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육체적 · 심리적 자유를 보장한다. … 돈은 궁핍과 고뇌를 면하게 하고 비천한 노역을 면해준다. … 돈은 인격적 자유이다. 돈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온갖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돈은 해방과 독립을 뜻한다. … 돈은 선택의 폭이다. 돈은 삶의 균형을 잡아준다. 돈은 자아를 확대한다.(p26)
저자 스스로 "돈은 무엇이고 왜 필요하고, 어떻게 벌어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책"(p11)이라 소개하고 있는, 제목에 '철학'이라는 예의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단어까지 내세워지고 있는 책의 초반부는, 이처럼 (사뭇 지나치리만큼) 솔직합니다. 그렇지만 --- 위 일곱 문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분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그러하기에 저자의 솔직함이 사실은 당연함에도, 그 솔직함이 살짝이나마 놀랍기/반갑기도 했었다라는 것은 또한,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는 '돈은 나쁜 것'이라는 관념이 자리잡아 많은 사람들이 돈을 혐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혐오는 위선일 뿐이다. 돈은 인간의 욕망 추구에 필요한 자원이며 행복의 중요한 촉매제이다. 돈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다.(pp54~55)
저자가 '위선'이라 표현하고 있는, 우리의 솔직하지 못함을 드러내보이는 일종의 반증이겠죠. 물론 --- 제가 '솔직하지 못함'이라 표현한 부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돈은 정신을 지배한다. 돈은 단순한 경제적 개념이 아니다. 돈은 감정적 실체이다. … 돈은 생활수준은 물론 정신상태를 좌우한다. 돈은 자신감의 형성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pp24~25)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 A와 B가 살치살과 삼겹살을 모두 파는 고깃집의 옆 테이블에 서로 앉아있다 해보죠. --- '돈이 많은' A는 얼마든지 살치살로 배를 채울 수 있지만, 그의 기호 혹은 당일의 선호도가 삼겹살이었기에, '살치살 먹기'에 대한 기회비용은 단순히 심리적인 부분에 머물 뿐인 상태에서 그것을 기꺼이 무시하고 삼겹살은 선택하여 먹고 있습니다. 반면, '돈이 없는' B는 '살치살 1인분'이라도 먹고 싶지만 그의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치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삼겹살을 먹고 있습니다. 이 때 B 역시 '살치살 먹기'에 대한 기회비용을 무시하고 있습니다만, 심리적인 것 뿐만이 아닌 경제적인 면까지를 고려한다면 그건 '무시'라 말해져서는 안 되는, '(일종의) 불가능(unaffordable)'이라 표현되어야 맞겠죠.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취향에 따른 선택'일 수 있지만, 옆 테이블의 누군가에겐 '(취향을 따를 수 없는) 경제적 이유에서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은 후자의 심리적 아픔을 위로라도 하듯, 허나 저는 그것이 전혀 위로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다음과 같은 노랫말을 수많은 B들에게 세뇌시켜 주지요.
뭐니뭐니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 뭐니뭐니해도 맘이 예뻐야 남자지
머니로 뭐든 다 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어 / 머니로 예뻐질 수도 있고 사랑도 쉽게 얻을 수 있어
그만 그만 그게 먼데 자꾸 날 울려 / 거짓없고 순수한 사랑을 난 원해 필요해
뭐니뭐니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 뭐니뭐니해도 마음이 예뻐야 남자지
- 왁스, '머니(money)' 중
경제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대비시킴으로 - 마치 돈이 많은 남자는 '거짓없고 순수한 사랑'을 하지 않/못한다는 뉘앙스로 - 자기위로의 정신승리를 억지로 안겨주는, 그리고 그것이 켜켜이 쌓여/쌓아 종국적으로는 --- 한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하여, 근거가 빈약한, 단지 '1%의 소수가 사회 전체 부(wealth)의 몇 십%를 소유하고 있다'류의, 그 '과정'에 대한 일말의 고찰도 없는, 오로지 '결과/현상'만으로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쏟아내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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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당신은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는 불평등이 정당하다는 것이냐?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토마 피케티 교수가 제기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또한 여전히 굳게 동의하게 되는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자라는 건 재산내역서의 숫자처럼 단순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태도의 집합, 즉 특정한 삶의 방식이다."
- 박주영,「고요한 밤의 눈」중 p130, 다산책방, 2016.
흔히,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대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통칭 '흔히들 말하는'이라는 부사구를 써보아) '돈이 많은 자들'에 대한 비난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드러냄 없이 막연하게 '나의 노력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나의 부(wealth)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부를 지닌 그들의 (과거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를 비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대해 --- 우리 모두에게 가슴 찔림이 있을 수도 있겠는, 위 박주영 소설 속 인용구와 일맥상통하는 충고를 이 책의 저자 또한 해주고 있지요.
