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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들 하지요. 이 말은 최소한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틀린 말이 됩니다. 그 어떤 대상에 관한 욕심도 그 욕심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론적으로는 '한계효용체감'에 의해 점점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엔 사라지는 것이어야 하니까요. (단, '돈'이라는 재화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돈은 다른 재화/서비스와의 교환을 통해 자신의 형태를 무한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는 고유의 성질로 인해 그에 대한 욕심은 무한하다고 말해지곤 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그 책을 읽음으로 인해 또 다른 책/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주는 그런 책입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저의 독서이력은 이러한 욕심이 '체감'되지 않고 여전히 샘솟듯 솟아만 나고 있거늘, '책 읽는 것'이 직업이 아닌 이상에는 그렇게 솟아나는 독서에의 욕심을 결코 채워낼 수가 없을 듯 하다라는걸 못내 아쉬워만 하고 있지요.
이러한 현실과 욕심과의 괴리를 채워주는 일 방편으로 책 몇 권씩의 요약본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라든가,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두꺼운 두께의 그런 류의 책들, 이름하여 '책에 관한 책', 즉 직접 책을 읽지 않는다해도 그 책의 대강의 내용과 교훈 정도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긴 하였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겠죠. 이런 '책에 관한 책'과 (목차만 보는 걸로도 이미 내용의 절반은 다 알게되는)'자기계발서'는 읽지 않겠다했었었거늘,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집어들었어야했던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는 이러했던 저의 생각을 일 순간에 바꾸어주었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제가 읽지 못한 책들에 관한 소개를 읽었다라기보다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하며, 책으로부터 어떠한 것들을 끄집어 내 배워야하는가'에 대해서 거의 교과서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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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라 할지라도 모든 분야의 책을 두루 망라해서 읽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필독할 만한 고전에 한정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래서 길잡이가 될 만한 가이드북이 필요하고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한정된 시간을 좀 더 유익한 독서에 할애하기 위한 방도이고 곁눈질이지요. '나는 이렇게 읽는다'라는 독서의 시범은 그런 용도로서의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스타일의 독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참고해볼 수 있는 것이죠.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의 저자 또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어떻게 책을 읽어야하며, 책으로부터 어떠한 것들을 끄집어 내 배워야하는가'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곱 편의 고전에 대한 강의를 엮은 책으로, 그 고전들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그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이 곁들여져 있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에 들어있는 "사적인"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독서, 즉 독자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지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이른바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채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다룬 작품은 「햄릿」부터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 「마담 보봐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까지 일곱 편입니다. 모두 '욕망'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는 게 공통점입니다. …… 너무도 유명한 작품들만 모아놓은 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 이 작품을 모두 읽은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 고전이라는 말이 그래서 농담만은 아닙니다.
여기에 나타난 저자의 예상은 물론!!!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더 심각한 문제는 위 일곱 편의 고전 중 단 하나의 작품도 제가 읽어보지 않았다라는 데 있다는 거였죠. 그나마...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농담에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한가지 더 고백하자면,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소개되고 있는 14권의 책들 중에도 제가 읽어본 건 역시나 단 한 권도 없었었어요. --;;)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열네 권의 책들을 <삶에서 이정표가 되었던 책들, 갈림길과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도움을 받았던 ‘낡은 지도'>라 표현했었습니다. 사회과학서적보다는 이러한 고전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라 고백했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이 사회과학의 렌즈를 통해 서술되고 있었다라면,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은 예의 전형적인 문학도의 렌즈로 위의 고전들을 소개하고 있지요. 물론 사회과학적 해석도 적잖게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아 이 책은 '소설/소설읽기에 관한 대중을 위한 일반론'이라 해도 될만큼 문학 자체의 관점에서 위 책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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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죄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주홍 글자」는 저자의 사회과학적 관점이 유난히 돋보였던 장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이 저지른 죄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형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네요. --;;) 여기서 저자는 작가 너대니얼 호손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응당한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사회적으로 처벌하기 때문에 그게 죄라고 간주된다' 즉, 어떤 사회적인 규범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 작품의 시작을 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 이현우는 이 작품을 흔히들 말해지는 것처럼 '간통 혹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죄와 벌,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해석하고 있지요. 그런 면에서 이 장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정말로 인상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실은 다 가슴속에 주홍 글자를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안에 어떤 금지된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헤스터 프린에게 형벌이 관대하다며 악담을 퍼붓지요. 그 이면은 뭔가요? 왜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건가요? 자기 안에도 그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죄를 짓고 고작 저 정도 처벌이라니, 그렇다면 나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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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 읽기"란 부제를 그야말로 충실히 따르고 있는 책입니다. '욕망'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만을 선정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욕망'이라는 한 주제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며 내내 일곱 편의 작품들을 해석해내는 저자의 문학적 소양이 그것을 가능케하였다라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들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글쓰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라는, 내가 과연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은 감상문을 써본다 한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글들의 단 한 단락만이라도 써볼 수 있게될까하는 (또 다른 유형의) 좌절감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가져보게 되었었네요.
단순히 기인스러운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작품 「돈키호테」가 지니고 있는 실제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 좋았던, 실비아 크리스탈로 대변되는 중·고삐리 시절에의 '에로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가지고 있는 '시대의 상징성'을 새로이 알게 되어 또한 좋았던, 「햄릿」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보며 이처럼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도 세상엔 있구나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도 되어 좋았던 책이었습니다만, 무엇보다!!! <사람은 무한한 꿈을 가져야만 하는가>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는 「파우스트」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로 소개되고 있는 「석상 손님」, 이 두 개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장이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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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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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가 중년이라면 …… 이대로 늙기엔 뭔가 억울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좀 늦은 듯 싶은 중년이 「파우스트」를 읽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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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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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안락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불쌍한 몰골'로 비칠 때 우리는 다시금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해가는 이 방랑기사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다면요. |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들 중, 네 권의 책을 샀더랬습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읽어 보고 싶어'란 마음을 제게 주었기 때문이었지요. 허나...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들 중에는 '내가 직접 읽어보고 싶어'란 생각이 든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너무도 자세하기도 했지만, '너무 옛날 소설들이잖아'란 쉬운 핑계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혹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고전에 대한 농담을 몸소 실천하겠노라는 다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똑같은 작품을 읽고도 저자 이현우C와 같은 해석은 도저히 해낼 수 없을거라는 '즐거운 좌절감'이 가장 커다란 이유라 고백하는게 맞을 듯 합니다. 이 책은... 자고로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려면 이 쯤은 되어야한다'의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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