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스카프 아침이슬 청소년 2
지앙지리 지음, 홍영분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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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 공산당은 경제건설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은 흐루시초프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소련의 지원은 점점 줄어들었다. ……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철강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에 마오쩌둥은 1958년 제2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을 제시했다.

 

중국 공산당은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 등 세 가지 경제정책을 내걸고 삼면홍기(三面紅旗)운동이라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2차 경제계획 첫 해인 1958년에 농업과 공업 생산 총액이 전년 대비 48퍼센트나 증가했으며 …… 마오쩌둥은 삼면홍기운동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이(라 말했으)며  …… 그러면서 자작농들을 인민공사에 가입시켜 거대한 단일조직으로 통제했다. 경제 · 군사 · 행정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사회조직을 만들려는 마오쩌둥의 야망에는 공산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농촌 말단까지 확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 아무런 기술적 고려 없이 '혁명적 열정'만 가지고 덤벼드는 '사회주의 생산은'은 비참한 결과만 남겼다. ……  마오쩌둥은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 1960년 실용파인 류사오치와 저우언라이가 등장하면서 중국 경제는 겨우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공업과 전문가를 우선시하고 농민의 토지 소유를 인정했다. ……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물러난 마오쩌둥은 호시탐탐 권력을 다시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오랜 침묵 끝에 드디어 반격을 시도했다. 1962년 마오쩌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외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수정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당권파를 비판했다. 마오쩌둥의 보복은 몇 년 후 1965년부터 시작된 문화적 논쟁에서 비화된 문화대혁명을 통해 시작되었다. …… 5월 29일 칭화대학교 부속중학교에서 최초로 홍위병이 조직되었다. 6월 28일 홍위병들이 마오쩌둥에게 제국주의자들의 숙청을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내자 8월 5일 마오쩌둥은 '사령부를 공격하라'라는 친필로 쓴 대자보를 게재해 홍위병의 행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리하여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 이들은 낡은 문화를 없앤다는 명목하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학교를 폐쇄하고 전통의 가치와 부르주아 문화를 공격했다. '반란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하며 홍위병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 결국 홍위병은 류사오치를 감금하고 전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었다. 마오쩌둥의 '반란'은 마침내 성공했다.

 

- 김윤태 著,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pp 351- 356 중 발췌인용

They hoped that I would be the happiest girl in the world. And I was. …… I never doubted what I was told : "Father and mother are dear, but dearer still is Chairman Mao." …… That year, 1966, I was twelve years old, in sixth grade. That year the Cultural Revolution started.

 

초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셨었던 할머니, 연극배우인 아버지와 배우일을 그만두고 상점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와 두 동생.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던 12살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지리지앙은 그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던 그녀는 Central Liberation Army Arts Academy의 배우 후보자로도 뽑혔습니다만, 그녀의 출신성분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셨던 부모님의 강한 만류로 결국 후보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하게됩니다. 이 때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했었던 그녀의 출신성분은 다름아닌... 그녀의 아버지가 일곱 살때 돌아가셨다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대지주였었다라는 사실이었었지요. 그걸 알게 된 후 지리지앙은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앞날이 뭔가 자신의 꿈대로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됩니다.

 

I was afraid that the rest of my life would not be what I had imagined. …… Until now I had never doubted that I could achieve anything I wanted.  The future had been full of infinite possibilities. Now I was no longer sure that was still true.

 

Our beloved Chairman Mao had started the Cultural Revolution in May. Every day since then on the radio we heard about the need to end the evil and pernicious influences of the "Four Olds" : old ideas, old culture, old customs, and old habits.

 

