 중국은 그저 '착취'만을 하고 있다는 거에요. 물론 동남아나 아프리카이 빈곤국에서 중국이 행하고 있는 행동들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판단의 근거가 지극히도 서구적인 것에만 있다는 게 이 책이 지닌 가장 커다란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중국을 경계하라>라는 제목의 글의 결론을 저자 코너 우드먼은 "서양의 진화된 자본주의가 현재 동양의 노골적인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라 내리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기도 합니다만,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저자의 배짱만큼은 정말 부럽습니다. '억대 연봉의 애널리스트'를 무식하다라 표현할 수는 차마 없겠습니다만, 그가 지닌 역사 인식에 대해서만큼은 '무식하면 용감해질 수 있다'라 말해주고도 싶고,('너는 얼마나 잘났길래?'와 같은 반응은 이 책에서만큼은 사양하겠습니다.)  과연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을 뽑은 이는 '그가 만났다는 자본주의'가 결국 이런 것이었다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제목을 정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분의 배짱 또한 우드먼의 그것에 결코 뒤쳐지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 뿐인 씁쓸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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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는 항상 서구화의 기준에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서구는 개념상 가장 서구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인류 발전의 정점을 항상 차지하는 반면, 다른 사회는 서구화의 정도를 기준으로 진보의 정도가 평가된다." -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p26.

 

위의 짧은 문장이 꼬집어내고 있는 서구의 인식수준을 이 책은 더도 덜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부디... 이런 책들이 마케팅의 힘으로 많이 팔리게 되는 일은 더 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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