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괴담 - 오류와 왜곡에 맞서는 박종인 기자의 역사 전쟁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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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실체가 있다고 의심한다. 사람 위의 사람, 세상 위의 세상, 뉴스에 나오는 모든 기사가, 권력이 말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보는 가공하는 조직의 구미에 맞게 교묘하게 재편집되거나 주장하는 바를 가리키기 위해 재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이란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 -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중 p290, 다산책방, 2016

'진실의 진실성'에 대한 문학의 유려한 비판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괴벨스의 명언(?)은 보다 직적이죠. 

거짓말을 오래 하게 되면 진실이 된다. (If you tell a lie long enough, it bocomes the truth.)(p6)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에도 역사적 사실(fact)들로 인식되고 있는 총 16건의 사건들에 덧입혀 있는 조작과 오해들을 '괴담'이라 명명하며 그 가림막을 벗겨내고 있습니다. 

저자가 들고 있는 16개의 괴담들이 현재 '진실'이라 믿어지게 된 과정은 다양합니다. ①사소한 실수로부터 비롯된 것들도, ②사실(史實)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가 낳은 경우도 있지만, ③의도적인 조작으로 인해 탄생된 괴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꽤나 놀랍더군요.

저자는 ②번의 주인공으로 유홍준과 승효상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일례를 들며, 저자가 유홍준 교수와의 통화에서 유교수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묻자 그가 했던 대답 "모든 사람이 전설을 인정하게 되면 전설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p201) - 은 (기자가 직업인 저자에게는 물론이었겠거니와) 저같은 일반 대중에게도 사뭇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논리였지요. 적어도 유홍준 교수의 위 언급이 사실이라면, 그는 '객관적인 시선'을 이미 포기한 것이라고 밖에는, 또한 (제 의견이 아니라 발타사르 그라시안이 규정한 바에 의하면) 어리석은 대응이었다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한, 건축가 승효상은 진실이 밝혀지자, 자신의 기존 주장을 정반대로 뒤집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 개인의 주장이 뒤집혀지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겠으나, 잘못된 그의 최초 주장만이 살아남아 (순종적인 일반 대중들에게) '사실(fact)'이자 '사실(史實)'로 굳어져 버렸다는 건 큰 문제이겠죠. 

대개 괴담은 맹랑할 정도로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하며 자극적이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은 '괴담을 인용한 전문가의 주장'에 슬프리만치 순종적이다. 그래서 괴담은 위험하다. 특히 전문가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괴담을 사실인양 내세운다면.(p85) …… 아무런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알지 못하는 전문가, 현장에 엄존하는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전문가. 이들이 괴담 생산을 담당한 사람들이다.(p87)

유홍준 교수와 건축가 승효상 각 개인들에게 위와 같은 책임을 묻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었던 시기에, 자신들의 해석을 현실로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액수의 (쓰이지 말았어야 할) 세금이 사용되었다라는 점에 대한 반성을, 또한 여전히 법률과 국가가 쥐고 있는 (정권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실의 상대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주어지는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려는 대중의 속성에 대하여는 자각의 경고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어쨌든, 

①번과 ②번의 경우는, 훗날의 교정으로 (쉽지는 않겠으나) 진실의 실체가 드러나고 또한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의도적 조적이 가미된 ③번의 경우에는 그 실체가 사회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저자가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예시만을 본다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중 pp165~167, 민음사, 2015.

저자는 책에서 추사 김정희의 예를 들며, 그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권력'으로 존재하고 있다라 주장합니다. 추사와 더불어, 세종이나 다산 등은 흠집을 잡아서는 안 되는 '완성된 위인'이며,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은 그 어떤 변명도 주어질 수 없는 악마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규정은 사실(fact)에 근거하여 완성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부정적입니다. 앞서 읽었던 혁명과 배신의 시대에서 '역사에 대한 객관적 관점'이라는 렌즈로 보았을 때 해당 책의 일부 내용에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라 이해됩니다. 한 마디로, '그러하다'이기 때문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러하여야 한다'라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라는 것이죠.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실이 아닌 (조작 혹은 무지에 의한) 괴담들은 지금 현재에도 공식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유발 하라리가 위 인용문에서 언급한 '진정으로 믿는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미시적인 작은 사실들이 모여서 거대한 역사를 만든다"(p291)라는 저자의 일갈을 뒤집어 보면 미시적인 작은 오해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설이 될 것이고, 유홍준 교수의 (객관적이지 못하고 어리석은) 주장대로라면 그 오해가 곧 진실이 되는 것이겠죠.