어린 지리지앙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문화대혁명이란 건 처음엔 아주 재미있는 '놀이'의 하나로 다가왔었었습니다. "Great Prosperity Market"라는 이름의 상점이나 "Good Fortune Photo Studio"라는 이름의 사진관 간판들을 보며 자기네들끼리 토론(?)하길... '많은 돈을 벌고 싶다'라는 뜻을 가진 이 간판들은 마오 주석의 말에 의하면 '착취'를 통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당연히 '4대 구악'중의 하나인 것이며, 한 술 더떠 "Innocent Child Toy Shop"의 'Innocent'란 단어 역시 계급성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그 장난감 가게의 이름은 마땅히 "Red Child Toy Shop"이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등의 의견개진(?)을 하는... 그런 '놀이'의 수준이었던 거지요.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일반적인 열두 살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당시의 지리지앙 또한 학교의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던 중국의 역사, 특히나 구악과 외세에 맞서 싸운 결과 중국을 그것들로부터 지켜냈었던 공산당을 존경하고 있었었으며,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무의식중에 지배하고 있는 낡은 사상과 악습들을 없애야한다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학생이었었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시간들이 흐르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드리는 지리지앙에게 누군가가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 또한 구악의 하나인데 이처럼 교사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잘하는 지리지앙은 마땅히 버려야 할 구악을 아직 버리지 못한 학생이란 말을 합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이 왜 구악이 되어야하느냐는 지리지앙의 질문에 '교사에 대한 존경'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것이라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는 처음으로... '세상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대자보가 출현했다. …… 이는 아마도 중국 유사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서예 전시회였을 것이다. …… 대자보에 쓰인 것은 대동소이한 혁명의 언어였지만 평소에 대단한 위세를 보이던 간부들을 거명하면서 비판하는 대자보가 나타나면 이를 읽는 군중은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대자보의 출현은 약자인 군중이 강자인 간부들에게 도전하는 최초의 행위였을 것이다. 이런 행위가 나타난 것은 그들이 중국공산당 중앙과 베이징에 있는 일부 고관들의 압제를 받은 이후의 일이었다. 마오쩌둥이라는 절대권력자는 자신이 가진 지고지상의 권위를 이용하여 뭔가를 바로잡지 않고 항상 약세인 군중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역시 '사령부를 포격하라'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써붙인 것이다. …… 중국의 역사를 종합해보면 귀족 출신이건 풀뿌리 출신이건 일단 황제가 됐다 하면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황제의 입과 얼굴, 언행을 재현했다. 마오쩌둥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 그는 손쉽게 문화대혁명을 광풍의 경지로 몰아갔다.

 

- 위화 著,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pp44 - 46 중 발췌 인용

곧이어 학교의 휴업이 결정되고,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쓰도록 지시받습니다. 지리지앙은 그간 신문을 통해 수정주의적 교육이 어린 학생들을 물들게 했다라는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보았었었고, 그 내용 자체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였었으나, 막상 자신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을 비판할만한 것을 찾지는 못하였지요. 그런 그녀완 달리 다른 아이들 (주로 공부 못/안했던 아이들 --;;)은 매일 열심히 터무니 없는 내용들의 대자보를 연신 붙입니다. --- '우리 담임은 우리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한 결과, 시력이 나빠져 결국 우리가 인민군에 지원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반동이다.'  '왕 선생님은 점심을 안싸가지고 와 굶은 학생에게 빵을 사주었는데, 이는 그 학생의 혁명정신을 훼손시키는 반동적 행위이다.'

 

이런 뭔가 말도 안되는 상황의 연속인 시간이 계속되었으나 지리지앙은 여전히 공산당 이념 자체에는 충실한 소녀였었고 그녀 역시 '홍위병(Red Guards)'이 되고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었습니다만!!! --- 최소한 고등학생은 되어야 될 수 있는 홍위병의 예비단계(?)로 'Red Successors'가 생겨났고, 지리지앙은 예의 그 자리에 도전을 하지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옛 지주계급, 옛 부농, 반혁명분자, 범죄자, 우파분자'를 지칭하는 '흑오류'의 자식들은는 홍위병이 될 수 없었었는데, 지리지앙의 할아버지가 옛 지주였었다는 사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밝혀지면서 그녀는 'Red Successors'에의 지원자격조차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친구들로부터 심한 따돌림과 질책까지를 받게 됩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실제 지주계급이었음을 알게 된 그녀는 이후 할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지요.

 

Was it my fault that my family was a little better off than theirs? Many a time I had wished that my parents were workers in a textile mill and that we were poor. …… Suddenly I wished that I had been born into a different family. I hated Grandpa for being a landlord.

 

 

사회학적으로 보면, 홍위병의 대중운동은 사회주의혁명 이후에도 공산당 간부, 대도시 지식인, 중간층이 새로운 특권층이 되면서 비간부층, 도시 하층민, 농민의 자제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저항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전통문화, 유교경전, 서구문화에 대한 공격은 기득권층의 '상징권력'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다.

 

