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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위하여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특정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의 첫 대상은 제 기억엔 이문열 작가였었습니다. (할일 별로 없었던 --;;) 야간 경계병의 방위 시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시작되었던 그 탐독은 「레테의 연가」, 「젊은날의 초상」,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사람의 아들」, 「영웅시대」, 「시인」, 그리고 「변경」 등 아직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만해도 꽤 되지요.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후 두 번인가를 더 읽었었었고, 1부까지만 읽었던 「변경」 시리즈는 얼마전 알라딘 중고서점과 헌 책방 두 군데를 흝어 겨우 그 시리즈를 완성해 놓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다시 읽어보았던 「사람의 아들」 또한 첫 독서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자인 제게 일말의 충격을 선사해주기도 하였지요.
이 책 「황제를 위하여」도 처음 읽어보는 독서는 아니었기에 몇 페이지 채 넘기지 않아 어렴풋이 처음 이 책을 읽었었던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문역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아마도 시작되었을, 연필로 밑줄 그어가며 책을 읽는 버릇과 함께 다시금 그의 책을 이렇게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읽어보니 역시... 책은 처음 읽을 때와 그 이후, 그리고 젊은 날에 읽었었던 기억과 나이 들어서의 느낌이 사뭇 다른듯 하네요. 그러하기에... 책은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고 보는 것이어야할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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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인 이야기는 보통 목격자에게서 직접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해준 사람은 다른 이에게 들었고,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들었고, 그는 또 다른 이의 아내의 친구의 사촌에게 들었고. …… 어떤 이야기든 충분히 많은 사람을 거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애초의 이야기는 워낙 오래전에 시작된 소문인데다가 반복적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하도 왜곡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실제 사건이 무엇인지 (실제 사건이 있기는 있었는지) 짐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 소문이 충분히 오래되면, 이제 그것은 소문이 아니라 '전통'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더 굳게 믿는다.
- 리처드 도킨스 著,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 중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문」에서와 같이 다시 한번 더 도킨스 교수의 서술을 인용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문맥이 좀 다르죠. 종교적 신앙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도킨스 교수는 이처럼 종교도 또한 일종의 '소문'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말합니다. "소문이 오래되면, 결국 전통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더 굳게 믿는다"란 말은 결국 종교도... 일종의 소문으로 시작된 허황된 이야기라는 겁니다.
이 책 「황제를 위하여」는 오래전 부터 일종의 '소문'처럼 전해져온 <정감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 말기, 이씨 왕조가 무너질 것이고 그 다음에는 정씨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는 게 이 <정감록>의 주요 뼈대이고, 이 소설에서 지칭되는 '황제'는 바로 그 <정감록>에 등장하는 정씨 성을 가진 왕이 을사조약 즈음이었던 당시 조선의 현실에 드디어 나타났다는 이야기이지요.
………………
정 처사라는 인물이 몇몇 신비한 경험을 겪고는 이를 하늘의 뜻이라 여겨 곧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정감록>에서의 '정 진인'이라 믿게되었고, 그런 아버지의 신념으로 길러진 소년이 그의 일생동안 황제의 길을 걸어간다는 비교적 간단한 내용의 소설입니다. 을사조약 즈음을 시작으로 하여 5·16을 지나 1972년 세상을 떠난 황제의 일생을 살펴보며 또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완전히 다른 각도, 즉 황제의 시각에서 보게해주기는 재미도 더해져 있지요.
소설을 많이 읽어보았다라 말할 수 있는 독서이력은 아직 아니지만, '도대체 소설을 왜 읽는거야?'의 수준에서는 나름 벗어나 있다라 믿는 지금, 이 '소설'이라는 문학장르에 대해 가지게 된 생각은 "작가가 펼쳐놓는 이야기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 이야기를 빌어 정녕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를 발견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설읽기의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 「황제를 위하여」도 또한 그저 한때 그런 사람이, 그랬던 시절이 있었었노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시간은 항상 흘러왔지만 그것이 언제이건 읽는 그 '당시') 작가가 현재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도 있게해준다라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느 아버지들과는 달리, 황제에게 있어서 정 처사는 영광스럼 삶의 지표를 설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삶 자체를 함께 살아준 사람이었다. …… 정 처사의 꿈이 곧 황제의 꿈이었으며, 그 의지가 곧 황제의 의지였다. 흰돌머리에서는 물론 만주로 온 후에도 황제의 생각 한 갈래, 몸짓 하나가 정 처사가 설정한 삶의 범위를 넘어선 것은 없었다.
