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상징되는, 국가대표간 한·일전에 대한 우리의, 그리고 일본인들의 관심은 새삼스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뜨겁지요. (저에게 이를 분석할만한 사회학적 능력은 없습니다만, 어렴풋이나마 추측해보자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제의 식민지배로 표현되는 과거의 역사가 한·일전의 승리를 갈망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라 이해된다면, 대체 일본인들이 한·일전에 보이는 극도의 흥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제 하 어느 우체부가 석굴암을 발견했고, 그 웅장함에 감탄한 일제가 석굴암을 분해해 일본 본토로 옮기려는 작업을 하다가, 생각해 보니 한반도도 자기네 땅인에 굳이 이건 본토로 옮겨야할 이유가 없지 않겠냐라는 이유로 다시 조립을 했다하더군요. 그래서 석굴암 본존불상을 둘러싸고 있는 수호신(?)들의 시선이 제각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일전에 보이는 일본인들의 관심과 승부욕이란 게 혹시, ---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자신들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국가와의 대결에서 (지배자였던) 일본이 (피지배자였던) 한국에 질 수는 없다라는, 일종의 계층의식의 발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인이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국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 일본인은 국내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계층제도에 대한 관념을 바탕으로 한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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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1944년 무렵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연승을 거두며 일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승리가 임박해지면서 미국은 여러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본 본토를 공격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을 투항시킬 수 있을까? 미군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 일본인이 목숨 걸고 저항하면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지 않을까? 일본을 점령하고 나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본 사회를 바꿔야 할까? 천황제도는 계속 남겨둬야 할까? … 이처럼 일본인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이해하는 일이 미국 정부가 당면한 급선무가 되었다. 같은 해 6월,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그 해답을 얻도록 문화적 관점에서 일본을 연구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국화와 칼>은 저자가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제출하려고 만든 일종의 일본 문화 연구 보고서인 셈이다.(pp14~15)
위와 같은 이유로 탄생된 것이 바로 이 책이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질(quality)을 떠나, 제 아무리 판세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전쟁중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자국의 승리를 가정하여 승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까지 미리 대비하였던 미국의 치밀함에 '무섭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만 합니다. 이러한 치밀함이 아마도, 현재의 미국이 지니고 있는 '파워'의 근간이겠지요. 암튼!
이 책을 펼쳐들었던 이유는 예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9년 8월 3일만큼은 아니었지만) 한국과 일본간에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전개되고 있었던 시점에, 도대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성격의 국가일까라는 개인적 호기심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 때문이었고, 지지부진했던 저의 독서와는 달리 그 기간 동안 급격히 악화된 한일간의 관계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것에 적지않은 부담감을 주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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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승전 후 일본의 지배를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집필된 책일까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일본과 일본 문화, 일본인에 대한 다양한 영역에 대해 '발기발기 찢어 해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 방법에의 한계로 인해서인지, 혹은 집필의 목적 때문인지, 이 책은 일본인과 미국인의 사고 방식, 그리고 그와 상호작용되는 관계인 생활 방식에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한 연유로, ---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읽어내기에 좀 많이 지루하기도 했었더랬습니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중 pp165~167, 민음사, 2015.
작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간의 대립을 언젠간 해결하려 한다면, 언젠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일본인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으나, 그건 그네들의 문제이므로 차치하고) 우리가 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겠죠. ---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작동하고 있는 '상상의 질서'라는 게 한두 가지로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꼽아 본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에 대한 의리'입니다.
명예에 대한 일본인의 '의리'는 자신의 명예에 오점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 '명예에 대한 의리'는 분명히 보복행위를 포함한다. (pp222~223) ……… 일본 문화에서 '의리'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 조직, 국가를 상대로 침략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상호존중 관계를 준수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p257)
현재와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일본을 이해하자'라는 주장은 자칫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쌍욕을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 승전을 가정하고 패전국에 대한 사전적 이해를 구하고자 쓰여진 이 책에서 보여지고 있는,
어떤 민족이 자신들의 사회경험와 가치체계에 근거해 다른 나라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행동계획을 추진할 때도 각국은 공동의 목표에 대해서만 장광설을 늘어놓을 뿐 그들의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이해햐려 하지 않는다. 만약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그들의 행동과 사상이 자신들과 다르다고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많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p37)
위와 같은 인식의 기반은,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는 대응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우리에게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고 있듯, 지금의 한일 관계에 있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깨부수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군의 입장에서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관건은 그들이 다음번에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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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화적 자원이 한 사회에서 주요한 상징이 되는 것은 지배적 집단 혹은 유력한 소수집단이 그 자원을 유지하며 성장시킬 때이고, 한 문화가 제도로서 확립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사회기반이 존재할 때이다."
- 이케가미 에이코,「사무라이의 나라」중 p93, 지식노마드, 2008.
현재 일본의 대응이, 자국 내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 분석했던 기사가 많았었습니다. 허나 정치 세력이 반한 감정을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겠다라 계획하는 것에는, 그러한 전략이 먹혀들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이는 곧 --- 그러한 전략이 먹혀들만한 사회적 기반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바,
일본인은 모욕을 받으면 곧바로 복수를 계획하고, 복수를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인이 그들의 윤리관에 비추어 복수를 맹렬히 비난하는 것에 상관없이 미국 정부의 일본 점령정책이 성공할지 여부는 그들이 복수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에 달렸다.(p444)
선거가 끝나면 일본의 대응도 변할 것이다라 생각했던 우리의 대응은 너무도 저급한 수준이었었지요. 일본 제품의 불매 운동이 단기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 대응방식으로는 평가받을 수 있겠으나, 다시는 이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를 제외시킨 일본의 '복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이 일본에게 '모욕이 아님'을 인지시킬 수 있는 반박불가의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며, 그 어떠한 논리도 먹혀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복수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지금의 우리에게 없음을 반성하며, 그러한 능력을 만들어 내자라는 내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정치'가 해야할 일이, 그리고 그를 이행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일본'에 대한 궁금함 :「사무라이의 나라」·「국가와 희생」·「이 세상의 한구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