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으로 말랑말랑한 제목의 책입니다. 책의 서술 또한 제목만큼이나 말랑말랑하여 술술술 읽혀집니다. 허나, 담겨져 있는 내용까지 말랑말랑할꺼란 예단은 금물! ---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라는 말랑말랑한 제목이 외려 불만스럽게도 느껴지네요.
#2.
13개로 나뉘어진 part 속에 총 75가지의 심리법칙/효과를 담고 있습니다. 오직 심리학의 내용들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과 관련된 part도 있고, 경영학 관련 서적들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담고 있기도 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흥미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어낼 수 있더군요. 이 책, 꽤 괜찮습니다.
…………………………………………………………………
"인간의 이야기는 딱 두세 가지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 양 강렬하게 계속 되풀이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섯 가지 음조로 똑같이 노래해 왔던 시골의 종달새처럼 말이다."
-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중 p315, 부키, 2018.
새로운 책을 만나고, 그 내용을 이해할수록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실제로 두세 가지밖에 없지야 않겠지만 인간사(人間事)란 것이 결국엔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까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거죠. 사고(思考)의 범위나 생활의 모습이 예의 '거기서 거기'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게 --- '거기서 거기'인 인간의 이야기는 사실 '거기서 거기'인 한 인간 혹은 인간 관계 속의 심리 작용들로부터 비롯된다 할 수 있겠고, 그 '거기서 거기'를 75개로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건,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심리 법칙들이 (적어도 저는 확실하게 포함되어 있는) 우리들의 일상 전반을 큰 틀에서 (거의) 모두 설명해주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담겨 있는 심리법칙을 읽으며, 너무다 자연스럽게 이전에 읽었던 다른 책들의 내용이 떠오르는, 어찌보면 당연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었죠. 예를 들어,
「사회심리학」을 쓴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이기적 편향 Self-serving bias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자아와 관련한 정보를 만들어낼 때 일종의 잠재적 편견이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실패는 쉽게 벗어던지면서 성공의 찬사는 달게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고한다. 대부분은 타인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믿는다. 이러한 자기 미화 감정은 자신의 훌륭한 면에 스스로 도취하게 하고, 어두운 면은 간간이 흘려넘기게 한다. 성공하면 내 실력 덕분이고, 실패하거나 잘못되면 세상이나 남 때문이다.(p23)
이 부분에선, 바로 직전에 읽었던 「멀티팩터」, 그리고 「운과 성공의 실력방정식」, 더 나아가 「파산」등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찾아보았더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 "목표가 미래지향적이고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더욱 효과적"(p100)이란 내용의 '로크 법칙'에선 OKR(Objective & Key Results)에서 강조했던 목표 수준 설정의 이론적 배경을, "일은 흥미를 위한 것이고 임금을 받는 것은 단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성"(p301)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에 왜/어떻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내용은 배리 슈워츠의 「우리는 왜 일하는가」속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그 중에서도 압권은,
디드로 효과 … 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더 많이 얻을수록 만족하지 않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즉 어떤 것을 얻지 못할 때는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얻으면 그 욕심은 끝이 없어진다. …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들은 많은 사람을 디드로 효과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현대인들은 매일 피곤해한다. 몸에 짊어지는 무거운 짐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의 생명에 필요 없는 것들을 포기할 줄 모르고 지나치게 많은 욕망과 속박을 마음속에 안고 있어서이다. … 디드로 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과한 욕망을 억제하고 줄이는 것이다.(pp327~329)
제가 배웠던 주류 경제학의 내용과는 쉬이 합치되지 않는 '디드로 효과'를 꼽게 됩니다. 물론 --- 역사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심리학자가 쓴 책들에서 이미 만나보았던 질문과 내용입니다만, 그 모두가 '디드로 효과'라는 심리학의 연구 결과로 요약될 수 있다라는 걸 알게된 순간, 뭔가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지식이 완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고나 할까요?
·
·
·
사회,정치,역사의 토픽들만이 아닌, 예의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 속 이야기들 또한 '거기서 거기'라는 범위 내에서의 변주(variation)임을, 이 책은 알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루시퍼 효과 Lucipher effect'를 통해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투명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지된 과일일수록 더 달다는 것은 어떤 정보를 숨겨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할수록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금지된 일일수록 사람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금지령을 깨뜨린다.(p234)
('금지된 과일 효과 Forbidden fruit effect'를 통해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텍사스 존슨 사건'의 예라고 생각됩니다만, 저에게는 외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를 사랑했던 건 맞지만, 죽음도 불사하기까지 된 연유는 바로 그 둘 간의 사랑이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사랑에의 허용 또는 적당한 수준의 반대만 있었었다면 둘 간의 사랑이 중간에 깨졌을지도 모른다라는 추론도 큰 무리없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이를 더 넓혀보자면,
금지된 과일 효과는 두 가지 심리를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반항심'이고 다른 하나는 '호기심'이다. … 사람들은 금지된 일을 만나면 먼저 호기심을 갖고 '이 일이 왜 금지되었을까?', '진짜 우리에게 위험한 일이 맞을까?' 생각한다. 만약 이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반항심을 품고 '금지'된 맛을 직접 맛보려고 한다.(p235)
위 인용문은 곧바로 에덴 동산에서 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던 이브의 이야기를 떠올려줍니다. 성경의 구절 상으로만 보자면 이브에게 '반항심'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으나, 어쨌든 뱀의 꾀임으로부터 자신의 '호기심'을 지켜낼 수는 없었던 것이죠. 허나, --- 좀 더 현대적인 예를 찾아본다면 그건 단연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으로 정의되는) '불륜'이 되어야한다 생각합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점을 정확하게 보여주었죠.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넘기 전에는 그 경계선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넘어 버리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벽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날 밤의 일이 한때의 기분에 휩쓸린 결과라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경계선 너머에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영원히 그것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경계선 위에 벽 따위는 없고 한 걸음만 가볍게 내디디면 된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금,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 불륜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일단 시작돼 버리면 그렇게 미적지근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 「새벽 거리에서」중 pp80~88, 재인, 2011
…………………………………………………………………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투기 행위의 관건이 투자 대상의 가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자신보다 더 큰 바보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있다.(p264)
경제학은 '투자'와 '투기'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략 '예측 가능한 수준의 이윤을 창출했느냐' 정도의 두루뭉술한 답변만 내놓고 있지요. 그럼 점에서 위 인용문은 (현실에서 법적인 적용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의 이윤 창출'이라는 기준보다는 보다 간결한 이해를 안겨 줍니다. 또한, 책의 pp226~233에서 설명되고 있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와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는 지금 제가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도 응용될 수 있겠는, 지극히 현실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지요.
·
·
·
행복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느낌이다. 얼마나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는 오직 행복에 대한 우리의 민감도에 달려 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항상 즐겁고, 마음으로 느낄 줄만 알면 행복은 반드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항상 일깨워 준다.(p325)
보다 젊었을 시절에 이 글귀를 읽었었다면 한낱 책 속의 경구 정도로만 치부했었을 겁니다. 허나 --- 삶의 up and down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는 50대 초반의 가장으로서 읽어 본 위 인용문은, 그저 '책 속의 보기 좋은 글귀'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라는 지극히 말랑말랑한 이 책의 제목은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지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행복해졌다'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비논리적인 직감을 과대평가한다. 직감적으로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p48)
올 한해, 제가 공부해보고자 하는 '행동경제학'이 대체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단초를 얻었다는 것 또한, 이 책으로부터의 부가적 소득이 아닐까 싶네요.
※ 함께 읽으며 좋을 책들 : 「빌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 「어쩌다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