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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ㅣ 거꾸로 읽는 책 25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20대를 보내야 했던 우리 세대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독재권력과 싸움을 벌였다. 압도적으로 강한 정치권력과의 싸움에서 우리 세대는 민중의 힘과 역사의 진보를 믿고 의지했다. 대학의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역사를 배운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우리에게 단순한 관찰과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삶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1994년 쓴 '책머리에' 중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첫 단원에서 저자는 이제껏 제가 읽어왔었던 역사 관련책들에서와 마찬가지의 정의를 내리며 이 책을 시작합니다.
● 역사가 어디까지나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인 한 '이야기하는 사람'이, 다시 말해 역사가가 자기의 기분이나 희망, 나름의 세계관이나 이해관계에 맞추어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p15)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실례로 저자는 '묘청의 난'을 이야기합니다. 묘청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성격을 배제하고서라도, 그 '묘청의 난'이 김부식이라는 인물에 의해 진압되었다라는 것, 그리고 그 김부식이라는 인물은 다름아닌 우리가 이제껏 삼국시대 역사의 모든 것으로 배워왔었던 「삼국사기」의 저자이며, 당시 사대주의 세력의 대표주자였었던 그에 의해 씌여진 그 「삼국사기」는 역사가 김부식이 '그러했으리라고 믿고 싶어했거나 그러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라는 것이죠.
이후 책 중반부까지의 내용은 '역사학의 역사'를 다루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과거의 역사'라고 알고 있는 사실들이 기실은 당시의 지배층과 권력자들이 자기네의 관점에서 자기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사료들을 기초로 한 것일 뿐이며, 이는 그들이 역사를 '과거의 사실을 모아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기억을 연장'하는 수단정도로 인식했던 데다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내적인 인과관계를 살피기보다는 운명이라든가 신의 섭리 같은 초자연적인 힘의 작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집트의 피라미드같은 건축물이라던가 왕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각종 귀중품들이 당시 지배층들이 누렸던 권력의 크기나 부귀영화에 대해선 많은 것을 이야기해줄 지 모르나 그것을 만드는 일에 동원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러한 역사가 '기록에서 서술'로 발전된 첫 작품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들고 있는데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물론 그 방대한 양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회와 역사를 파악하고 서술한 사마천의 관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마천이라는 인물의 위대함(!)에 상당한 감탄을 했었었다는.)
이러한 역사서술에서의 변화는 서양에서도 발생하였는데, 그 시초는 역사를 신학으로부터 해방시켜 속세의 학문으로 되돌려놓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역사가들이었습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서는 '실증주의 역사학'이 등장하게 되고 이 실증주의 역사학을 비판한 랑케의 '역사주의'로 이어지게 됩니다. 랑케는 '모든 시대는 다음에 오는 시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다른 시대와 동등한 의미를 지니며, 그러하기에 역사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일반적인 법칙에 역사를 끼워 맞추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원래 있었던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었지요.
허나 이러한 랑케의 사관 역시 역사적 사실들을 철저하게 고증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의를 가지고 있으나, 역사가라면 그것을 뛰어 넘어 어떠한 사건이 다른 역사적 사실과 묶여졌을때 가지는 의미까지를 해석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게됩니다.
