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2014,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 「인생」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나니, 자연스레 두 권의 책이 손에 잡히더군요. 약간의 고민끝에 아마도 처음.이지 싶었지만 그냥 그 두 권 모두를 한꺼번에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다름아닌 바로 이 「80일간의 세계일주」!!! --- 초반이지만 나름 자연스러운 꼬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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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와 같은 파란만장하고 다양한 경험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씌여진 게 무려! 1873년이었음을, 또한 소설의 배경 마저도 그와 같은 시대인 1872년임을 감안한다면 여기 담겨져 있는 내용으로도 당시엔 충분히 '파란만장하고 다양한 경험들'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사생활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필리어스 포그'라는 신사는 얼마전 일산의 어느 극장에 걸려있던 포스터에서 보았던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처럼 그의 일상생활 속 모든 것을 정확하게 지키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분 단위로 행해지며, 그것이 틀리는 경우는 전혀 없지요. 심지어 면도용 물은 섭씨 30도이어야하는데 하인이 실수로 그만 29도의 물을 가져왔다하여 그를 해고하기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에게 '파스파르투'라는 새로운 하인이 온 날에도 또한 포그 씨는 "11시 반에 집을 나와,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575번 내딛고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576번 내디뎌"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유일한 외출처인 <혁신 클럽>에 도착합니다. 그 날의 주요 화제는 5만 5천 파운드라는 거금이 영국은행에서 감쪽같이 도난당한 사건이었고, <혁신 클럽>의 회원들은 영국경찰이 곧 범인을 잡을 것이다란 쪽과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시만해도 범인의 몽타쥬같은 건 없었습니다) 어떻게 범인을 찾느냐는 쪽으로 나뉘어지게 되지요. 이 논쟁은 곧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다에 관한 논쟁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에 주인공 포그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모닝 크로니클>이 제시한 바 그대로 80일이면 지구 한 바퀴를 충분히 돌 수 있을 만큼 "지구가 예전보다 작아졌다"라 말합니다.   

 

 

런던에서 수에즈까지, 몽스니와 브린디시를 경유하여, 철도와 기선으로 --- 7일

수에즈에서 뭄바이까지, 기선으로 --- 13일

뭄바이에서 캘커타까지, 철도로 --- 3일

캘커타에서 홍콩까지, 기선으로 --- 13일

홍콩에서 요코하마까지, 기선으로 ---- 6일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기선으로 ---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철도로 --- 7일

뉴욕에서 런던까지, 기선과 철도로 --- 9일

모두 합하여 80일

 

어떤 경우,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그 시작은 매우 사소한 것일 때가 종종 있지요. 포그 씨의 이러한 계산(그는 여기엔 악천후와 역풍, 난파, 열차의 탈선 등까지를 모두 포함된 계산이라고까지 말합니다)에 <혁신 클럽>의 회원들은 모두 말도 안된다는 의견을 내고, 급기야 게 중 한 사람이 이 계획이 가능하지 않다에 4천 파운드를 걸겠다는 내기를 합니다. 이에 포그 씨도 지지않고 자신이 직접 이 계획을 실행해보이고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는 데에 무려 2만 파운드를 걸게 되지요. 곧 곁에 있던 다른 네 사람의 회원도 '안된다'에 합류해 결국 1:5의 내기에 양측이 각자 2만 파운드(어제자 환율로도 약 3,500만원의 거금)의 거금을 건 내기가 성립되게 된겁니다.

 

포그 씨는 지체하지 않고 "오늘 저녁 8시 45분 도버행 기차로 출발하여 …… 오늘이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1872년 12월 21일 토요일 오후 8시 45분까지 혁신 클럽의 휴게실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을 하며, 그의 전 재산인 4만 파운드 중 2만 파운드는 내기의 판돈으로, 나머지 2만 파운드는 여행의 경비로 사용하겠다고 계획을 밝힙니다. 여기에서 작가는 '도박은 영국인들의 타고난 기질이다'라 말하며 그 기질은 이러한 여행(?)을 낳은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런던의 증권시장에 이른바 '필리어스 포그 주(株)'라는 새로운 증권까지를 상장시키게 했고, 그 '필리어스 포그 주(株)'는 실물 뿐 아니라 선물(futures)로까지 확대되어 활발히 거래되었다라 묘사하고 있기도 하지요.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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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 아닌 여행'은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이 소설의 영어 제목 <Around the World in 80 days>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 소설의 내용은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의 여행기(travelog)가 아니라 오로지 '80일'이라는 시간 내에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느냐 없느냐에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거지요. 그러하기에 이 소설엔 주인공 포그 일행이 거쳐간 세계 각국의 문화라든가 풍경이라든가에 대한 설명이 일반적인 여행기처럼 자세하거나 많이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포그 씨 일행이 잠시나마라도 거쳐야 했었던 인도, 중국, 일본등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을 때, 작가는 하인 파스파르투의 입을 빌어 '터무니없는 나라를 떠나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가는 중'이란 표현을 썼기도 했을만큼 여전히 이 소설에는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사고가 녹아있기도 하지요. 물론 인도의 '써티 문화' 등에 관해서는 작가의 인식이 틀렸다라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신문에 연재되었었다는 이 소설을 읽었었을 수많은 독자들이, 작가가 쓴 '터무니없는 나라를 떠나'라는 짧은 표현을 통해 동양권에 대해 가지게 되었을 근거 없는 오해가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지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는 되더군요. (다신 한번 더) 어쨌든!!!

