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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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이어, 이 책 또한「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문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저자 장 지글러의 답변은 그지 없이 간단하지요. --- "경제 생산 방식이면서 동시에 사회를 조직하는 형태"(p23) 로 정의되는 '자본주의'가 원인이라는 겁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의 원리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데 있어. (p176) 


이 책에서 장 지글러는 자본주의는 "극히 적은 소수를 위한 풍요와 대다수를 위한 살인적인 궁핍"(p19)이라는 일종의 '식인 풍습'을 만들어내었다라 역설하고 있습니다.「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1라 주장했던 바와 동일한 맥락이지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 빈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였었다면, 이 책「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그같은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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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연환경이 악화되면 한 집단에 속한 들소 가운데 약한 개체는 맹수들에게 사냥당해 죽고만다. 그럼으로써 전체 집단의 안전과 건강함이 유지된다." 


- 성석제,「투명인간」p147, 창비, 2014.


"이데롤로기가 최고의 수준으로 성립하는 것은 명시적인 형식을 갖추었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 마음 속에 내면화할 때"2라는 류동민 교수의 지적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합니다. --- 작가 성석제가 사용한 '그럼으로써'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인과 관계는, 전체 집단의 안전과 건강함을 위한 '약한 개체의 죽음'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와, (그 죽음 뿐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러한 희생이 존재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불변의 진리'가 되어버리죠.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성석제, 위의 책 p364.   


작가 성석제가 언급한 '노력'이란 '희생'의 순화된 표현인 것이며,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란 작가의 말은 '알고는 있으나 너무도 잔인한 그 현실에 대해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에 대한 일종의 비난일 것이라 이해합니다만,


"처음에는 강요에 의해 힘에 눌려 복종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자유를 전혀 보지 못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후회도 유감도 없이 앞선 세대들이 강제적으로 해야만 했던 일들을 자발적으로 행한다. … 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에티엔 드 라 보에시,「자발적 복종」pp68~69, 사과나무, 2015.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란 작가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도 됩니다. 내 집 앞 거리가 버려진 쓰레기 없이 깨끗하다 하여, 세상에 쓰레기가 없다라 판단하는 오류 비슷한 것이죠. 누군가가 내 집 앞의 쓰레기를 치워갔을 것이고, 그렇게 모여진 쓰레기를 분리하고 처리하는 또 다른 누군가들이 있다라는 사실이, '내 집 앞에 쓰레기가 없다'라는 눈 앞의 현실에 파묻혀 버릴 수 있다라는 겁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Unfair Trade3라는 어처구니 없는 책에서 저자는 제 3세계 어린 아이들이 고작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받으며 그렇게 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라며 사뭇 공자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뭐 할 게 있는 줄 알아?'라는 고용주의 항변엔 한 마디도 못하죠. 더 큰 문제는 ---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라는 저자의 가치 판단입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였던 그에게는 그 돈이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었겠으나, 그 일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생활의 유지를 가능케 하는 큰 금액'일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죠. 장 지글러의 시선은 코너 우드먼의 그것과는 스케일 자체가 아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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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는 이 책을 통해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가장 우월한, 가장 진보된' 시스템이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합니다. 


자본주의자들이 쟁취한 가장 큰 승리는 우리로 하여금 '경제는 인간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고 믿게 만든 거라고 할 수 있어. 시장의 힘은 완벽하게 자율적이고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인간들은 거기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심어준 거라고. …… 세계주의자들은 그들이 지배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공동의 이익,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지킨다'고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어. (pp153~158)4


이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저자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5 그에 따르면 --- '사유재산권'이라는 해악6으로 인해 현재와 같은 빈곤이 발생되었고 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죠.7 그리하여 장 지글러가 선택한 해결책은 바로,


자본주의를 개혁하기란 불가능해. 완전히 파괴해야 해. 전적으로, 과격하게. 그래야 새로운 세계 사회경제질서가 창조될 수 있을 테니까. (p169) ……  다시 한 번 거듭 말하거니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평화로운 가운데 개혁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고.(p176)

경제학을 공부한 저에게는 그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타파'입니다. "내게 극좌파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8란 목수정에 정의(definition)에 따르자면, 장 지글러는 '극좌파'이며, "시장 자본주의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하고 사회를 인본주의적 원리에 따라 재건"9하는 것을 '진보'로 정의하고 있는 김상봉의 견해에 따르자면 '진보인사'가 되는 것이겠죠. - 장 지글러는 우리 모두에게도 극좌파 혹은 진보가 되어 '자본주의 타파'라는 '혁명'10에 동참할 것을 청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모든 모순의 구조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11


목수정,「파리의 생활좌파들」p239, 생각정원, 2015.