● 미국의 역사가 베커는 "역사적 사실이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예컨데 1517년 유럽의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팔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보자. 이것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중세 카톨릭 교회가 저지를 부정과 타락, 중세 유럽을 지배한 무지와 터무니없는 미신 따위와 아울러 루터가 벌인 종교개혁운동의 배경을 이해하는 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p96)
이어 저자는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가 아닌 역사학자로서의 마르크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철학·경제학 등에서 마르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만, 그의 학설을 낱낱이 이해하기란 또한 저에겐 여간 난해한 것이 아니더군요. 헌데 저자는 저의 무릎을 탁!하고 치게 만들 정도로 아주 쉬운 언어로 그의 역사관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는 사상이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평등하고 자유를 억압한 과거의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역사의 진보를 이루었다는 관념론적인 견해는 얼핏 보기에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왜 그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p126) ……… 소수의 사람이 사회의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계급사회에는 필연적으로 계급 사이의 적대적 대립이 생긴다. 기존의 사회체제 아래서 혜택을 누리는 계급은 낡은 생산관계와 사회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반대의 처지에 있는 계급은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은 서로 투쟁하면서 통일되어 있다. 예컨데 노예가 없으면 노예 소유자도 있을 수 없고, 농노가 없으면 봉건 영주도 존재할 수 없으며, 임금 노동자 없이는 자본가도 없다. 이들 적대적인 계급들은 서로 투쟁하면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체제라는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 사이의 투쟁, 이것이 바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대립되는 요소들 사이의 투쟁이며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는 이것을 가리킨다. (p121)
이처럼 마르크스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피지배 계습의 일원으로서 생산에 참여하고 불합리한 사회질서에 맞서 투쟁한 수많은 (과거엔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피지배 계급들이었던) 대중을 역사의 창조자이자 진보의 주역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후의 역사서술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구에서 보듯, 인간은 추상적 개인이나 민족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서로 투쟁하는 계급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일원으로만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허나 전 세계의 여타 식민지 종속국들처럼 수 천년의 역사동안 수없이 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아왔었고, 근세에조차도 무려 40여년 동안 일제의 노예로서 살아왔던 우리 민족에겐 마르크스가 깨닫지 못했을 고유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있지요. 또한 이 '(우리만의) 민족주의'는 백인의 인종적·문화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유색 인종에 대한 멸시를 갖고 있는 유럽의 그것관 달리, 남의 간섭이나 억압을 받지 않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야한다는 사상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만의) 민족주의'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았던 두 분의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과 신채호 선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고 공간부터 확대하는 정신적 상태의 활동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 역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인 것이다. 무엇을 我라 하며 무엇을 非我라 하는가? 깊게 팔 것 없이 간단히 말하면, 무릇 주체적 위치에 선 것을 我라 하고 그 밖에는 非我라 하는데, 이를테면 조선 사람은 조선을 我라 하고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을 非我라 하지만,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은 각기 제 나라를 我라하고 조선을 非我라 하며, 무산 계급은 무산 계급을 我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非我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각기 저의 무리를 我라 하고 무산 계급을 非我라 하며, 이뿐 아니라 학문에나 기술에나 직업에나 의견에나 그 밖에 무엇이든지 반드시 중심이 되는 我가 있으면 따라서 그에 대립하여 맞서는 非我가 있고 …… 그리하여 我에 대한 非我의 접촉이 잦을수록 非我에 대한 아의 투쟁이 더욱 맹렬하여, 인류사회의 활동이 그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앞길이 완성될 날이 없으니, 그러므로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 신채호의 「조선사 총론」 제 1장 중 (pp158-159)
물론 박은식과 신채호의 역사관은 당시의 특별한 시대 상황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지만, 이들의 민족주의 역사학은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발전 법칙을 탐색하기보다는 민족 사이의 투쟁이라는 측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로부터는 '하나의 특수 사관에 불과하다'는, 또한 실증주의 역사학자들로부터는 '특정한 목적에 따라 연구하는 비과학적 목적사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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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창엔 언제 읽혀질지 가늠조차 되지않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만약에 한국사」란 책이지요. 사실 이 책을 예전에 한 번 집어 들긴했었었는데, '만약'이 아닌 '史實'도 알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강준만 교수가 집필한 23권(?)짜리 「한국 현대사 산책」이란 책을 구입했었고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나 다시 「만약에 한국사」를 집어들려 했지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이란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며 시작되는 <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란 제목의 장에서 저자는 역사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때때로 매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또한 그러한 우연이 역사를 전면적으로 지배할 수도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 1987년 '6월 항쟁'의 전후를 서술한 뒤, 당시 박종철군의 죽음이나 은폐 조작의 진상 폭로와 같은 '우발적인 사건'이 결코 '6월 항쟁'의 원인이 될 수는 없으며, '정치적 정통성이 없는 권력의 비민주적인 강권통치는 반드시 국민의 저항을 초래한다'라는 엄연한 역사적 인과관계에서 그 맥락을 찾을 수 있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란 수많은 인과관계의 사슬이며, 역사에서의 '우연'이란 이러한 인과관계의 사슬을 단절시키는 사건, 다시 말해 '다른 역사적 사실과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맺지 않는 사건'을 말할 뿐이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제 머릿속을 굳건히 지배하고 있는 고딩시절 세계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역사에 가정은 결코 있을 수 없다'란 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책 「만약에 한국사」를 이제는 읽을 준비가 된 듯 하네요. '만약이 아닌' 사실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때의 '만약에'란 단어가 어떠한 뜻으로 쓰인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이어지는 <영웅과 대중>에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사란 것이 과연 영웅에 의해 만들어지느냐 아니면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냐에 관해 토인비의 '창조적 소수자'를 기반으로 저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창조적 소수자/지배적 소수자'로 기록되는 자와 반역자로 기록되는 자의 차이를 케인즈, 루터, 전봉준 등 여러 역사적 인물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사마천의 말을 떠올리며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영웅(창조적 소수자)의 상을 제시하고 있지요.
