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위해 굳이 전력을 다해야 할까?" - 제임스 F. 웰스,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중 p482, 이야기가 있는 집, 2017.
사전(辭典)적 의미에 따라, '역사'란 당연스럽게 과거의 사건(에 대한 해석)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프리퀄로 되돌아보는 방식의 과거가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과거의 특정 시점이 '현재'였었을 당시에 그려볼 수 있었던 '미래'가 (반드시) '현재의 모습'이 되리라,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은, 이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그런 점이 포함되어 ---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역사 발전 단계론'에 대한 위 인용구의 질문이 (혹자들에 의해) 이른바 '마르크스의 역설'이라 (비아냥 어리게) 불리우지요. 그렇다고,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이란 예측에 따라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따라 소급된 예측으로 구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이문열, 「영웅시대」 중 p675, 민음사, 1984.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렸음이 증명된 '현재'에서 주창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승리 - 즉, 자본주의로 인류 역사는 마무리지어질 것이다! - 가 애초부터 역사적 필연이었다라는 주장에도 동의해서는 안 됩니다. 어제까지의 데이터를 포함한 오늘에의 예측 모형을 이용하여 '과거들'의 모습이 옳게 그려진다고 하여, 그 모형이 '오늘'과 '내일'까지도 옳게 그려낼 것이라는 추측은,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측'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이 뒤바뀐) 'backward induction' (혹은 '소급된 예측') 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하는 오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이와 유사하게,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 p153, 김영사, 2015.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성석제, 「투명인간」 중 p364, 창비, 2014.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현재가 (그것이 각 개인에게 행복/불행 혹은 만족/불만의 대상이건에 상관없이) 지금과 같은 모습의 '현재'가 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의도적인) 노력 혹은 방해가, 각 시대에 맞는 형태로 뒤섞여 깃들어 있다라는 (즉, system에의 변화가 부정기적으로 발생했었다라는) 점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잊고, '현재'가 마치 과거들로부터 생성된 당연한/필연적 디폴트 값이라 여기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시점에서야 '현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했었듯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에 의한 노력/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 이걸 계속 잊지 않고 새겨내기 위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겠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