그러나, 일 개인의 행동으로는 자본주의 타파라는 거대한 목적을 이루어낼 수 없다라는 지적에 대해 장 지글러 또한 ---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 좌파 혹은 진보로 통칭되는 집단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가치인 '연대(solidarity)'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적 주제가 급부상하고 있단다. 바로 '지구촌 시민사회'야. ……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있을 뿐이야. "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 ……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게지. ……  시간은 곧 인간의 목숨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지.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단체들의 요구가 과격해질 수밖게 없는 거고. 그런데 가까운 시일 안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 보이는 전투라고 해서 시간이 흐르도록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면,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한 전투가 되어버리고 말테지. (pp178~179)


이처럼 장 지글러는 --- 큰 산불에, 작은 나뭇잎에 물을 떠다 그 불위에 끼얹은 한 마리의 벌새(colibris)에게 건네진 '너,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거 알아?'란 신(God)의 조롱에 대해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12란 벌새의 대답, 이처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비로소 바뀔 수 있다"13란 (일종의) 인식의 전환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무슨 결의안을 제출하는 건 언제나 돼지들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투표하는 법까지는 알았지만 자기네 스스로 무슨 결의안 같은 걸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 조지 오웰,「동물농장」p31, 민음사, 2006.


현재 자본주의 혹은 자본가들이 휘두르고 있는 권력이란 것이 우리의 "무지와 무기력함"14, 그리고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15와 같은 맹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란 자기 반성, 그리고 목표의 달성을 위한 실제적인 행동의 이행이 필요하다란 겁니다. 비록/물론 --- 그 행동이 원하는 목표를 지금 당장은 이루어낼 수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진보의 힘은 현실성, 실현가능성에 있기보다 '진짜 진보'를 꿈꾸는 상상력과 용기에 있다."


- 강수돌 외,「리얼 진보」 p11, 레디앙, 2010.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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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의 원인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21세가 자본」p30, 글항아리, 2014.


'가난'이라는 조건 하의 누군가는, '풍족함'이라는 조건을 지닌 다른 누군가와는 분명 다른 '가치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라 생각합니다. 그같은 차이가 '가난한 이들' 특유의 가치관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 즉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그 반대로 '가난'이라는 조건 탓에 그들의 가치관이 그렇게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 말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건 마치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질문과도 같은 것이지요. 작가 성석제는 그의 작품「투명인간」을 통해 "조건이 환경을, 환경이 인간을 바꾼다"16라며 단언코, '가난이라는 조건 탓에 그들의 가치관이 그렇게 성립될 수 밖엔 없다'라 주장했지요.17 이는, 


ⓐ 탈식민지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 몇 년동안,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은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대대적으로 돈을 빌려주었지. 서구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기 나라를 산업화하고 국가 인프라를 개발하라는 취지에서였어. 식민 국가들은 사라졌지만, 과거 식민 제국을 일구었던 나라들은 과거의 식민지에 널려 있는 부를 계속해서 착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곳에 자기들을 위한 시장을 열고자 했어. ⓑ 일부 독재 정권들은 이러한 빌린 자금을 이용해서 무기 구입에 열을 올리고 전쟁을 일으키는가 하면,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억압 수단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았지. (pp123~124)


ⓑ와 같은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부작용 역시 ⓐ라는 시스템적 착취로부터 기인된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란은 예의 (장 지글러가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아프리카 빈곤의 '원인'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할아버지는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1명이 배가 고파서 혹은 배고플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걸린 병 때문에 죽어가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 (p180) 


라는 저자의 바람(), 그리고 위 문구를 책의 뒷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수록해 놓은 출판사의 편집은 흡사 '불평등 자체를 악()'으로 판단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아쉬운 점은,


【 대안의 제시 】 


"반대는 대안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대안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는 대안을 만들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 되어야 한다."


- 강수돌 외, 위의 책 p96.


'자본주의 타파'를 원하는 당신이 그럼 추구하는 이상(ideal)은 무엇이냐,란 질문에 대한 장 지글러의 답변은,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허무했었습니다.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그건 나도 모릅니다. 새로운 사회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죠.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탈환한 시위대는 그들이 봉건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공화국의 탄생을 알리는 주역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노예 제도의 폐지만 해도, 당시엔 아무도, 거의 아무도 그런 것이 감히 현실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죠. 식민주의나 여성 해방도 마찬가지고요... (p196)


'자본주의의 타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언하면서도,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에 대하여 장 지글러는 아무런, 단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지요. 


"존재론적으로 현실이 그러하든 그렇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당위론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나아가 현실도 결국에는 당위를 향해 움직여 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거니와 앞으로도 당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 류동민,「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p169, 위즈덤하우스, 2012.


