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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김형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글루스에서 "산하의 썸데이서울"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일명 '산하의 오역'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는 저자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낸 책입니다.
우선 '오역'은 '오늘의 역사', 그 날짜의 역사입니다. 둘째로는 '나만의 역사'를 뜻하는 '오역吾歷'입니다. 또한 그러하다보니 당연하게 발생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경계해야하는 '오역誤歷' 일 수도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 사물,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는 전달하는 사람의 시각과 주관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고, '오역'이란 그 와중에 당연히 발생할 것이니까요.
여타의 역사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저자 자신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는 해석임을 고백하며 시작하고 있지요. 유시민과 강준만의 책에 감동받았다는 말로 인해 요즘 들어 명마회 내에서 '셀프 좌빨'이란 우스갯 소리를 듣고 있기도 한 저입니다만, 확실히 만약 2-3년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런 좌빨같은...'이란 혼잣말을 내뱉었을 것이 분명한 저도 2013년의 현재엔 이 책을 읽고 '가슴 아팠고, 많이 배웠'다란 말을 아니내뱉을 수 없게 변해(?)있더군요.
음력에서 양력으로의 변환으로 인해 약 40여일이 사라져버린 1월 1일.을 시작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그들이 살았던 오늘'이 시작됩니다. 이처럼 이 책에는 개인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역사적 事實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그 백미는 수많은 하루하루들이 모여, 또한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지금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점이죠. 국민학교때 구구단을 외웠던 이가 중학생이 되어 2차방정식을 배우게되고, 미적분을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 당시당시에는 도대체 그런 것들을 왜 배워야하는지 알 수 없었었지만 결국 그러한 것들이 모여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대학엘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주었으며, 또한 그 이후의 학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되어주었었듯이 어느 날 갑자기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국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었으며, 원래.부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자유가 이 땅 대한민국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어찌보면 참 단순.한 진리가 바로 '역사'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가장 커다란 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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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9일의 '오늘'은 공사판과 파출부일로 각각 집을 나서야했던 다섯살 혜영이와 세살 영철이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 걱정되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던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방안에서 놀꺼리가 없어 성냥을 만지작거리다 화재가 나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화재로 자신의 두 아이들을 잃게 됩니다. 만약 집으로 배달되어 온 조간신문속 '기사'로 이 이야기를 접했더라면 아마도 '무책임한/무자비한'이란 형용사들을 앞에 붙여 혜영이와 영철이의 부모를 잠시 탓하고마는 그리 길지 않는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이 슬픔 사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오역吾歷'을 이야기 해줍니다.
보육시설 확대를 주장하면 "애는 엄마가 길러야지"식의 논리가 정면으로 박치기 하고 나서는 (1990년 당시의) 분위기였다. 보육은 부모의 책임이지 사회가 뭘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암담함 속에서 파출부 나가는 엄마는 자물쇠를 잠가야 했고 아이들은 뜨거워지는 벽과 문을 긁어 대다가 숨이 막혀야 했다. …… 세상에서 가장 옳은 명제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명제인지도 모른다. 가정은 지켜져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옳고 지당한 책임을 사회가 전담 내지는 분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밀 때, 옳아서 더욱 단단하고 마땅하여 배로 갑갑한 명제의 동아줄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목을 잡아 죈다.
이처럼 저자는 미처 제가 깨닫지 못해왔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저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정무역'이란 단어와 '버스 노조 파업'이란 두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저의 부정적 선입견을 1852년 3월 20일 '해리어트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책이 출간되었던 그 '오늘'을 통해 '이제 한번쯤 달리 생각해보지 않으련?'이라 묻고 있기도 하지요. 여전히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던 미국에 살았던 그녀는 이미 노예제도가 폐지된 영국에 가서 다음과 같은 강연을 합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영국인들을 "외식하는 사람"이라 강하게 비판한다. 예수가 바리새인들에게 이 표현을 쓴 이래 기독교인에게 "외식하는 사람"은 '개새끼'에 맞먹는 욕설이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제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여러분들은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진작 폐지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주장하지만 미국 남부에서 노예들의 강제 노동으로 재배된 면화의 80%가 영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현실은 묵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국이 이렇게 재배된 면화에 대한 수입을 거부하면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사라질 것입니다.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서 당신의 이익 1페니를 희생할 수는 없습니까?" …… 버스 노조가 파업을 벌여 버스가 오지 않으면 그 이유를 차치하고 욕설부터 튀어나오는 우리에게도 스토는 안타깝게 물어 올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서 당신의 즐거움을 조금만 희생할 수는 없는가요?"