오늘의 당신은 과거에 당신이 취했던 행위의 결과이다. 생각했고, 판단했고, 선택했고, 실행했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며, 그 결과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것이다.(p304)
모든 투자의 결과는 오로지 투자자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듯, 당시엔 미래였었던 '오늘 저/당신의 모습'에 대한 과거의 모든 선택들에 대한 책임 역시 올곳이 저/당신 본인에게만 있다라는 걸, 결코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제 생각에 --- 이 사실에 대한 동의가 없다면, 돈에 대한 철학이니 뭐니하는 것들에 대한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지요. (위의 '올곳이'라는 표현이 다소 과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장하준 교수가 쓴「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 쓰여져 있듯, '자유로은 선택'의 기저에 '보이지 않는 강제'가 있다면 정녕 그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 볼 수 있겠느냐란 주장 역시 충분히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논의의 범위를 지극해 '일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하여 진행할 때에조차, 그런데 이건 알고 보면 모두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라 끝맺음한다면, 세밀한 분석이 아예 필요없어지기도 하지요. 일단 이 감상문에서는 지극히 개인의 범위에서만 논의하겠습니다.)
돈은 한 인간의 재능 또는 활동의 결과이다. 불평등을 낳는 것은 각자의 재능, 노력, 인간관계, 사회적 제도 등의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돈의 속성이 아니다.(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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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시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10.
② '돈은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요 최종적인 획득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돈만 있는' 삶을 맹렬하게 추구한다.
- 김찬호,「돈의 인문학」중 p221, 문학과지성사, 2011.
이 책의 저자 역시, "수단이 목적으로 상승한 가장 완벽한 예가 돈"(p8)이라는 게오르그 짐멜의 말을 인용하며, 현대의 우리에게 돈이 어떠한 의미 -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 - 를 지니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허나! --- 이 책「돈의 철학」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핵심은, '돈'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이해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 지식이 아닌 관점(viewpoint)를 배운다. … 철학의 목적은 바람직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수립하는 데 있다. 이 책「돈의 철학」은 돈에 대한 가치관, 즉 바람직한 금전관의 정립을 돕기 위한 책이다.(p9)
'돈' 자체는 스스로 판단할 수도 가치관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당연히 자신의 주인을 결정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저 인간 사회의 원활한 유지를 위한 도구일 뿐이죠. 그러하기에, 우리는 '돈 자체'에 대하여 어떠한 선악의 판결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돈은 중립적이다. 돈은 아무 죄가 없다. … 돈에 대한 부정직인 믿음들은 돈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문제이지 돈이 악한 것은 아니다. … 악의 뿌리는 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다.(p36)
우리가 비판하고 감시하여야 할 것은 '돈을 버는 방법'이 어떠한가이지, '돈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타인의 돈 많음에 배아파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 일부에게 부가 집중되어 있는 현상 그 자체를 무조건 비판만할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자신의 부가 어찌하여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 더 많지 않은가를 (타인/타인의 부와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능력/노력 등에서 먼저 찾아보자라는 것이, 제가 이해하는 바 이 책을 쓴 노교수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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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소득은 그가 제공한 가치에 정비례하며, 그 가치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다.(p38)
물론 그 예외는, 논자에 따라 그것이 예외일 수 없다라고 할 수 있을만큼 많겠으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가치를 갖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라 팔렸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주장과 위 인용구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주저없이 '나의 가치는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라는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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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역시, 모두가 '돈이 많다라는 의미로서의 부자'일 수 없다는 점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 제 생각에 적잖이 상반되는 의미의 (일종의) 조언과 위로를 동시에 건네어 주고 있다는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느냐 없는냐는 그 일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 미항공우주국을 방문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빗자루를 든 잡역부에게 하는 일을 물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걸 돕고 있습니다."(p395)
「소서」의 저자 황석공이 일갈했듯, '일'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그 일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한다라는 점은 '역시!' 노교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인생의 참 지혜라 하겠으나,
돈이 적어도 부유한 사람이 많다. 돈이 없어도 부자라고 생각하면 부자가 된다. 부유의 빈궁은 의식의 문제다. (p406)
초반의 솔직함에 비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인문학'에 문외한에 저에게는) 뜬구름 향해 손 젓는 내용의 글들만 읽어졌다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노교수로부터 배우게 되는 내용이 아니었나라는 아쉬움이었네요. 어쨌든!
"돈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로 절대화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실종되어버렸다."
- 김찬호, 위의 책 p179.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돈은 그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주어진/인간이 발명한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점 ---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그 돈들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지, (물론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 것인가의 고민은 필요하겠으나)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는 점!
허나 현실에서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압도적으로 크다라는 점.
※ 함께 읽을면 좋을 책들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돈의 인문학」·「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