- 김윤태 著,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p356 중

이후 문화대혁명은 점차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게 되었고, 홍위병들은 구악의 잔재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집으로 쳐들어가 개인 소유의 옛 물품들을 파괴하고 압수하는 행동들을 벌이게 됩니다. 몰락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옛 지주 출신인 지리지앙의 집안에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값나가는 물건들이 몇몇 있었었기에,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 물품들 뿐 아니라 심지어 값비싼 옷을 걸치고 있었던 채 찍었던 옛 사진들까지도 모두 몰래 불태우며 홍위병들의 수색을 피해보려 합니다만, 그들의 그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 또한 홍위병들의 수색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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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일년 반이나 늦게 지리지앙은 다시 개교한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수업은 그녀가 꿈꾸었었던 그런 것들이 아니었더랬습니다. 교육과정을 실생활과 연계시키라는 마오 주석의 교시에 따라 물리, 화학, 생물과목의 선생님들이 갑자기 난데 없는 공업이나 농업을 가르쳐야만 했고, 이미 예전부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구악의 하나로 생각해왔던 학생들은 그나마의 수업조차도 제대로 듣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화대혁명은 그렇게 학교에만 영향을 미쳤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마저도 혁명의 이름으로 갈라놓는 상황을 지리지앙의 주위에서 발생하게도 했었었지요. 비록 자신의 가문에 대해 심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지리지앙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는 소녀였었.습니다만!!!... 자신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계급적 결함을 자신의 능력으로 반드시 극복해내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그녀는, 그러나 그 극복의 중대한 계기가 될 수도 있었던 'Class Education Exhibition'에서조차 자신의 할아버지로 인해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해 준비해왔던 안내요원의 자리를 박탈당하고나자, 자신의 성(姓)을 바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하게 되고맙니다. (실제 당시의 중국 공산당은 그처럼 성씨를 바꾸는 것을 혁명적 행동이라 부추기기도 했다합니다.)

 

지리지앙의 아버지는 결국 재직 중이었던 극단에서 우파 반동분자로 몰려 감옥을 가게 되었고, 그녀의 엄마 또한 시아버지와 남편때문에 직장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연로하신 몸으로 매일 동네 청소를 하게 되지요. 한 때나마 자신의 할아버지는 너무 원망했던 나머지 자신의 성을 바꾸고도 싶어했었던 지리지앙은 그러나... 끝내!!!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버리지 않습니다.

 

Once my life had been defined by my goals : to be a da-dui-zhang, to participate in the exhibition, to be a Red Guard. They seemed unimportant to me now. Now my life was defined by my responsibilities. I had promised to take care of my family, and I would renew that promise every day. I could not give up or withdraw, no matter how hard life became. I would hide my tears and my fear for Mom and Grandma's sake. I was my turn to take care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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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컬어지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어쩌면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일지도 모른다라는 의문, 그것은 2013년 현재 40대 중반의 한국 남자인 저에게만 드는 생각은 아닌 듯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지리지앙 또한 'In the three months since the Cultural Revolution had started, changes had been so constant that I often felt lost. One day the Conservative faction were revolutionaries that defended Chairman Mao's idea ; the next day, the opposite Rebel faction became the heroes of the Cultural Revolution.'이라 쓰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상황이나 시대에 따른 상대성만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념 자체로부터의 상대성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보수'는 'status quo'를 주장하기 마련이며, '진보'는 그것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지요. '시장의 힘'을 중시하는 것을 그 탄생의 근원으로 하고 있는 경제학에서의 'conservatives'는 (일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과는 반대로) 그 탄생의 이유인 '시장의 힘을 중시하는 것'에의 status quo, 즉 정부나 국가의 개입을 극도로 제한하는 주장, 혹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서의 '보수'가 보여주는 행동과는 사뭇 다르지요?)  

 

When I was a small boy, my grandmother told me about a distant uncle who was living in China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He promised to send a picture of himself to his relatives in America.. If conditions were good, he said, he would be standing. If they were bad, he would be sitting. In the photo he sent us, my grandmother whispered, he was lying down! 

 

- <Foreword> written by David Henry Hwang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란 소설을 통해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더랬습니다. 주인공의 아들이 그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결국 병에 걸리게도 되고, 허삼관의 아내 또한 거리에서 동네사람들로부터 공개비판을 받는, 이후 허삼관의 가족들이 모여 한 방에서 서로를 비판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나오는 것을 보며, 도대체 '문화대혁명'이란게 무엇이길래?하는 의문을 처음 가졌었지만, 위화 특유의 '심각하지도 않으며, 어떤 서술은 심지어 웃기기까지도 했던' 이란 이유로 사실 그것이 실제의 역사에서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더랬지요. 헌데... 그 사실은 심각했었던 상황을 David Hwang마저도 (물론 그가 직접 만든 표현은 아닐지라도) 위에서처럼 희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앉아있는 것조차 모자라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사진이라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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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friends have asked me why, after all I went through, I did not hate Chairman Mao and the Cultural Revolution in those years. The answer is simple : We were all brainwashed. 

To us Chairman Mao was Gold. He controlled everything we read, everything we heard, and everything we learned in school. We believed everything he said. Naturally, we knew only good things about Chairman Mao and the Cultural Revolution. Anything bad had to be the fault of others. Mao was blamless. 

When I started to wrtie this book, I asked An Yi's mother if she had hated Mao when she was forced to climb the factory chimney. "I didn't hate him," she told me. "I believed that the Cultural Revolution was necessary to prevent revisionism and capitalism from taking over China. I knew that I was wronged, but mistakes happen under any system. If the country was better for the movement that persecuted me, I was still in favor of it. It was only after Mao's death that I knew I was deceived." 