물론 버스 노조의 파업이 '세상을 바로잡는'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이제껏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사고의 다양성을 타인으로부터 듣는다.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저자의 물음은 그 누구에게도 던져져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톰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노예인 톰 아저씨가 악덕주인인 레글리의 손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인님이 제 몸을 사셨을지는 모르지만 제 영혼의 주인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라는 부분에선 여전히... '그의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샀을 뿐이지 그 사람의 인격 자체까지를 산 것이 아님에도 이해되지 않는 폭행과 폭언들을 감내하고 있다는 2013년 대한민국의 대리기사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책은 이처럼 이제껏 제가 모르고 지내왔던 것들을 친절하게 끄집어내어 단순히 어떤 '오늘'에 어떠한 '일'이 있었었다.라는 것 이외에도 마흔 다섯.의 나이가 되도록 벗어나지 못했던 사고의 틀을 단 몇 페이지의 글로 저 스스로 깨뜨려버리게도 해줍니다. 1997년 1월 10일의 '오늘'이 바로 그 중 하나였지요. 그날 명동에선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사복형사들이 잠복근무중이었었고, 세 명의 소매치기를 발견한 한 형사가 그들을 덮칩니다만 그 형사는 소매치기들에 의해 칼부림을 당하게 됩니다. 순간 수많은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물러서지만 근처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이근석이란 청년은 그 소매치기들을 향해 맞서 싸우기위해 달려들었고 그 또한... 소매치기의 칼에 죽음을 당하게 되지요.
그 소식을 듣던 날, 동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칼 앞에 몽동이라도 하나 들어어야 한다는 중, 너무 무모했다는 둥 사설을 달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그 구설들을 한마디로 틀어막았다. "용기 없으면 용기 있는 사람 존경이라도 하자. 그 사람이 그걸 몰라서 그랬겠냐." …… 명동 거리에 세워진 이근석 기념비. 망설이고 주춤하고 외면하려는 찰나 "이건 아니지!"하면서 성큼 한 발을 내미는 이, 우리는 그들을 의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의인이 의인으로 대접받는 예보다 그렇지 못한 예가 훨씬 더 많음이 아쉽고 부끄럽다. 용기라는 건 남보다 한발 더 나가는 것이다.
삶 속에서 그 한발이란 암스트롱이 달 위에서 내딛은 한 걸음보다 더 어렵고 멀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발을 내딛었다가 상처받은 사람의 용기를 기리기보다 한발 나서지 않아 온전할 수 있었던 지혜를 대견스러워 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 착하게만 살다가 용기의 대가로 목숨을 잃은 청년 이근석은 명동 길거리에 덩그러니 세워진 추모비 하나로 세상에 남아 있다. 명동 거리에서 우연히 이 추모비와 마주친다면 잠시라도 멈춰 서서 한 청년의 명복을 빌어 주기 바란다.
아무리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라 한다지만, 굳이 이 책의 다른 부분에 나와있는 "1970년 청계천 재단사 전태일의 유서와 2003년 한진중곱업 노조 위원장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라고 통탄했다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말까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또한 그 사회의 일원인 저는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한발 나서지 않아 온전할 수 있었던 지혜를 대견'스러워하고 있었슴을 난생 처음.으로... 부끄럽다.란 말로 표현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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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이후 발생한 사회적 혼란와중에 조선인들이 그 혼란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를 하며 지진에서 살아남은 일본인들을 살해하여 봉기를 획책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고 결국 조선인 대학살을 불러오게 되는데, 그러한 소문을 조작하여 유포한 이는 사회주의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열혈경관 쇼리키 마쓰타로 였었었지요. 이후 그러한 소문을 유포한 죄로 경찰복을 벗은 그는 요미우리신문사 사장이 되었고, …… 야구 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창단하여 '일본 프로야구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이승엽 선수가 더 이상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수가 아니긴 하나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때와는 사뭇 달라지더군요. 이미 땅 속에 묻혀있을 쇼리키 마쓰타로는 이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고등학교 2학년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너네들 중국 공산당이 하는 고문중에 가장 무서운게 뭔지 알아?' 용의자의 사지와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10초에 한방울씩 그의 이마위에 물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물방울 하나가 뭐가 대수겠냐.싶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물방울의 무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 된다.고 하셨었지요.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겉모습은 단순한 하루하루로 이루어진 '그들이 살았던 오늘'이지만 그것이 뱉어내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하루가 아닌, 표지에 씌여있는 글귀마냥 '웃고 울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선택하고 …… 그러다 시대를 바꾸기도 했던 365일'이었던, 당시에는 단순.해 보였을지 모를 과거.들이 쌓여 엄청난 미래.를 낳게해주고 있다.라는 것을 그야말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는 것이 시간이 가는줄 모르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 3월 9일 혜영이와 영철이의 '오늘'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었다는) 정태춘C의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찾아 들어본 그 노래는, 만약 이러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더라면 '뭐 이런 노래가 다...'라 말했겠습니다만 이젠... 차마 그 가사의 내용에서 귀를 뗄 수 없더군요.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감정의 공유'라는 건 어쩌면 지식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 가 아닐까하는 생각말이죠. 보고싶은 것만 보아왔었고, 아침마다 조선일보가 들려주는 이야기만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아왔었던 저에게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세상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이 있으며, 때로는 나와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고개숙여 경청해야하는 순간들 또한 참으로 많다.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듯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 개인의 역사 또한... 이처럼 '지금'엔 미처 훗날에의 그 영향을 알아채지 못했던 '오늘'들이 모여 또다시 '지금 오늘'의 저를 있게 해주었을꺼란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다하여 저의 생각 전체가 바뀔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책 속 다음의 문구를 새겨보며 '바로 지금의 오늘'이 어떠한 훗날을 저에게 안내해주게될 지 사뭇... 긴장되는 마음을 가져보며 감상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런 책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점점 더... '책을 읽는다'라는 것에의 새로운 매력에 푹~ 하고 빠져들게되네요.
역사는 언제나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