"현실에서 완전하게 달성될 수는 없으나 현실이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이념적 원형"18으로 정의(define)되는 '이상' 없이, 즉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파괴부터 하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 '대안 없음'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권력을 쥐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 또한 불가능하게 한다라는 점에서19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라 생각합니다. 저의 이해가 맞다면, 


"우리에게 있어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


- 마르크스·엥겔스,「독일 이데올로기」중20 


장 지글러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 이후의 시스템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장 지글러가 '공산주의'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되는 사건"(p60)을 공산주의의 완전한 패배로 규정짓고 있는 듯한 그의 인식이 공산주의의 재등장 자체를 아예 고려 대상에 넣지 않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21 지금 당장, 


자본주의의 타파를 이루어낼 수 없다라면, "심지어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다양한 수준에서 현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을"22것이라는 류동민 교수의 판단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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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을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 …… 권력을 갖는 자는 실상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권력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 그러나 권력의 인정이 일상화되면, 권력을 가진자는 자신의 권력이 스스로의 내적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반대로 권력에 지배당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그 권력을 부여한 원천임을 깨닫지 못하고 일상적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그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p67~69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 되어 있었고, 그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자본주의'라는 것이기에 당연히! --- 이 시스템이 영영, 적어도 아주 오랜 기간의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험"(p194)로서의 자본주의를 바라보기도 해볼 것을 권유했다라는 점에서, 이 책의 유용성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사유재산, 그리고 사유재산의 절대적인 보호는 집단의 이익을 희생할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자 흉물스럽기 그지 없는 자본주의의 원천 (p55)


경제학을 공부했었고, 여전히 사랑하는 저에게 위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사뭇 버겁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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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 모두에게 이 책을 바친다"란 문구가 책의 첫 페이지에 적혀 있듯, 이 책은 손녀와의 대화라는 구성을 통해 현재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아픔의 원인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것의 극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어렵지 않게, 그러나 매우 과격한 톤으로 말이죠. --- '죽도록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하여 내가 죽거나 그/그녀를 죽이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여 '죽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의심 받아서는 아니되겠는, 뭐 그 정도의 느낌으로 저자의 주장을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 개인적 생각입니다.  


※ 저자의 대표작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다시 읽어보니 참 허접하게 써놓은 감상문이네요. --;;) 

※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 

- 류동민 :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 엄기호 :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목수정 : 「파리의 생활좌파들

- 강수돌 외 : 리얼 진보

- 조지 오웰 : 「동물농장







  1.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p171, 갈라파고스 2007.
  2. 류동민,「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p37, 웅진지식하우스, 2013.
  3. 코너 우드먼, 갤리온, 2012.
  4. "그들(자본주의자들)은 …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을 지배하며, 그 손은 중력이나 천체의 운동처럼 변치 않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그 자들은 자신들의 선택과 결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이론을 내세우는데, 아주 일관성 있고, 공격적이며, 복잡하고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이 이론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단다."(p144)
  5. "개별적인 인간을 미워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 반드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를 이해해야 해" (p83)
  6. "사유재산, 그리고 사유재산의 절대적인 보호는 집단의 이익을 희생할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자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자본주의의 원천"(p55)
  7. "우리 별 지구는, 식량의 분배만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현재 인구의 2배 정도도 아무 문제 없이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말이야" (p180)
  8. 목수정,「파리의 생활좌파들」p237, 생각정원, 2015.
  9. 강수돌 외,「리얼 진보」p56, 레디앙, 2010.
  10. "사회 전체의 생산양식과 정치법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개개인의 생활방식, 사유방식,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 --- 자오팅양·레지 드브레,「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p31, 메디치, 2016.
  11. "봉기의 힘은 우리 각자가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데 있어" (p177)
  12. 목수정, 위의 책 p203.
  13. 목수정, 위의 책 p203.
  14. 조지 오웰, 위의 책 p157.
  15. 조지 오웰, 위의 책 p58.
  16. 성석제, 위의 책 p215
  17. 바버라 애런 라이크 또한「노동의 배신」을 통해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18. 류동민, 위의 책 p249
  19. "저는 이상을 하나의 척도로 간주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해, 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 자오팅양·레지 드브레, 위의 책 p24
  20. 류동민 위의 책, p248에서 재인용
  21.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는 성립하기 어려우며 우연히 성립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 류동민, 위의 책 p121 : 류동민의 공산주의에 대한 해석에 의하면, 러시아라는 후진농업사회에서 선도적 정치의식을 지닌 소수의 직업혁명가에 의해 시작되었던 20세기 '사회주의 혁명'과 그 실패를 가리켜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실패'라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오해이며, 오히려!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정당한 입증이라 평가받아야 한다가 됩니다. 장 지글러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도 위와 같은 오류로 인함이 아닐까 , 감히 추정해봅니다.
  22. 류동민, 위의 책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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