국민 사기 양양을 참작해 분사(憤死)라 해도 자살로 해두는 것이 타당하다. 분사라 하면 '열사' 칭호는 사용할 수 없다. 현 시기상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도 그 사인을 밝힐 필요의 유무부터 고려해보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사건은 더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어떤가. 이준 씨는 성격상으로 보아서 자살할 수 있는 분이다.(p286) - 이준 열사 추모 단체인 '일성회'가 1956년 이준 열사의 사인에 대한 조사위원회에 요구한 내용

존 르카레의 기가 막힌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주인공 리머스에게 주어진 임무는 적국의 군 지휘부에게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리머스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라는 점을 알게되는 부분에서는 말 그대로의 전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죠.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이 눈 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맹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는 내용인 겁니다. 그 소설의 메시지를 적용해 본다면,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16가지의 괴담들이, 저자의 주장대로 모두 다 거짓이라면, 그 실체적 진실은 고작 거짓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작용할 수 있을 뿐, 그 자체로서의 (역사적) 효용은 이미 바래졌다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석사 논문에서는 'critical mass'라 적었던 내용은, 말콤 글래드웰의 'tipping point'와 정확히 동일합니다. 집단에 중점을 두느냐, 시점에 중점을 두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티핑 포인트를 완성하는 방법은 소수의 법칙, 고착성의 요소, 상황논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소수의 법칙이란 극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일을 만들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고착성의 요소란 쉽고 지속할 수 있는 전염성이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라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을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 <괴물과 티핑포인트>, 조선일보 email club 2006.08.26. 기사 중.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핵심이, 위 인용문에 다 들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티핑 포인트의 긍정적인 활용을 위한 제안인 위 인용문과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에 '사실(fact)이고 사실(史實)'이라 인식되고 있는 수많은 괴담들이 현재의 주류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그 비합리적인 과정들 모두가 위 인용문의 티핑 포인트로 거의 모두 설명이 되기 때문이죠. 

'일성회'의 요구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말이야 '애국심의 고취'라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만, 까고 보자면 그들의 (경제적이건 비경제적이건) 이익을 위해서로 읽혀집니다. 제가 이 감상문의 초반에 '의도적인 조작으로 인해 탄생된 괴담들'에 대한 오해의 불식이 거의 불가능할 듯 하다라 적은 이유는

"캐즘(chasm)은 혁신자와 얼리어답터를 포함한 초기 시장(early market)과 주류 시장(mass market)을 갈라놓는 지점입니다. 즉, 초기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성공이 그대로 주류 시장까지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캐즘이 생기는 원인은 얼리어답터와 전기 다수의 성향 차이 때문입니다. 얼리어답터가 선도자(visionary)라면, 전기 다수는 실용주의자(progmatist)입니다. 선도자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포착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신제품을 채택합니다. …… 그러나 실용주의자는 위험을 싫어하기 때문에 제품이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쓸모가 있다는 완전한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구매하지 않습니다. …… 따라서 캐즘을 건너 주류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얼리어답터와는 전혀 다른 실용주의자 맞춤형 마케팅 전략이 필요합니다." - 이학연, 「경영을 넷플릭스하다」 중 pp153~155, 넥서스Biz, 2020.

(엄밀하게 보자면 티핑 포인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으나, 무언가 hurdle을 넘어야 한다라는 면에서 보자면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을) '캐즘'의 목표 방향을 반대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순방향을 목표로 하고 그 캐즘을 뛰어넘는 것도 벅찬데, 일단 캐즘을 넘어선 이들 에게 넘어선 캐즘을 역방향으로 다시 뛰어넘게 하는 것은 그 목표의 설정에서부터 쉬울 리가 없을테니 말이죠. 


"믿음은 논리가 아닙니다. 소망이 되게 하십시오." - 이문열, 영웅시대 2권 중 p717, 민음사, 1984.

목사가 정인에게 세례를 주며 했던 말입니다. 소설에서의 쓰임새는 신앙의 세계에 해당되는 용도였겠습니다만, 이 책 광화문 괴담에 등장하는 인물/단체들의 행위에 대입해 보면, (그들의 어떠한 이익을 위해) 논리가 아닌 소망을 진실로 둔갑시킨 속칭 전문가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억이 현재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명제는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 즉 사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각했던 바, 즉 의식에 대해서도 성립한다. 과거의 의식을 재현하는 데는 이미 현재의 의식이 개입한다."(p148) …… "일종의 '아름다운 시절'의 이미지는 자기모순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p151) …… "과거를 아름다운 시절로 생각하는 태도와 짝을 이루는 것은 현재는 구질구질한 그 무엇이라는 태도이다."(p152) -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 중, 한겨레출판, 2013.

