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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아주...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올해엔 반드시 OO권의 책을 읽고야 말겠어!'란 다짐을 하는 분들은 절대 집어들지 말아야 하는 책이지요. 두꺼운 데다가 진도도 잘 안나가거든요. --;; 헌데 이놈의 독서란게 말이죠... 하다보니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게 되는것일 수도,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는 일일 수도, 때로는 내가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나 현실과의 만남일 수도... 뭐 이렇게 참 여러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거더군요. 그 두껍고 진도도 잘나가지 않는 책은 제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라 생각하고 있었던 분야를 제대로 한번 배워보는 일이었기에 중간에 '그만 읽고싶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지만 암튼... 진이 좀 빠지긴 하네요. 그러던 그 와중에 잠쉬 쉬기위해(?) 집어들었던 책이 바로 「허삼관 매혈기」였었었고, 예의... 복잡복잡한 월-금을 보낸 후 좀 편안한 독서를 위한다며 집어든 또 한 권의 책이 또한 바로 이 「불편해도 괜찮아」였었었지요.
'국가인권위원회'라는... 내 평생에 인연을 맺을 확률 거의 제로에 가까와보이는 기관에서 기획한 책, 게다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입에 올리지 않을까 싶은 '인권'이란 단어, 자의였건 타의였건 혹은 그 둘의 조합이었었건 어쨌든 태어나서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말해지는 소위 '주류'의 집단에서 이탈해본 기억이 거의 없는, 그렇게 자라나 이제는 그냥저냥 남들고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쩌면 '주류'의 또 다른 이름일꺼라 자위하고 있는 '보통'의 중년남자인 저의 삶과는 딱히 관련이 없어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러한 이유로 책꽂이에 꽂혀 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었건만, 얼마전 있었었던 동성남성들의 결혼 기사를 보자라니 문득... 이젠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기위해선 '나'의 주변만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택도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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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열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제노사이드" 등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청소년 인권'정도만이 저의 삶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여타의 문제들은 예의 그 '주류'적 청춘을 살아왔고 지금은/지금도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의 삶에 있어 주요한 문제가 될 수 없어보이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허나 <새로운 불편을 느끼기 위해>란 제목의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체를 통해 이러한 주제들이 충분히! 당신이 주류이건 주류가 아니건 당신의 삶에 주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라 말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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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듣도보도못한 법칙을 이야기하며 아이를 키우는 한 아빠로서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는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있다는 것이 바로 이 '지랄 총량의 법칙'이랍니다. 기가 막히게 멋진 법칙이죠? 일단 이 법칙을 마음 속에 진정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 아이의 지랄도 이제 그 양이 점점 줄어가는구나... 뭐 이렇게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거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 늦바람 난 쪽인듯도 싶고, 종원군은... 아직 딱히 많은 '지랄'을 소비하지는 않은듯 해 약간의 긴장감도 들더군요. --;;
"부모라는 '직업'에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지, 기대나 닦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저자는 이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와 똑같은 아빠의 입장에서부터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켜주는데요, 이렇게 '이미 나도 알고/겪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와는 상관 없어왔던' 문제인 성소수자의 인권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드디어 이 책은 그 진정한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먼저 그들은 그저 우리와 '다를' 뿐이고, 또한 그렇게 우리와 다르기에 그 '다름'으로부터 우리가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해줍니다. 허나 우리 사회는 그 '다름'이 '우리'는 별 의심없이 또한 별 제재없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그들'로부터 빼앗고 그들을 경멸하고 무시할 근거가 되는 것이라는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라 말하고 있지요. 심지어는 '그들'은 환자이기 때문이 치료를 필요로 할 뿐, 권리의 주체는 결코 될 수 없다라는 주장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한다"라 말하며,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불편함에 비해 이성애자 위주의 세상에 살면서 그동안 그들 동성애자들이 느껴왔을 불편함은 얼마나 컸었겠냐는, 정녕! 이제껏 제가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역발상의 사고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씌여졌을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동성간의 결혼이란 것이 전혀 없었었지만, 이 책에 나와있는 몇몇의 예를 보고나니, 얼마전의 그 '특이한 결혼'에 대해 솔직히 말해 '역겨워!'라 했었던 저의 표현을 최소한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군'의 수준까지 꽤나 나름 진일보한 사고의 발걸음을 옮겨놓을 수 있게 되더군요.