제가 꼽아본 이 소설의 핵심이 될만한 문장입니다. 황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 모든 것은 아버지인 정 처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정 처사는 자신의 죽음조차도 황제를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또한 나의 아이에게 정 처사와 같은 존재가 되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초등학교때는 좀 놀게해주어도 되지않을까?했던 저의 말에, 조교수가 들려주었던 강남 아이들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학교를 마치고 오면 학원에 가고, 주말에도 쉬지않고 그의 '스펙'에 도움이 될만한 가외활동으로 보내다보면, '아... 인생이란 원래 이런건가부다'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거였지요. 소설 속 황제도 또한 아버지의 계획대로 성장하여,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즉, 자신은 하늘이 내린 황제라는 것을 단 한번의 의심도 없이 믿게 되었던 거였습니다. 비록 그가 그의 노년에 '제왕인 내가 천민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민인 내가 제왕의 꿈을 꾼 것이냐?'와 같은 탄식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는 자신의 삶을 마칠때까지도 유언을 통해 자신이 황제임을 믿어의심치 않았지요.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만약 황제가 아직 뱃속의 태아였었을 적에 아버지 정 처사에게 생겼던 몇몇 기이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혹 있었더라도 정 처사의 대응이 소설관 달랐었더라면, 그렇다면... 황제의 일생도 많이 달라졌었겠지요. 이 소설은 그렇기에 은근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겁니다. 내 아이의 인생을 그의 유년 시절에 부모인 내가 정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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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일생을 비록 '원인 모를 행운'의 연속이었다라 비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의 곁에 요샛말로 하면 매우 훌륭한 과외선생님들이 계셨었었고, 그의 일생을 황제의 그것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여 모셔준 충직한 사람들 또한 곁에 있었었지만, 어쩌면... 어릴 적 그를 가르치다가 그의 곁을 떠난 '큰 선생'이 떠나면서 정 처사에 남겨주었던 다음의 말을 정 처사가 심각하게 받아들였었더라면, 아들의 인생은 분명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망상으로 깊은 해독을 입'는 나의 아이가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이 부모가 된 지금의 제가 또한 새겨들어야할 교훈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것이 설혹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려했던 메세지가 아니었다할지라도 말이죠.
주인장이 맨 처음 얻었다는 옛 거울부터 일이 잘못된 것 같소이다. 애초에 그런 것은 없고, 설령 주인장이 스스로 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윗대의 광기 어린 몽상가나 야심가의 위작일 따름이오. …… 백보 물러서서 하늘의 뜻이라 한들 저 말없는 하늘이 무엇을 해줄 것 같소? …… 만국 정치의 대세는 왕을 폐하거나 있어도 통치하지 않는 형태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하오. 그런데 우리만 허황된 비기를 따라 무슨 성(姓) 어디 몇 년, 무슨 성 어디 몇 년, 하는 식으로 구태의연한 왕조가 이어가겠소? 인구 십만도 먹일 물이 없는 이 계룡산 골짜기가 도읍이 되겠소? …… 확실이 아드님은 기억력이 뛰어나고 용모도 수려하오. 천성도 순수하며 대범하오. 그러나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왕자의 재목은 아니오. 난세를 헤쳐나갈 간흉계독이 없고, 모사는 치밀하지 못하며, 판단은 무디고, 때에 당하여 대처함이 느리오. 뿐만 아니라 주인장의 망상으로 깊은 해독을 입어, 그릇된 신념이 종종 원래의 장처마저 가리고 있소.
작품 이외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작가의 모습이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 지난 몇 년이었습니다만, 작가로서의 이문열은 분명 그만의 힘이 있고,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중성'이라는 것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라면, '자국민의 태반의 그의 시를 모르는데'라는 안타까운 멍에(?)를 쓰고 있는 고은 시인보다는 이문열 작가야말로 어쩌면 그 상에 더 근접해 있는 문학가가 아닐까하는 저만의 생각도 드네요. 24년전의 그 때처럼 다시 한번... 작가 이문열에게 빠져들지도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