"창야에서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말을 하고, 말의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안도했고, 그 안도감 속에서 소문은 소문의 탈을 쓴 채 믿음으로 변해갔다."(p161) ……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삶이 건강했고 평화롭고 충만했다고 말할 때, 그들은 그 말의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더 큰 거짓이 작은 거짓을 눌렀다. 그들의 말 속에서 방조제 이전의 삶은 늘 평화롭고 충만했다."(p241) - 김훈, 공무도하 중, 문학동네, 2009.

사회과학자와 소설가의 표현이 다를지언정,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거짓으로서의 현재'는 동일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자인) 저자는 "대수술과 각성"이 필요하다라는, 지극히 기자스러운 (또한 출판되는 책이기에 그러할) 교과서적이고 평이한 수위의 제언만을 남기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문학의 표현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괴담이 실제 모두 괴담이라는 전제 하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제 감정을 훨씬 더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더 적절한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서도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존 르카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중 p275, 열린책들, 2009.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무엇을 사람들에게 진실이라 믿게 하느냐 / 사람들이 믿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세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비단 일반 민중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를 또한 바라(願)봅니다. 

감상문의 초반에 인용해 놓은, 괴벨스의 "거짓말을 오래 하게 되면 진실이 된다"는 구절 역시 사실은 괴벨스가 한 말이 아닌, 그저 괴벨스가 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괴담'의 하나라는 점. 참 많이도 속으며 살고 있네요.


※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 기억의 몽타주」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순교자」 · 당신들의 천국」 · 근대 조선과 세계」 · 징비록




[1] "진실이라고 확정돼 버린 역사적 가짜뉴스를 필자는 '괴담'이라고 규정했다. ……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 가짜뉴스들이 필자가 말하는 '괴담'이다. 스스로 권력자가 돼 버린 전문가들이 무책임하게 유통시킨 가짜뉴스들이다."(p11)

[2] "거짓이 진실보다 전파되기 유리한 이유는 … 거짓의 규모와 가짓수 자체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 거짓말이란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는 제약이 없으니 존재할 수 있는 가짓수 자체가 엄청나게 많다." -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중 p29, 윌북, 2020.

[3] "'객관적' … 이 말은 개인적 편향과 편견 너머에 있는 진리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중 p157, 더퀘스트, 2021.

[4] "어리석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실수를 감추고 미련한 자는 그것을 드러낸다." -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중 p530, 웅진지식하우스, 2009.

[5]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사실(fact)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세계에서 해석은 늘 강자들의 몫이었다. 진실의 상대성은 법률과 국가의 이름으로 오용되어왔다." - 손아람, 소수의견의 <작품해설> 중 p439, 들녘, 2010.

[6] "근대사 연구에서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역신뢰(Reverse Credibility)의 역설'이다. 어떤 뉴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그 뉴스 주인공에게 신뢰를 주게 되는 역설이다.(Credibility conferred on a speaker ot writer because of the alleged reference's negative ethos) 한국사에서는 역신뢰의 역설이 심각하다. '근대사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문제는 일본이라는 악마(Demon)가 원인'이라고 몰아붙이면 웬만한 대중적인 논쟁은 종식되고 공감대가 형성돼 버린다. …… 이게 한국 근대사에 조악하고 편협한 가짜뉴스와 괴담이 횡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다."(pp 7~8)

[7] "문화 분야에서 대표적인 영웅은 추사 김정희다. 김정희는 '명필가요 명문장가요 뛰어난 정치가며 예절바르고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위인'이다. 아니, '이어야 한다'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 그래서 김정희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권력이다. …… 김정희와 세종과 정약용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 전문가들은 이제 스스로 권력자가 된다."(p9)

[8] "​기억을 되살려 내야 할 사람에 대한 현재의 평가가 그것을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왜곡 · 편집하게 한다. 가령 유명한 학자가 된 사람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억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남달리 뛰어났다"라는 식으로 편집되곤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학자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학자에 어울리는 특성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자신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가지 조각들을 사후적으로 주어진 논리에 꿰어맞추려 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성공한다. 왜나하면 그들의 기억 속에서 대상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말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편집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류동민, 「기억의 몽타주」 중 pp163~164, 한겨레출판, 2013.

[9] 존 르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중 p243, 열린책들, 2009.

[10] 존 르카레, 위의 책 p270.

[11] 이학연의 표현을 빌자면 "완전한 확신"을 가진 이들이 되겠죠.

[12] "의사는 냉정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를 위로하는 대신에 병명과 경과, 향후 조치를 냉철하게 설명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위로는 위한 괴담과 조작이 아니다. 아프지만 견뎌야 하는 대수술과 각성이 필요하다."(pp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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