It was only after Mao's death in 1976 that people woke up. We finally learned that the whole Cultural Revolution had been part of power struggle at the highest level of the Party. Our leader had taken advantages of our trust and loyalty to manipulate the whole country. This is the most frigntening lesson of the Cultural Revolution : Without a sound legal system, a small group or even a single person can take control of an entire country. This is as true as it was then.

 

- <Epilogue>

이 책의 <Foreword>를 쓴 재미 중국계 극작가 David Hwang은 '문화대혁명'은 분명 권력투쟁의 산물이었었으며,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으로 가려진 그... '기실은 한낱의 권력 투쟁(이었던 것)'의 도구로 이용되었을 뿐인 당신의 젊은 세대들이 결국 'lost generation'으로 불리우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그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현재의 시선일 뿐이지요. 

 

David Hwang의 서술이 '과거가 되어버린 문화대혁명'을 현재 시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 한다면, 저자가 직접 쓴 <Epilogue>에 나와있는 위의 서술은 '현재의 현실로서의 문화대혁명'을 바라보았던 한 지식인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위에 등장하는 An Yi 의 어머니는 수년 동안 모범교사상을 받았던 선생님이셨지요) 그녀는 마오쩌둥의 죽기 이전까지는 문화대혁명의 대의에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자였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적인 동의를 했었다 말하고 있는 이것을 보며, 도대체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더군요. 대학의 '정치학 개론' 수업시간에 배우게 되는 구분이 아닌, 현실 정치에서 투표로서 보여진다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 또한 아닌...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 개인에게의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란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환경 파괴와 도덕 상실, 빈부격차 증가, 부패현상 만연 등이 오늘날 중국 사회의 갈등을 갈수록 격화시키고 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마오쩌둥 시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 그렇게 느낄 뿐, 정말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마오쩌둥 시대는 비록 생활이 궁핍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보편적인 잔혹함이나 생존경쟁은 없었다. 단지 공허한 계급투쟁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당시의 중국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따. 때문이 이런 투쟁은 그저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의식주를 절약하면서 함께 어울리며 무난하게 지냈다. 모두 조심스러워하긴 했지만 대체로 평안하게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   ……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 극심한 경쟁과 거대한 압력이 수많은 중국인의 생활과 생존을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 가치관의 변화와 재화의 재분배가 사회분열을 조성하고 사회분열은 사회충돌을 가져온다. 오늘날의 중국이야말로 계급과 계급투쟁이 만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어쩌면 중국이 발전한 이후에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마오쩌둥이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위화 著,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pp56 - 57 중 발췌 인용

보다 더 근본적인 중국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생각했었던 위화의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을 읽으면서 사뭇... 작가 위화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것같다란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었더랬고, 사실은 그게 좀 의아하기도 했었지요. 헌데 지리지앙의 이 책 「Red Scarf Girl」을 읽고나니 문화대혁명을, 그리고 마오저뚱을 바라보는 두 사람, 위화와 지리지앙의 생각에 적지않은 차이가 있지않나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저는 위화나 지리지앙이 '진보'와 '보수' 그 어느 쪽의 사상을 각기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시 한번 더!) 적지않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David Hwang의 서술과 An Yi 엄마의 회상 중 어느 것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또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이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을 (어쩌면 차라리 '자주'라 말해도 될 만큼, 심지언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에 대한 감상에까지도 강요(?)되는 진보와 보수의 택일이 존재할만큼) 종종 받게 되는 요즈음의 한국을 살아가다보니, 문득... '문화대혁명'의 시기는 1969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던 저의 삶, 그 초창기의 이 땅에도 있었던 것일지 모르며, 그렇게 머지도 않은 과거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함에 있어 과연 나의 정치적 견해는 어떠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않을 수 없게 만들어준 독서가 되어준 듯 합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위화의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다시 차근/차분하게 읽어봐야 할 듯, 그리도 또한! 다시 읽는 「허삼관 매혈기」는... 분명!!! 첫 독서때완 분명히 다른 느낌일 것... 은 물론이고요!!! 

 

 

영어 교과서로 사용해도 될만큼 매우 모범적(?)인 영어로 씌여져 있는 책입니다. 요즘 수준이라면 중딩들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듯.

 

More "Food for Thought"

 

- 장안거 著,붉은 땅의 기억 : 비슷한 나이, 다른 성별, 그리고 훨씬 더 짧은... 그러나 같은 이야기. 

- 위화 作, 허삼관 매혈기 : '문화대혁명'을 알기 이전에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소설. 그러나 알고나면 꼭! 반드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 

- 위화 著,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작품 입문서. 그의 그 어떤 소설을 읽기 전에 반드시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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