책은 우리의 곁에도 얼마든지 이런 '다른'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난 이제껏 동성애자를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이야기해본 적은 더더욱 없어'란 무의식적 사고가 상당히 취약한 것임을 말해주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의 숫자가 유의미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부적절할 수도 있는 것이... 십여년 전, 제가 우리 나라의 장애인 숫자를 보여주는 통계수치를 보고는 '이렇게나 많다구?'하는 의문을 가졌었던 이유가 결국엔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의 앞에 나설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도 아니었었고, 우리 앞에 나선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으로 보아줄 비장애인인 우리들의 마음 자세 또한 갖춰있질 못했었기 때문이라는, 즉 '없는'것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것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상당히 놀랐었던 그때의 제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그 똑같은 이유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현실엔 유의미한 수준의 동성애자가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그러하기에 그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라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무의식적 편견은 부부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데, 저자는 결혼 직후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설거지를 '도와주겠다'고 했다가 그냥 '하면'되지 뭘 '도와주냐'는 핀잔을 들었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또한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거론하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그 범주에 들지 않으면 못생겼다고 차별하는 우리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도 꼬집고 있습니다.
책은 이처럼 한 단원 단원마다 감탄을 절로 내뱉게 해주며 진행이 되는데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와 함께 장애인의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4장은 그야말로 제 굳은 사고를 한방에 깨어뜨려주는 오르가즘스런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주고야 맙니다. 전 이 영화를 보지않았습니다만,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 '공주'가 남주인공인 '홍종두'와 정상적인 모습이 되어 데이트를 하는 환상이 여러번 영화속에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아마도 감독은 공주가 꿈꾸는 삶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하나, 이런 환상은 오히려 공주의 외모가 지닌 '비정상성'과 환상 속의 공주가 보여주는 '정상성'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공주의 행복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라고 비판하고 있지요. 공주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정상이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환상 장면들은 그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이라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란 예의 무의식적 편견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철저하게 남성적인 시선, 그리고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든 장애인에 관한 영화라고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저도 유학 시절, 영화속 공주와 같이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한 형을 기숙사에서 만났었었지요. 그 형의 지나온 인생이야 정말로 드라마였었고, 그 형 뿐아니라 그의 부모님들의 헌신과 노력에 감동에 감동을 했었었습니다만, 그때 함께 했었던 우리 모두는 그저... (이렇게 말하면 좀 낯간지럽지만 --;;) 정말 서로를 대하듯 똑같이 그 형과 마주했었었지요. 손을 몹시 떨기에 그의 손에 쥐어진 술잔에서는 항상 술이 흘러넘쳤었지만, 그 장면에서 '거 참!!! 술 아깝게 왜 흘리고 그래요!'라 말해주었던 우리가 오히려 그런 자신의 손을 잡아 입까지 잔을 가져다 주는 '전형적인 친절'(?)보다는 훨씬 더 커다란 고마움이었단 말을 그 형으로부터 듣기도 했었었습니다만!!! 이 책의 4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저의 이제껏 생각들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었던 것이었던가를 반성문 수 십장은 족히 써내야 할듯하게 가르쳐주더군요.
예전에 참으로 재미있게 보았었던 영화 <빌리 엘리엇>에서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청준의 1985년 작품인 「벌레 이야기」에 나오는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용서하느냐'란 지문이 담고 있는, 또한 그 지문이 지닌 함의로부터 파생되어지는 영화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 그리고 매년 600여명 이상의 청춘들이 양심과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가야하는 우리의 현실 등등등... 진부하나마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이후 부분은 '이 책을 꼭 읽어야만이 풀리게 되는 궁금증' 으로 남겨두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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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한 머리의 전인권C가 나타나 '인권이 라이프~'라 외치는 그 인권이 아닌, 누구나 그처럼 쉽게들 말하지만 대부분 잠시라도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그 '人權'. 저자는 이를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한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장애인의 인권에서도 앞서 태어난 자의 뒤에 태어난 자에 대해 가지는 오만이 아닌, 다수의 편에 속해있는 자의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의 편견이 아닌, 또한 좀 덜 불편한 자의 좀 더 불편한 자를 향한 값싼 동정이 아닌 '그들에게서 내가 받고 싶은 모습의 대접'을 그들을 향해 먼저 베풀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人權'임을 배울 수 있었던 너무도 뜻깊은 2013년 초가을에의 독서였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단어와 청소년들이나 쓸 법한 용어(?) 두 개를 합쳐 마지막으로 이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단언컨데... 아닥!하고 무조건 만나보아야 할 책'이라 감히 적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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