 

요즘과 같은 세상이라면 비행기나 기차의 사소한 연착 등은 있을지언정,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건 대략 예측가능하고 조정가능한 변수들하에서의 여정이 될 것이겠습니다만, 1872년의 상황은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그 씨는 <혁신 클럽>에서 주장했었던 것처럼 여행 도중 연이어 생겨나는 돌발변수들에조차도 모두 자신의 예상하에 있었다 말하는데, 여기서도 또한!!! 그가 말하는 '예상했던'이란 단어는 사실 연착이나 탈선 등등 발생가능한 개별의 돌발상황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러한 돌발상황들이 초래할 '시간의 지체'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주인공은 그러한 시간의 지체들을 자신의 기막힌 순발력과 그 순발력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해준 막대한 여행경비덕분에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게 되지요. 지금이나 그때나... 역시 집 떠나면 '돈'이 장땡인듯!!!

 

……………………… 

 

'80일'이라는 시간과 '지구 한 바퀴'라는 공간, 그리고 '2만 파운드'라는 돈은 이처럼 그것들 자체로서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닌, '포그'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확성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사용했었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이 설정은 소설의 다른 등장인물인 픽스 형사에게도 적용되어, 그가 수행하고자 했던 원래의 목적까지도 잊혀진 채 무조건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하여야한다'라는 것에 모두 묻혀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거기에 애초부터 이 계획을 탐탁치 않아했던, 허나 여행 자체는 원래 무척 좋아했었던 하인 파스파르투마저도 어느덧 동일한 이 '여행아닌 여행'이라는 목적에 동화되어버리고 말지요.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읽는 이의 시각에 따라 어쩌면 무척 허무한/알멩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게됩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모두가 어쩌면 옆을 볼 수 없도록 눈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며 경주를 해야하는 경주마와 같다고나 할까요? 독자가 판돈을 건 관람객이냐 아니면 말을 타고 있는 기수냐, 혹은 그 말의 입장이느냐... 에 따라 이 소설의 평가(?)가 극렬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나 할까요?  

 

최소한 (19세기 후반의 문학사조 같은걸 전혀 알리 없는) 제가 이해하는 바에선 작가 쥘 베른은 이 소설을 (제가 또한 알아챌 수 없는)무언가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이는 분명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있는 작가 위화의 소설관과는 분명 다른 것이 아닐까싶기도 하지요. 어쨌든!!! 독자에 따라 느낄지도 모를 이 '허무함/알멩이 없음'을 작가 쥘 베른 또한 감추고 싶었던건지 다음과 같은 (물론 현재의 시각에서 보아서지만) 좀 얼토당토않은 결론으로 소설의 마지막을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 이겼다. 그는 80일 동안에 세계일주를 끝마쳤다. 그러기 위해 온갖 탈것을 이용했다. 기선·기차·마차·요트·상선·썰매, 심지어는 코끼리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별난 신사는 놀라운 침착성과 정확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 여행에서 그가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는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할까? 확실히, 한 아리따운 여성말고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그러나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그 여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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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를 경험한다'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옹과 이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포그 씨에게는 사실 좀 특이한 공통점이 두 개 있지요. 첫째로 그 둘에게는 가족, 심지어는 친척까지도 전혀 없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사실이 이 두 소설과 위화의 소설 「인생」의 주인공인 푸구이 옹의 인생에 결정적 차이를 낳게 해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전후좌우야 어찌되었건 돌보아야할 가족이 없다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된 알란 옹과 포그 씨의 인생과, 가족을 돌보아야한다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푸구이 옹의 인생은 어쩌면 그들이 서양인과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런 <설정>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그토록 달라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더군요. 만약... 알란 옹과 포그 씨에게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었더라도 그 두 소설이 같은 이야기로 온전하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또 하나!!! 알란 옹과 마찬가지로 포그 씨는 소설의 마지막에 한 여인을 얻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또... 혹 전형적인 서양식 사고방식이 아닐까도 싶더군요. 별로 인상깊지 않았던 현대의 소설 「사기꾼」에서도 주인공은 마지막에 한 여인과 평안한 삶을 얻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여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라는 이 소설의 결말은 그래서 어쩌면!!! 작가 쥘 베른만의 것이 아닌, (동양인으로서는 아마 끝끝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를) '다른 목적을 가진 행위로부터 생겨난 부산물로서의 여성', 그리하여 그것이 현재에는 'trophy wife'라는 어이없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는 현실을 낳은 것이 아닌가도 싶은겁니다. (부디 너무 오바했다는 비난만은 말아주시길. --;;) 서양이 동양을 이해하지 못하듯, 동양 또한... 이렇게 서양을 이해할 수 없는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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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를, 다시 태어나도 내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라 말하는 남자에게 그 아내(될 여자)를 찾기 위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하겠느냐라 물으면 당연히 하겠다라 대답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때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분명 그녀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는겁니다. 목적은 분명 '아내를 만나는 것'이지요. 여전히...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란 소설의 마지막 문구에 등장하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그보다 더더욱이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건... 바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 모든 것이 그저 '수단'으로서만 사용되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물론 인도에서 아우다 부인을 구출하고, 미국에서 파스파르투를 구출하려고 기차를 포기하는 장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주인공 포그 씨의 표현대로라면 그 모든 것들 또한 그의 '계획'하에 있었던 일일테니 딱히 커다란 감동을 주는 장면이 될 수는 없겠지요.) 제 아무리 시대상이 그랬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라 생각해보려해도... 말이죠. 

 

모르겠습니다. 이건 단지 저의 관점에서 느낀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일 뿐, '판돈을 건 관람객'은, '말을 모는 기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말이죠. '수단과 목적은 때론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란 문장에의 동의 여부가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한 개인의 느낌을 결정적으로 차이나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분명하게 듭니다. 어린이용 버젼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종원군에게 읽어보라 했습니다. 지난 번 「왕자와 거지」를 읽고 각자의 느낀점을 말했던 것이 참 재미있었거든요. 13살 종원군은 과연 어떤 느낀점을 말해줄지 사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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