● 제일 현명한 위정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위정자는 이익을 미끼로 이끌며, 그 다음의 위정자는 도덕으로 백성을 설교하고, 또 그 다음의 위정자는 형벌로 백성을 길들이며, 최하의 위정자는 백성과 다툰다. -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 중 (p59)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라든가 '역사가 심판해줄 것이다'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에 저자는 '역사는 정말로 심판을 내리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지요. '반민특위' 사건을 예로 드려 역사는 때때로 강자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어쩌면 그리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 세대에게 "너무 나서지도 뒤처지지도 말고 그저 중간에만 서라"라 교육시키셨던 이유도 모두 이러한 연유에 기인하고 있다라 말하고도 있습니다. 허나 단기적으로는 역사 속에서 '정의'란 것이 거듭 실패하고 좌절하는 듯 보일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결국 '결정적이고 궁극적인 승리'의 밑거름이 되어왔다라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지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역사는 진보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인간이 역사의 종착점을 미리 내다볼 수 없다고 해서 역사의 진보 그 자체를 부정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 진보의 구체적인 내용은 역사의 실제적인 전개과정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이 그때그때 만들어가는 것이다. ……… 진보를 믿는 것은 역사가 어떤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당면한 과제를 인식하고 불합리한 사상과 제도를 고쳐 나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pp278-279)
……………
이제껏 읽었었던 역사관련 책들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책이었습니다. 개별 사건이나 개별 국가의 역사가 아닌 진정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요. 정통 역사학자가 저술한 역사책을 도외시한채 사회학 전공자나 경제학 전공자가 쓴 역사책만을 읽고 있는 저의 역사책 읽기가 약간은 염려스럽기도 했었습니다만, 어차피 현실에서의 역사.를 알고싶음이 그 독서의 목적이라면 이러한 방향이 크게 빗난간 것은 아닐 것이다라 그간 해왔었던 스스로의 변명이 드디어 떳떳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만큼 무척이나 진지하게 읽었던 책이기도 하구요.
얼마전 발간된 「어떻게 살것인가」의 표지사진과 이 책의 표지사진을 비교해보니 이분도... 많이 늙으셨더군요. 정치인이 아닌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유시민'에 열렬한 응원을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 More 'Food for Thought' : 남경태 著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 유시민 著 「거꾸로 읽는 세계사」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
- E.H.카의 같은 제목의 책에 대해 저자는 '영양가는 풍부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생소한 서양음식'과 같다고 말하고도 있습니다.
- 허나 저자가 특별히 김부식의 역사관만을 문제 삼고 있는것은 아닙니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역사가로서' 특별히 비난 받을 일을 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왕조 시대의 역사가들은 누구나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에 따라 '쓸 것은 쓰고 깎을 것은 깎아가며' 역사를 서술했다. 우리가 「삼국사기」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쓴 역사를 사실 그대로라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pp25-26)
- '실증주의 역사가들은 인간의 행동도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법칙에 따른다고 믿고, 역사적 사건과 사회현상을 항상 원인-결과 관계로 파악하려 하였다. 그들은 또한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을 역사 연구에 들여와 각종의 사회 통계와 비교분석하는 등 과학적인 역사 연구 방법을 발전시켰다.' (p84)
- '랑케는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고 하면서 역사를 그것에 끼워 맞추려 한 실증주의 역사학을 단호하게 비판했다.' (p91)
'(랑케는) 어떠한 합리적 개인도 민족이나 국가를 통하지 않고는 인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 그는 보편 법칙 대신 개별적인 사건과 시대에 대한 연구에 집착하면서 자기 나라의 제도와 법률과 전통과 관습의 독자적인 가치를 옹호했다.' (pp161-162)
- 이러한 마르크스의 의문은 '시장제도와 화폐'를 그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관 달리 시장제도와 화폐의 출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었지요.
- 이 글에서 훗날 신채호 선생이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좌익 노선 혁명가로 변신하게 되는 일말의 근거를 찾을 수도 있겠네요.
- 이의 예로 클레오파트라의 미모, 레닌의 죽음, 루이 16세의 무능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허영 등을 들고 있습니다. (P210)
- "조선 건국 이래도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꾸지 못했던, 비록 그거싱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던,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던 패가망신 했단 말입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고 했단 말입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 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습니다. 눈감과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셨던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면서 살아라."였습니다. 80년대 시위하다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이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쯤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연설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